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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biinside Nov 16. 2022

7개월 단명한 스타트업 C레벨

마크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10월 31일 옥소폴리틱스(oxopolitics)라는 정치 커뮤니티 기반 여론 데이터 플랫폼의 CBO(Chief Business Officer, 최고 비즈니스 책임자) 자리에서 7개월 만에 물러났다. 보통의 회사라면 짧은 기간이지만 평균 수명이 짧은 스타트업에선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간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나에게, 스타트업 업계에, 또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스타트업을 선택한 세 가지 기준 


스타트업에 몸을 담은 지는 3년이 넘었다. 2019년 외국계 회사를 나와 M&A 직전의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대기업 담당 디렉터로 데이터 분석 컨설팅을 진행했다. 2021년 4월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캐나다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해 12월 지인이 공동 창업한 미국 암호화폐 세금신고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사업 전략과 운영 전략 디렉터로 4개월을 4년과 같이 일했다. 스타트업 업계에 3년 넘게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지인 중에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보단 스타트업 업계에 있는 이들이 많아졌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다시 대기업 시스템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내 몸도 마음도 자율적인 스타트업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2022년 4월 옥소폴리틱스라는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은 창업자였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옥소폴리틱스는 2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봐 왔던 곳이었다. 창업자이자 CEO인 호현님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트위터와 에어비앤비 엔지니어 출신이다. ‘이기적인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라는 책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었고 한국에서도 다수의 강연을 진행했다. 내 경우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호현님과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게 되어 창업 이전부터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호현님은 본인의 책이나 창업을 통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인생을 살고자 했다. 물론 직접 돈을 벌어 본 경험이 없기에 창업 초기부터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또 옥소폴리틱스의 비전과 미션의 가치를 높게 산 투자자들이 있어 생존할 수 있었다. 호현님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 식사를 하면서 그에게 농담처럼 뱉었던 말이 ‘언젠가는 함께 일하시죠’였고, 호현님 역시 나에게 ‘마크님을 모실 수 있는 회사로 키울게요’라며 화답했다. 그리고 모든 환경이 준비되었을 때 ‘이제는 저희와 함께 하시죠’라는 그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는 건강한 팀이었다. 작년에 캐나다에 도착해 한창 적응하고 있던 때에 운이 좋게도 미국에 본사를 둔 암호화폐 스타트업에서 전략 디렉터로 일했다. 그 와중에 옥소폴리틱스는 힘든 시기를 넘기고 프리 A 시리즈로 20억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CEO 호현님과는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회사 소식을 듣고 있었다. 사실은 한국에 있을 때도 캐나다에 있을 때도 직간접적으로 옥소폴리틱스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2022년 1월 데이터 분석 관련해서 컨설팅을 요청한 호현님을 위해 화상 미팅을 했는데 마침 회사 대부분의 직원들이 들어왔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데이터 관련해서 기본기가 부실하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만큼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무엇보다 팀원들에게 좋은 에너지가 있다는 점이 좋았다. 참고로 옥소폴리틱스는 전원 재택근무로 여러 나라, 여러 도시에 직원들이 분산되어 있다. 그만큼 팀워크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이러한 멤버로 구성된 팀이라면 함께 해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지막 이유는 업무 환경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다. 전 직원이 재택을 하기 때문에 나처럼 캐나다에 있는 경우도 문제 될 게 없었다. CEO인 호현님, 그리고 공동창업자인 COO 찬현님도 모두 미국에서 원격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하나는 캐나다에서 정말 새롭게 시작해 캐나다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택으로 일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이때 호현님의 함께 하자는 제안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생각했고 며칠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아내는 캐나다에서 칼리지(college)를 다니고 있었고, 두 아이들도 학교에 적응하고 있었던 때라 캐나다 회사를 다니면 아무래도 가족을 서포트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아직은 가족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 환경이 좋다고 판단했다.  




