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고 해도 좋을만큼 오랫동안 흰색 이불을 덮어왔고 그러므로, 그렇지 않아도 거의 늘 요즘의 대부분의 블로그 트렌드와는 다르게 글을 주절주절 길게 쓰고 있다만, 이 글은 더욱 길 것이다. 이불 때문에 관세 폭탄을 맞아가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하얀 이불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하얀색 이불을 좋아한다. 사각거리는 이불을 덮고 눕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날 별 일이 없었고, 날씨가 덥거나 습하지 않고, 좋은 향기가 나고, 가볍고 포근한 옷을 입고, 내일 아침에 운동을 하러 나갈 시간이 있다면 그 이상 별로 필요한 것이 없다. 화이트 베딩은 생각보다 관리가 어렵지 않고 부피를 크게 차지하는 침대 전체를 덮기 때문에 방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한다. 매우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 한다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 깨끗한 베딩을 갖추면 왠지 모르게 청소를 더 자주 하게 된달까.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오로지 내 방만 내 마음대로였기 때문에 더욱이 예쁜 이불을 좋아했었다.
엄마는 철마다 직접 천을 골라 이불과 커텐을 맞춰주었다. 무엇 하나 대충이 없이 모든 것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손을 써서 나를 키웠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일주일에 등교해야 하는 날 만큼의 셔츠를 여러 벌 사서 아침마다 교복 셔츠를 깨끗하게 다림질해 입혔는데 미국에 가서 내 손으로 두 벌의 교복을 세탁해서 입으면서 다림질 한 옷 따위 구경도 못 하게 되었을 때 엄마의 빈자리를 느꼈다. 가끔 늦을 때는 다른 아이들도 다 구겨진 것을 입고다니고 어차피 입으면 금방 구겨진다고 대충 아무거나 달라고 해 봐야 엄마는 듣지도 않고 굳이 다림질을 해 입혀 보냈다. 다림질을 하지 않는 어머니들이 자식을 덜 사랑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다림질을 해 입힌 우리엄마가 다른 엄마보다 더 자식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나, 어른이되어 보니 엄마의 손이 많이 간 아이와 (보여지는 곳이 아닌 곳에 분명히 많이 갔을) 그렇지 않은 아이를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물론 셔츠 따위가 부모 사랑의 척도는 아닐 것이고, 구겨진 셔츠를 입어도 표정이 밝고 편안한 아이들은 셔츠를 펴 입히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부모의 사랑이 느껴진다. 엄마는 할머니도 엄마가 학교를 다닐 때 매일 풀 먹인 교복 셔츠를 입혀 보냈고, 점심 시간 종이 울리기 오분 전에 학교 앞에 도착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만 먹였다고 말해주곤 했다. 엄마는 꽤나 유별난 엄마였는데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았고 사교육을 많이 시키기 보다는 생활 속에서 내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을 꼭 가장 좋은것, 가장 정성이 들어간 것만을 주었다. 엄마가 다른 어머니들보다 나를 더 열렬하게 사랑해서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엄마가 보고 자란 엄마의 역할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자세 하나의 흐트러짐이 없고 나보다 좋은 혈색에 하얗고 뽀얀 피부를 가졌다. 젊어서부터 모든 일이 깔끔했고, 철저했다. 자식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도 단 한번의 동요가 없었고 어떤 일도 크게 슬퍼하거나 크게 기뻐하는 일 없는 흔들림 없는 사람이다. 할머니는 아주 이성적이면서, 세련된 사람인데 나는 할머니가 실수를 하거나 실언하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젊어서 공부를 많이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며 매우 세련된 매너를 지녔다. 다른 별 말이 소용이 없을 것이 흐트러짐이 없다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할머니는 내게 딱 한가지의 잔소리만 한다. 다른 모든 것은 다 네 마음대로 하되, 결코 다른 사람에게 너의 모든 속내를 드러내지 마라고 한다. (예전에는 나는 그런 관계는 싫다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다른 사람이 듣기 싫은 말, 부정적인 말, 상처주는 말을 하고 싶어도 참아라는 말로 이제는 알아 듣는다.) 