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균열과 파국 -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기록
제8장: 법정 공방과 끝나지 않은 전쟁
감정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차갑고 단단한 법리의 지층이 드러났다. 2024년 4월 25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은 여론의 흐름을 극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법적 권력관계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서사와 감정의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이제 이성과 논리, 증거와 법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전장이 열렸다.
이 법정 공방은 K-팝 산업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자본과 창의성의 위태로운 동거 그리고 한국의 기업 거버넌스가 이러한 복합적인 갈등을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대였다.
법적 딜레마의 부상
민희진의 기자회견 이후 하이브는 여론의 역풍 속에서도 법과 시스템을 통한 해결 전략을 고수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한 대주주로서 민희진 대표를 해임하는 것이었다. 하이브는 "독립 시도가 회사 가치를 훼손했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5월 31일 임시주주총회(임시주총) 개최를 확정했다. 동시에 4월 25일, 민희진 대표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며 형사적 압박을 병행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민희진 대표는 5월 7일, 하이브를 상대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이는 사태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법적 분수령이 되었다.
이 가처분 신청은 '상법상의 주주 권리'와 '주주간계약(SHA)상의 약정'이 충돌하는 중대한 쟁점을 제기했다. 상법 제385조 제1항은 "이사는 언제든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에 의하여 해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주의 권리를 보장한다. [1] 하이브는 이 조항을 근거로 해임권을 주장했다.
반면 민희진 측은 주주간계약에 명시된 '설립일로부터 5년간 대표이사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이브는 의결권 행사를 구속당한다'는 조항을 방패로 내세웠다. [2] 이는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 간의 합의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민희진이 '노예 계약'이라고 비판했던 주주간계약이 법정에서는 그녀를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계약은 갈등을 증폭시킨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갈등의 가장 큰 경제적 동인은 민희진 보유 지분 18%의 가치 평가와 관련된 풋옵션 조항이었다. 초기 계약에서 풋옵션 행사가격은 '영업이익의 13배수'로 정해졌다. 하지만 뉴진스의 성공 이후 민희진은 보상이 부족하다고 판단, 30배수로 상향 조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의 거절로 신뢰는 금이 갔고, 이는 민희진이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민희진이 '노예 계약'이라고 주장한 핵심 근거는 경업금지 조항이었다. 문제는 이 의무가 그녀가 보유한 잔여 지분을 모두 처분할 때까지 지속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잔여 지분 처분에 하이브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사실상 영구적으로 경업금지에 묶여 있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비판받았다.
한국형 '배임죄'의 딜레마
하이브가 제기한 '업무상 배임' 혐의는 한국 기업 환경의 고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한국의 배임죄는 '임무 위배 행위'와 '손해'의 기준이 모호하여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영 판단의 원칙이 확립된 선진국과 대비된다.
특히 배임죄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 무기로 악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이브는 '경영권 탈취 시도'가 어도어의 가치를 훼손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계획 단계에 머물렀을 경우 이를 배임으로 연결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많은 난점을 안고 있었다.
진흙탕 싸움 속의 심문기일
법정 공방이 본격화되면서,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자극적인 폭로전이 여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분쟁의 초점을 감정싸움으로 비화시켰고, 대중의 피로감을 가중했다.
하이브와 민희진 측은 언론을 통해 서로에게 치명타를 입히려 했다. 하이브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민희진의 요구를 "결국 돈 문제"로 프레이밍하며 반격했고, 디스패치 등은 내부 카카오톡 대화를 유출하며 민희진 대표의 부적절한 발언(특정 성별 비하 등)을 보도했다. 이는 초기 동정 여론에 타격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뉴진스 멤버들과 부모들까지 분쟁의 전면에 등장했다. 멤버 5인 전원은 법원에 민희진 대표에게 유리한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고, 멤버 부모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하이브 측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민희진을 지지했다. 이는 팬덤 저널리즘적 시각에서 매우 중요한 에피소드다. 아티스트와 가족까지 경영권 분쟁에 깊숙이 개입한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이러한 진흙탕 싸움 속에서 대중은 "누가 더 잘했는가 보다는 더 이상 분쟁 과정을 보고 싶지 않다"는 정서가 확산하였다.
5월 17일 열린 가처분 심문은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하이브 측은 민희진의 '배신'을 입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프로젝트 1945' 등 내부 문건과 카카오톡 대화록을 공개하며, 이것이 구체적인 경영권 탈취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희진이 뉴진스의 전속계약을 독단적으로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이는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강조했다.
민희진 측은 증거들이 악의적으로 편집되었으며, '사담'이자 '상상'에 불과해 배임죄의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한 자신의 행동은 '아일릿 카피' 논란 등 어도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내부고발이었다고 항변했다.
이 공방의 중심에는 '이사는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이사는 주주(하이브)가 아니라 회사(어도어)에 대해 충실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민희진의 행위가 하이브에는 불이익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어도어에 대한 배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법리적 논쟁이 핵심이었다.
법원의 판결
2024년 5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50부(재판장 김상훈)는 민희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3] 이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으며, 민희진의 법적 승리였다.
