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바다에 띄운 나침반, '경영의 원칙'이 탄생하다

[13화 경영의 선각자 ③] 침몰하는 배를 구한 선장, 앙리 패욜

by 허문구

우리는 앞선 여정에서 공장의 작업대와 부엌을 오가며 경영의 디테일을 설계한 두 명의 선각자를 만났습니다. 프레더릭 테일러가 초시계로 '작업의 표준'을 세웠다면, 릴리언 길브레스는 그 위에 '인간의 마음'이라는 온기를 덮어주었죠.


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주로 '현장의 노동자'를 향해 있었습니다. 기업이라는 거대한 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노를 젓는 선원들뿐만 아니라 조타실에서 망원경을 들고 있는 '선장'의 역할도 누군가는 규정해야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먼지 날리는 공장 바닥을 떠나 기업의 꼭대기, '경영자의 집무실'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파산 직전의 거대 기업을 기적처럼 살려내며, 경영을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기술(skill)'으로 정립한 프랑스의 어느 명민한 엔지니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앙리 패욜(Henri Fayol)입니다.


1. 독이 든 성배를 마신 엔지니어


다니엘 맥컬럼이 미국 철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시기, 대서양 건너 프랑스에서는 한 명의 엔지니어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1888년, 패욜은 프랑스의 거대 광산·철강 기업인 '코망트리-푸르샹보(Commentry-Fourchambault)'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안받습니다. 겉보기엔 영광스러운 승진이었지만, 실상은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파산이라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주력 광산은 고갈되어 석탄이 나오지 않았고, 공장 설비는 낡아빠졌으며, 오랫동안 배당금을 받지 못한 주주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전임 경영자들은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도망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보통의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요? 아마도 "최신 채굴 기계를 도입하자"거나 "빨리 새로운 광맥을 찾아라"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패욜의 진단은 달랐습니다. 그는 냉정하게 회사를 살핀 뒤 이사회 앞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 회사가 망해가는 이유는 광산에 석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 거대한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가 침몰하는 이유를 엔진 고장이 아니라, 선장과 선원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통제 불능' 상태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전권을 준다면 이 난파선을 반드시 항구에 안착시키겠노라 약속합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코망트리-푸르샹보(Commentry-Fourchambault)의 광산 전경


2. "경영은 타고난 재능이 아닙니다"


패욜이 파산 직전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꺼내 든 무기는 거창한 신기술도, 막대한 자본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꺼내 든 무기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힘, 곧 ‘관리의 원칙’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많은 사람들은 ‘경영’을 몇몇 특별한 사람만이 가진 감각이나 재능의 문제로 여겼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장사 수완이 있어.” “타고난 카리스마는 배워서 되는 게 아니야.” 좋은 경영자는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과 배짱을 지닌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패욜은 이 오래된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아닙니다. 경영은 기술(Skill)입니다. 엔지니어가 기계 다루는 법을 배우듯, 경영 역시 그 원칙을 배우고 훈련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술입니다."


이 생각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급진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회사를 움직이는 힘이 더 이상 몇몇 ‘비범한 인물’의 개인기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영은 비밀스러운 재능이 아니라, 분석하고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는 하나의 직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패욜은 자신의 오랜 현장 경험을 정리해, 경영자가 수행해야 할 핵심 기능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훗날 경영학의 고전이 된 ‘관리의 5요소’입니다.


계획(Plan): 미래를 내다보고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한다.


조직(Organize): 사람과 자원, 역할을 목적에 맞게 배치한다.


지휘(Command): 구성원이 할 일을 지시하고 이끈다.


조정(Coordinate): 여러 부서와 활동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한다.


