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서비스를 하려면 앱 개발자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밤의 장막이 천천히 걷히고 새벽의 기운이 하늘을 채우기 시작했다.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집마다 신문과 우유가 문 앞에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한 소년의 방은 다른 방과는 달랐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모니터의 파란빛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곧 등교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손가락과 동공을 제외한 그의 신체는 미세한 미동조차 없었다. 그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1998년 3월 31일에 출시되어 수많은 청소년과 성인들을 PC방으로 몰아넣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는 게임을 즐기기 위해 밤을 새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게임에서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맵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그가 만든 스타크래프트 맵은 이미 수백 개를 넘어섰다. 그의 창작력에는 특별한 비결이 없었다. 단지 시작하면 최소 5시간에서 10시간까지 끊임없이 작업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게임에 쏟아부었다. 커뮤니티에서 그의 작품을 알아보고 응원하는 이용자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 덕분에 지치지 않고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맵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몰입할 수 있는 집중력을 게임에 몰아서 주셨는지 학업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크게 일탈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공부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게임에만 몰두하던 그가 나중에 박사과정까지 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나중에 IT기업 세미콜론을 운영하게 된 류근웅 대표의 이야기이다.
사실 류근웅 대표는 학업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게임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강요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황우석 박사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리고 ‘생명공학’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 순간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없이 모든 대학의 생명공학과에 지원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어느 날 불렀다.
너 전부 생명공학과로 지원할 거니? 의공학과라는 분야도 있으니 한번 지원해 봐.
의공학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류근웅 대표는 일단 선생님의 조언대로 의공학과에도 지원했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했을 때 깜짝 놀랐다.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생명공학과는 전부 다 탈락했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지원한 의공학과만 합격했다. 선생님은 제자가 낮은 가능성에 몰두하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나머지 가능성은 물론 장래성이 있는 분야로 제자를 끌어준 것이었다.
의공학은 공학 기술을 의학과 인체에 적용시키는 학문 분야들을 통칭한다. 생체재료, 인공장기, 의료기기 등 의학과 관련된 소재, 기기, 장비 등을 만들거나, 생명공학을 의학에 접목해 인간의 보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공학 분야이다. 융합 학문이다 보니 배워야 할 과목도 많을뿐더러 기초의학 지식에 대한 기본적인 숙지도 필요하다. 의공학을 의과대학 내부에 설치한 학교도 많았지만 그가 붙은 의공학부는 보건과학대에 위치했다.
보건과학대라니! 남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서 만난 동기들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만 빼면 모두 똑똑하고 성실했다.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류근웅 대표도 어느새 동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며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날들도 오래가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때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살던 시절을 잊으려 했던 그에게 새로운 유혹이 찾아왔다. 스타크래프트2였다.
스타크래프트2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로 전 세계를 흔들었던 블리자드가 12년 만에 내놓은 후속작이었다. 한국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블리자드는 한국 게이머들의 열정과 지지에 보답하고자 스타크래프트2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한국은 스타크래프트2의 열풍에 휩싸였다.
류근웅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중고등학생 때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살았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공부와 캠퍼스 라이프에 몰두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2가 나오자마자 그는 다시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는 게임을 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기도 하고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도 했다.
‘빨리 집에 가서 스타크래프트2 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수업이 길지?’
그의 머릿속에는 게임 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나 삶에 대한 꿈은 없었지만, 게임에 대한 열정만은 최고였다.
그는 스타크래프트2에서 다이아몬드 리그라는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플레이어였다. 실력이 좋아서 프로게이머로 전향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예고 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바로 군 입대였다.
그는 언젠간 군대에 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입대를 앞두고 나니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다. 게임에 빠져 살던 그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마치 약에 중독된 사람이 갑자기 약을 끊으면서 겪는 금단현상과 같았다. 입대 후 초반에는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서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자기 삶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성격이 밝고 활발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오랜만에 남에게 맡겨뒀던 삶을 되찾은 것처럼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군생활의 순기능을 주장하려 한다면 류근웅 대표가 좋은 근거 사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영어 공부였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만큼 흥미롭지 않아 곧 포기했다. 그러던 중,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게임 개발에 필요한 코딩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휴가 때마다 코딩 서적을 사들였다. 군대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책에서 배운 코드를 직접 실행해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코드를 시뮬레이션하며 논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다. 스타크래프트 맵 제작에도 필요했던 그런 능력들이었다. 코딩의 매력에 점점 빠져드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듯했다.
