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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숨씀 Jan 14. 2019

인맥이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는 거대한 착각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역시 인맥보단 치맥에 있지


카페인의 도움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나는 단골 카페의 커피 쿠폰에 아주 성실하게 도장을 받는다. 남들에게 별로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회사에서 맡은 일이 대체로 재밌는 편이지만 적성에 맞지 않은 업무를 맡을 때도 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협찬을 요청하거나 전혀 관심도 없는 분야의 사람과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며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할 때는 나 자신이 좀 안쓰러웠다. 구차한 일이었다. 이런 일들을 몇 달 동안 연달아 처리해야 할 때에는 살이 5킬로그램씩 빠졌다. 나는 사람 대하는 일에 유난히 서툴렀던 것이다. 싫어하기도 했고.


나는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덜 불행하기 위해 자신에게 쿠폰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10개 도장을 모으면 아메리카노 한 잔 무료인 단골 카페의 커피 쿠폰처럼 나에게는 사회성 쿠폰이라는 것이 생겼다.


15개의 친절 도장이 찍히는 나만의 사회성 쿠폰. 즉, 일주일 안에 베풀 수 있는 친절이 최대 15번 정도 설정되어 있는 쿠폰인 것이다. 커피 쿠폰처럼 도장을 다 모으면 음료 1잔 무료와 같이 1번의 공짜 친절을 베푸는 일 같은 건 물론 없다.


‘우리 가게에 10번이나 와 주셔서 감사하니 이번 1잔은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다음에 또 애용해 주십시오’라며 어떻게든 단골을 만들어 보겠다는 카페 사장님과는 다르게 나는 좀 고약한 면이 있어서 ‘내가 이번 주에 15번이나 친절하게 대해줬는데 뭘 더 바라는 거야. 배은망덕하긴’ 하며 심술을 떨고 싶어진다.


더군다나 나라는 사람에게 사회성 쿠폰을 선물하게 된 데에는 ‘관계를 정리한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주일에 딱 15번의 친절이라면, 누구에게 쏟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맥 관리가 성공의 필수조건이라는 말을 부모님으로부터 인이 박히도록 들어 왔고, 인적 네트워크가 큰 자산이라는 신문기사에 마음이 조급해져 나 또한 한때 학교 선후배나 동기 모임, 업계 관계자들이 모인다는 자리에 나가 보겠다고 유난을 떨었던 적이 있었다. 같은 공간에 그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나의 성공과 앞날의 행복이 보장되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그때 그 사람들이 나의 커리어에 도움을 주었는가?” “아니오.” “그때 그 사람들과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는가?” “아니오.”


대답은 '아니오'뿐인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보고는, 의미 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했던 과거의 나에게 빨간색 뿅망치를 휘둘러주고 싶어졌다. 심지어 불과 몇 달 전에도 대략 5, 6년 동안 왕래 한 번 없던 지인으로부터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는 자신이 주최한 행사에 오지 않겠느냐며 초대를 받아 참석한 적도 있었다. 사실 행사장 입구에 가자마자 느꼈다. 굳이 내가 올 필요가 없는 곳이구나. 심지어 초대해 준 지인에게 아는 척 인사했다가 돌아온 답변은 내 귀까지 빨개지게 만들었다.


“와줘서 고마워. 근데 이름이?”




일명 ‘이름이’ 사건은 행사에 같이 가준 김선배에게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다는 전설. 최근에 《오케이 라이프》의 오송민 작가님을 만나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소연하였더니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삼십대는 관계를 덜어내야 하는 나이예요.”


맞다. 인간관계에도 미니멀 라이프란 게 필요하다. 나도 남들처럼 인맥 관리라는 걸 해 보겠다고 어설프게 나갔던 모임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통상 인맥이라든지 네트워크라든지 하는 것들은 나의 성공, 나의 행복과 하등 상관이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표면적인 관계보다는 나를 잘 알고 이해해줄 수 있는 깊은 관계가 더 중요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의 성공과 행복은 인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마음 편하게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 내가 진심과 전력을 다해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몇 명이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나의 성공과 행복은 그저 내가 꿋꿋하게 만들어나가는 것.


만나고 헤어질 때 허무함밖에 없는 관계가 있는 반면 만나고 헤어질 때 뼛속까지 영혼이 충만해지는 관계가 있다. 나는 후자 쪽 관계에 힘을 쏟아붓고 싶다. 그런 관계라면 나만의 사회성 쿠폰 속 15회의 친절을 모두 바쳐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 역시 나는 인맥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고, 함께 치맥을 먹는 게 더 즐거운 사람. 어쩐지 한심하다.


2019년을 맞이하면서 다짐한 다음 목표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의 균형을 맞춰 보는 것이다.

* 인싸라는 신조어가 생기는 요즘 나 혼자 인간관계 정리하고, 나 혼자 좁고 깊은 인맥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싶고. 나만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건가 하는 불안이 올라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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