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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ul 여진 May 03. 2024

태어나는 날과 죽는 날에 의미를 두지 마라.

   이틀 전 미리 많은 일을 몰아서 하고 생일인 어제 종일 쉬기로 했다. 쉬는 날엔 종종 범어사를 오른다. 45분 정도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내가 도착해야 할 지점에서 시간을 보니 1시간이 걸렸다.

적당히 1시간 걸어 올라가면 땀도 흘리고, 내가 매번 가는 곳은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히 기도 올리고 산내음 맡으며 마음을 정화하기에 최상의 공간이다. 범어사 사찰 위로 좀 더 올라가야 하고 샛길로 한 번 더 들어가야 해서 범어사를 몇 번 가본 사람도 그곳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생일을 혼자 보내는 것은 익숙하다. 누구나 대부분 생일에도 일을 하니 그렇구나 하겠지만 난 가족들에게 생일 축하한다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미역국도 먹어 본 적 없거니와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게만 보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어제는 내 생에 가장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은 날이었으니.

그 이전에도 몇 번이고 연인이나 친구들이 챙겨준 적도 있어서 남들에 비해 생일을 매년 챙기진 못 했어도 기억에 남는 생일 이벤트는 두 번 있었다.

그럼에도 어제 홀로 보내게 된 탓은 마흔이 되고선 빈털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더 깊이 풀어보고 싶지만 최소 5년을 묵혔다가 책으로 쓸 내용이라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누가 그러더라 말하다 마는 게 제일 미치게 만드는 묘약이라고)


    가장 많은 축하를 받은 날이고, 생일이 다가오기도 전에 나를 위해 손수 만든 반찬과 과일 상자를 보내준 수강생과, 작년에 이어 올해 생일에도 스벅 쿠폰을 보내주는 수강생과, 차를 즐겨 마시는 날 위해 센스 있게 차 선물 세트를 보내주는 사촌 언니, 자원 봉사 하면서 알게 된 봉사단 리더가 보내주신 올리브영 기프티콘, 그리고 수많은 구독자분들의 응원과 축하 메시지. 누가 봐도 행복한 생일이다.

그런데 정작 매달 나에게 용돈을 받고 있는 엄마에겐 생일 축하 메시지조차 없고, 조카 셋에게 매번 용돈과 선물을 보내줘도 자기 자식들 챙겨주는 동생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는 여전히 매정한 오빠.

'정작 가족에겐 축하받지 못하는 생일'이 매년 가슴을 후벼 파서 가족복 없는 사람인 걸 매년 인증이라도 하듯 마음에 비수가 꽂힌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처 입은 내 마음 달래려 범어사를 올랐는데, 사람들이 모여 모닥불을 피우는 광경을 보게 됐다. 자세히 보니 죽은 영혼을 기리는 중인 듯 보였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태우는 중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스님들과 경건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조용하게 그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순간 신께서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태어나는 날과 죽는 날에 의미를 두지 마라. 태어났다는 것은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존재함은 살아감을 의미하는 것이니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의미를 둬라."


   그 광경을 보게 된 것이 어쩌면 신께서 내게 태어나는 날은 아무 의미 없음을 깨우쳐 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40부터 진짜 인생이 펼쳐진다는 말은 참인 듯하다.

나는 비로소 오늘을 어떤 마음으로 존재할 것이며, 내일을 어떤 사람으로 존재해서, 사는 동안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자 한다. 오늘 아침 기도 때 읽게 된 경전의 내용에서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에서 와서 아무것도 갖지 않고 無로 다시 돌아가니 없음에 노여워할 필요 없다 하였다. 어제 미치도록 성공욕이 불타오른 것도 아마 빈곤한 마음 때문 일터. 공허한 그 마음에 쓸데없는 욕구를 채우지 않고 진짜 필요한 것들만 채우려 한다.


   성공을 위해 악착 같이 살 것이 아니라, 진정한 채움을 찾아 나서는 삶을 위해,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한 노력을 악착 같이 해보기 위한 오늘의 다짐이 작심 3일이 될지언정, 또 작심 3일 마음먹으며 계속 이어가 보고 싶다. 마음이 빈곤하지 않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글을 쓰고 앞으로도 글을 계속  여진을  달래며.

-  2024.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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