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코드: 위기의 K팝 3

제1부: 신드롬의 탄생 - K-팝의 새로운 문법

by 도라지

제1장: K-팝의 안티테제, '이지 리스닝'의 반란


2022년 7월 22일 0시. K-팝 산업의 복잡다단한 시계가 잠시 멈추고, 완전히 다른 리듬으로 재조정되는 순간이었다. 수개월에 걸친 티저 공개, 멤버 소개, 장황한 세계관 설명 등 K-팝의 성공 공식처럼 여겨지던 모든 사전 프로모션 과정이 생략됐다. 그리고 'Attention'이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 한 편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그룹의 이름은 뉴진스(NewJeans). 이런 방식의 등장은 그 자체로 지난 10년간 K-팝을 지배해 온 관행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충격은 그들이 선보인 콘텐츠에서 비롯됐다. 스페인의 거리를 자유롭게 누비는 다섯 소녀의 모습 뒤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당시 K-팝의 주류와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귀를 압도하는 강렬한 비트나 폭발적인 고음 대신,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드는 세련된 리듬과 귓가에 맴도는 편안한 멜로디가 있었다.


당시 K-팝 시장은 '과잉'의 미학이 지배하고 있었다. 더 강렬하게, 더 복잡하게, 더 압도적으로. 이런 흐름 속에서 뉴진스는 마치 중력을 거스르듯 했다. 모든 힘을 빼고 자연스러움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것은 K-팝의 주류 문법에 대한 도발적인 안티테제였다. 복잡한 서사와 폭발적인 사운드에 지쳐있던 대중에게 뉴진스의 등장은 신선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이것은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었다. K-팝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이지 리스닝'의 반란이었다.


이 장에서는 뉴진스가 등장하기 직전 K-팝 산업의 지형도를 분석하고, 그들이 어떻게 기존의 문법을 해체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는지 음악적, 전략적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해부할 것이다.


과잉의 시대

뉴진스가 등장하기 전의 K-팝, 특히 4세대 아이돌 시장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20년대 초반, K-팝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경쟁과 매너리즘에 시달리며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4세대 K-팝을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는 '세계관(Lore)'이다. 이는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을 관통하는 가상의 서사나 설정을 의미한다. 세계관 전략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K-팝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있었다. 기획사들은 아티스트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하여 웹툰, 게임, 메타버스 등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고자 했고, 세계관은 그 핵심 원천이었다. [1]


그 정점에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가 있었다. 현실 멤버와 가상 아바타 'ae(아이)'가 공존하고, 빌런 '블랙맘바(Black Mamba)'에 맞서 싸우며 '광야(Kwangya)'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공상과학 영화를 방불케 했다. 이는 팬덤의 몰입도를 높이고 충성도를 강화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하지만 세계관에 대한 집착에 대한 부작용도 있었다. 첫째, 진입 장벽의 상승이다. 복잡하고 방대한 서사는 새로운 팬들의 유입을 막는 거대한 장벽이 됐다. 음악을 즐기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학습해야 하는 상황은 일반 대중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는 K-팝이 점점 더 코어 팬덤 내부로 수렴하며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현상을 가속했다.


둘째, 창의성의 제약과 피로감의 누적이다. 아티스트와 창작자는 세계관이라는 틀 안에 갇혔다. 모든 콘텐츠가 세계관에 부합해야 했고, 이는 종종 음악적 완성도보다 서사적 연결성을 우선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은 "세계관은 K-팝의 산업적 야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콘텐츠 과잉 시대의 피로감을 상징하는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했다. [2] 대중은 해석이 필요 없는 직관적인 콘텐츠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과잉의 문법은 음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4세대 K-팝의 사운드는 '맥시멀리즘(Maximalism)'으로 요약될 수 있다. 더 많은 사운드 소스를 사용하고, 더 복잡한 구성을 추구하며, 더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려는 경향성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이른바 '노이즈 뮤직(Noise Music)' 혹은 '마라맛' 장르의 유행이다. 강렬한 비트와 EDM 요소를 극대화하여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다른 하나는 '믹스 팝(Mix Pop)'의 등장이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엔믹스(NMIXX)는 이를 장르적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한 곡 안에 여러 장르를 혼합하고, 곡의 구조를 예측 불가능하게 비트는 방식은 실험적이었다. 이런 맥시멀리즘 사운드의 유행은 필연적으로 보컬의 과잉으로 이어졌다. 특히 걸그룹 시장에서는 고음 경쟁이 치열해졌다. 곡의 클라이맥스에 폭발적인 고음을 배치하여 보컬 실력을 과시하는 것이 성공의 필수 요소처럼 여겨졌다. 청자에게는 일부 청각적 피로감을 유발하기도 했다.


