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별사면사건

by 자유인

고장 난 몇 개의 조명을 교체하기 위해

업체와 예약을 하고 기사님들의 방문을 받았다

교체된 다운라이트의 밝은 빛이

아들의 중학교 시절의 홈런볼들을 환하게 비추자

기사님 한 분이 스타급 야구선수와 관련된

일화들을 들려주셔서 재미나게 들었다

그분들이 떠나고 나서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와

다운라이트의 빛 비추임 속에서

웃고 있는 홈런볼들을 잠시 바라보고 있으니

옛 추억이 생각났다


아들의 중학교 시절에

우리 집에는 <홈런특별사면제도>가 있었다

연습경기든 공식대회든 아들이 홈런을 치면

모든 죄를 사면해 주는 제도였다

내가 여러 번을 깨웠으나 본인이 늦잠을 자고 나서

지각을 하게 되었을 때 아들 녀석이

더 열심히 안 깨웠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학교에서 여러 번 혼이 나고도

복도를 뛰어다니고 책상 위를 날아다녀서

담임선생님에게 내가 호출을 당하는 등등

반복되는 일상의 갈등 상황에서

기독교의 세례처럼 일체 속죄의 의미를 갖게 되는

일종의 <몽땅 면죄부>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를 사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거라

하는 공식멘트와 함께 아이를 안아주고

홈런볼을 쓰다듬으며 신이 난 아들에게

한우라고 속인 호주산 소고기를 양껏 먹이고

(가끔은 진짜 한우였다^^)

남편과 나는 두둥실 즐거운 기분으로

늦은 시간까지 취하도록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어제는 남편이 하루 종일 회의를 하고 나서

회식을 하는 날이어서 당연히 늦을 거라 생각하고

나도 느긋하게 다른 볼일들을 보고

늦은 시간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2차로 다들 호프집에 갔는데

같이 맥주 한잔하고 싶어서 먼저 귀가한다며

출발 신호를 주었다

콩닥콩닥 신이 나서 서둘러 운동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달려와 술장고로 쓰는 김치냉장고를 열어

그가 사들고 온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표정으로 나는 또다시 특사를 선언하며

두둥실 행복한 추억을 추가했다





조기귀가로 인한 특별사면이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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