스타트업 C레벨 


직전 두 곳의 스타트업에서 내 포지션은 디렉터였다. 스타트업에서 디렉터는 한마디로 임원이지만 C레벨만큼의 책임과 권한은 없다. 다행히 내가 거쳤던 두 곳 모두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던 탓에 디렉터였지만 C레벨들과 함께 회사 운영에도 관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자산이 됐다.


옥소폴리틱스에서 처음부터 C레벨이었던 것은 아니다. 실력은 검증됐지만 서로 탐색하는 기간이 필요해 처음 몇 주 동안은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우선 회사가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IR (투자 유치) 준비를 함께했다. IR 준비가 어느 정도 되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도 어색함이 사라져 갈 때쯤 뉴욕에서 회동(?)을 가졌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CEO 호현님과 토론토에 있는 내가 뉴욕에 살고 있는 COO 찬현님을 방문하는 모양새였다. 대단한 건 없었다. 같이 뉴욕 일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고 호텔로 들어와 늦은 시간까지 회사 얘기를 했다. 둘은 회사 운영에 대한 이야기, 조직 개편에 대한 이야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내 앞에서 가감 없이 털어놨다. 그리고 한창 늦은 시간에 전 직원들과 매주 진행하는 올 핸즈(All hands) 미팅에서 우리가 나눈 내용을 공유했다. 그리고 다음 날 호텔 조식을 먹으면서 COO 찬현님이 나에게 연봉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제시받은 연봉은 그동안 받았던 연봉과 비교하면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모험을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내 역할은 투자 유치와 비즈니스 모델 수립을 통한 매출 창출이었다.


뉴욕에서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수차례 연착된 끝에 취소됐고 어렵게 다음 날 비행기가 잡혀 돌아올 수 있었다. 토론토에 도착한 날 저녁 CEO 호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포지션을 단순히 임원이 아니라 CBO로 생각하고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CBO인 것과 아닌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이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단순히 임원이었을 때 기대하는 결과와 C레벨이었을 때 기대하는 결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물론 그만큼 보상과 책임이 뒤따른다. 신생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C레벨이라고 해서 큰 연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기업을 다녔던 8~9년 전 연봉과 비슷하다. 대신 어느 정도의 스톡옵션을 받았고 이를 통해 회사가 혹시라도 상장(IPO)을 했을 때 노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사가 바라던 대로 로켓 성장을 이루면 그때는 몇 배의 연봉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그와 반대로 책임도 크다. 회사의 투자와 매출을 책임져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누구보다 먼저 십자가를 져야 한다. 파리 목숨인 것이다.


그럼에도 난 C레벨 제안을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다. 왜였을까? 사실 이유가 따로 없었다. 이래도 고생, 저래도 고생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패보다는 성공 확률이 조금 더 높다고 판단했다.


어느덧 직장 생활한 지 햇수로 18년 차이기에 C레벨이 어떤 의미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칭찬보다는 비난받기 쉬운 자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국내 기업, 외국계 기업을 다닐 때 C레벨에 대해 늘 불만족했던 나였기에 잘 안다. 물론 수천수만 명의 회사의 C레벨과 수십 명 규모의 스타트업의 C레벨은 무게감이 다르다. 하지만 책임감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내 커리어에서 첫 C레벨의 경험을 ‘지금’ 하고 싶었다.



  




쉬울 듯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 


스타트업 C레벨이 대기업 C레벨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은 고정된 업무 범위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없기에 일당백은 아니어도 두세 사람 몫은 해야 한다. 투자 유치와 비즈니스 모델이 주요 업무였지만 후로 사용자 성장을 책임지는 그로스(Growth),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매출을 일으켜야 하는 사업개발(Biz Development)까지 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역시 업무 범위가 어느 정도 고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답은 없다. 스타트업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맞춰가야 하는 부분이다. C레벨의 영역, 엄밀히는 창업자의 영역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점은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investopedia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회사의 계획’이라고 정의한다. 그 안에는 판매 계획, 타겟 시장, 비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즈니스 모델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아마존의 커머스 부문의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제품을 빠른 시간 안에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뤄지기 위해선 물류, 파트너십, 플랫폼 등 핵심 분야에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비즈니스 모델은 강력한 힘을 발휘해 매출과 수익을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많은 사용자는 곧 매출로 이어진다.


