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포 Jun 02. 2021

비가 와도 뛰지 않는 남자

“8살 때인가? 학교 마칠 쯤에 갑자기 비가 허벌나게 오더라고. 근데 야가 학교에 우산을 안 갖고 갔어. 어찌 오나 하고 베란다에서 보고 있었지. 저기서 애들이 막 뛰어오는 거야. 근데 누가 혼자 천천히 걸어오고 있더라고. 보니까 야야. 아니 왜 쟤는 혼자 저러고 오나, 어디 다쳤나 싶었지. 쫄딱 젖어서 집에 왔길래 왜 그랬는가 하고 물어봤더니 ‘어차피 다 젖었는데요’ 그러더라고.” 비가 와도 절대 뛰지 않았던 아이. 시어머니의 기억 속 아들은 약 3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거북이처럼 느리게 걷고 있지만, 온종일 말처럼 뛰어다니는 아내를 만나 인생에서 최대 속도를 내고 있다.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남편이 여유 있고 신중하다고 생각했지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두르는 법이 없는 그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횡단보도가 깜빡거릴 때도, 타야 하는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을 때도 절대 뛰지 않았다. 늘 선비처럼 천천히 걸었다. 하루는 같이 자전거를 타러 갔는데 내가 걷는 것보다 느리게 자전거를 타서 묘기를 부리는 줄 알았다. 밥도 혼자 먹을 때는 한 시간 동안 먹을 정도로 천천히 먹었다. 과묵한 사람처럼 보이는 건 정말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말을 천천히 하느라 주제가 빠르게 바뀌는 대화 속에 잘 못 끼어들기 때문이었다. 느린 만큼 인내심도 커서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려주고 참아내기도 잘했다.


반면 나는 그와 정 반대로 초고속 ‘효율러’에 행동파다. 목적지까지의 최단 루트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고, 애쓰지 않아도 신호등이 언제 바뀌는지, 지하철의 빠른 환승 칸이 어딘지 외운다.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행지에서도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놓치지 않으려 달리면 남편은 ‘쉬러 왔는데 왜 여행지에서도 뛰는 거야?’라며 웃었다. 결혼 초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내가 빨리 먹고 많이 먹는 탓에 남편은 얼마 남지 않은 치킨을 먹은 뒤 종종 라면을 끓였다. (이제는 넉넉하게 두 마리를 시킨다.) 씻는 것도 남편이 화장실에서 쓰는 절반의 시간이면 된다.


서로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그 차이를 제대로 느낀 건 이사할 집을 알아볼 때였다. 남편은 이사 6개월 전부터 어떻게 집을 계약할지 계속 마음에 두고 틈이 나는 대로 찾아보곤 했다. 반면 나는 당장 실행할 리스트를 만드는 편이어서 집 계약이 끝나기 3개월 전이 되자마자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을 계약하는 데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 부동산 어플로 집을 찾아보다가 꽤 괜찮은 데가 있어서 보러 갔는데 집도 마음에 들었고 주변 환경이나 계약조건이 딱 우리가 원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 집만 둘러보고 계약했다.


남편은 속전속결로 집을 구하는 게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어딘가에서 예상치 못한 불행이 튀어나올 것처럼 초조해했다.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도 여기저기에 물어보고, 계약 후에도 뭔가 불안한지 자꾸 확인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좋은 집을 빨리 구해서 잘 됐다는 생각뿐이었고 계약 후에는 본격 이사 준비에 들어갔다. 다행히 계약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남편이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뭔가 그르쳤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만족도 높은 전셋집은 각자의 빠름과 느림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우리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기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사할 때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뿐만 아니라 함께 살면서 느리고 빠른 문제로 다투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마 서로의 다름을 귀엽고 또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내가 아니었다면 이 집을 구하지 못했을 거라며 나의 추진력을 아직까지 추켜세운다. 씻고 나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남편은 조금이라도 나보다 일찍 준비를 마치면 “늘적쟁이구만! 나 먼저 간다!” 하고 내가 했던 말을 따라 하며 장난을 친다. 나는 남편이 양말을 천천히 신으면서 “여보, 나 늘적대? 속이 터질 것 같아?” 하고 물을 때마다 웃음을 터뜨린다. 조급증에 쫓길 때면 물 한잔을 주며 여유를 만들어내고, 특유의 느린 손짓과 말로 나를 다독이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최근에는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깜빡이자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뛰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남편이 먼저 뛴 게 신이 나서 깔깔 웃으며 “여보! 당신도 이제 빨리 건너고 싶구나?”하고 물었다. 남편은 “아니. 당신이 이렇게 뛰어서 건너는 거 좋아하잖아.”라고 말했다. 아쉽지만 행복해지는 대답이었다. 아마 내 넓은 어깨가 좁아질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남편만큼 느려지는 일도, 남편이 나만큼 빨라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속도에 맞춰 가끔은 뛰고 또 가끔은 걸으면 그만인 일이다. 이미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에게도 권태기가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