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주지 않은 위로
오늘 걸었던 길의 가로등은 숙여진 각도가 절묘한 데다가 면조명인 탓에 마치 탁상을 비추는 스탠드인 듯 착각이 들게 하기 충분했고 아스팔트 중앙에 그어진 노란선을 따라 걷게 될 누군가를 위한 예도 연습현장을 방불케 했다. 햇빛을 피하다 발견한 그늘에 널린 것들이 연보랏빛 포도인 줄 알았으나 다가갈수록 진하고 향긋한 비린내를 풍기는 것이 등꽃들의 군집인 것을 깨달았다. 날은 따뜻하나 바람은 멈추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자니 금세 얼굴이 뻑뻑해져 왔다. 햇살까지 날려주지는 못해서 피부는 점점 퍼석해지고 이마는 뜨거워졌다. 그래도 못 견딜만하면 1층에서 솟아오르는 분수의 물을 낚아채 내가 앉은 테라스까지 튀겨주었다.
부모들은 그늘에, 아이들은 햇볕에. 바통터치는 없다. 노부부의 부인은 햇볕에, 남편은 그늘 밑 벤치에. 양 무릎에 손을 얹고 부인의 부름을 무언으로 거절한다. 바통터치는 없다. 투명유리벽 하나를 두고 카페 안쪽에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앉은 커플들이 있다. 서로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할 그릇이 아직은 부족한지 눈에는 사랑이 흘러넘친다. 수없이 재잘거리며 넘쳐내려 오는 감정을 게걸스레 삼켜댄다. 한편 카페 밖 테라스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커플들이 보인다. 언뜻 하늘이나 구름을 보는 듯하나 아마 그들의 눈에 맺힌 상(像)은 넓은 구름을 도화지 삼아 그려놓은 미래의 한 장면일 것 같다. 그들의 눈에는 무언가 결연함이 담겨있다. 둘 사이를 비집고 기어들어와 갈라놓더라도 그것을 사이에 두고 최대한 붙으려 하는 강력한 자력 같은 것이 느껴진다.
고백하자면 2층 테라스에 앉아 흩뿌려진 분수의 물을 맞은 것 다음의 묘사들은 모두 허구이다. 쓰다 보니 눈앞의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살았던 과거일까. 살고 싶었던 과거일까. 오지 않은 사실일까. 오지 않을 사실일까.
가끔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면 시간에 대해 다르게 느끼게 되곤 한다. 아이들, 부모, 연인, 노인, 풀, 꽃, 나무, 물, 하늘, 해 같은 존재들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은 마치 과거, 현재, 미래 각각의 항아리에 담겨있던 이 삼 형제를 한꺼번에 엎지르는 듯한 이벤트로 보인다. 모두 한데 모여 섞이는 것. 다시 말해 하나의 타임카니발이다. 나는 조금 지칠 때면 그 축제의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아무도 주지 않은 위로를 맘껏 받고 조용히 돌아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