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중 하나인, 머니그라피의 B주류 경제학에서 팝업스토어의 성지 더현대 서울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뤄주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이희석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수석부장이 직접 출연하여, 정말 깊은 이야기까지 나눠주었는데요. 더현대 서울은 무엇보다 지하 2층 영패션 매장을 '내가 모르는 브랜드로만 채워라'라고 경영진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는 생존을 위해선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국내 백화점들은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점차 젊은 고객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었고요. 그나마 영패션 카테고리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하던 버팀목, 유니클로마저 2019년 일본 불매 운동 여파로 무너지며, 새로운 활로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 잘 알고 계시겠지만, 더현대 서울 프로젝트는 정말 대성공을 거둡니다. 우선 고객이 확 젊어집니다. 더현대 서울의 2030 고객은 고객 수 비중은 65% 이상이며, 매출 비중도 55%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더현대 서울을 제외한 현대백화점 점포의 2030 매출 비중이 약 25%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패션 카테고리 중 영패션의 매출 비중도 가장 크다고 하고요. 일반적으로는 여성패션, 남성패션, 영패션 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제 더현대 서울은 최단기간 연매출 1조 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더현대 서울스럽게' 매장을 리뉴얼하는 것이 백화점 업계 전체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일단 현대백화점은 성공 방식을 판교점이나 더현대 대구 등으로 이식 중에 있고요. 경쟁자인 신세계와 롯데도 더현대 따라잡기에 나섰습니다. 백화점 점포 매출 순위 1,2위를 기록 중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롯데백화점 잠실점 모두 팝업스토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영패션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더현대 서울의 성공 방정식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더현대 서울이 가장 약점으로 지목받는 지점이, 낮은 객단가입니다. 더현대 서울의 객단가는 첫해는 3만 2천 원으로 시작했지만, 지난해 2만 1,600원 수준으로 하락하였고, 올해 역시 2만 5천 원을 넘기 힘들다고 하는데요. 이는 백화점 업계 전체 평균인 10만 원은 물론, 현대백화점 전체 객단가인 9만 원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효율에 대한 문제는 더현대 서울을 넘어서, 백화점이라는 비즈니스의 근간 자체를 뒤흔들 수밖에 없습니다. 백화점은 처음 등장하던 당시만 해도, 다양한 상품과 상점이 하나의 건물에 모여 있다는 개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등장함에 따라 점차 고급화의 길을 걸어갑니다. 가장 비싼 입지에서 쾌적한 쇼핑 환경을 제공하는 대신, 명품을 중심으로 한 고가의 상품을 팔아 마진을 얻는 것이 기본적인 사업 모델이었죠. 따라서 더 많은 고객을 모아서, '명품 없이도 성공하는 백화점 모델'을 보여주겠다는 더현대 서울의 도전은 정말 무모해 보였습니다.
