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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야,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재능과 재능 없음 사이에서 유턴 없이, 1루를 향해, 전력으로

by 일요일은 쉽니다


나는 시즌3부터 <최강야구>의 팬이 되었는데, 그 계기는 참 단순했다. 일 년 중 거의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구정 기간에 초반에는 며칠 여행을 다녀오고 후반에는 며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우연히도 내 유튜브 피드에 <최강야구> 영상 모음집이 떴고, 궁금해서 눌러본 하나의 영상이 그다음 삼십 분짜리 영상으로, 그다음 오십 분짜리 영상으로, 그다음 한 시간짜리 영상으로 계속 이어지다 한 번도 OTT 채널 구독을 해본 적 없는 내가 넷플릭스 가입을 해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소프트볼을 했고 그 당시 즐겁게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야구의 팬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고 내가 참 우러러보는 성향의 어른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김성근 감독의 팬으로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2024년 2월 구정 명절을 시작으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야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야구를 보며 웃고 그 야구를 보며 울고 넘어졌다가도 또 같이 다시 일어서곤 했다.


요즘에도 <불꽃야구> 영상 댓글을 보면 슬럼프 기간을 <불꽃야구>를 통해 이겨내고 있다는 댓글이 간간이 달린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 항상 그 밑에 좋아요를 누른다. 선생님께 <불꽃야구> 얘기를 할 때면 그렇게도 내 얼굴이 밝아졌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걸러내고 걸러내면 남는 가장 원액의 마음은 무언가, 쓸모 없어진 사람들이 다시 쓸모를 찾아가는 과정 같아서였다. 은퇴했다고 쓸모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서 적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울렸던 가장 깊숙한 본질의 감정은 그러했다. 나 또한 20대 후반을 지나 30대에 접어들면서 내 일상에 가장 뿌리 깊게 박힌 두 개의 단어는 “쓸모”와 “안전”이었고, 나 또한 너무나 젊고 젊은 나이지만 20대 시절의 반짝이던 모습을 다 잃어버리고 몇 가지 (잘못된 것 같은) 선택들로 인해 처절하게도 쓸모가 없어진 것만 같은 슬럼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야구 이야기가 그렇게 내 일주일의 위로가 되곤 했다. <최강야구>를 전성기로 접어들게 한 유명했던 김성근 감독의 대사 “돈 받으면 프로다”가 발현되었을 때 어떻게든 평생 해내온 야구를 어떻게든 놓지 않기 위해 한 주 한 주 달려가는 그 연습들과 그 경기들이, 그리고 그 그림과 이야기 속에서 쓸모 있어져 가는 모습들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이자 감동이었다.



그저께 어쩌면 고척에서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직관이라는 말에 나는 이 슬럼프 속에서 몇 주라도 더 연명해 견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바람으로 다녀왔고, 지난 경기도 그랬지만 특히나 오늘 경기에서 임상우 선수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타석에 임상우가 들어서면 기대가 됐다. 나는 특별히 임상우의 팬도 아니고 <불꽃야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따로 있지만, 오늘만큼은 임상우의 유니폼을 사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잘해준 경기였다. 임상우 선수를 생각하면 뭐랄까, ‘나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는데’라는 마음이 그득해져 그 아쉬움이 욱신거리다 보니 가장 아끼는 선수는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나 같아 보이는 선수들에 더 이입이 되며 마음이 가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나와 열 살 차이 나는 젊은 상우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 붐을 일으켰던 방송은 슈스케와 같이 재능 있는 일반인이 가수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나는 자신의 분야에 그런 등용문이 생긴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불꽃야구>가 야구(스포츠)에서 그런 등용문이 된 것 같아 어린 선수들을 보면 그들이 부러웠다. 노래도 스포츠도 그런 등용문이 생겼으니 부럽기는 매한가지인데, 슈스케 때 나는 그들과 같은 청춘이라는 보물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그 청춘이라는 공통분모도 없다 생각하니 지금의 나에게 지금의 상우는 먼 나라 이야기와 같이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그냥 당연히 잘난 선수였다, 게다 인물마저 잘생긴.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정근우 선수와 임상우 선수의 대화 내용을 들으며 여러 번 놀랐다. 임스타라 불리고 그 별명이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상우에게도 생각해 보니 드래프트 실패란 시기가 있었고, 대학 진학 후에도 그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던 슬럼프의 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고 확신으로 변해가던 시점에 드라마 같이 최강야구와 단국대 직관 경기가 잡혔고, 그 직관 경기에서 상우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게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충분히 눈도장을 찍었기에 그다음 해 트라이아웃에 나왔을 때도 이질감이 없었다. 내가 보는 상우는 <최강야구> 시작부터 <불꽃야구>의 지금까지 재능 있는 청춘이었고 당연한 야구선수라 생각했는데,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임스타였던 그가 현실에서는 재능이 없다 느끼며 야구를 관두려던 시점 드라마 같이 기회를 만났고, 재능과 재능 없음 그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고 잠시 주저앉아 있던 그가 재능을 향해 유턴하게 된 기회였다. 그리고 상우는 <불꽃야구>에 합류하며 야구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매주, 매회,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갔다.



지난주 올라왔던 중계진 콤비의 만담 영상 마무리에 손건영위원이 마지막에 장난스럽게 그러나 진지한, 인생에는 몇 번의 기회가 오지 않고 자기는 이 <불꽃야구>의 기회를 꼭 잡겠다는 말을 했다. 맥락상 나도 들으며 웃음을 터뜨린 대사였지만 정말 현실적인 교훈이다. 인생에는 오더라도 몇 번의 기회가 오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아야만 서사가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청춘이 야구를 꿈꿨고 야구를 해냈지만 재능이 있음에도 기회를 잡지 못해 그 길에서 돌아서야 했을까. 그저께 타석에 선 상우를 보며 십여 년 전 내 모습이 보여, 재능과 재능 없음 그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 결국 기회 없음으로 돌아선 내 모습이 아직 기회 있음의 타석에 선 상우 위에 겹쳐 마음이 욱신거리려던 찰나 상우의 시원한 안타에 함박웃음을 지은 오후였다.



인생에 몇 번 주어지지 않는 타석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십여 년 전 내가 상우 나이였을 때 가진 건 한없이 또 끝없이 큰 꿈밖에 없던 내 손을 꼭 붙잡고 전력을 다 해 1루로 뛰어가고 싶다. 재능과 재능 없음 사이에서 유턴 없이 그대로 1루를 향해, 전력으로.


임상우, 화이팅.





사진: <최강야구>, <불꽃야구>, <김성근의 겨울방학>, <정근우의 야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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