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비가 휘몰아쳤던 그날.
그의 빛에 압도당했던 그날.
나는 그를 원하게 됐다.
그날 이후, 우린 매일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우리는
생각보다 잘 통했고, 오랫동안 얘기해도 서로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와 달리 웃음이 많았다. 그가 한 번 웃음 지을 때마다 온통 까맣던 내 주변도 환해졌다. 어떠한 어둠도 그의 빛을 꺼뜨리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가 점점 더 좋아졌다. 그저 한 때 인연이 아닌 함께하는 연인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도 나를 원할까. 우울과 고통으로 가득 찬 나를?
생각은 점점 깊어져갔고, 그와 함께하는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환히 미소 지으며 말하는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눈치
챈 걸까. 그는 잠시동안 조용히 있다가 무슨 일이
있냐고 내게 물어왔다.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저 얼굴. 그럼에도 빛이
가득한 저 눈. 그 눈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내 아픔을 털어놓게 만들었다.
말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감정을
토해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아픔에 공감하듯 눈물을 흘렸다.
참 따뜻한 사람. 내 눈물은 말라버린 지 오래지만
그가 대신 울어주고 있다. 나는 홀린듯 손을 들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주곤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그의 빛이 마음을 간지럽히며 흘러들어오고 있다. 처음 느껴보는 간질거림은 고이 간직했던 말을 튀어나오게 했다.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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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보이는 그.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이 그를 더 반짝이게 만들었다. 빛을 피해 이불로
숨었던 과거는 잊고 그의 품에 깊이 파고들었다.
쏟아지는 햇살이 이렇게 따뜻했었나.
내 모든 일상을 그와 함께 했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잠을 잤다. 이제 그가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나를 죽도록 괴롭히던
우울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내 마음엔 그처럼 밝은
빛이 생겨가고 있다. 어느새 무표정보단 웃음 짓는 게
익숙해졌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나 있지. 그가 정말 좋아. 그와 함께 있으면 어두웠던 과거는 생각도 안 나고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거 같아. 그의 눈을 바라볼 때면 숨이 턱 막혀. 숨 쉬는 법을 잊는 거지. 그렇게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가 입을 맞춰줘.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빼면 그는
아이처럼 까르르 웃어. 그 모습만 봐도 웃음이 나오더라. 앞으로도 이런 날들이 가득하겠지.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거야.
그래, 영원해야만 했다.
내 몸 깊이 자리 잡았던 어둠이 다시 나를 잠식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