그는 단순한 게임중독자가 아니라 프로게이머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승부욕이 강하고 창의적인 그는 항상 새로운 전략을 고안하고 실행하면서 게임의 세계에 몰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프로게이머들이 일반적인 게임중독자와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연구팀은 프로게이머들의 뇌파를 분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뇌파가 활성화되었다고 밝혔다. 반면 게임중독자들은 단순 반복 행동을 보여주는 뇌파가 주로 나타났다.
그는 군대에서 게임보다 코딩 자체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어느새 자료 구조와 알고리즘 같은 전공자들도 깊게 파고들기 어려운 주제도 도전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떤 분야를 정말로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게임에 몰두한 것은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그의 앞에는 두 가지 길이 펼쳐져 있었다. 하나는 창업이고, 다른 하나는 박사과정이었다. 그는 복학 이후 창업 동아리를 설립하고 특허를 출원하면서 창업의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기술 기반의 창업을 위해서는 더 깊은 연구와 탄탄한 사업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기술적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에서는 로봇 분야 석박사 통합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과정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대학교가 함께 운영하는 학·연협동과정이었다. 대학교에서는 석사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이 KIS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합격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그는 연구에 몰두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을 쥐어짜며 연구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디게임 개발팀을 만들어 게임개발에도 도전했다. 매일 아침 연구원에 출근하여 저녁 6시까지 연구를 하고, 2시간 거리에 있는 사무실로 가서 새벽 2시까지 게임개발에 매달렸다. 돈이 부족해서 저렴한 공유사무실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새벽에 대중교통 막차를 놓치면 집에 걸어가기 일쑤였다. 결국 게임 출시에 실패했지만, 평생 신뢰할 수 있는 인재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보상이었다.
그는 대학원생으로서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불만족스럽거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큰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부러워할 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당연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게 로봇 연구에 열중하던 그에게 어느 날 새로운 분야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블록체인이었다.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에 마음을 빼앗긴 류근웅 대표는 로봇 연구에 몰두하던 박사 과정을 중단하고 창업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그는 블록체인이 분산처리와 암호화 기술의 결합으로 보안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달성하며,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핵심 기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블록체인 코어를 개발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검증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로봇 연구와 개발만 해온 대학원생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았다. 스타트업의 세계에서는 ‘Fake it till you make it’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는 스타트업이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과장하거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마치 완벽하다고 소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촉진하거나, 투자자나 고객의 관심을 끌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과도하거나 거짓으로 밝혀지면, 스타트업의 신뢰도와 명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
테라노스와 프랭크가 그런 사례였다. 테라노스는 혈액 검사 기술을 혁신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그것이 사기로 판명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프랭크는 학자금 대출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으로 인수되었지만, 가짜 고객 리스트를 만들어 실적을 부풀렸다는 혐의로 소송에 휘말렸다.
류근웅 대표는 이런 방식에 반감을 느꼈다. 그는 근거 없는 말이나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기보다는 현실적인 가능성과 난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구체적이고 타당하게 설명하고,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당시 스타트업씬에서 외려 이단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그러한 접근 방식을 차마 허용할 수 없었다.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우수한 발표와 논문을 내고 저널에도 게재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 받았는데 굳이 현실을 과장하면서까지 무리하게 투자를 유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창업을 한 이상, 어떻게든 수익을 내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IT 외주 사업이었다.
처음에는 로봇 개발과 관련된 의뢰가 많았다. 로봇 개발은 고객사마다 다른 요구사항을 충족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의뢰가 들어왔다. 한번은 경상남도 마산까지 로봇을 납품하고 유지보수를 위해 왕복 10시간 동안 차를 몰고 다녔다. 단기간에 해결이 안되면 밤을 새거나 로봇 옆에서 쪽잠을 자며 정비를 했다. 로봇보다 더 로봇 같은 삶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화의 물결에 그의 사업도 영향을 받았다. 바로 전세계적인 창업 열풍이었다. 그와 동시에 로봇 개발보다 앱 개발에 관한 의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류근웅 대표는 스타트업들이 개발 업무를 외주로 맡기는 이유를 탐구해 보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첫째로, CTO급의 개발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경영 컨설팅 회사인 콘 페리(Korn Ferry)의 기술, 디지털, 데이터 및 보안 책임자이자 북미 담당 전무 이사인 크레이그 스티븐슨은 “여전히 인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기술 전문가 개인들이 선택권을 쥐고 있다”라고 말했다. 혼자서 다양한 분야의 개발을 소화할 수 있는 풀스택 개발자는 유니콘만큼이나 드문 존재였고 그들은 검증되지 않은 스타트업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를 꺼렸다. 초기 스타트업은 고액 연봉을 제공하기 어려웠고 스톡옵션도 사업 아이템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면 매력적인 보상 제안이 되지 못했다.
