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야기 SLOWWOWSLOW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돈룩업’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서 지구를 폭파시킬 운석이 날아오는데도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행동하지 않으며 정치계, 기업, 언론은 이 사실을 돈벌이 목적으로 사용한다.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관련 인터뷰에서 주인공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 영화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깨워주는 영화라 뜻깊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해석을 찾아보니 영화에서 지구를 폭파시킬 운석이 바로 ‘기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파타고니아가 바로 현실 세계에서 기후위기를 외면하는 사람들에 맞서는 ‘브랜드’이다.
파타고니아는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브랜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파타고니아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 비즈니스를 환경보호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너무 이상적이어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는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본 쉬나드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즐겼다. 그는 클라이밍 또한 즐겼는데, 오래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품질 좋은 피톤(암벽 고정 확보물)을 구할 수 없자 자신이 직접 피톤을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시작됐다. 이 피톤은 클라이머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피톤이 암벽을 파괴한다는 점을 알게 된 후로 핵심 사업 부문인 피톤 생산을 즉시 멈췄다. 그리고 이후 망치를 사용하지 않고 사용 후 제거 가능한 알루미늄 너트를 개발하였다.
이 스토리 하나로 이본 쉬나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는 말 그대로 환경을 최우선시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자연과 더 오래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을 얻는 ‘알피니즘’을 추구한다. 그러나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이 ‘알피니즘’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자연과 아웃도어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환경보호에 쏟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돈만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몇몇 브랜드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진정성이 가끔 의심될 때가 있다. 파타고니아는 이와 반대로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브랜드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우리가 쓰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서 우린 브랜드의 영향을 받고 우린 제품과 서비스 이면의 가치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이본 쉬나드가 이용한 것이다. 그에게 비즈니스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지닌 브랜드더라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망하고 결국 자신들의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파타고니아는 이를 인지하지만 경제의 시스템에 속하지 않고 역으로 경제를 이용하고 있다. 이본 쉬나드가 단순히 환경 운동가였다면 우린 그가 하는 말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을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책임감과 수익성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들을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사회 봉사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의 이면에는 그만큼 정교하고 투명한 관리가 따르고 있음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매거진B] 파타고니아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이유는 파타고니아의 방식이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본 쉬나드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이익도 창출해낸다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파타고니아가 말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지구를 되살리자.’ 그리고 이에 입각하여 모든 비즈니스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방향성은 파타고니아 내부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창립 초기부터 환경 부서를 두었고 이 환경 부서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이후 다른 부서로 이동하여 파타고니아의 방향성에 맞도록 업무를 해나간다. 또 파타고니아는 그들이 하는 사업행위가 환경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직접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환경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파타고니아는 이를 자처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환경과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밝히자는 목적으로 ‘발자국 찾기 The Footprint Chronicles’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웹사이트를 통해 소비자들은 제품 생산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파타고니아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제품에 대한 믿음도 가지게 된다. 또 이들은 사업행위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요소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파타고니아는 내부 구성원과 소비자 모두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기 위한 의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왔다. 예를 하나 들자면, 파타고니아 직원은 최대 8주 동안 환경 단체에 자원봉사자로 참여가 가능하고 이 활동은 유급이다. 또 채용 시 환경보호활동에 대한 이력을 물어보고 가산점을 부여한다. 브랜드 철학을 지니고 이에 맞춰 행동하는 내부 구성원은 파타고니아의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메시지는 메시지를 넘어 철학에 가깝다. 최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익 창출만 할 게 아니라 기업 활동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파타고니아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간다. 대표적으로 연 매출의 1% 혹은 이익의 10% 중 큰 금액을 환경 관련 사업에 기부하고 있으며 이를 확장해 ‘지구를 위한 1%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다른 브랜드들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은 정말 놀랍다.
또 이들은 ‘Patagonia Action Works’라는 단체를 통해 거의 40년 넘게 진행해온 풀뿌리 활동가라고 불리는 환경 위기에 맞서는 이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이 단체는 환경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하나의 커뮤니티로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메시지를 널리 전하는 1차원적이며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더 많은 사람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과 같은 뜻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정된 환경 단체에게 마케팅과 홍보 교육을 매번 진행하고 환경 기부금도 여러 단체에 나눠서 지급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Patagonia Action Works’에 기부하여 환경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까지 말한 파타고니아는 어쩌면 사회봉사단체처럼 보일 수 있지만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제품을 파는 브랜드이다. 파타고니아는 올바른 방식을 통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비즈니스 방식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성공했다. 파타고니아는 자연을 최대한 덜 해치는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이들은 최고의 제품이 곧 지구를 되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 프라이탁에 대한 글을 쓸 때도 말했지만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 등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은 기존의 제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어야 한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것만으로 소비자들이 구매하길 원한다면 그건 기만이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재활용 재료가 원자재만큼 품질이 좋지 않다면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의 제품은 기능이 뛰어나며 품질이 매우 좋다. 