할머니는 자식 셋이 모두 박사라는 것이 자랑이라기보다 할머니의 최선을 다한 할머니의 중년이라고 생각하는데, 다행히도 손녀가 박사가 아닌 것에 조금도 아쉬움이 없어보인다. 할머니는 시기. 질투가 없고 이성을 잃지 않는다. 할머니는 친구가 아주 많은데 할머니의 친구들은 아주 형편이 넉넉하신 분들도 많고, 아주 소소하게 지내는 분들도 많으신데 그 누구와도 더 친하게, 더 가깝게 지내지 않고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낸다. 모두가 할머니를 좋아하고 어딜가나 환영받는다. 할머니는 약속에 철저하며 누구와도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오십대일때도, 할머니가 구십이 다되어가도 할머니는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할머니, 여자, 라기 보다 할머니라는 사람 그 자체로 충실히 사는 사람같다. 부인, 어머니, 할머니, 아줌마, 여자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기보다 온전한 자기 자신이라는 분류만이 잘 어울리는 사람. 똑똑하고, 현명하며 품위있는 사람. 그런 할머니가 인생을 바쳐 키워낸 우리 엄마는 할머니를 닮은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말이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자식 셋을 풀먹인 셔츠를 입혀 학교에 보내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십분 전 갓지은 밥을 들고 자식들을 기다렸고 그 자식들이 낳은 자식들을 모두 업어키웠지만 허리가 조금도 굽지 않았고 지금도 자로 잰듯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만은 내가 가진, 경험해본 최고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모든 사랑을 주었고, 할머니는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을 것을 해 주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내 돌 사진을 보고 할머니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보아도 으리으리하게 차려진 상이 할머니의 최선의 노력이었다는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설명이 길지가 않다. 할머니, 이걸 할머니가 다 해줬어? 그때는 내가 정말로 나의 모든 최선을 다했었지, 그것이 전부이다. 그 당시 할머니의 최선의 의미를 나는 안다. 내 돌상만큼 나의 평생동안 할머니는 나에게 매우 끔찍한 정성을 쏟아 부었다.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정돈되어 있고, 좋은 향기가 났기 때문에 할머니가 내 방에 십분만 머무르고 가더라도 할머니가 다녀간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할일을 대신 해 주는 것이 좋았던 것이 아니지만 나는 할머니의 손길이 좋았다.
아무튼 이런 저런 그런 이유로 나는 이불 세트를 꽤나 좋아하고 갖추어 두는 것을 즐긴다. 처음 내가 내 돈으로 이불을 사러 갔던 것은 신세계 백화점의 입델롬 이었다.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 행사 문자가 끈질기게 오고있다.) 아무리 백화점을 뱅뱅 돌아도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고, 그나마 입델롬이 얌전해보여 흰바탕에 아주 작은 연한 하늘색 꽃무늬가 있는 여름 이불 커버를 골랐다. 20대 초 중반의 여자 취향에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 였는데 한 계절이 지나고 나니 정말 새하얀 이불을 덮고싶었고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아 길고 긴 이불 해외직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서양식 침대 세팅은 사실 꽤나 정말 복잡한데, 웬만한 친구집에 가 보니 싱글 침대에도 꼭 데코 쿠션들이 여러개 있더라. 부모님 침대는 자세히는 보지 않았어도 지나가면서 보면 정말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커다란 침대에 온갖 쿠션들이 얹어져 있었는데 실제로 유로베게 (커다란 정사각 베게) 만 사용 해 보아도 이게 정말 잘 때는 어디에 둬야하나 골치였다. 그래서 대부분은 저렇게 데코용 베게나 쿠션이 많은 경우 침대 발 밑쪽에 작은 벤치를 두고 그 위에 올려둔다. (나는 이부분이 정말 너무 궁금했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첨언.)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바스켓 같은 곳에 담아 둔다고도 하더라. 