둘째로, 개발자의 인건비가 지나치게 높은 점이다. 스타트업들은 초기 투자금이 1억 원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최소한의 개발팀을 꾸리려면 한 달에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이것은 스타트업의 재정 상태에 큰 부담이 되었고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 때문에 고전하거나 포기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노동 시장도 치열해졌다. 그 결과, 직원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게 인식하고, 경쟁력 있는 보상을 주지 않는 기업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다닌다.
CIO이자 인력 전문가였던 엘렌 셰퍼드는 “우수한 성과를 내는 직원들은 채용 담당자들로부터 다수의 전화를 받기 때문에 직장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상위 인재를 찾는 조직은 시장 평균보다 최고 120%를 기꺼이 제공하곤 한다.
셋째로, 개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창업가들은 어떤 개발자를 채용해야 하는지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앱 서비스를 하려면 앱 개발자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앱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안드로이드와 iOS 앱 개발자뿐만 아니라 백엔드 개발자, 웹 퍼블리셔와 웹 개발자도 필요했다. 그리고 개발이 끝나면 검증과 QA도 해야한다. 각 분야에서도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갖춘 사수가 필요했고 팀 리더급은 자기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첫 번째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이런 인력들을 조율하고 관리할 수 있는 CTO급의 인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조직의 의제를 추진하는 데 있어 우수한 IT 인재는 매우 중요하다. CTO급 인재가 없다면 개발자들의 이탈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술과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개발자들에게 배울 수 있는 사수와 함께 일하는 것은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복지 중 하나이다. 실제로도 많은 개발자들이 CTO나 리더급 개발자들로부터 선진적인 개발문화와 개발자로서의 비전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사수는 코딩능력뿐만 아니라 문제해결능력, 학습능력, 협업능력 등의 역량을 가르쳐주거나 함께 발전시켜 줄 수 있는 멘토이자 동료이다. 사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실수와 성공사례를 알려주고, 피드백과 조언을 한다.
또한 AI나 로봇기술, 영상처리 등의 연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단순 개발이 아니라 연구개발로 영역이 확장되어야 한다. 연구개발은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연구개발자가 필요하거나 대학이나 연구소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비전문가들은 이런 것들을 다 파악하고 인력배분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에게 이러한 시행착오는 큰 부담이자 기회비용이다.
IT 외주의 세계는 다양한 프리랜서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류근웅 대표는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실력과 책임감이 뛰어난 분들도 만났지만,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하여 프로젝트의 진행을 방해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낯선 개발자와 협업하는 것보다 이미 손발이 잘 맞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 함께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거듭하며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개발 인력들과 자연스레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깊은 신뢰와 존중으로 맺어진 인원이 40명 정도 되었다. 하지만 IT 외주 입찰 경쟁에서 개인 사업자로서 법인들과 맞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과 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 법인이 세미콜론이었다.
세미콜론은 의뢰받는 프로젝트의 성격과 고객사의 요구에 따라 베테랑 개발자 풀에서 적합한 분들을 선발하여 투입했다. IT 외주 프로젝트는 서로 간의 굳은 신뢰와 역량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쉽게 지연되고 실패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래서 류근웅 대표는 일률적인 전문 개발자들로 팀을 구성하기보다 다양한 성향과 역량을 갖춘 전문가들을 모아두고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순수 개발만 고집하는 다소 도전적인 분들뿐만 아니라 반복적이지만 변수가 적은 IT 유지보수를 선호하는 분들도 모셨다. 그래야 다양한 고객사의 각각의 요청을 수용할 수 있었다.
