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이별의 선물

-고통의 바다

by Sapiens

20127, 봄 햇살 같은 따스한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이승에서의 길을 축복이라도 해 주듯…, 따스한 햇살의 숨결을 느끼며 신영은 하얀 운구차 맨 앞 좌석에 애증과도 같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엄숙하게 앉아 있다.

도로 위 풍경은 여느 날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이다. 거리엔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의 아침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이 순간 신영은 다른 공간 속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천천히 달리는 영구차는 마치 그동안 같이 숨 쉬고 살았던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걸어가는 듯했다. 순간, 신영은 영정사진 속 어머니와 동화됨을 감지하고 있었다. 양지공원을 향해 가는 4차선 도로를 따라 어머니의 팔십 생이 오버랩이 되고 있었다. 영구차 앞 커다란 유리는 하나의 스크린이 되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어머니 삶의 파노라마가 신영의 시야 속으로 펼쳐졌다.

신영의 어머니는 26녀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 마흔두 살에 막내인 신영을 낳았다. 신영이 국민학교 입학 전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린 신영은 어머니와 가장 지근거리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그 때문이었는지 어머니에 대한 정이 남달랐다.

신영의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은 몇 컷 존재하지 않았다. 7살의 어린 신영의 기억 중 한 컷은 언덕을 오르는 하얀 상여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부터 신영은 말수가 적었다. 그녀는 항상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관찰하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많지 않은 기억 중 다른 하나의 장면은 아버지가 안방 맞은 편에 위치한 작은 방 안에 초췌하게 누워있는 모습이다. 입술 껍질이 마르고 벗겨져 있었다. 사지는 움직이지 않았고, 바삭하게 마른 듯한, 육체 위로 덮힌 이불은 오히려 버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은수저로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물을 떠서 입술 위에 흘려주면 간신히 입술을 적실 뿐이었다. 어린 신영의 기억 속 모습을 조금 더 당겨보면 수저로 미음을 떠서 입 안에 넣어 주기도 했었다.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움직이지 못하는 물체와도 같아 보였다. 이 두 장면은 어린 신영의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어머니가 아플 때면 어린 신영은 스스로 보호자로 자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을 한 이유는 당시 환경이 자연스럽게 그랬었던 것 같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넷째 언니와 오빠는 대학을 육지로 갔기 때문에 당시 어린 신영을 둘러싼 상황이 그녀를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때론 집안의 제사상 차리는 일들을 돕거나, 설겆이와 청소 및 집안의 소소한 일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그러한 일들은 오히려 쉬운 일에 속했다. 고향 집은 어머니와 어린 신영만의 공간이 된 채로 존재했고, 그 외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제사가 있는 날이면 신영은 둘째 언니가 빽빽이 메모해둔 노트 한 권을 꺼내었다. 노트 속 너무도 자세하게 적힌 제사 지내는 법을 읽으며 제를 지내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설거지와 집 안 청소는 식은 죽 먹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오면 집안 창문을 모두 뜯어내어 수돗가로 옮기고는 색바랜 문풍지를 떼어내기 위해 수돗물 뿌리는 일을 시키셨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밀가루 풀을 쑤어 빨간 고무대야에 풀을 담아 한소끔 식히신다. 그동안 신영은 수돗물로 흠뻑 젖은 문풍지를 찢으며 뜯어놓아야 했다. 수돗가는 순식간에 누렇게 변한 낡은 창호지로 가득 메워진다. 젖은 창호지에도 냄새가 진동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발 디딜 틈이 없는 공간, 갈기갈기 찢긴 종이들을 밟으며 씻어낸 창틀을 들고 햇볕 좋은 마당 한 켠으로 옮겨 세워 놓는다. 그리곤 젖은 창틀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너무 오랜 시간 햇볕에 널어두면 창호지가 찢어지기도 하기때문에 적당히 말려 그늘로 옮겨 놓아야 했다. 가을볕이 강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창틀을 씻고 나르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먼지로 쌓여 있던 창틀이 깨끗하게 건조되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건조된 창틀을 마루에 눕히고, 새로운 창호지 위에는 두껍고 커다란 붓으로 풀칠이 진행된다. 어머니와 신영은 각자 분업이 된 듯, 창호지 붙이기를 서로 간격을 맞추며 반듯하게 성공한다. 그러면 신영은 다시 창호지를 바른 창틀을 조심스럽게 들고 다시 마당으로 나가 살며시 벽에 세워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틀에서 창호지가 떼어지게 되거나 종이가 마르고 나면 울퉁불퉁 울게 된다. 그렇게 해마다 어머니와 신영은 짝꿍이 되어 문풍지 바르기가 이루어졌다.

