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4
음악 테이프를 듣고 있다. 갑자기 아내가 말한다.
"앞으로 좀 돌려봐."
나는 테이프를 앞으로(FF) 돌린다. 아내가 화를 낸다.
"뒤로 보내면 어떡해?"
뛰고 있을 때 앞이라면 자기 눈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테이프의 경우에는 출발한 곳이 앞일 수도 있다.
비디오 테이프를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멈췄다.
"여기보다 조금 앞 장면을 봐봐."
라고 하면 여러분은 FF를 누를 것인가, RW를 누를 것인가?
가령 우리 말 화법에도 이런 말이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에 바로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그 사람 앞에 누가 들어왔잖아?"
이것은 모두 지나간 일을 <앞>의 자리로 보내는 화법이다.
저 앞을 前으로 바꿔보면 의미가 좀 더 명확해 진다.
"점심 먹기 前에 뭐했어?"
이런 화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테이프를 앞으로 돌리라(FF)고 말했는데 뒤로 돌리는(RW) 일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 말이 bfore, after와 foward, rewind 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앞뒤도 헛갈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