세미콜론을 시작하고 가장 어려웠던 때는 IT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음에도 잔금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였다. 외주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잔금 수령이 늦어지면 정말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류근웅 대표 역시 저축한 돈과 개인대출을 받아서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그저 업계의 관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영향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자 업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정말 금전적으로 형편이 안 돼서 잔금 지급을 못 하는 분들도 있었고 사소한 부분을 트집 잡아 지급을 미루는 분들도 있었다. 특히,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지급을 미루는 경우는 대부분 사전에 협의가 이뤄진 요구사항에서 벗어나 신규 기능 혹은 일부 개편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에는 프로젝트의 납기를 준수하기 위해 류근웅 대표가 직접 추가 작업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객사의 무리한 요구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고객사들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고자 류근웅 대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기술 구독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고객사들이 세미콜론의 기술팀을 내부팀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고객사들은 처음에 정해진 요구사항과 디자인에만 국한되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어려웠던 도급개발과 달리, 언제든지 새로운 요청을 제시할 수 있었다. 세미콜론의 전문가들은 그것을 신속하고 유연하게 수용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술구독서비스는 IT 인력의 효율적인 배치와 아이디어의 창의적인 구현을 가능하게 했다. 고객사들은 구독료만 내면 기술 도입에 필요한 추가 비용이나 복잡한 요구사항 없이, 세미콜론의 전문가들이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정해진 업무량 내에서 완성해 줬다. 필요한 만큼의 인력만 할당하여 비용과 시간을 절약했다.
기술구독서비스를 선택한 고객사들은 세미콜론의 연혁이나 규모보다는 전문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큰 IT 외주업체라도 비전문가가 PM을 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인력을 배치하면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긴다. 세미콜론은 단순히 외주업체가 아닌 고객사의 기술팀으로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니 기술적인 문제나 해결책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한 상태에서 착수한다. 덕분에 맡은 프로젝트는 종료될 때까지 세부적인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챙겨 고객사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물론 처음에는 세미콜론의 구성원들조차 이러한 변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존의 도급 외주에서 벗어나자, 책임감과 성취감이 커지며 자연스레 자신감과 재미를 느끼게 됐다. 그리고 이전에는 류근웅 대표가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아서 밤낮없이 일했다면 이제는 프로젝트를 선별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적정량의 프로젝트만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높아진 몰입도와 함께 개선된 프로젝트의 진행률 덕분에 수익성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AI가 개발자들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류근웅 대표는 큰 동요 없이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가고 있다. 그는 개발자이자 창업가로서, 시장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한다.
시장은 항상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데 소홀히 하면 생존과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될 거예요.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세미콜론이라는 기술구독서비스 회사를 운영하는 류근웅 대표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한다.
세미콜론의 가장 큰 위험은 AI가 아니라 스타크래프트3입니다. 류근웅 대표가 스타크래프트3에 빠지면 세미콜론은 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류근웅 대표가 어릴 적 스타크래프트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백 개의 스타크래프트 맵을 만들어 게이머들에게 공유했고, 프로게이머의 꿈도 키워왔다. 그러나 류근웅 대표는 스타크래프트보다 세미콜론에 더 열정적이다.
제가 어렸을 때, 스타크래프트 맵을 만들어서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미콜론에서 동료들과 협업하여 고객사의 핵심 서비스를 함께 구축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사명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줬어요.
세미콜론은 기술구독서비스의 선두 주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이메일을 통해 고객사에게 문서와 소스코드를 포함한 최종 산출물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미콜론과 고객사가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동기화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기술구독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플랫폼은 곧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고객사들은 프로젝트의 진척도와 최종 산출물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미콜론과의 소통도 더욱 원활하고 명료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류근웅 대표는 십여 년 전 동이 틀 때까지 스타크래프트 맵을 제작하던 소년이었다. 그는 게임을 통해 게이머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자신의 역량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여 창업가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것이 이제는 더 가슴 벅찬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세미콜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계획이다. 더 이상 개발자를 구할 수 없어서 혹은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기획안을 구현하지 못하는 창업가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미래에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AI로 대체될지 모르지만, 그의 헌신과 노력만큼은 쉽게 대체되지 못할 것이다.
세미콜론은 지금까지 기존 고객사들의 소개와 추천을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고객사를 늘렸다. 앞으로도 무리하게 고객사를 늘리기보다 소수의 고객사들을 옆자리의 동료처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AI가 세상의 많은 일을 자동화하더라도, 고객사와의 관계는 결국 인간적인 감성으로 형성되고 유지된다고 류근웅 대표는 믿는다. 그는 고객사들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그들의 성공이 곧 세미콜론의 성공이라고 믿는다.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