시간의 흐름은 어린 신영에게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신영은 낡은 철제대문까지 직접 손질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문에 생긴 녹들을 납작한 쇠로 긁어내야 했다. 온 집안에 진동하는 신나 냄새를 그대로 맡으며 초록색 페인트로 철제대문을 단장하는 일을 했다. 어머니는 몇 해마다 이렇게 해 주어야 철 대문이 녹이 슬지 않고 수명이 오래 간다고 하셨다.

무더운 여름날 밤이면 신영은 끊어짐이 잦은 휴즈를 바꿔 끼워주어야 했다. 두꺼비집을 열어젖히고는 감전에 대한 공포와 싸워야 했다. 온갖 겁에 질린 채 의자 위에 올라가서 까치발을 하고는 도라이버로 나사를 돌려야 한다. 상하로 끊어진 낡은 전기 휴즈는 상하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러면 나사를 풀어 새로운 휴즈로 바꾸어 끼우고는 다시 휴즈의 양 끝을 단단하게 도라이버로 돌리면서 나사를 고정시켜야 했다. 휴즈가 끊어질 때 두꺼비집 차단기는 내려져 있기 때문에 나면 겁에 질려 쪼그라드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참으며 두꺼비집의 차단기 손잡이를 다시 올려준다. 그럼 신기하게 암흑이던 집안이 다시 환해진다. 그제서야 신영의 심장 속 거센 심박동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여름이면 고질병처럼 발생하는 휴즈 갈아 끼우기는 정말 성가시고 신경 쓰이면서 긴장되는 일이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해야 할 사람이 신영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영의 어린 시절은 비료 대신 인변을 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이 곤욕스러운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신식화장실로 개조되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푸세식 화장실이었으므로 화장실이 가득 차면, 시청에 전화해서 변들을 퍼가게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화장실 옆 소변을 모아 둔 커다란 항아리 두 개가 터줏대감처럼 놓여 있었다. 지린내가 진동하는 숙성된 오줌 냄새가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풍겼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페인트를 담았던 통에 숙성된 오줌을 가득 길어 양손에 하나씩 들고 동네 우영 밭까지 나르는 일을 해야 했다. 국민학생이던 신영은 혹시나 친구들과 마주칠까 봐 마음을 졸이며 걸어갔다. 신영이 다니던 국민학교는 불과 100미터 안팎이었기 때문이다. 여름날 진동하는 불쾌한 지린내 냄새는 누구든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어린 신영의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부끄러워 도저히 고개를 들고 앞을 보며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신영의 시선은 줄곧 거리의 시멘트 바닥을 향하며 걸어가곤 했었다.

신영은 어머니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가지붕이던 어릴 때는 초재(草材)인 새를 엮어 지붕을 다시 덮는 일은 인부들이 와서 교체 작업을 했다. 하지만 초가지붕이 스레트 지붕으로 바뀐 후부터는 몇 년에 한 번씩 신영이 마치 줄타기를 하듯 빛바랜 파란 스레트 지붕에 올라가야 했다. 지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파란색 페인트로 지붕을 칠하는 일을 해야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당연히 신영의 몫이 되어버리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어머니와 같이하며 어린 신영은 그렇게 어머니 삶의 관찰자가 되어갔다.