목적은? 그냥 순전히 장식 목적이다. 아래 그림에 coverlet or quilt 라고 적혀져있는 부분에 throw 라고 불리는 두껍고 큰 담요로 데코를 하기도 하는데 한참 빠져있을 때는 그것도 사서 같이 매치했는데 늘 의자 위에서 먼지만 쌓여 두어번 구매하고는 구매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집의 구조에 변화를 많이 주고, 서양 문화권은 구조보다 장식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우선 해외직구로 이불을 구매하려면 용어와 친숙해져야 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불커버는 - 듀벳 이라고 부르며 일반적으로 베게커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제품 명이 퀼트인것은 안에 솜을 넣어 누빈 것으로 이불 속통을 넣을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베게커버는 보통 2개가 한 세트로 따로 구매하며, 유로 샴 이라고 불리는 정사각 베게 커버는 침대를 정리할 때 베게 장식을 해 두는 큰 사이즈로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사용하지 않아 따로 솜을 맞추거나 구매해야 한다. 한국에서 침대 위에 깔아두는 솜을 누벼 만든 이불 패드는 미국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은 시트세트 라고 부르는 구성을 구매해서 매트리스 커버 위에 한겹의 매우 얇은, 매트리스에 끼울 수 있는 Fitted sheet(bottom sheet) 로 매트리스를 정리하고, 또 하나의 얇은 면 시트 flat sheet(top sheet) 은 침대 이불 아래에 세팅해서 사용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하나는 바닥에 깔고, 하나는 이불 밑에 한번 더 덧대서 사용하는 식. (호텔에서 이불 정리를 하면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시트세트는 브랜드마다 다양한 소재와 색상이 나오지만 구성은 거의 동일하다. 간단하게 매트리스에 끼울수 있는 형식이 아니라 알아서 정리해야 하는 플랫 시트 두장인 경우도 있다. 매트리스와 이불 보호를 위한 보통 두 장의 시트, 그리고 두 장의 베게커버가 포함되는데 사용하기 번거로운 대신 얇고 가벼우니 이불 세탁이 매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팅은 침대 매트리스 위에 페더베드(매트리스를 조금 더 폭신하게 만들어주는 거위털을 채워넣은 두꺼운 요) 를 깔고, 시트 세트로 각을 잡아두는 것인데 사실 아주 얌전하게 잠을 자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패드보다 정리가 상당히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나 나는 이런 번거로운 행위를 매우 즐기는 인간이라 좋아한다. (물론 바쁜 날 아침에 침대 정리를 하고 나가지 않으면 귀가 시 할머니에게 등짝스매싱은 예약이다.) 시트세트와 듀벳 커버, 베게 커버, 그리고 경우에 따라 유로 샴(쿠션) 까지 구매하면 기본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싱글침대에는 주로 유로 샴을 올리지 않고 작은 쿠션을 올리고 퀸 사이즈 침대 이상 부터는 유로 샴까지 셋팅을 했을 때 대략 영화 속에서 보는 미국 가정집의 침대 모습이 된다. 나는 다리가 잘 붓기 때문에 다리를 올려두고 자는 용도로 유로 샴을 잘 썼는데 지금 이사온 집은 복층 구조로 침실이 있는 2층의 천장이 약간 낮아서 더 이상 유로베게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때 내가 맞추어둔 베게들은 우리집 강아지가 잘 쓰고 있다.
보통 우리가 80수라고 부르면 영어로는 400 thread count 로 표기한다. 간혹 이 점에서 잘못된 표기가 된 경우가 종종 보인다. 웨스트엘름 홈페이지에도 200수 라고 나와있는데, 실제로 제품은 200 thread count 이며, 우리나라에서 표현하는 -수 로 바꾸자면 40수 정도가 되는 셈이다. 주로 고급 제품은 400 thread count 이고, 우리나라 식 표기로 바꾸면 80수가 된다. 보통 thread count 가 올라갈수록 밀도가 올라가 광택감이 좋고 촉감이 부드러운데 40수는 기분좋게 사각 거리는 느낌, 80수는 부드러운 촉감이 매력이라 둘다 장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thread count는 마케팅적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다. 수가 높을 수록 마찰에 약하고 필링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단순히 무조건 수가 높다고 좋은 제품은 아니라고 한다. 무조건 수가 높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결국은 면의 질이 완제품의 퀄리티를 결정한다.