K-팝의 가장 큰 경쟁력인 퍼포먼스 역시 과잉의 상태에 이르렀다. 4세대에 접어들면서 퍼포먼스의 강도는 점점 더 높아졌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칼군무는 기본값이 됐다. 안무는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이는 K-팝을 '듣는 음악'에서 완벽한 '보는 음악'으로 변모시켰다.


콘셉트 측면에서는 '걸 크러시(Girl Crush)'의 포화 상태가 두드러졌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상을 표방하는 이 콘셉트는 초기에는 신선했다 하지만 수많은 그룹이 비슷한 스타일을 반복하면서 점차 획일화됐다. 강렬하고 전투적인 이미지, 완벽하게 통제된 무대는 더 이상 대중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2022년 상반기 K-팝 시장은 화려함의 정점에 있었지만, 동시에 그 화려함이 만들어내는 피로감과 공허함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대중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강렬한 자극에 지쳐가고 있었다. 바로 그 빈틈을, 뉴진스는 파고들었다.


'이지 리스닝'의 반란

뉴진스가 제시한 '이지 리스닝'은 절대 단순하거나 가벼운 음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잉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얻어낸 '편안함'이다. 고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세련됨'이다. 그들의 음악적 혁신은 전방위에 걸쳐 이루어졌다.


뉴진스 음악의 핵심 전략은 '뺄셈의 미학'이다. 당시 K-팝의 주류였던 맥시멀리즘 사운드와 정반대의 접근 방식이었다.


뉴진스는 불필요한 악기와 효과음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꼭 필요한 소스만을 사용하여 여백의 미를 살렸다. 이는 청자에게 숨 쉴 틈을 주었다. 음악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주목할 점은 음압(Loudness) 경쟁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뉴진스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낮은 음압 수준을 유지하며, 장시간 들어도 피로감을 주지 않는다.


이런 미니멀리즘 사운드를 구현하는 데는 프로듀서 250(이오공)과 FRNK(프랭크, 박진수)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자이기도 한 250은 뉴진스 사운드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했다.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불필요한 소리를 최대한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고 밝힌 바 있다. [3] 이는 '채움'보다는 '비움'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이었다.


뉴진스는 전통적인 K-팝의 기승전결 구조(Verse-Chorus-Bridge-Climax)에서 벗어났다. 핵심적인 루프(Loop)와 멜로디 라인을 반복하고 변주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곡의 흐름이 급격하게 변화하기보다 일정한 톤앤매너를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특히 'Hype Boy'는 명확한 후렴구 없이 다양한 멜로디 라인이 반복되면서 중독성을 만들어낸다. 이는 기존 K-팝의 문법을 파괴하는 시도였다. 또한 뉴진스의 곡들은 대부분 2~3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다. 이는 음악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반복 재생을 유도하는 효과를 낳았다.


뉴진스 음악의 신선함은 장르 선택과 재해석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K-팝 시장에서는 생소했던 장르들을 도입하면서도,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를 결합해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뉴진스 음악의 뿌리는 90년대 R&B에 깊이 박혀있다. 데뷔곡 'Attention'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R&B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는 Y2K 감성과 맞물려 10대에게는 힙한 새로움을, 3040세대에게는 아련한 그리움을 선사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발휘했다.