옥소폴리틱스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많은 사용자를 많은 매출로 연결 짓는 것이었다. 커뮤니티 기반으로 사용자를 모아서 회원수 20만 명, 월간활성사용자(MAU) 최대 18만 명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옥소폴리틱스의 방향은 그들로부터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정치 시장, 즉 정치인, 정당, 나아가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로부터 돈을 버는 것이었다. 물론 MAU 증가가 간접적으로 매출에 기여를 하겠지만 직접적으로 매출을 보장하진 못하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옥소폴리틱스가 선택한 것은 기본적으로 여론조사였다. 사용자들은 매일 세 차례 이상 올라오는 정치 및 사회 이슈에 대한 질문에 대해 O, X로 응답을 하는데 실시간으로 성, 연령대, 지역, 정치 성향에 따른 결과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언론 등에서 가장 먼저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활용해서 기사화가 많이 되었다. 데이터에 대한 가치는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 관련한 여론조사에 대한 시장은 보수적으로 봤을 때 제한적이었다. 이를 다른 곳으로 확대하더라도 성장세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그로스(Growth)를 통한 사용자 증대와 매출 증대의 연결 고리가 약해지다 보니 스타트업에서 최근 중요하게 여기는 유닛 이코노믹스(unit economics)를 찾기 힘들었다. 즉 단위당 수익과 비용이 계산되어서 그 확장성을 증명해야 하는데 수익과 비용을 적용할 단위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물론 이 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CBO인 내 책임이었고 난 완벽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투자 혹한기, 스타트업의 지옥문이 열리다 


2022년 2분기가 되면서 경기 불황이 가시화되었고 투자 혹한기가 본격화됐다. 성장 가능성만으로도 투자했던 시기는 옛날 얘기가 됐고, 당장 지속 가능한 매출이 발생하는 안정적인 곳 위주로 투자가 이뤄졌다. 스타트업이 3~5년을 버티는 확률이 30% 이하인데, 투자 혹한기는 이를 크게 낮췄다. 하필 2분기부터 IR(투자 유치) 활동을 시작한 우리 입장에선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이전에는 시장 상황이 아닌 내부 상황으로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면 이제는 시장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긴 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프리 A 시리즈까지는 당장 매출보다는 커뮤니티 성장과 플랫폼 안정화를 요구했던 투자자들이 당장의 매출에 대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남은 자가 승자인 투자 혹한기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회사의 무게 중심을 매출, 즉 세일즈로 옮겨야 했다. 문제는 커뮤니티와 플랫폼 중심으로 운영되었기에 세일즈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돌아보건대 그때 CBO로서 과감하게 세일즈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해야 했다.


IR을 위해 무더위와 폭우가 기승을 부렸던 8월 초 한국을 방문해 10여 곳의 투자사를 만났다. 분위기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목표한 것이 100이었다면 50 정도의 성과가 있었다. 구두로는 여러 곳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줬다. 하지만 투자는 사인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투자 혹한기는 내 표현대로라면 투자 빙하기로 악화되었다. 투자사들조차 투자를 위한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운영이 최우선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투자가 지연될수록 회사의 움직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 소문이 들려왔다. 이미 구조 조정을 빠르게 진행해 직원 규모를 10명 이하로 줄인 스타트업을 비롯해 투자는 유치했지만 기업 가치가 오히려 이전에 투자받았을 때보다 떨어진 곳도 있었다. 유명한 투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00억이 아니라 단 몇 억이라도 투자를 받더라도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투자 빙하기에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고,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 절치부심해서 제대로 평가를 받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아니 유일한 방법이었다.  







CBO로서 잘한 것과 못한 것 세 가지 


솔직히 못한 것 세 가지만 찾고자 했다. 하지만 잘한 것도 찾아보는 것이 나와 동고동락한 팀원들과 나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 생각됐다.