신영의 유년 시절은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인 한 여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생활 속에서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부유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언니, 오빠들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대학을 육지로 가는 것을 택했고, 홀로 8남매를 키우는 어머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어린 그녀로서는 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이 더욱 깊어졌다. ‘삶이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라는 자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떨 때는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 싫었고 왜 저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뇌 속에서 자신을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어린 신영은 한 번도 어머니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누구의 탓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옷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음식 투정을 하거나 흔한 어리광조차 부리지 않았다. 엄마라고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항상 어머니라고 불렀다. 왜 그랬는지는 그녀 자신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일찍 철이 들어버렸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장학금을 받아 어머니가 좋아하는 전축을 선물하기도 하는 착한 아이였다. 어린 소녀의 무의식 속에는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나이 많은 어머니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한 여성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영은 자신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 속에 개입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어린 그녀의 촉수는 매 순간 어머니를 향해 있었다. 집안일과 같은 소소한 일들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하는 몫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았고 불만도 없었다. 아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였다. 그녀의 유년기는 너무 묵직했고 안타깝게도 아이다운 천진하고 자유로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영의 어린 시절은 쳇바퀴 돌듯 돌아갔고 시간의 추는 계속 움직이며 그녀의 자아는 성장해갔다. 많은 시간이 흘러 신영도 어른이 되었다. 언니, 오빠들이 한 명씩 출가하기 시작하였고, 그녀 또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무의식 속에는 결혼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어디에도 구속하지 않는 영혼의 자유를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연애할 때는 물론, 결혼하고 나서도 혼자 지내는 어머니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지 못했다. 밥은 잘 챙겨 먹으셨는지, 어디 아프진 않으신지, 먹을 반찬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어머니의 모든 상황이 걱정되었다. 신영은 이렇게 스스로 옥죄는 사슬에 묶여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걱정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늘 어머니의 존재는 그녀의 의식 속에 그림자처럼 공존했다. 하지만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어도 형제들은 너무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집안 형편에 관한 생각도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와 함께였던 어린 시절을 가진 언니, 오빠들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부재를 느껴야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무언가의 부재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간다. 어린 신영도 어른이 되어 갔다. 결혼 적령기가 된 신영도 누구나 지나는 통과의례처럼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신영은 결혼을 하자마자, 첫 아이를 갖게 되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무심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녀를 향해 발버둥 치며 누워있는 한 아이를 보는 순간,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사지를 자유롭게 통제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갓난아이의 상황이, 마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갓난아이들은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박수 속에서 태어나고, 그런 아이의 똥, 오줌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행복해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탱탱한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검버섯이 피어올라 거칠어지며 육체에서 지린내가 나고 거동하기 어려워지면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한 채 골칫거리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생각이 그곳까지 미치자 신영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고, 그런 육아의 시간은 그녀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순간들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신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나름의 방식대로 선택하고 해석하며 주어지는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며 살았다.

때로는 형제 중 누군가 집을 사면 집들이에 참석해 축하해 주었으며, 조카들이 하나씩 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제들도 중년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형제 중 누군가는 잘나가던 사업이 기울어지기도 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녀의 형제들은 각자의 삶이 주는 무게들을 짊어진 채 평범한 일상들을 보내면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부모의 배 속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지만 서로 다른 삶의 운명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누구는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누구는 형제들과 비교하기도 하며 어릴 적 순수한 우애에서 벗어나 서로 질투하기도 하고 부딪히며 섭섭한 감정들로 점점 멀어져가기도 했다.

삶이 힘들면 누구를 탓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걸까?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성숙한 어른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릴 때는 우애가 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껴지고 있었다. 서운한 감정들이 조금씩 쌓이고 왕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도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합리화를 하며 지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주말처럼 신영은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가려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피곤하다면서 집에서 쉰다고 하셨다. 당시 그녀는 아이들이 어려서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고 자신까지 몸을 씻고 나면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가 힘없이 들렸기 때문에 가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는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하지만 신영은 목욕을 하면서도 기운 없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서둘러 목욕을 끝냈다. 어머니 집에 들려봐야 하나 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가는 내내 통화 중이었다. 그날 따라 너무 피곤한 그녀는 주차장을 계속 맴돌면서 전화를 시도했지만 계속 전화 중이었다. 신영은 어머니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결국 그냥 집으로 와 쇼파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 그녀는 놀라서 어리둥절했다. 신영이 전화를 했던 그 시간이 마침 어머니가 쓰러진 상태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스스로 자책을 하고 있었다. 쓰러진 상태로 수화기가 내려져 있어서 통화 중 신호가 들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한쪽 몸에 마비가 왔고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몸은 어제와 다른 육체로 여생을 지내야 했다.

여느 때면 어머니께 항상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꼭 올라가 보는 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너무 피곤했다. 주차장만 돌다가 그냥 집으로 향한 자신이 후회되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마음 아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세상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모든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일들로 인해 발생하는 주위 환경이 우리를 또 다른 고통의 수렁으로 빠트린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병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병원 생활은 이상하게 형제들끼리의 관계가 점점 멀어져가게 하는 요인이 되어갔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사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신영은 어머니를 짝사랑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어도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일 순위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순간부터 돌아가시기까지 4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머니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형제들 모두 자신의 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돌봐 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당시에는 신영 혼자 동분서주하며 어머니를 찾아뵈어야 했다. 2~3개월에 한 번씩 입, 퇴원을 반복해야 했고, 수술이라든지 의논할 일들이 생겼을 때에도 어머니처럼 신영 혼자 결정하고 대기해야했다. 그녀는 처음 겪는 일들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너무도 막막하고 버거웠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형제들에게 서운함과 분노가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오히려 언니, 오빠에게 의견을 제시하면 돌아오는 것은 마음의 깊은 상처뿐이었다.

