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땅으로 내려앉을 것 같은 날이었다. 하얀색 지방덩어리가 하늘에 뒤룩뒤룩 껴있었다. 보기엔 무거운데 만지면 가벼울 것 같았다. 나는 5km 마라톤을 완주했고 땀이 미처 식기 전에 갈비탕을 해치우고는 햇빛아래 얼마간 앉아있었다. 흥얼거리며 드라이브를 한 후에 품질 좋은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동작 하나하나 군더더기가 없고 완벽에 가까워 설명에 너저분한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반나절이었다. ‘달리기를 하고 물을 마셨다.’는 행위에 어떤 수식어가 더 필요할까? ‘땀을 흘리고 샤워를 했다’는 행위에 굳이 개운하다는 수식어가 필요할까?
그런데 이렇게 계속 완벽에 가까운 하루를 살아낸다면 아마 나는 글을 쓰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글쓰기는 주로 불충족된 감정, 불투명한 현재에 영점을 맞추어 발사되어 왔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글을 쓰며 안개를 걷어 뭔가를 파헤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셈인데 오늘 같이 수상하리만큼 투명한 비눗방울들을 돌파해 가는 것은 왜인지 그 쾌감의 뒷맛이 매끄럽지 않다. 비가 오지 않는 나라의 와이퍼가 된 기분이랄까. 고통 속에서만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변태적인 발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상황에, 낯섦에 내던져지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불안정과 불완전의 안개가 완벽과 결함 양사이드를 아우르는 포용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한 하루 끝 매끄럽지 않은 뒷맛이나 삐걱대는 하루 속 뿌듯함 같은 건 일종의 ‘균형’를 맞추려는 세상의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불충족된 감정과 불투명한 현재를 추구하는 것과 초점을 맞추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저 초점을 맞추어 왔을 뿐이다. 해결하고 싶었고 정체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개뒤 숨어있는 것들에 대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