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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저씨 May 26. 2024

5.26일 일요일 아침 10시 30분

하루만큼의 지혜 한 스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일요일 아침이면 항상 받던 스페인어 수업이 없는 날이다. 수업이 없던 건 아니다. 내가 이번 일요일은 집에서 쉬고 싶어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주중에 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우유, 바나나 등의 식료품을 사서 집에 오는 도중에 커피도 주문했다. 집에 와서는 설거지를 하고 이불 빨래를 하고, 며칠 동안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빨래들을 개켜 넣었다


그렇게 별일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난 오늘 하루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콧노래를 불러가며 했다. 집에 있어서 행복했냐고? 그건 아니다. 몇 주간 바빠서 집안 청소나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방을 청소하고 정리하니, 내 마음도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내가 사는 집이 깔끔해야 다른 모든 일들도 기분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유튜브를 보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퇴직 후 삶에 대한 영상을 많이 보여줬다. 내가 특별히 찾은 것도 아닌데, 유튜브에서 퇴직/퇴사 영상을 보여주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이직이나 퇴사를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건 확실하다. 40대보다 50대가 더 가까운 나이로 달려가는 나로서는 이제 회사를 다닐 시간보다 회사를 다닌 시간이 더 긴 시기이다. 만약 내가 아내와 살고 자식이 있었다면, 퇴직 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치는 부릴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이혼으로 인해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퇴직 후 내 삶에 대해 냉정한 고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영상을 여러 편 보니 퇴직 후 삶은 두 가지로 나뉘는 것으로 분석됐다. 만족하거나 불행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중간인 경우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퇴직 후 삶이 고단한 분들의 영상을 보면 대부분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퇴직 후 삶에 대해 고민하고 대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많은 영상이 이에 해당됐다.) 그리고 매우 희귀하지만, 퇴직 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퇴직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고민했다는 걸 발견했다. 회사 내에서 자기 가치를 찾으려 하거나,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회사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냉철하게 보고, 퇴직 후 자신의 삶을 천천히 준비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나 또한 퇴직 후 삶을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유튜브의 다양한 동영상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틀린 길이 아님을 확인시켜줬다. 솔직히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있지만, 퇴직을 생각하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지 전혀 생각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퇴직을 하더라도 당황하거나 길을 잃는 행동을 하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 주눅 드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난 하루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하루만큼의 지혜를 더해가며 살고 있다.


In Pursuit of Happiness(행복을 찾아, 나저씨가 아이폰으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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