말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소통한다는 것이 같은 편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와 싸워야 했다. 왜 요구하면 안되는 것인지, 왜 타협이 안되는 것인지, 부모와 자식간의 거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수긍해야 했다.

그녀도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들이 그녀 자신에게 부모와 자식이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그 당시 그녀는 어리석게도 만약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온전히 어머니에게 올인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마음도 힘들고 여력이 없어서 그녀는 직장을 그만 접어야 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의 일들은 벌어진 일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그 벌어진 일로 인한 주변 상황들이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정신줄을 놓아 선 안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물어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나이 드신 기사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속 답답한 이야기를 털어내 보이며 상의해 보기도 했다. 당시 그녀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방법을 몰랐다. 닥치는 대로 주변 아무에게나 물어보았던 것 같다. 그런 신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간병인 등 주변 어른들도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런 상황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심산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을 사람에게 보약을 먹이지 마라. 임종 시 힘들다는 말을 들려주기도 했다. 죽을 사람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병점을 봐보아라. 등등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난무하였다. 사실 그러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나이가 드신 분들이었는데 자신들의 죽음의 시간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어른들은 많아도 상의할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신영은 암흑 속에 갇혀버린 아이처럼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방하(放下)’, 그녀가 너무 힘들고 버거울 때 처음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이다. 놓을 방, 아래 하… 아래로 내려놓으라…그 당시 그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순간의 끌림은 있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내려놓아야 한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혼돈의 상황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다. 그날 이후로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과 불교 서적을 찾으며 읽고 또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언니, 오빠들의 행동에 대해 그녀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감히 형제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뭐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의 삶을 감히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그녀 자신이 짊어지려고 했다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사신 것이고 감히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어머니의 삶에 참견할 권리가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의 노후 모습 또한 당신이 살아온 당신 삶의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위한다는 말로, 그녀가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의 상황을 자신이 가슴 아파할 것이 아니라 그녀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들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며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머니를 찾아뵙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모든 것들이 누구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들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는 조금은 편하게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러 일주일에 한 번 병원으로 찾아가 목욕을 시켜드리며 내가 할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유가 없어 풍족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사다 떠먹여 드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병원으로 가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를 종종 불러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조금은 평온한 시간이 오는 것 같았다. 이것이 내려놓음이었구나! 아주 조금씩 조금씩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날도 일요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목욕을 해드리기 위해 서둘러 어머니를 만나러 병원을 찾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항상 있던 장소에 시선이 머물다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병실에 없었다. 신영은 간호사가 있는 병동 데스크로 달려갔다.

간호사님, 저의 어머님 어디 가셨어요?”

어머니는 어제 퇴원했으며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하셨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거의 병원에 오지 않던 가족들 때문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손이 떨렸다.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신영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 했다. 결국 오빠와 통화가 되었고, 친구가 하는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옮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녀는 요양원으로 찾아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것이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에서 옮겼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던 언니, 오빠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라 충격이 너무나 컸다. 사실 비용은 모두 어머니 돈으로 지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어머니의 희미한 미소 속에서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무언의 말을 하는 듯 보였다. 그날 어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신영에게 이곳이 참 좋다고 말씀하셨다.

부모와 자식은 어떤 관계인가?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자식을 키워내었을까? 자식은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는 존재인가? 혼돈의 사고로 얽히고 얽힌 실타래를 도저히 풀어낼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조차 버거웠다.