통제(Control):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하고, 어긋나면 바로잡는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너무 익숙해서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패욜의 위대함입니다. 그는 막연하고 뒤섞여 있던 ‘회사를 운영하는 일’을 몇 개의 분명한 기능으로 나누어, 누구나 배우고 점검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너져 가던 회사를 살리는 일조차, 영웅 한 사람의 직감이 아니라 계획하고, 조직하고, 조정하고, 통제하는 반복 가능한 과정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패욜은 바로 그 문을 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잘 경영하는 법’을 처음으로 손에 잡히는 형태로 보여준 개척자였습니다.


3. 혼돈을 잠재운 '14가지 처방전'


패욜은 이론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5요소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14가지 관리 원칙'을 만들어 임직원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중 지금까지도 현대 기업 조직의 근간이 되는 핵심 원칙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명령 통일의 원칙 (Unity of Command): "한 명의 선원에게 두 명의 선장이 각기 다른 명령을 내리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패욜은 모든 직원은 오직 한 명의 상사에게만 보고하고 지시받아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는 명령의 혼선을 막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가장 강력한 통제 도구였습니다.


분업의 원칙 (Division of Work):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복잡한 업무를 잘게 쪼개어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권한과 책임의 원칙 (Authority and Responsibility): "명령할 권리를 가졌다면 그 결과도 책임져야 합니다." 패욜은 지시할 권한만 누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 관행을 엄격히 경계했습니다. 권한과 책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휘 계통의 원칙 (Scalar Chain): "조직의 최상층부터 최하단까지 명확하게 이어지는 권한의 사다리가 있어야 합니다." 패욜은 누구에게 지시를 받고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는지 지휘 계통을 빈틈없이 연결하여, 수만 명이 모인 거대 조직도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주도성의 원칙 (Initiative): "구성원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패욜은 엄격한 통제와 질서를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놀랍게도 기계적인 복종만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가장 큰 열정과 혁신이 나온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권한 위임(Empowerment)'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패욜의 처방은 적중했습니다. 오합지졸 같았던 조직은 ‘원칙’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불필요한 낭비는 사라졌습니다. 파산 직전이었던 코망트리-푸르샹보는 기적적으로 회생했고, 훗날 프랑스에서 가장 탄탄하고 성공적인 기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관리 원칙'이 기업을 구원한 것입니다.


패욜_초상화.jpg 앙리 패욜은 위대한 리더십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획하고 조직하며 통제하는 '체계적인 기술'임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4. 패욜이 세운 견고한 탑의 그림자: 질서가 경직성으로 변할 때


패욜 덕분에 인류는 비로소 수만 명이 모인 거대 조직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조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의 원칙들은 혼란을 줄이고 책임의 선을 분명히 했으며, 거대한 조직이 제멋대로 운영되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단단한 뼈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패욜이 그토록 강조했던 질서, 위계, 명령 통일은 당시 기업을 구한 특효약이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과 절차로 굳어질 때 우리가 경계하는 ‘조직의 관료화’를 초래합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절차부터 밟으세요.” “그건 제 권한 밖의 일입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야 합니다.”


이런 답답함은 혼선을 막기 위한 질서가 어느 순간 스스로 목적이 되어버렸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부작용입니다.


명령 통일은 책임을 분명히 하려는 장치였지만, 지나치면 현장을 느리게 만듭니다. 하이어라키는 조정을 위한 사다리였지만, 과도해지면 보고를 위한 보고와 소통의 단절을 낳습니다. 부서 구분은 전문성을 높이지만, 경직되면 부서 간 두꺼운 벽, 곧 '사일로(silo)'를 만듭니다.


그 결과 조직은 안정 대신 경직을, 질서 대신 관성을 떠안게 됩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지시를 기다리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절차를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스타트업과 혁신 기업들이 애자일(Agile), 수평적 소통, 빠른 의사결정을 외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이 깨뜨리려 하는 것은 질서 그 자체가 아니라, 한때 거대한 조직을 살려냈지만 이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직된 원칙’입니다.


