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동네 윤사장 -

by 몽삼

윤사장 집의 하루는 신문배달부와 우유배달원의 소리에 시작된다. 아직 이른 새벽이지만 윤사장은 반려묘 봉이의 아침을 챙겨주기 위해 일찍 눈을 뜬다. 어김없이 봉이의 아침을 챙긴 후 잠옷바람에 슬리퍼 한 짝을 신고 현관으로 나가 우유와 신문을 챙긴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신문을 읽는 지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저 아날로그의 감성과 세상살이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윤사장은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지만 3년 전부터 회사를 관두고 이 동네로 내려와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윤사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살짝 특별한데 이 동네에서 윤사장만큼 다재다능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윤사장은 그저 증권회사의 고객센터 상담사였지만 이 작은 동네에서는 다 허물어져가는 자전거도 고치고 불이 꺼질락 말락 한 가로등 불도 직접 가는 만능 해결사였다. 그래서인지 이 동네 사람들은 윤씨를 모두 윤사장이라고 불렀다.


“윤사장 좀 나와봐.”


해가 벌써 뜨고 모두의 아침이 분주할 적 뒷골목에서 백반집 운영하는 정씨가 윤사장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오늘은 또 뭔 일로 아침부터 나를 불러? 이제 아침도 같이 먹을라고?“


윤사장은 현관 문을 열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씨는 문이 열리자 익숙한 듯이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곤 주방으로 걸어나가 주섬주섬 반찬통을 봉다리에서 꺼내 비어있는 냉장고에 넣었다.


“맨날 빵만 먹지 말고 반찬도 챙겨 먹어. 내가 이것저것 만들었어.“


정씨는 백반집 사장님답게 계란말이부터 각종 김치들과 멸치볶음, 장조림까지 가득 싸왔고 윤사장에게 잔소리하듯이 말했다.


“얼른 아침 먹어. 난 이제 가게 들어가볼게.“


정씨는 부랴부랴 윤사장에게 손을 흔들며 나갔고 윤사장은 반찬을 그릇에 옮겨 담으며 밥을 퍼서 아침 먹을 준비를 했다.


“잘먹겠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정씨가 가져다주는 반찬들로 먹는 아침은 그 어떤 때보다 맛있는 순간이었다. 숟가락질을 몇 번 하니 얼마 안 되어 그릇은 바닥을 보였고 금방 밥 한 끼를 해치운 윤사장은 만족한 표정으로 밥 먹은 자리를 정리했다. 깨끗하게설거지까지 마친 후 냉장고에 어제 만든 초코머핀을 하나 꺼내 다시 식탁에 앉았다.

집 안은 고요했지만 바깥으로 바람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모두가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 순간 집 안의 고요함을 느끼는 것은 윤사장만의 힐링 시간이었다.


윤사장은 그릇에 놓인 초코머핀를 한 입 베어먹으며 만족한 듯 먹었다. 원래 윤사장이 어릴 적부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디저트였다. 빵집에서 풍기는 갓 구운 빵 냄새가 좋아서 그 옆에 있는 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그저 빵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제과제빵학원을 다녔다. 그릇 위에 예쁘게 담긴 디저트는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았고 나이가 들어서까지 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백 가지 디저트 중에 윤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는 따로 있었다. 갓 구워진 식빵, 초코크림이 잔뜩 들어간 케이크, 딸기가 가지런히 올려진 딸기생크림케이크를 윤사장은 가장 좋아했다.

디저트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할 무렵 어느덧 시곗바늘은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벌써 11시네.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윤사장은 주방에서 나와 서재로 향했다. 이 집에는 방이 2개가 있는데 윤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서재공간이다. 벽 한쪽에는 천장만 한 높이의 책장이 있었고 그 책장 안에는 어릴적부터 모아둔 책들과 다이어리들이 가득 채워져있었다.

윤사장은 책장 앞에 서서 가운데 부분에 꽂혀있는 소설책 하나를 집었다. 책장 안에는 직접 가지고 있는 책도 있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윤사장은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읽는 게 나름의 힐링이었다. 이번에 빌린 책은 추리소설로 윤사장이 꽤 좋아하는 유명 작가의 초판본이었다.