미드에서 'Egyptian cotton bed sheet' 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리는데 이집트산 면에 대한 명성이 상당한 편. 이집트산 면은 나일강 삼각지역에서만 재배는 매우 섬세한 섬유가 특징이다. 일반 면보다 더 얇으면서 긴 섬유조직이기 때문에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게 주름이 지며, 통기성이 좋고, 흡수력도 뛰어나며 촉감이 매우 부드러워 최상급 섬유가 된다고 한다. 수면시간동안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주고 쾌적한 상태를 유지 하게 도와준다는 것이 이집트산 면으로 만들어진 침구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인데 진짜 이집트산 면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이집션 코튼 다음으로 실크 질감의 페루산 피마 코튼이 있고 수피마 코튼은 이 피마 코튼을 미국에서 재배한 브랜드 이름이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매우 합리적인 제품을 원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매우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시트세트를 구매할 때도 한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여러가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다. 여러가지 소재의 시트세트와 듀벳 세트를 사용 해 본 결과 웬만한 이름난 브랜드의 오래동안 출시된 전통있는 제품들은 모두 좋았다. 이불도 결국은 소모품이다. 세탁과 교체도 꼭 고려해야 하는 점이라 적당한 가격대의 화이트베딩도 사용도 간편하고 충분히 매력적이다. 일반적으로 수가 높은 것이 가격이 더 높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수가 높을수록 촉감이 부드러운 것은 맞지만 바삭한 질감을 좋아한다면 꼭 무조건 고가의 600 thread count 제품을 고집하기 보다 원하는 질감에 맞게, 고급 제품을 원한다면 면의 퀄리티를 우선으로 고르는 것이 좋다.
최초로 직구했던 시트세트와 이불은 West Elm 웨스트 엘름의 것 이었다. 그 당시 웨스트 엘름의 조명을 아껴서 사용하고 있었던 중이라 계속해서 갖고 싶었던 시트 세트 하나와 코튼핀턱 듀벳을 구매하게 되었다. 코튼 핀턱 듀벳을 구매했던 것이 내가 20대 중반의 일 인데 십년이 넘게 아직도 사랑받는 디자인으로 지금도 구매 가능하다. 작년에 웨스트엘름이 한국에 들어온것을 보고 깜짝 놀랬는데 예전처럼 관세 안으로 구매하려고 이불 커버 한번, 베게 커버, 그리고 유로베게 커버를 모두 따로 구매해서 한번 셋팅을 하려면 최소 3주는 넘게 기다려야 했던 나날들이 끝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더란다. 아무튼, 내가 찾던 새 하얀 면 이불커버, 그런데 약간의 디자인이 들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이 모델은 출시되고 있는데 한국 홈페이지에는 나와있지 않아 원한다면 아직 직구를 해야 한다. 차르르한 실크 같은 질감의 면이 아니라 새하얀 사각거리는 면, 과하지 않은 장식이지만 전체적으로 화사하고 화려한 느낌을 연출하고 싶다면 좋은 제품이다. 웨스트엘름의 코튼 핀턱 듀벳을 구매하고 나는 이불 세트에 완전 미쳐버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잊을 수 없어 너무나 갖고싶었던 앤스로폴로지 Anthropologie 의 리뷸렛 퀼트 Rivulet 를 구매했다.리뷸렛 퀼트는 품목별로 끊어서 구매해 봐야 이불을 네 조각 내지 않는 이상 관세를 피할 길이 없어 관세 각오를 하고 퀸 사이즈의 퀼트, 베게 커버 두장, 그리고 유로 샴 두 장을 구매했고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엄청난 배송대행비와 관부가세를 납부했다. 웬만한 좋은 가방 하나 가격이 나갔지만 그 이불 세트 하나로 몇년간 너무나 행복했다. 방에 들어가는 순간 내 방이 제일 예쁜 느낌이랄까. 집에 가면 모든 스트레스가 자동으로 풀리는 느낌. 일을 마치고 집에 늦게 들어가서 겨우 씻기만 하고 책상 의자에 각종 옷들을 쌓아두었는데 리뷸렛 세트를 구매하고 난 후로는 스스로 청소를 하게 되었다. 