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내러티브에 빠지고 싶다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2017년 개봉한 일본의 저예산 좀비 영화이다. 원테이크로 이루어진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카메라를 절대 손에서 놓지 않는 카메라맨에게 경외심이 들게 된다.
그리고, 필자는 뮤지엄한미의《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같은 감정을 느꼈다.
한국전쟁, 문화대혁명 시기 변화의 중심에 선 공산주의 중국의 모습, 이란 혁명, 니카라와 혁명, 911테러와 팬데믹 시기의 전 세계 현장.
매그넘 사진가들은 194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과 인물, 사회적 변화, 정치적 갈등, 자연재해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해왔다. 이들의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각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순간을 사진가 고유의 감각과 시선으로 포착하며, 당시의 분위기와 정서를 깊이 있게 전한다.
내러티브가 담긴 포토북을 감각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페이지를 넘긴다. 종이를 만지지 않았는데도, 포토북은 이미 나를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전시는 단순히 사진을 나열하지 않는다. 책장을 넘기듯 공간을 구획하고, 책의 호흡에 맞춰 조도를 조절하며, 사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시간의 순서가 아닌 감각의 흐름으로 따라가게 한다.
포토북이라는 형식은 흩어진 이미지를 한데 묶어내는 장치이자, 그것들에 ‘서사’를 부여하는 틀이다. 매그넘 소속 사진가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언제나 세계의 균열이 있었다. 전쟁, 혁명, 이주, 저항, 죽음과 사랑. 각각의 포토북은 사진가가 자신만의 목소리로 그 균열을 직시하고 서사를 엮어낸 결과다. 이미지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이야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이러한 개인의 시선이다. 그리고 해당 전시의 포토북은 그 시선을 내러티브를 통해 보여주는 예술 형식이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시선을 향유자들이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종이를 넘기는 대신, 나는 발걸음을 옮긴다. 글자가 말하는 대신, 조용한 공간이 말한다. 사진의 배치와 조명이 만들어낸 리듬이 책 속에서라면 쉽게 지나쳤을 감정들을 되살린다. 마치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공백마저도 말이 되는 것처럼, 사진들 사이에 배어 있는 시간의 결을 따라가게 된다.
기억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무언가를 본다는 건 그 장면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고, 그 장면을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를 감각하는 것이다. 포토북은 그 ‘살아낸 이들의 기억’의 집합체다. 수많은 이들이 겪은 장면들을 다시 보게 만들고, 그 장면들 속에 나를 위치시켜 보게 만든다. 이건 단순히 사진을 ‘보는’ 경험이 아니다. 사진을 통해 나의 시선을 확인하고,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나의 윤리를 상기하게 되는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포토북은 사진가 에민 외즈멘의 『Olay』였다. 이 책은 2013년 터키 게지 공원 시위에서부터 2022년 이스탄불 이민자 행진까지의 사건들을 기록하며, 터키 현대사의 불안과 긴장을 포착한다. 그는 단지 사건의 현장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현장에서 숨 쉬는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을 포토북 안에 끌어들인다.
『Olay』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외즈멘의 사진은 사건의 표면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잠겨 있는 공기와 정서를 포착한다. 특히 사진 속 여성과 청년들의 얼굴은 단순한 인물 사진이 아닌, 시대를 통과한 감정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침묵과 분노, 두려움과 희망이 겹쳐진 그 표정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다시 묻게 만든다. 내가 정말 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결국 ‘기억’이 ‘존재’를 증명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포토북은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는 매체다. 한 장면을 기억하는 일, 한 사건을 응시하는 일, 그 안에 나를 위치시키는 일은 결국 내가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외즈멘의 책은 ‘포토북이 어떻게 관람자의 실존을 불러오는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 작업이었다. 포토북은 기억을 보존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관람자의 기억을 ‘다시 쓰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사진가들이 붙잡아낸 장면은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또 다른 기억으로 확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하나의 기록이 어떻게 또 다른 기억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포토북은 한 시대의 진실을 붙잡고자 했던,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에게 그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결국 포토북은 단순히 ‘사진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된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는 이를 공간적으로, 감각적으로 실현해낸다. 페이지를 넘기듯 전시 공간을 이동하는 동안, 나는 어떤 삶이 기록되고, 어떤 사건이 기억되며, 또 어떤 감정이 사진 속에 침잠했는지를 경험했다.
매그넘포토스의 포토북에는 그 안에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의 호흡과 맥박을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 내러티브 속에는 개인의 고통과 시대의 긴장이 겹쳐져 있고, 각자의 렌즈는 그 겹침의 순간을 집요하게 붙들었다. 포토북은 우리에게 묻는다.
“기록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떤 장면을 기억해야 하는가?”
나는 이 전시에서, 어떤 역사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포토북은 기억의 표면에 흔적을 새기는 도구이자, 우리가 다시 그 장면을 마주할 용기를 내게 만드는 매개다. 뮤지엄한미라는 공간은 그런 질문을 품고 천천히 걸을 수 있게 허락해줬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하나의 책이 되고, 하나의 책이 하나의 시간과 삶이 될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은 포토북의 감각, 공간의 감각을 통해 뮤지엄한미라는 공간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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