”반납일이 오늘까지니까 지금 딱 도서관에 갔다 와야겠다.“


윤사장은 나름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어 자켓 하나를 걸쳤고 외출용 백팩 안에 책을 집어넣었다.


”봉아 갔다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


막 잠에서 깬 봉이는 기지개를 켜며 현관까지 배웅했고 윤사장은 밖으로 나섰다.


동네 도서관까지는 차로 5분 정도의 가까운 곳이지만 이 마을 걷는 게 좋아서 20분이나 돌아서 걸어간다. 퇴사 전까지는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서인지 걸으면서 풍경과 일상들을 보는 게 소중하다는 것을 몰랐다.


“날씨가 참 맑네”


날씨는 어느덧 겨울이 막 지나고 따뜻한 바람이 다가오는 봄이 찾아왔고 맑고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 윤사장의 발걸음도 상쾌해졌다. 계속 걷다 보니 시간 가는지도 모르게 도서관에 다다랐고 윤사장은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윤사장이 앉아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목소리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 도서관은 원래 시 자체에서 운영했으나 사람이 많이 찾아오지 않아 허물어져 갈 때쯤 한 노부부가 사드려서 작게 운영하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노부부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오랜만이네 윤사장, 책 반납하러 온 거야?”


어르신이 윤사장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아직 12시도 안된 시간이라 그런지 도서관 안은 사람 한 명도 없이 한산했다. 윤사장은 익숙한 듯이 책을 반납하고 책을 고르러 책장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서관의 규모는 작지만 신간 책도 있고 나름 있을 거 다 있는 윤사장의 단골 장소다. 윤사장은 일렬로 쭉 놓인 책장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책장에서 책 하나를 집어서 읽다가 다시 넣고 또 다른 책을 집어서 읽기를 반복했다. 따스한 햇빛도 도서관의 큰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를 반복했다.

오늘 윤사장이 도서관에 온 이유는 디저트 관련 책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책장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책을 읽던 윤사장은 맨 끝 쪽의 요리 서적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고심한듯 책 하나를 꺼내서 펼쳤고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은 디저트 레시피북으로 작가만의 특별한 레시피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책 첫 페이지부터 꼼꼼하게 읽어가는 윤사장은 나도 나만의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윤사장이 퇴사 이후부터 계속 고민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작게나마 카페를 운영해 볼까하는 생각이다. 사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다 봐도 무방하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디저트에 대한 마음과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많은 걸 바라지 않고 그저 누구나 와서 쉬어가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이자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윤사장은 계속해왔다.

책장 앞에 서서 한 시간이 넘도록 윤사장은 레시피북을 읽으며 계속 생각했고 정신을 차려서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벌써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윤사장은 읽고 있던 레시피북을 다시 책장에 넣었고 다시금 책장 사이로 걸어나갔다. 나가기 전 인사를 하기 위해 책 정리를 하고 있던 어르신께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만 가볼게요, 어르신.”


어르신은 미소를 띠며 윤사장을 바라봤다.

“책보러 또 와, 신간 많이 올려다 놓을게.

그리고 그 저번에 만들어준 식빵 잘 먹었어.

내가 이곳저곳 다 먹어봤는데 어딜 가도 그 맛이 안 나더라고.“

어르신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 식빵!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윤사장은 어르신께 준 식빵을 떠올렸다. 밤이 콕콕 박인 밤식빵은 윤사장이 집에서 자주 만드는 메뉴였다. 어릴 적 밤식빵 속 밤만 골라 먹던 기억이 있는데 만드는 방법과 자본이 생긴 지금은 밤 식빵 안에 밤을 잔뜩 넣어서 만들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윤사장은 다시 한번 어르신께 꾸벅 인사하며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윤사장은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로 향했고 혼자 살기에 간단한 식재료만 사고 집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도서관이랑 마트만 들렸을 뿐인데 시간은 벌써 5시가 다 되어갔고 길에는 하교하는 학생들이 지나갔다.

윤사장은 걸어가며 아까 어르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내가 만든 것을 먹고 행복함을 느낀다면 이거보다 보람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나만의 카페가 생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윤사장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해는 어느새 지기 시작했고 하늘은 노을 지듯 노랗게 물들었다. 윤사장은 그 사이 속을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