퀼트는 듀벳 세트와 다르게 안쪽에 이불 속통을 넣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불 자체에 솜을 넣고 누빈 것인데, 이 리뷸렛 퀼트의 무게가 정말로 엄청났다. 덮고 있으면 몸을 뒤척이기가 불편할 정도였고 겨울에는 당연히 그 아래 담요를 한겹 더 덥고 자야 했는데 다 상관 없었다. 아, 무거워, 이렇게 예쁜 이불이 나를 짓눌른다면 호떡이 되어도 좋아,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까지 리뷸렛 퀼트 세트만큼 압도적으로 방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이불을 본 적 없다. 무거운 이불에 무거운 관부가세에, 엄청나게 불편하고, 부피 때문에 세탁은 더욱이 용이하지 않았다만 조금도 후회는 없었다. 나는 20대에 내가했던 많은 일들을 후회하고, 후회하지 않는 일을 겨우 꼽아보자면 열개가 채 되지 않을 테지만 리뷸렛 베딩을 구매한 것은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포터리 반의 허니콤 듀벳 세트를 구매했는데 면의 질감이 앞의 두 제품보다는 만족도가 덜 했지만 조금 더 소녀같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서 잘 사용했다. 그 이후로 이불 표면에 무늬나 텍스처가 있는 제품보다 없는 제품이 내 취향에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여러 가지 제품을 사용 해 보면서 취향을 알게 된 다음 부터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 이 세가지 제품은 모두 아직도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인데 벌써 그때가 언제인데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렇게 이불 맛을 본 나는 프레떼의 이불을 구매하게 된다. 프레떼 1860은 압도적으로 가장 비싸고, 가장 호화스럽고, 그리고 너무 갖고 싶어서 병이 날 것 같았던 이탈리아의 명품 침구 브랜드이다. 리츠 호텔, 세인트 레지스, 플라자 호텔과 같은 세계 최고의 호텔 그리고 국내에서는 시그니엘, 조선팰리스의 침구가 바로 프레떼. 프레떼 안에서도 여러가지 그레이드로 나뉘는데 호텔에 납품되는 라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3000달러가 넘어가는 최고급 라인도 있다. 하얀 기본 침구만 하더라도 교황청에 납품되었던 얇고 보송한 질감의 포퓰린, 일반적으로 호텔 침구에서 많이 쓰이는 바삭한 질감의 퍼케일, 부드럽고 실크같은 새틴, 그리고 린넨 등으로 다양하고 2-300 달러 선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제조 국가가 이탈리아가 아닌 경우가 많다. 밀라노 기반의 160년의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실크같은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프레떼의 새하얀 이불은 거의 눈물이 날 만큼 갖고싶었던 품목. 프레떼는 린넨을 특유의 윤기와 부드러움이 특징인데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이불은 ULTIMATE DUVET COVER. 문제는 이불 커버 만 그 당시 2000달러가 넘는, 베게 커버에 배송 대행비에 관세를 포함한다면 저 세상의 가격. 이건 앤쓰로폴로지의 이불 수준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가격인 것. 그래서 눈을 낮추어 실크 질감 대신 조금 바삭거리는 질감으로 포르투칼에서 만들어진 퍼케일 면으로 만들어진 이불을 골랐다. 사실 하얀 이불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데 그런데도 좋은 걸 갖고 싶은 허영심을 프레떼 침구로 다 푼 것 같았다. 구구절절 설명보다는 하얀 이불의 끝판왕이자 최고중의 최고는 프레떼였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집 보다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 처음으로 내가 구매할 물건은 프레떼의 얼티밋 듀벳 커버가 될 것이다. (이사가면 안되겠네..)