뉴진스는 R&B를 기반으로 하되, 하우스 기반의 댄스 장르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저지 클럽(Jersey Club): 'Hype Boy'와 'Super Shy'는 저지 클럽 리듬을 기반으로 한다. 특유의 킥 드럼 패턴(‘쿵-쿵-쿵-쿵쿵’)은 몽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특히 'Cookie'는 브리지 구간에서 저지 클럽 패턴을 활용했다.

UK 개러지(UK Garage) 및 하우스: 'Attention'과 'Hurt'는 미니멀한 2000년대 R&B를 기반으로 하되, 하우스/UK 개러지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청량하면서도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볼티모어 클럽(Baltimore Club): 'Ditto'는 볼티모어 클럽 문법을 도입하여 빠르고 거친 비트 위에 아련하고 몽환적인 멜로디 라인을 얹어 독특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음악웹진 IZM의 평론가 한성현은 'Ditto'에 대해 "장르적 실험과 대중적 성공을 동시에 이뤄낸 사례"라고 평가했다. [4]


이런 장르 선택은 매우 전략적이었다. 이 장르들은 춤추기 좋은 리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도하게 강렬하지 않아, 뉴진스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잘 맞아떨어졌다. 글로벌 팝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어 해외 팬들에게도 쉽게 어필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움과 공감
뉴진스는 과도한 기교와 감정 표현을 철저하게 절제한다. 폭발적인 고음이나 샤우팅 대신, 중저음역대의 편안한 음역에서 담백하게 노래한다. 이는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주며, 청자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힌다. 민희진 대표는 멤버들이 가진 본연의 목소리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K-팝의 정형화된 보컬 트레이닝 방식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5]


뉴진스는 개별 멤버의 역량보다는 여러 멤버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하모니에 집중한다. 이는 곡 전체에 깊이를 더해주며, 뉴진스만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뉴진스의 가사는 거대한 세계관을 설명하거나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일상적이고 감각적인 언어에 집중한다. 10대 소녀들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자연스러운 표현("내가 어디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지" - 'Ditto')은 친근함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는 듣는 이가 가사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물론 뉴진스의 행보가 항상 긍정적인 평가만 받은 것은 아니다. 데뷔곡 중 하나인 'Cookie'는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Cookie'라는 단어가 영어권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의미하는 속어로 사용된다는 점, 그리고 미성년자인 멤버들이 부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어도어 측은 2022년 8월 27일 공식 입장을 통해 "쿠키를 굽는다는 의미(CD를 굽다의 은유)로 사용했으며,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라고 해명했다. [6]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프로듀싱 과정에서의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K-팝 그룹에 언어·문화적 감수성은 필수다. 특히 미성년 퍼포머 보호 원칙은 기획사의 중요한 책임이다. 이는 뉴진스 신드롬 이면의 그림자이자, K-팝 제작 전반에 남겨진 규범적 쟁점이기도 하다.


[1]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글로벌 IP로의 도약: 국내외 콘텐츠 확장 성공 사례 분석』 (심층보고, 2024). (https://welcon.kocca.kr/ko/depth-report/11) (K-팝 산업의 IP 확장 전략과 세계관의 역할에 대한 분석 참조).

[2] 차우진, "세계관, K팝의 야망과 피로감 사이", 『시사IN』, 2022년 5월 12일자 기사.

[3] 250(이오공) 인터뷰, "Be(Attitude): 250과의 인터뷰", 『W Korea』, 2023년 3월호. (인터뷰 내용 요약 및 재구성).

[4] 한성현, 「Ditto – 뉴진스(NewJeans)」, 『IZM』, 2022년 12월. (https://www.izm.co.kr/posts?id=31650)

[5] 민희진, "Be(Attitude): 민희진과의 인터뷰", 『W Korea』, 2022년 8월호. (인터뷰 내용 요약 및 재구성).

[6] 어도어(ADOR). (2022년 8월 27일). "'Cookie' 가사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문". (NME 등 주요 외신 보도로 재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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