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그리는 코드
1980년대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Caltech)의 교수였던 제임스 카지야(James Kajiya)는 한 가지 문제에 골몰했다.
‘실세계의 빛을 어떻게 하면 디지털로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17세기 뉴턴 이래로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며, 전자기파라는 사실이 입증되었고, 20세기 들어서는 양자(quantum) 단위의 입자로까지 해석되었다. 하지만 당시까지도 그래픽스의 세계에는 ‘제대로 된 빛’이 없었다. 반사, 굴절, 산란, 투과 등 빛의 특성은 물리학에서 복잡한 편미분 방정식으로 표현되었는데, 1980년대의 컴퓨터 성능으로는 이를 계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공학자들은 빛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했다. 그들이 다룬 빛은 한 번 반사되면 사라졌고, 그림자는 광원과의 각도만으로 결정되었으며, 표면의 밝기는 코사인 값으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화면에 비친 빛은 언제나 어딘가 어색했다. 금속은 금속처럼 보이지 않았고, 유리는 유리처럼 빛나지 않았다.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빛의 연쇄적 반응, 즉 한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또 다른 표면에 닿고, 그 빛이 다시 공간을 채우는,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은 컴퓨터 그래픽스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카지야는 이러한 그래픽스가 국소적이고 단편적인 빛의 계산에 머물러 있다고 보았다. 각 연구자들은 반사, 그림자, 굴절을 따로 다뤘고, 그들의 수식 속에서 흩어진 빛은 본질에서 멀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파편화된 빛을 하나의 수학적 원리로 통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전달 방정식(radiative heat transfer)에서 착안한 단 하나의 수식을 완성해낸다.
1986년, 달라스에서 열린 SIGGRAPH 학회에서 그는 이 수식을 발표했고, 그래픽스 업계는 술렁였다. 실세계의 빛을 수학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최초의 모델, ‘렌더링 방정식(Rendering Equation)[1]’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의 방정식은 이렇게 말했다.
“화면에 보이는 한 점의 색은, 그 점으로 들어오는 모든 방향의 빛의 총합이다.”
물리학에서 이미 알려진 원리였지만, 렌더링 방정식은 그래픽스에 적용할 수 있는 최초의 통합적이며 수학적 틀(model)이었다. 이후 그래픽스는 이 방정식을 중심으로 진화했다. 빛은 더욱 정교해졌고 ‘현실에 근접한 빛의 표현’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그 수식은 여전히 계산 불가능할 만큼 복잡했기 때문이다. 모든 방향의 빛을 더한다는 것은 곧 무한대의 경로를 의미했다. 빛은 한 번 튕기고 끝나지 않는다. 벽, 천장, 바닥, 사람, 유리잔을 거쳐 다시 벽으로, 그 반사와 산란의 경로는 수백만, 수억 개에 이른다. 그 모든 빛의 경로를 계산하는 일은 당시의 연산력(computing power)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이후 연구자들은 이 수식의 원리를 지키되, 가속화와 근사화의 싸움을 시작했다. 몬테카를로(Monte-Carlo) 기법, 레이 트레이싱, 패스 트레이싱 등 다양한 알고리즘이 개발되었고, GPU의 병렬 연산 능력이 폭발적으로 향상되면서 카지야의 렌더링 방정식은 마침내 인류의 계산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공학자들의 목표는 언제나 같았다. 더 자연스러운 빛, 더 현실에 가까운 영상.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언제나 계산의 한계에 부딪혔다. 방정식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 수식은 결국 연산력이 제한하는 근사값일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연산력이 한계를 돌파할 때마다 그 '이상'에 한발자국씩 다가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빛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이 끊임없는 시도는 과학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인간은 컴퓨터보다 훨씬 이전부터, 눈과 손으로 빛을 이해하려 해왔다. 빛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흩어지는지를, 수식이 아니라 색과 형태로 기록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화가들이었다.
카지야가 그의 방정식에 명명한 '렌더링'도 본래 공학이 아닌 미술의 언어였다. 렌더링의 어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되돌리다(to give back)” 혹은 “표현하다(to depict)”라는 뜻의 라틴어 reddere을 만나게 된다[2]. 18세기 초 영국의 비평가 조너선 리처드슨(Jonathan Richardson)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예술은 인간의 선함을 악함보다 우월하게 렌더링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3]. 화가가 자신의 정신적, 정서적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렌더링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19세기 또 다른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면서 '공간, 빛, 대기, 물을 진정성있게 표현'한다는 의미로 '렌더링'이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4]. 자연을 예술적 표현을 통해 진실되게 구현하는 행위, 쉽게 말해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빛을 생생히 표현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즉, 화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빛을 '렌더링'하고 있었던 셈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단어는 건축가와 산업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입체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기술적 과정”을 뜻하게 되었고, 마침내 1986년, 제임스 카지야가 이를 물리학의 언어로 다시 쓴 것이다. ‘빛을 표현한다’는 말은 그렇게 ‘빛을 계산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공학이 빛을 계산하는 동안, 화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빛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그들이 남긴 그림은 수식보다 오래된 ‘빛의 실험 데이터’였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어둠 속 한 줄기 빛으로 신의 개입을 그렸고,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그 빛을 인간의 내면으로 끌어들였다.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폭풍과 안개 속에서 빛을 자연의 에너지로 이해했고,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는 하루 동안 변하는 빛의 색과 온도를 붓끝으로 기록했다. 그들의 화폭에서 빛은 단순한 조명이나 장식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였고,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장치였다.
결국 ‘빛을 렌더링한다’는 행위는 공학과 예술이 공유하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욕망이었다. 하나는 물리의 언어로, 다른 하나는 감정의 언어로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사라지는가.”
빛은 물리적 현상인 동시에 존재의 은유였다. 그것은 물체를 비추지만,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빛을 그리고, 계산하고, 기다린다. 렌더링 방정식이 빛의 경로를 해명했다면, 화가들은 그 빛의 의미를 해석해왔다. 두 세계는 결국 같은 진실을 향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는 시도. 그 시도가 곧 예술이며, 기술이며, 그리고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공학자는 빛을 계산하고, 화가는 빛을 기억한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온 모든 기술과 예술의 목표는 하나였다. '빛을 그리는 코드'. 수식으로든, 색으로든, 인간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반복해왔다.
"이 세상은 어떤 원리로 빛나는가.”
빛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여전히 빛의 코드를 해석하려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모니터 앞에서 GPU 쉐이더 코드를 짜면서 하던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계산했던 것은 빛이 아니라, 그 빛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결국 공학도 예술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려는,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로 말이다.
표지이미지: <Caustics and color bleeding>, the paper of The rendering equation [1].
* 참고문헌
[1] Kajiya, J. T. (1986). The rendering equation. ACM SIGGRAPH Computer Graphics, 20(4), 143–150. https://doi.org/10.1145/15886.15902.
[2] Oxford English Dictionary. (2009). Render. In Oxford English Dictionary online (3rd ed.). Oxford University Press. https://www.oed.com.
[3] Richardson, J. (1715). An essay on the theory of painting. London: A. Bettesworth.
[4] Ruskin, J. (1843). Modern painters, volume I: Of general principles and of truth. London: Smith, Elder & 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