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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영 Jan 01. 2016

그 해 여름은 뜨거웠네

가족 이야기_시작

1994년에 큰 애가 태어났다. 4월생.


이 해 여름은 정말 끔찍하게 더웠고, 우리 가족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24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현관을 열어두면(아파트에는 대문이 없다!) 맞바람이 통해서 시원하였지만, 한밤중에는 당연하게도 문을 열어둘 수 없었다. 모기가 들어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역시 더 큰 문제는 사람이 무서워서였다.


너무나 더워 잠도 안 올 지경이었는데, 선풍기를 틀 수가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선풍기 괴담 같은 것을 믿지 않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를 놓고는 정말 작은 모험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첫애는 그 연약함 때문에 잠시라도 보살핌의 눈길을 놓치면 살아남지 못 할 것만 같기 때문에.

혹시라도 아기에게 해가 될까 선풍기도 켤 수 없으니 열대야를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시원할까 싶어 거실 바닥에서  잠을 자다가 무의식 중에 선풍기를 켜고야말면, 아내가 기어가서 껐다. 얼마 안 가 이번에는 아내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선풍기를 켠다. 그러면 잠시 후에 불어닥치는 바람을 느낀 내가 잠에서 깨어 무거운 머리를 들고, 아기 숨을 확인한 뒤에 다시 기를 쓰고 기어가 선풍기를 껐다.


우리는 그 여름에 더위와 싸웠다기 보다는, 선풍기의 유혹과 싸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이 선풍기 괴담 때문에 우리 아기는 얼마나 더위에 시달렸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하기만 하다.


괴담에 낚이면 피해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사회에 만연하는 괴담에 대해서 웃고 넘어가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시나 해서 사족으로 붙여놓는 말.


여러분, 선풍기 틀고 자도 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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