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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Nov 19. 2015

짝숫날에 만나요

약속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나만의 시간이 늘어났다




- 다음 주에 시간 있어?
- 몰라. 오늘도 모르겠는데 무슨 다음 주야. 넌 언제 되는데?
- 화요일 저녁 어때?
- 화요일? 다음 주에는 월수금이 '먹는 날'인데.
- ...뭐?


격일 단식의 전혀 예상치 못 했던 부수적인 효과(?) 중에 하나는 나만의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선배 혹은 친구와의 약속이 줄어들었고, 여자친구(현재의 아내)와의 데이트도 아니, '밥 먹는' 데이트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술을 자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원래 대단히 사교적인 사람도 아니었지만, 식사 혹은 술 약속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나만의 시간이 늘어났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고, 나는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 조용하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 사치스러운 나태를 힐난 받지 않는 시간. 사무실에서도 잠깐이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굶는 날'의 점심시간이 참 좋다. 물론 여유롭지 않을 때도 많지만 최소한 사무실 소음을 제어할 수 있다는 엄청난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정말 좋다.


그런데 단식을 시작한 지 얼마가 지난 후부터는 오히려 사람들과의 약속이 늘어났다. '먹는 날'의 약속은 꼭 지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절반 '먹는 날'의 약속 아닌가. 혹시 나에게 혹은 상대에게 사정이 생겨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먹는 날'을 정해서 꼭 만나려고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흐지부지 잊혀는, 너도 나도 모르는 언젠가를 약속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 너 요새도 '그거' 하냐? 이번 달에는 언제가 괜찮은 거야?
- 응. 이번 달은 짝숫날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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