경영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혼란의 시대에, 패욜은 '관리란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밝혀낸 선구자입니다. 그는 위계를 중시했지만, 동시에 구성원의 주도성(initiative)과 단결심(esprit de corps) 도 강조했습니다. 또 긴급한 상황에서는 조직의 계통을 가로질러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예외, 이른바 'gang plank(배와 부두를 연결하는 임시 널빤지)'도 인정했습니다.


그는 단단한 원칙을 세우면서도, 상황에 맞게 굽힐 줄 아는 유연함과 구성원의 주도성이야말로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진짜 힘임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패욜_gang plank.png 패욜이 고안한 '갱플랭크(연락교)' 개념도. 그는 지휘계통을 중시했지만, 필요할때 사일로(부서 간의 벽)를 허물고 수평적으로 직접 소통할 수 있어야는 한다고 보았다.






에필로그: 질서는 자유를 위한 것인가, 구속을 위한 것인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패욜 관리 원칙은 다소 낡고 경직된 관료주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영에 대해 정립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은 시대를 앞선 통찰이었습니다. 그가 세운 ‘경영 관리의 원칙’은 그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패욜이 직면한 당시의 상황 속에서 그의 원칙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는 혼돈 속에서 침몰해 가는 회사를 눈앞에 두고, 그것을 당장 살려내기 위해 ‘강한 질서와 통제’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만큼은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해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14가지 원칙을 제시하며 남겼던 당부의 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경영에 절대적인 규칙은 없다. 모든 것은 정도와 균형의 문제다. (...) 따라서 원칙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되고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There is nothing rigid or absolute in management affairs, it is all a question of proportion... Therefore principles are flexible and capable of adaptation to every need.)


패욜이 진정으로 꿈꾸었던 조직은 영혼 없이 매뉴얼과 명령만 따르는 기계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구성원이 명확한 악보(규칙)를 바탕으로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면서도,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경영의 원리는 영원불변의 정답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눈금을 조절해야 하는 ‘온도계’와 같습니다. 파산의 위기처럼 혼돈의 순간에는 패욜의 강력한 통제가 조직을 구원하지만, 창의성과 혁신이 필요한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그 통제를 과감하게 풀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질서는 결국 조직을 옭아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기 위한 든든한 발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맥컬럼의 '지도(구조)', '테일러의 초시계(효율)', 길브레스의 '마음(인간)', 그리고 패욜의 '원칙(관리)'까지 경영을 이루는 퍼즐 조각들을 모두 손에 넣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조각들을 하나로 결합해 거대 기업이라는 정교한 시스템을 완성한 인물,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거인 헨리 포드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승부사였습니다.



※ 집필 노트: 이 글은 앙리 패욜의 삶과 사상을 경영학적 통찰로 풀어내기 위해, 저자가 여러 인공지능 도구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역사적 자료를 검토하고 교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작성했습니다. 최종적인 해석과 판단은 저자에게 있으며, AI는 이를 돕는 지적 협업의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함께 읽어볼 만한 자료들]

앙리 패욜(Henry Fayol), 『산업 및 일반경영관리론 (Administration Industrielle et Générale)』 (1917 / 번역본 지문사, 1990): 앙리 패욜이 자신의 평생에 걸친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집대성한 고전입니다. 14가지 관리 원칙과 함께, 계획, 조직, 지휘, 조정, 통제라는 관리 과정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경영을 하나의 보편적 원리로 설명하려 했던 초기 경영학의 기념비적 저작입니다.


게리 해멀(Gary Hamel) 외, 『경영의 미래 (The Future of Management)』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2007 / 세종, 2019): 전통적인 위계와 통제 중심의 경영 방식이 오늘날의 혁신 환경에서 왜 한계에 부딪히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패욜 이후 정착된 고전적 관리 체계의 한계를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며, ‘경영 방식’의 근본적인 혁신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14화. [경영의 선각자들 ⑤] 포드라는 거인을 무너뜨린 위대한 설계자: 알프레드 슬론의 등장 (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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