#참회록
4년간 힘들게 하던 일을 작년 12월 31일로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완전한 전업주부가 되었다.
쉬면서 보니, 왜 쉬어야 했는지 실감한다.
방전된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아두어도 한동안 켜지지 않는 것처럼, 나도 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게 번아웃인가.
지난 4년 동안 끝이 없이 진행되는 일정과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 속에서 내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 일을 사랑했고, 이 자리가 소중했다.
이 자리에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 내게 의미를 주었다.
기쁨도 가득하게 느꼈고, 충만함도 그러했다.
그래서 4년을 같은 마음으로, 또 더 성장하고 싶다는 열의를 가지고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나의 방식이 맞고, 옳다고 여겼다.
나의 생각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했다.
싸우지도, 소리를 치지도 않았지만 올곧은 생각들은 내 안에 가득했다.
의아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여기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인 것 마냥 안위했다. 그 안위 속에서 여전히 나는 옳다고 여겼다.
잠을 자도 자도 잠이 온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서 '저녁에 잠을 못 자면 어쩌나' 싶다가도 저녁이 되면 완전히 또 곯아떨어졌다.
한 달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일을 하는 동안 나를 채웠던 나의 생각들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내비치더니 분명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옳지 않을 수 있었겠구나, 아니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겠다. 아, 내가 틀렸구나.
내가 틀렸구나를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내 생각을 붙들고 있었던 것일까?
무엇이 두려워서 나의 옳음은 내 깊은 마음속까지 가득 차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의 날 선 생각과 날카로운 말들에 나도 우아하게 맞대응하면서 내가 옳다고 여겼던 것은, '나는 당신보다는 나은 사람이에요'라는 나의 자존심이자 나의 의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대놓고 싸운 적은 없지만, 논리와 합리적인 사고들로 세련되게 포장한 나의 생각은 다름 아닌 교만함이었다.
'내가 당신보다는 나은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이었는지, 한 달을 넘게 나의 삶은 꺼둔 채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깊이 실감 중이다.
'내가 옳지 않다. 내가 틀렸구나.. 정말 부끄러운 내 마음이 뿌리부터 있었구나.'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꽤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잘할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상황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피드백을 들을 때면,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확신했다.
부끄럽지만 내가 그랬다.
하지만 그러고 싶었을 뿐, 난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나이기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고 싶어서 그렇게 무거운 짐처럼, 나의 옳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나 보다.
나 스스로 높게 쌓아둔 나의 옳음이라는 벽은 누군가를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도 나를 솔직하게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의 옳음을 놓아주니 마음이 오히려 가볍고 편안하다.
내가 높게 쌓아둔 벽을 허물고 나니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조금씩 이렇게 다시 내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