법원의 결정문은 정교한 논리로 구성되었다. 첫째, 법원은 주주간계약에 명시된 5년 임기 보장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고, 하이브가 이에 구속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상법상의 이사 해임 규정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간의 합의가 먼저 존중되어야 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둘째, 재판부는 사실관계 인정에 있어서는 하이브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결정문은 "민희진이... 어도어에 대한 독립적인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방안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역사에 남을 한 문장을 남겼다. "민희진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셋째, 판결의 핵심은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에 있었다.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법원은 민희진의 행위가 "구체적인 실행 행위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주주(하이브)가 아닌 회사(어도어)임을 명확히 했다.
이 판결은 한국 기업 거버넌스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자회사의 독립적인 법인격을 인정하고, 이사가 모회사가 아닌 자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이 민희진의 행위를 '배신'으로 규정하면서 법의 판단과 일반 대중의 감정 사이에 큰 괴리가 발생했다. 민희진은 법적으로는 승리했지만, '배신자'라는 낙인을 안게 되었다.
불안한 봉합과 급격한 파국
가처분 인용으로 민희진 대표는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안한 봉합'의 시작이었다. 이 봉합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파국으로 치달았다.
5월 31일 임시주총에서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를 해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측근 이사 2명을 해임하고 자사 임원 3명을 새로운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이로써 어도어 이사회는 민희진 1인과 하이브 측 3인으로 재편되었고, 민희진은 이사회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임시주총 직후, 민희진 대표는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에 파격적인 화해를 제안했다. 이는 현실적 한계를 인식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첫 기자회견 때와는 사뭇 달랐다. 초기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로 여겨졌던 그녀에게 쏟아졌던 호의적 여론은 폭로전이 거듭되며 이내 염증과 냉소로 돌아섰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첫째, 분쟁 장기화로 인한 대중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둘째, 초기에 부각되었던 'MZ 여성 대 개저씨'라는 젠더 프레임이 퇴색하고 사건의 본질이 권력 다툼으로 인식되면서 젠더 이슈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셋째, 능력주의의 역설이 작용했다. 초기에는 민희진의 창의력이 대기업 자본에 맞선다는 구도가 응원받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거액의 지분 가치와 권한(30배수 풋옵션 요구 등)을 둘러싼 다툼의 한 축임이 드러나자, 일부에서는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팬들과 대중을 들러리 세운 것 아니냐"는 냉소가 나왔다.
법원이 봉합한 동거는 결국 수개월 만에 파탄 났다. 하이브는 2024년 8월 27일 이사회에서 민 대표를 CEO 직위에서 해임하고 대신 프로듀서 역할만 제안하는 회유책을 시도했다. 하지만 민 대표는 이를 "독소 조항투성이의 허울뿐인 제안"이라며 거부했다. 결국 민 대표는 2024년 11월 20일 자로 어도어 사내 이사직을 사임하며 회사를 떠났다. 그녀는 사임 입장문을 통해 "하이브와 체결한 주주간계약을 해지하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 향후 소송전을 예고했다.
민희진의 퇴사는 곧바로 뉴진스 멤버들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멤버 5인은 2024년 11월 13일 어도어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민희진 대표가 있던 이전 어도어로 돌려놓지 않으면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고 공식 요구했다. 주요 요구 사항에는 민희진 대표의 복귀와 뉴진스 홀대 정황에 대한 해명 등이 포함되었다.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2024년 11월 29일부로 뉴진스 측은 전속계약 해지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봉합'은 일시적인 국면에 불과했으며,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한 것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
2024년의 극적인 사건들 이후,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25년 현재, 양측은 여러 건의 민형사 소송으로 얽혀 있으며, 뉴진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장 큰 변수였던 업무상 배임 혐의 수사는 1년 3개월 만인 2025년 7월 15일, 경찰이 '혐의없음' 결론을 내리고 불송치 처분하며 일단락되었다. 이는 법원의 "배임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형사적으로도 뒷받침하는 결과다. 다만 하이브는 즉각 검찰에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검찰이 보완 수사를 지시하는 등 절차가 이어지고 있어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주주간계약(SHA)을 둘러싼 민사 소송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민희진 전 대표는 퇴사 후 주주간계약 해지 및 지분 정산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하이브 또한 약 260억 원대의 손해배상(혹은 주식매매대금) 청구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2025년 9월 열린 변론에서 하이브 측은 민 전 대표가 "풋옵션 배수를 30배로 올리고, 뉴진스 관련 전속계약 해지권 등 과도한 권한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등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뉴진스의 활동 중단이다. 2024년 말 계약 해지 선언 이후, 어도어와 뉴진스 멤버들 간 전속계약 유효성 여부를 둘러싼 소송이 진행 중이다. 뉴진스는 2025년 들어 사실상 공식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이번 사태는 K-팝 멀티 레이블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고, 창작 자율성과 통제 사이의 딜레마가 폭발했다. 또한, 레이블 간의 이해 상충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시스템이 없었다. K-팝 산업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기업 거버넌스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하는 구조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각주 및 참고문헌]
[1] 대한민국 상법 제385조(해임).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2] 주주간계약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이나, 법원의 가처분 결정문 및 다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함.
[3]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5. 30.자 2024카합20800 결정(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