물론 이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객단가가 낮은 유통 매장을 백화점이라 정의해도 맞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타임스퀘어나 스타필드가 보여준 방법론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사실 더현대 서울이 성공한 건, 거대한 유통 트렌드를 잘 따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거 업태를 막론하고, 유통 매장의 성패를 좌우한 건, 입지와 상품이었습니다. 일단 좋은 입지를 선점해야 집객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었고요. 비슷비슷한 입지라면, 더 나은 상품을 확보하는 것이 차별화 전략이었습니다. 초창기 빠르게 매장을 확장하여 시장을 선점한 이마트의 전략이 전자라면,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 등 주요 명품 브랜드를 독점 유치하는 지역 1번점 전략을 펼친 신세계 백화점은 후자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백화점 업계는 전반적으로 명품 브랜드를 독점적으로 유치하며, 나 홀로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위해, 온라인 진출도 꺼리고 매장 수도 제한하는 럭셔리 상품을 만나려면 고객들은 백화점에 찾아갈 수밖에 없었고요.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강력한 경쟁자인 면세점이 무너지면서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명품 매출 비중이 꾸준히 우상향 하며 백화점 3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이좋게 같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엔데믹 이후 시작됩니다. 일단 인플레이션 및 경기 침체 영향으로 일단 명품 수요 자체가 감소하였고요. 그나마도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면세점 등으로 분산됩니다. 결국 백화점 성장은 둔화되고 맙니다. 백화점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더현대 서울처럼 방문한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제3의 방식을 차용하기 시작합니다. 더현대 서울은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고, 명품 매장이 없어도 방문할만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다만 한계는 방문이 충분한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빠지는 명품 매출을 대체하기엔, 대안 카테고리의 성장이 더딥니다. 일례로 최근 현대백화점의 식품관 매출 비중은 계속 상승 중이지만, 1~2%p 정도 증가하는 걸로는 최근 수년간 5%p 이상 성장한 명품과 비교해선 여전히 초라한 수준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백화점 업계는 시간 점유라는 키워드 자체는 잘 잡았지만, 이후 충분한 만큼의 매출로 이를 이어가지 못한다면 아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버릴지 모릅니다. 고객의 시간을 빼앗으려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마트가 야구단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이러한 집객 요소들을 유지하려면 투자 이상의 성과가 필요합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영상에서 이희석 부장은 이러한 숫자가 나타나고 있다며, 마뗑팀 등의 브랜드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물론 월 10억의 매출을 올린다는 마뗑킴의 성공은 분명 고무적이지만, 장기적으로 에루샤를 대체하려면 제2, 제3의 마뗑킴이 지속적으로 나와야 할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더현대 서울의 성공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더현대 서울이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단일 매장으로, 더현대 서울은 성공의 구부능선을 넘은 것도 사실이고요. 아무리 객단가가 낮다고 하더라도, 1조 원 매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더욱이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루이뷔통 매장을 유치하는 등 명품 라인업마저 강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더현대 서울의 무서운 성장세는 한동안은 유지될 겁니다.
이와 같이 집객형으로 변모하면서, 동시에 명품 브랜드로 실적까지 챙기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미래 백화점의 새로운 지향점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더현대 서울뿐 아니라 롯데백화점 잠실점 등도 이러한 전략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더현대 서울이 신진 브랜드와 팝업스토어로 막대한 트래픽을 확보한 후 명품 브랜드를 채워 넣고 있다면요.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이미 에비뉴엘에 막강한 명품 라인업을 확보한 상태로, 힙한 이미지를 갖추며 젊은 고객들을 추가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오래 공들인 끝에 마르디 메크르디를 유통사 최초로 잠실점에 입점시킨 것은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본질적으론 명품 브랜드 유치에 사활을 걸던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콘텐츠로 젊은 고객들까지 매장으로 유인하며, 일정 부분 보완된 모델이긴 하지만요. 우선 입점 자체의 주도권이 명품 브랜드들 혹은 국내 신진 브랜드들에게 있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입니다. 결국 이들을 둘러싸고 백화점 점포들끼리 경쟁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서 이긴 소수 만이 생존하는 게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더현대 서울을 따라한 점포 중 원래 잘 나가던 판교점이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등은 충분한 효과를 누렸지만요.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 밀리며, 핵심 브랜드가 이탈한 더현대 대구는 리뉴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는 점은 이를 반증합니다. 아직 더현대 서울의 방법론이 일반적으로 쓰이기엔 결코 충분치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다행인 점은 더현대 서울은 아직도 진화 중이라는 겁니다. 팝업스토어가 성공을 거둔 후, 이를 확대하고 반복적으로 진행하면서 흥행의 크기를 키워가고 있고요. 다루는 콘텐츠의 범주 역시, 일반적인 소비재 브랜드를 넘어,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같은 콘텐츠까지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변화해 간다면 더현대 서울이 한번 더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더현대 서울이 단지 지금처럼 백화점 업계의 이레귤러로 남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모델의 선구자가 되기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묘한 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