우선 잘한 것은 끝까지 남아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것이다. 직전 스타트업의 경우 CBO가 회사가 힘들어지기 시작하자 개인 사정을 이유로 연락이 두절됐다. 그를 의지했던 많은 직원들이 우왕좌왕했고 그는 결국 회사가 구조조정을 할 때까지도 복귀하지 않았다. 비록 CBO로서 회사가 원했던 결과를 이뤄내지 못했지만 CBO에서 물러나는 날까지도 직원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동기부여를 했다. 아꼈던 팀원은 나의 존재가 심리적 안전감에 큰 도움이 됐는데 나의 부재로 인해 흔들릴까 걱정했다.


다음으로 잘한 것은 피플 매니징(people managing)이다. 사실 CBO 본연의 업무이기보다는 C레벨로서 당연한 역할이었지만 다른 C레벨보다 잘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옥소폴리틱스의 경우 피플 매니징을 위해 매주 일대일 면담을 진행한다. 내 경우 직속 팀원이 아님에도 나와 일대일 면담하기를 원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조직이 바뀌어도 계속해서 나와 면담하면서 업무적으로나 업무 외적으로나 조언을 듣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이 세일즈 마인드를 갖도록 도운 것이다. 세일즈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세일즈 경험 있는 팀원이 없었다. 고맙게도 모두 다 세일즈를 어떻게든 해내고자 했다. 그들에게 세일즈의 기본이 무엇인지 알리고 고객과 미팅이 있을 때 어떤 어젠다를 가지고 해야 하는지, 반드시 얻어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공유했다. 다행히도 10년 전 컨설팅할 때 영업 강화 프로젝트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못한 것은 솔직히 세 가지만 꼽기도 부족하다. 가장 먼저는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회사 안팎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투자 혹한기에서 빙하기로, 커뮤니티 성장에서 매출 증가로 변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투자 시기와 규모를 빠르게 예측하고 비용 절감을 서둘러야 했고, 매출 증가를 위해선 가장 효과가 빠른 방식을 찾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두 번째로는 CEO와 COO를 너무 의지했다. 어떤 뜻이냐면 CEO, COO, CBO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C레벨인데 나는 뒤늦게 합류했다고 생각해 초기에 내가 비즈니스 주도권을 갖지 않고 두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 그래선 안됐다. 나에게 CBO로서 권한이 주어졌는데 그걸 200%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내 커리어에서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뜨겁지 못한 잘못이 있다. 한마디로 CBO로서 내 100%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100%의 애정과 헌신, 관심과 사랑으로 회사를 위해 일했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그랬다’라고 답할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나라는 사람은 더 잘할 수 있었다. 왜 그러지 못했는지에 대한 더 구체적인 이유를 찾는 것은 남은 숙제다.  




정리해고,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나는 10월 31일 자로 회사를 나왔다. 약속됐던 투자마저도 지연되는 상황에서 회사에 가장 큰 비용 부담을 주는 사람이 가장 먼저 나와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악화됐고 CEO 호현님은 결국 21명 규모의 조직을 7명으로 줄이는 정리해고를 진행했다. 이 과정은 호현님이 이미 브런치와 페이스북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런 상황에선 떠난 자도 남은 자도 행복하지 않다. 떠났는데 더 좋은 곳으로 갈 수도 있고, 남았는데 회사가 극적으로 살아남아 큰 몫을 챙길 수도 있다. 물론 양쪽 모두 최악의 경우도 있다.


회사를 나오는 날,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을 담은 글을 남겼다. 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저는 여러분에게 ‘회사의 성공 직전에 회사를 떠난 가장 불행한 CBO’로 기억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덜 부끄럽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 캐나다에 온 지 1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났으니 이젠 캐나다 회사에서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 일은 모른다. 18년 직장 생활 동안 5곳의 회사에서 일했지만 어느 곳도 내가 사전에 계획하고 원하던 때 들어간 곳이 없으니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넥스트 스텝 역시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Mark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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