하지만 이 이불을 덮으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너무 아끼는 마음에 도저히 세탁기엔 못 넣겠고, 세탁소는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게 더 골치가 아프더라는 것. 그때는 더 어렸기 때문에 아끼고 아끼는 마음을 더욱 주체하지 못했기에 세탁을 해야 할 때마다 너무 괴로웠다. 이불 아래에 시트세트의 홑겹이불을 한겹 더했고, 그 아래 얇은 담요를 하나 더 두어 실제로 이불이 몸에 완전히 닿게 쓰지는 않아 세탁 주기가 아주 짧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여기저기 세탁소를 전전하다 결국 나중에는 이것도 물빨래를 돌렸다고 한다. 여러번 세탁해도 워낙 잘 만들어진 물건이라 빨리 닳거나 늙지는 않았지만 애지중지하는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속상하고, 드라이를 맡겨도 마음에 차지 않고 아끼는 것을 너무 아끼는 피곤한 성격의 나에게는 아주 골칫거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기는 했지만 아무튼 너무 마음에 드는 것을 구매하니 또 그런 피곤함이 있더라.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좋은 상태인 것을 보면 확실히 좋은 물건을 사서 잘 관리하면 오래오래 쓸 수 있어 구매한 것이 후회되지 않았고 좋은 이불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자고 나서 허물 벗어 놓은듯 이불을 던져두던 습관을 고칠 수 있어서 좋았다. 요즘은 호텔 침구를 많이 판매하고 구매하는데 사실 집에 세팅을 하면 호텔에서 덮었던 것 만큼 좋지 않다는 평이 많다. 아무래도 좋은 호텔일수록 일반적으로는 침대 매트리스도 좋은 편이고 주로 페더베드가 셋팅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차이가 있을 것이고, 침대 높이, 습도와 온도도 쾌적함을 느끼는 정도에 큰 차이를 주기 때문에 호텔과 똑같기는 어려운 것 같지만 그래도 새하얀 이불이 잘 정리되어 있고, 환기를 잘 시키고 패브릭 스프레이나 좋아하는 룸 스프레이가 침대 옆에 준비되어 있다면 기분좋은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된다. 프레드릭 말의 패브릭 스프레이 덩몽리 (내 침대 위에서), 덩통리 (너의 침대 위에서)는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 가서 시향 했는데 프레드릭 말 답게 친근한듯 어려운 듯 아리송 하나 중요한건 지속력이 정말 0에 수렴할 것 같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라부르켓의 패브릭 스프레이를 다 사용하면 프레드릭 말의 퍼퓸건을 구매할 듯 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향은 쥬와이유 노엘. 룸 스프레이 중 딥티크의 34번가 생제르망은 아침에 한번 뿌리면 저녁까지 향이 남아있는 믿을 수 없는 초강력 지속을 자랑하니 추천.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가장 좋은 제품이다. 꼭 수를 따지고, 제조국가를 따지고, 브랜드 네임이 있어야 좋은 이불은 아니지만 마음에드는 제품을 고르고, 아끼면서 사용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좋은 감정들과 얻은 좋은 습관들이 내게는 가치있는 경험이었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한다.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면 그 뿐, 최선을 다한 후의 결과와 그 이후는 할머니의 관심사가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 모든 일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사람의 최선은 타인의 마음에 부채감을 남기지 않았다. 성인이되어서 주변 어른들을 그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되면서 나는 가진 모든 것에 없는 것 까지 더하는 엄마와는 다르게 할머니가 조금은 이해타산적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할머니를 덜 사랑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엄마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지난 날의 엄마가 무겁고, 엄마를 보는 것이 버거워도 할머니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어떤식으로든 보상받고 싶은 마음으로 나누는 최선은 결코 최선이 아님을 몰랐다. 내 예상 혹은 바람과 다른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크게 동요하는 나를 보면서 -해야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타인을 대하는 것 자체가 보상을 바라는 것이 될 수 있으며, 동요하기 보다는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거나 그것이 어려울 경우 그런 상황에서 얼마든지 마음을 닫지 않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 점과 함께 작년 한 해 동안 나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최선을 다해서 누군가를 대하고 관계를 맺는 것의 의미였다. 누구라도 이것을 원할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 사고라는 생각은 얼마 전 까지는 완전히 들지 않았다. 나는 누구라도 내가 없는 곳에서 내게 보이지 않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가능하면 내게 진실하게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라고, 함께하는 순간에는 진심을 담아주었으면 좋겠고 누구라도 이런 것들을 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방식에 있어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 수도, 혹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가, 그만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고민했는데 중요한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나의 단점이라는 것을 깨달은것은 최근이다. 꼭 말로해야만 강요가 아니라 내 생각의 강박이 결국 상대에게 강요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강박이 심한 사람이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엄격하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에게 엄격하면서 타인에게 그렇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혹은 가능하더라도 매우 어려운데 나는 그렇게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이제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가, 내가 원하는 최선이 아니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나이가 되니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것 같다. 나는 할머니는 굉장히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인간관계와 같이 누구와도 편하게 어우러지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좋은 친구가 되는 할머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할머니처럼 산뜻한 어른이 되고싶다. 누구도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슬프지 않은.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고 하얀 이불을 잘 세탁해서 뽀송하게 잘 덮고 잘 자는 삶,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