그렇게 어머니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녀들에 의해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막내인 신영은 형제들로부터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한다고 미운털이 박혀있었다. 그녀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녀 또한 가정이 있었고 돌봐야 하는 어린 두 자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잠시 모시기도 해보고 병원에 입원해 간병인 도움도 받아보았다. 어머니는 재활을 원하셨다. 나 또한 허리디스크로 어머니를 이동시키는데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많은 감정이 생성되고 어머니를 더욱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몸 구석구석 닦아드리며 어머니와 닮은 점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이었다. 요양원으로 옮기고 나서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늦은 밤이었다. 병원 응급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신영은 허겁지겁 옷을 걸치고는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마주한 어머니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졌다. 도대체 입안에 무엇을 쑤셔 넣었는지 검푸른색의 진득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며칠 전 요양원에 갔을 때 치약을 사다 놓으며 양치를 꼭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왔었다. 도대체 검푸른색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시는데 전혀 추측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요로감염이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드려도 요로감염이라는 것을 걸린 적이 없었다. 요양원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목욕을 시킨다고 했는데 왜 요로감염에 걸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요양원이 보편화되어 시설도 좋아졌지만, 당시 요양원에 대한 감시나 치매 환자에 대한 대책은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다시 어머니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두 차례 오가야 했다. 그러면서 요양원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열의 원인을 찾던 중 의사 선생님께서 가족끼리 의논을 하라고 하셨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누구와도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신영은 의사 선생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함께 나누다 보니 의논 상대가 되어 주셨다. 상의한 결과 수술을 하기로 결론지었다. 결석으로 인한 열이었다. 복강경 수술을 선택했다. 그렇게 그녀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어머니는 두 번의 고비를 넘기셨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다. 수술할 때도 그녀 혼자만이 대기실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다려야 했다. 사실 그 순간 그녀는 어릴 때부터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색함이 아니라 오히려 덩그러니 놓여진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2시간의 수술이 이어졌다. 대기실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혼자만이 우두커니 앉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며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술을 마치고 나온 어머니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신영은 옷을 덧입고 중환자실로 따라 들어갔다. 어머니를 살피던 중 순간 의식이 찾아왔는지, 어머니는 그녀를 향해 발버둥을 치셨다.

나 좀 제발 죽여달라.”

하시며 그녀를 향해 소리 지르셨다. 그녀는 모든 상황이 버거웠다.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주변에 전혀 없었다. 죽여달라는 고통스런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보며 그녀는 순간

어머니와 나는 어떤 관계인 것일까? 우린 어떤 사연으로 인연이 되어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면회 시간이 끝나고 발길을 돌리면서 그녀의 두 뺨 위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감정을 억누르며 내려왔다. 차 안으로 가서는 가슴 속에 담긴 무언가를 펑펑 토해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수술 후 어머니는 점점 호전되었고 다시 병실로 옮겨졌다.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치매까지 오는 상황이었기에 앞이 막막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지셨고 앙상한 뼈만 남긴 채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회복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홍삼도 사다 먹이고 비타민도 사다가 먹여 보았다.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람이 죽기 전에는 살이 계속 빠진다고 한다. 앙상한 뼈가 보일 때까지….

그 후 다시 찾아갔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의 상태가 너무도 좋았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했더니 참외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다음에 올 때 사 온다고 하고는 그날은 준비하고 간 것들을 챙겨 드렸다. 신영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다음날 농협에 가서 제일 큰 참외를 사 들고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마침 주무시고 계셔서 간병인에게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시면 참외를 깎아서 먹여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조금 위안이 되었을까?

다음날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간병인의 전화였다. 그녀는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병실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간병인이 오더니, 아침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하신다. 그래서 참외는 하나도 드시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드시고 싶던 참외는 결국 드시지 못했다. 간병인들끼리 나눠 드셨다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의사 선생님 방을 찾았다. 그녀를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번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 하셨다. 가족에게 모두 알리라고 하시면서…. 그녀는 아무 의식 없이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다. 무언의 인정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번에는 무의식중에서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중환자실에서 어머니 곁에 있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신영은 어머니의 눈을 내리면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님, 어머니가 왜 눈을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간호사는 좀 있으면 괜찮아질거라고 하시더니 걸려온 병실 전화라며 지금 병실에 가서 물건들을 치워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신영은 나중에 해도 되냐고 물었지만 병실에서 지금 가져가라고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잠시 비워야했다. 신영은 어머니를 부탁하고 중환자실을 나와 병동으로 올라갔다. 병동에서 물건을 챙기고 주차장으로 가서 물건을 차 트렁크에 넣었다. 순간, 전화벨이 울렸고, 확인해보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신영은 정신없이 달려 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모두 누르고 제일 빨리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사실 어머니는 장례비용과 49제 비용으로 그녀에게 2천만원을 맡기셨다. 돈을 맡길 당시 그녀는

어머니는 왜 사후의 일까지 신경을 쓰실까? 그 돈으로 조금이라도 편하게 쓰시다 가시지

짜증도 나고 화도 났었다.