비싸지만 오래 입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파타고니아는 많은 현직 테스터들과 일한다. 제품의 기능과 품질을 전문가들이 직접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오랜 테스트에 걸쳐 수정되고 기능과 품질적으로 완벽한 제품만이 출시된다. 파타고니아의 로고 속 실제 모델은 피츠로이를 포함한 산군으로 매우 거친 환경이다. 이 거친 환경도 견뎌낼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제품과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제품이 지구를 되살리는데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특히 파타고니아 제품의 내구성은 가히 놀랍다. 2,30년 이상 문제없이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있으며 할아버지가 입던 제품을 아직도 입고 있는 소비자도 있다. 또 이들은 염색 처리를 하지 않는 원단이나 버려지는 원단을 재생하는 순수 원단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또 모든 면 소재 의류를 유기농 목화로 생산하고 있으며 플리스 제품은 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해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제품 생산과 더불어 파타고니아의 수선 서비스는 소비자가 제품을 더 오래 입도록 도와준다. 이들은 브랜드를 막론하고 어떤 의류 제품이든 무상으로 수선해주는 ‘Worn Wear’ 서비스를 진행한다. 고쳐 입고 다시 쓰는 순환의 정신은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 중 매우 급진적인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난 이 서비스가 파타고니아가 고객에게 어떤 태도로 다가가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말로만 고쳐 입고 오래 입으라고 말하지 않고 품질 좋은 제품을 통해서 그리고 고객을 위한 수선 서비스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진심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보인다. 심지어 광고를 잘하지 않는 파타고니아가 자신의 제품을 내건 광고에서 ‘Don’t buy this jacket’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소비자에게 제품 이면의 어떤 가치를 팔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파타고니아의 메시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이유는 자연과 아웃도어에 대한 관심에 있다. 파타고니아 직원들이 파도가 좋은 날 회사 문을 닫고 파도를 타고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또 파타고니아 웹사이트에는 ‘The Cleanest Line’이라는 아웃도어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둔 블로그가 있다. 이 블로그의 카피는 ‘Some stories to get you out there’이다.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이 카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집 밖으로 나와 아웃도어 활동을 시작할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고 ‘환경보호에 눈뜨게 되는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카피는 파타고니아를 정의하는 카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타고니아는 이 창구를 통해 아웃도어 활동에 관한 이야기와 환경에 대한 액티비즘 이야기를 전한다. 파타고니아의 에세이도 재밌지만 ‘Patagonia Film’은 다양한 주제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봤던 영상 중 인상 깊었던 영상은 ‘Run to save a watershed’로, 칠레에서 활동하는 트레일 러너이자 파타고니아 파트너인 Felipe Cancino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Maipo 강에 짓고 있는 수력발전소에 대한 시위로 공사 현장을 포함한 강 주변 산을 이틀에 걸쳐 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칠레 정부가 무분별하게 자연을 소비하는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그가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이유는 파타고니아와 같다. 그는 산을 뛸 때 몸과 정신이 더 깊은 곳으로 연결되는 기분을 느끼며 그 연결이 자연을 향할 때 열정을 느낀다고 한다. 자연을 사랑하기에 지키는 것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타고니아와 그의 방식은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행동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우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하여 관심을 가지고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영상 외에 파타고니아와 같은 행보를 걷는 여러 활동가와 스포츠인들을 웹사이트에서 접할 수 있다. (한국 파타고니아 웹사이트에서는 한국인들의 활동도 접할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행동하는 기업이고 자신과 비슷하게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계속 노출해주는 채널의 역할 또한 한다. 파타고니아는 자신들의 브랜드뿐 아니라 활동가, 스포츠인의 목소리를 더해 더 크고 멀리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제안은 설득적이다. 같은 재킷을 사더라도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기능도 뛰어나며 오래 입을 수 있는 재킷을 누가 구매하지 않겠는가. 파타고니아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브랜드이다. 파타고니아의 여러 채널에서 ‘ACTION’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는 것은 이들이 ‘행동하는 파타고니아’가 자신들의 강력한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는 리더이자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들의 ‘행동’을 통해 환경을 해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소비자들은 파타고니아의 행동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이를 따라가고 싶은 자들이고 이들은 제품 이면의 가치까지 소비한다.
파타고니아의 가치는 그냥 보이는 것이다. 브랜딩은 말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했던 것이 인식되는 과정이다. 브랜딩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누구인지에 대해 소비자가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즉, ‘행동이 우선시 되고 그에 대한 인식은 뒤에 따른다.’ [출처: 실무자를 위한 현실 브랜딩 안내서]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낫다는 말처럼, 브랜드가 자신들의 슬로건과 미션을 여러 채널을 통해 드러내고 이와 관련된 단기 프로모션을 진행한다고 해도 꾸준히 행동해온 브랜드의 가치가 더욱더 뚜렷하게 인식된다. ‘We guarantee everything we make’, ‘We give back for every sale’ 등 파타고니아의 언어에서 ‘We’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We’, 즉 파타고니아가 행동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줄 뿐이다. 브랜드 가치에 따라 일관적으로 행하는 브랜드는 사람들의 곁에 오래 남는다.
항상 글의 마무리에서 말하는 게 있다. ‘좋은 브랜드가 많아지면 더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아질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난 이를 증명해줄 브랜드들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파타고니아도 그중 하나이다. 지구를 아끼고 자연을 생각하는 브랜드이지만 결국 사람들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더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이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를 자신의 삶 곁에 오랫동안 두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 단순히 자원봉사로 느껴져서는 안된다. 환경보호에 앞장서면서 비즈니스적으로 성장해야 파타고니아의 영향력 더욱 커진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누군가 ‘브랜드 그거 어차피 다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냐?’ 라는 질문을 받을 때 말할 대답을 항상 준비해둔다. 브랜드는 사람들의 좋은 삶을 위해 탄생했으며 그 좋은 삶을 위한 가치를 널리 전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그리고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해야 그 가치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대답을 더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가 좋은 브랜드 가치와 메시지를 잇는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브랜드 일을 해보려 한다.
여러분도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에 반해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는 브랜드가 있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주넌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