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말씀하신 날짜에 복직하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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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에 받은 전화는 결코 즐겁지 못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회사 인사담당자였다. 벌써부터 내년 초에 있을 인사이동을 대비해서 나의 복직계획을 물으려 연락한 것이다. 내가 예정대로 복직을 할지, 기간을 더 연장할지를 파악해서 인사이동 대상자 리스트를 미리 작성하려는 모양이었다.
- 네, 맞습니다. (아직은요.)
-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간단한 확인 후 전화는 끊어졌다. 내가 마지막에 말한 '아직은요'라는 말은 그가 미처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거기에 무게를 두어 의미를 부여한 것과는 달리 목소리는 기어들어갈 듯 작게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말을 하긴 했었나 의심이 될 정도로 작게.
02.
- 전임자에게서는 계속 연락이 오나요?
길었던 추석 연휴가 지나고 만난 심리상담사는 그렇게 물어왔다.
- 2주 전쯤 또 한 번 문자가 왔었습니다.
그녀는 혀를 내두르며 웃어 버렸다.
- 하하. 아직도요? 그분 참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답은 했나요?
- 아니오. 오랜만의 연락이라 답을 줄지 망설여졌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어요.
- 이제는 답을 주지 않는 일이 쉽게 되던가요? 긴장되거나 답답하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어요? 또다시 공황 느낌이 왔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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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짐짓 웃음을 거두고 그렇게 물었다. 전임자에게서 연락이 자주 오던 무렵, 나는 그녀에게 약한 공황장애 증상을 경험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불과 한 달도 채 안된 이야기였다.
- 실은 좀 힘들었어요. 심하진 않았지만 스트레스도 있었고. 하지만 더 이상 답해줄 의무가 없다는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참았습니다. 더 이상은 연락이 없네요.
- 잘했습니다. 이제는 그분도 많이 느꼈을 거예요. 더 이상은 연락 오지도 않겠지만 오더라도 지금처럼 무시하시면 됩니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일은 없었나요?
- 오늘 고민이 하나 생겼어요.
- ?
03.
나는 휴직한 지 2달이 지나도록 전임자로부터 업무 문의를 받아왔다. 그 횟수가 많든 적든 그리고 내가 답을 해줬든 안 해줬든지 간에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연락이 끊기자마자 회사에서는 나의 복직계획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사담당자의 전화를 받기 며칠 전에는 회사 사무실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복직하면 내가 가게 될 새로운 부서였다. 표면적으로는 나의 신상정보 업데이트 관련 문의 때문이었지만 에둘러 나의 복직의사를 재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고, 결코 강요가 아닌 단순한 확인 절차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나에게는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네가 말한 날짜에 확실히 복직할 거지?'
'휴직은 올해 말까지라고 몇 번이나 말해놓고 약속 어기면 안 되는 거 알지?'
'설마 휴직기간 연장까지 할 속셈은 아니겠지?'
마치 그렇게 다그치는 듯했기 때문이다.
04.
나는 전임자의 연락이 끊기면서 최근에야 비로소 회사생각을 떨쳐낸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가져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복직과 관련한 연락들을 받다 보니 벌써 휴직이 마무리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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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겨우 나에 대해 알아갈 준비가 된 것 같은데 복직이라니. 허탈한 것은 둘째치고 두려워져요. 또 같은 이유로 이렇게 넘어질까 봐.
무엇보다 기존에 받았던 상처에 대해서 아직 마음 정리가 안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나는 복직하기 전에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본격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었다.
- 오늘은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조금 복잡했었습니다.
- 그렇군요. 저라도 너무 괴로웠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그랬다.
05.
- 회사는 분명 변함이 없을 것이고, 나 역시 변화가 없다면 같은 문제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죠. 아니,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겁니다. 남은 기간 동안에라도 마음을 잘 잡아나가야겠는데요.
- 그게 가능할까요? 말을 꺼내놓고 나니까 더 막막한 심정이에요.
나는 그간 심리상담을 통해 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고,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에게는 몇 달 더 휴직을 연장할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걸 또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의사에게 이런 사정을 털어놓자 '나 자신만 생각하라'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에게 가장 이로운 쪽으로 선택하라고. 그러고 보면 내가 쓴 글에서 나도 그래야 한다고 쓴 적이 있었다. 또한 그 글을 읽은 독자님들조차도 내게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고 나를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주는 일 말이다.
이제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방향을 잡았는데 수능 시험이 2달 남았다고 통보받은 기분이었다. 물론 휴직 연장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막상 출근을 하게 되면 전과 다르게 잘 생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히려 쉬는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일하는 것 자체가 싫어질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휴직 연장이라면 그 선택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나는 정말 나를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고, 나를 표현하는 첫 단계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작가 서툰입니다. 평범한 회사원이 작가가 되어 복직 대신 퇴직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드디어 제 이름으로 된 첫 번째 브런치 북 <40대 가장인데 휴직해도 될까요?>를 만들었어요!
브런치 북 출간은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세웠던 목표들 중 하나였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한 계단을 오른 느낌입니다. 앞으로는 매거진을 통해 보다 다양한 글을 써볼 계획을 갖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글 발행은 주 5일에서 주 2일 정도로 줄여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혹 복직을 하게 되더라도 제가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이 그 정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다 보면 루틴 정리가 되겠죠? ^^
그동안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계속 저의 길을 걸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