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_3
대학 시절에는 몸무게가 59킬로그램이었다. 키가 178이 되다보니 깡말라 보여서, 친구들은 바람 불면 "문영이 날아간다. 잡아라."라고 농담을 할 지경이었다.
결혼 후에 살이 찌면서 알았다. 내가 살이 안 찐 것은 어머니가 음식을 맛 없게 만들어서였다는 것을.
아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다음날 딸 둘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먹을 아침을 준비해 놓았다. 나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업이라 아이들 아침은 내가 먹여야 했다. 하지만 부지런한 아내도 때로는 피곤하여 아침을 준비할 수 없을 때가 있었고, 그런 날에는 내가 뭔가를 만들어 아이들을 먹여야 했다.
아무 것도 만들 줄 몰랐던 내가 그나마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계란 프라이였다. 요리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음식 장만이라고 하기도 간지러운 계란 프라이.
아이들은 반숙보다 완숙을 좋아했는데, 아내는 늘 태양이 후광을 뿌리는 듯한 모양의 완벽한 계란 프라이를 식탁에 내놓았었다. 아내가 요리하는 걸 가만 보면 정말 이렇게 간단한 것이 없었다. 계란을 깨서 프라이 팬에 올려 놓고 잠시 후에 소금 조금 뿌리면 완성.
드디어 아내가 늦게 돌아와 쓰러지듯 자고, 늦잠까지 자 허둥지둥 뛰쳐나간 어느 날, 나는 아이들을 위한 계란 프라이 요리(!)에 도전했다.
프라이 팬을 꺼내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는다.
불을 켠다.
기름을 두른다.
계란을 깨서 넣는다.
완벽했다. 이제 계란이 예쁘게 익혀지는 것만 기다리면 되...지 않았다!
계란이 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뒤지개를 들고 계란을 밀어서 뒤집으려 했다. 하지만 위는 아직 흐물흐물한 젤 상태. 계란은 사정없이 밀리면서 마치 스크램블처럼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뭘 잘못한 걸까. 알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한 번도 아름다운 계란 프라이에 성공하지를 못했다. 나는 엉망으로 만든 계란 프라이를 아이들에게 "스크램블"이라는 요리라고 말하며 주었다.
왜 나는 계란 프라이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는 저주 받은 몸이 되었을까!
결국 아내에게 이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내는 저~언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럴 리가 있나? 계란 프라이가 뭐 어렵다고 그래?"
아내는 내게 계란 프라이 해볼 것을 요구했고, 나는 다시 한 번 계란 프라이에 도전했다. 변함없이 계란이 타들어가기 시작하고 내가 뒤지개로 계란을 밀어버릴 때 아내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야! 불을 줄여야지!"
그날 알았다. 가스레인지의 불 켜기 스위치가 왜 로터리 형태인지... 그리고 나는 계란말이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십여 년이 지난 작년 어느날... 나는 내가 계란 프라이를 만들다가 망쳐버린 것이 "스크램블"이 아니라는 것을 <집밥 백선생>을 시청하다 알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사기를 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 백선생의 레시피대로 스크램블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내어주며 그 옛날의 사기극을 참회하였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