당신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도 못하고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간병비며 치료비 또한 어머니께서 모두 지불하셨기 때문에 자식들은 어떠한 경제적인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신영은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이 길었던 걸까? 어머니 주위에는 다른 자식들이 빙 둘러져 있었다. 어머니께서 운명하시자 수술하실 때나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을 때도 볼 수 없었던 가족들이 모두 참석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 덕분에 중환자실에서 신영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중환자실로 달려갔을 때 마주한 그 모습을 처연히 바라보면서 그녀는 어떤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그동안 보고싶어했던 다른 자식들과 인사할 수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헛웃음만을 띄우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멀뚱이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어머니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신영은 이상하리 만큼 너무도 차분했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사실, 어머니의 죽음과 마주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평생 다니신 절의 스님과 상의를 해서 어머니를 병원 중환자실에서 장례식장으로 모셔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출장 택일을 전화로 예약하고 입관 절차 및 망자에게 입힐 수의며 음식 준비 등 그녀 생애 처음 사람이 살면서 겪는 네 가지 예식인 관혼상제 중 하나인 상례를 치루어내야 했다.

어머니 생전에 자식과 사위들의 체격에 맞춰 한벌 한벌 정성껏 포장한 열여섯 복의 상복이 담긴 보타리와 마주했을 때는 신영의 마음 한켠이 먹먹하기도 했다. 그녀는 노란색 삼베로 지어진 상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정성 어린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슴은 몹시 쓰라렸다.

가족들 모두 어머니께서 손수 준비해 둔 상복을 차려입고 어머니를 모신 영정사진 앞에 8남매 모두 한 줄로 서있을 때였다. 순간, 신영의 머릿속에 스치는 또 하나의 생각에 그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식들이 망자 앞에 든든하게 서서 어머니 당신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이거구나, 이 모습이 살아생전 어머니가 원하던 장면이었구나!’

마지막 가시는 길은 외롭지 않게 자식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생각을 알아챘을 때 그녀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껴야 했다.

살아생전 많은 친구의 장례식에서 자식들끼리 다투거나 잡음 있는 여러 장례 모습들을 보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런 깊은 뜻도 모른 채 그녀는 사후 일처리까지 신경 쓰신다며 얼마나 자신의 어머니를 책망했던가…. 그녀는 어머니의 혜안도 알지 못하면서 투덜대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입관을 하기 위한 입관식에 참관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순간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엄숙하고 떨리는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관실에 들어갔을 때 커다란 직사각형 유리 너머 가로로 긴 차가운 철제 테이블 위에 하얀 수의를 입고 고운 자태로 누워있는 어머니와 마주했다. 참으로 평온한 얼굴을 하고 누워있는 어머니의 옆 모습은 망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워서 놀라웠다.

사실 어떤 분들은 입관식을 보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생전처음 입관식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자식이라면 꼭 부모의 입관식에는 참여해 부모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저토록 평화롭게 누워있을 수 있을까? 사십여 년 어머니를 보아왔지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 어떤 고통도 없는 평온한 모습… 누구나 바라는 자신의 마지막 얼굴이 이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감히 죽어있는 영혼의 육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 일어나~”

라고 몸을 흔들어 깨우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정말 어머니가 운명하신 게 맞나?’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수의를 입고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는 한 인간의 모습과 마주한 순간, 마치 부처의 죽비를 맞는 듯 놀라운 깨달음에 그녀 자신은 너무도 숙연해졌다. 사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자기 육체의 주인이고 그녀 자신이 잘나서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으며 그러한 생각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자각에 너무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 나는 저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것이었구나! 내가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한 것이 아니었구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자신 존재의 뿌리인 저분의 감사함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위대하신 당신!! 그 가녀린 몸에서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 주신 당신, 나의 어머니…

그렇게 그녀가 부끄러운 눈망울로 무언의 대화를 하며 감사함을 느끼는 동안 어머니 주위를 돌며 언니, 오빠들은 마지막 인사의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그녀는 한 번만 안아보고 싶었다. 끌어안고 입맞춤을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바램은 허락되지 않았고 어느새 어머니를 지나친 채 저 멀리 서 있게 되었다, 이윽고 어머니를 관 안으로 안치한 후 금강다라니로 감싸고는 마지막으로 관 뚜껑이 닫혔다. 그렇게 어머니는 관 속으로 영원히 봉인되었다. 그렇게 입관식은 끝이 났다.

이별의 순간은 참으로 짧았다. 하지만 신영 자신에게 울림은 너무도 깊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시간은 7일 동안 이루어졌다. 그 시간이 한 사람이 세상에 와서 이승을 정리하고 떠나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보낼 틈도 없이 손님들을 치르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시신을 화장해야 하는 날은 어김없이 밝았다. 생전 어머니의 유언대로 시신을 화장하고 수목장을 거행하기로 했다. 지난밤, 어머니 영정사진은 그녀가 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영정사진 속 어머니는 연분홍 살구빛 깨끼한복을 입으셨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후덕한 자태로 너그러운 눈길을 품어내고 있었다. 영정사진 액자 테두리에는 분홍색 무늬가 둘러져 있어서 조금은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 액자와 영정사진 또한 당신이 수차례 고민하며 손수 선택해 준비해 두신 것이다.

