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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Nov 11. 2015

점심, 안 먹어요?

어제 먹었으니까, 오늘 안 먹는 거예요




사실 회사를 다니며 단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단식을 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이것은 내가 뚱보라는 사실을,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유난스러운 놈이라는 사실을 공표하는 일이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지만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점심 식사 때문에.


매일 먹는 게 거기서 거기인데, 회사가 이 동네 저 동네 옮겨다니는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고르라고 해놓고 막상 고르면 하필 골라도 그런 걸 고른다고 타박하고, 새로운 거 새로운 거 타령해서, 머리를 쥐어짜 겨우 생각해낸 메뉴에는, 나쁘지 않지만 그거 말고, 가볍게 퇴짜를 놓는 등 막내들에게 시련과 고난이 되는 일상의 과제.


친한 사람들끼리 더 친해지는 시간. 혹은 안 친한 사람들끼리 예의상 물어보고 예의상 답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어 음식도 먹어야 하지만 침묵도 깨야 되고, 이상한 농담, 웃고, 후회하고, 우리 다시는 이러지 않기로 해요, 무언의 다짐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시간. 때로는 평가받고, 평가하는 시간.


다들 매일 먹는 점심인데, 이틀에 한 번씩 혼자 빠지면서 “그냥 먹기 싫어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단식을 한다고 말하면, 그렇게 뚱뚱하지 않다는 말에 그렇게 뚱뚱하다고 답해야 하고, 또 ‘격일 단식'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사실 관심도 없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더 많은 질문들에 답을 해야 한다.


간단해요. 어제 먹었으니까, 오늘 안 먹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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