생전에 꼼꼼하신 그런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녀는 영정사진을 가슴에 앉히고 두 손으로 꼭 안았다. 그녀 가슴 속에 파묻힌 영정사진은 이미 그녀에게는 사진 그 이상의 존재였고, 어머니의 영혼 그 자체였다. 어머니와 그녀는 한 몸이 되어 장례식장에서 나와 운구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그녀의 귓가에 애절한 메아리가 들려왔다.

신영아, 절대 뒤로 돌아보지 마라.”

그녀가 7살 때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여를 이끌고 많은 사람과 걸어가면서 집 앞으로 나온 어린 신영을 향해 동구 밖에서 소리쳤었다. 그 당시 그녀는 어린 마음에 절대 뒤돌아보면 안된다는 어머니 외침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뇌리에 꽉 차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꾹꾹 참고 기다리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쯤이면 지나갔을거라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뒤로 돌아보았었다. 아버지의 커다랗고 하얀 상여는 집 동구 밖 언덕길을 오르며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편의 색바랜 흑백사진처럼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와 그녀의 마지막 이별 모습으로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는 유일한 기억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어머니는 그녀가 어려서 아버지 가시는 길에 발이 안 떨어지신다고 생각하시고 어린 그녀에게 신신당부를 하셨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이 홀로 자식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당시 7살이었던 어린 아이가 마흔두 살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라고 외치던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걸어가고 있다. 당시 7살이었던 어린 소녀를 지켜냈듯이, 지금 그녀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돌아보는 순간 이승의 삶에 발이 떨어지지 않아 어머니가 힘들어 할 것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귓가에 맴돌던 메아리가 서서히 그치더니, 혼자 된 어머니께서 그토록 지켜내어 선물한 40여 년의 삶을 걸어가고 있는 그녀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 눈 앞에 펼쳐진 어머니 삶의 파노라마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스크린이 되어주었던 영구차 앞 유리 너머로 여전히 봄 소풍이라도 가고 싶은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었다. 영구차는 어느덧 양지공원 진입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양지공원에 도착 후 화장식을 거행하기 전 마지막 조촐한 제를 지낼 준비로 분주했다. 2평 남짓한 공간에 영정을 모시고 스님께서 망자의 영혼을 위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녀는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지하를 오르내리며 준비하느라 마지막으로 제에 합류한 탓에 영정사진과 바로 앞 가까이서 사진 속 어머니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

신발을 벗고 영정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리고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순간 신영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주절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웃으면서 가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가세요.”

어머니에게 읊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사진 속 어머니는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비벼보았다. 그리곤 또 한 번 눈을 비비고는 영정사진을 다시 쳐다보았다. 웃으면서도 슬픈 표정을 하시고 계신 어머니가 진정 그녀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고마웠다…. 신영아.”

어머니, 잘 가….”

어머니, 슬픈 표정 짓지 마…. 웃으면서 가….”

그리고는 원래의 영정사진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순간 깜짝 놀랐지만, 그녀는 너무도 어머니가 고마웠다. 임종하실 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지막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가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너무도 감사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 잘 가….”

이윽고 귓가에 들리는 스님의 목탁 소리는 그녀를 현실 세계로 인도했다. 불경이 끝나고, 화장터로 관이 옮겨졌다.

그동안 유족들이 유리관 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맨 앞자리에 서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또 다른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신이건 아니건 그것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신이 간절히 원했으므로 그녀는 행할 뿐이었다. 오로지 당신을 위해….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갈 때 모든 영혼이 놀란다며 자신의 관이 들어갈 때 반드시 그녀에게 외쳐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신영은 큰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불 들어감수다. 놀라지 맙써

어머니, 불 들어감수다. 놀라지 맙써

어머니, 불 들어감수다. 놀라지 맙써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3번을 외치는 사이에 어머니의 시신을 넣은 관은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지면서 서서히 화장터 문이 닫혔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은 사각 모양의 창문이 열리더니 어머니의 대퇴골임을 확인하라 하신다. 그러면서 내민 손바닥 위에는 어머니의 뼈 한 조각이 앙상하게 누워있었다. 신영은 확인이 아니라 처음으로 어머니의 육체 한 조각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저 놀란 상태로 멍하니 바라보며 네….’ 라는 말함과 동시에 창문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어머니의 육체의 확인이 아니라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의 마지막 육체와의 조우였다.

문이 닫히고 어머니의 대퇴골을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줌의 재로 변한 어머니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동안 늙은 육신을 씻기기 위해 그녀는 어머니를 안으려고 해도 너무 무거워 남편의 도움을 받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 가벼워 혹시나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가슴 품 안에 안아 들어야 했다.

하얀 항아리에 담긴 어머니의 육신을 받아드니 따뜻한 온기가 그녀의 두 손바닥을 통해 가슴까지 전해진다. 어머니의 마지막 온기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항아리를 내려놓기가 싫어졌다. 그 온기는 가슴으로 점점 전해져 내 온몸으로 각인되는 듯 했다. 하지만 현실의 슬픈 이별의 통증과 함께 인간 육체의 허망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정말 우리는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한없이 가벼운 하얀 유골함을 안고 우리 형제들은 다시 영구차에 올랐다. 영구차는 다시 어머니가 평생 다니시던 절인 수운교 광양지부로 향했다. 그곳에 어머니를 하룻밤 모셨다.

다음날 새벽…, 우린 어머니의 유골함을 모시고 어두운 새벽 공기를 뚫으며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는 조금씩 어둠이 흩어지고 있었다. 산이라 그런지 여름 문턱이지만 새벽공기가 차고 코끝이 시렸다. 그곳은 아직 어둠이 깔려있어서인지 적막했다. 그 적막을 깨는 것은 다름 아닌 까마귀들뿐이었다. 우리모두 비장한 모습을 짓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마지막 의식을 준비했다.

스님께서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읊기 시작했다. 적막함 속에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의 진동에 불경 소리가 더해지면서 너무도 경건한 의식 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제서야 침묵이 어둠을 깨고 서서히 산자들의 삶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순서대로 나무 주위를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뿌리인 어머니 육체의 조각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육체의 가루들은 바람에 흩날리며 공기 속에서 춤을 추고는 가볍게 흙 위에 안착하며 뿌려졌다. 한 명씩 그렇게 나무 주위를 돌며 어머니와 마지막 대화를 했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검은 까마귀들이 떼지어 날아와 까아 악 까아 악소리내며 불경 소리 속에 흡수되어 함께 장례식에 동참해주었다. 찰나적 순간 그렇게 어머니는 한 줌의 재도 남김없이 뿌려지면서 흩어져 사라졌다. 그렇게 어머니는 우리와의 인연의 끈을 끊어 내셨다. 그 순간 신영은 어머니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였다. 스님의 목탁 소리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살아생전 불심이 강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육체를 자연의 자양분으로 마지막까지 복을 짓고 가는 것을 선택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원래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삶과 죽음의 과정은 그녀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는 특별한 계기가 되어주었으며, 진정한 그녀 자신을 재탄생시켜 주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세상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녀에게 많은 정신적인 가치를 선물해 주셨고, 그녀를 성장시켜 주셨으며 앞으로의 삶의 방향까지 제시해 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강한 자아에 갇혀 자신의 시각대로만 바라보며 판단해 온 것이었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짧은 삶을 살면서 우린 집착과 욕망을 뿌리치지 못하고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누구나 하는 말이 아닌 직접적으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느낄 것이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과보는 본인이 짓게 된다는 것, 그녀는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진리 또한 배울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그동안 흘러내리지 않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설겆이를 하다가도, 걸레질을 하다가도 많이 울었다. 장례식 때는 눈물도 안나오더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7일에 한번씩 절에서 제를 지내며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것이 인간의 욕심이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영가를 위한 기도 뿐이었기 때문이다. 49일 째 되는 날, 어머니와 그녀는 짙은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올가미에 갇혀 지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혹독한 아픔 뒤에 소중한 지혜를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전환은 그녀를 또 다른 삶의 세계 속으로 인도했다. 아파한 만큼 성숙한다고 했다. 우린 어리석은 중생이어서 아파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닥치는 시련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신은 시련을 자신이 선택한 소중한 사람에게만 주시고 그 시련을 이겨냈을 때 또하나의 깨달음을 선물로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녀는 자신에게 닥치는 힘듦에 감사히 마주하려 한다. 그렇게 우린 아픔 속에서 성장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한다, 나의 고통을…. 고통의 바다인 나의 삶을….

201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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