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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l 21.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을지로 동경우동]

나른한 오후, 가벼운 낮술과 끼니로 우동 한 그릇과 정종 한잔

요즘 너무나 '핫'한 을지로에는 숨어 있는 노포들이 참 많다. 을지로라는 지역이 아주 오래된 전문 상가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이곳의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하고 오래된 음식점들이 함께 성장해 온 것.

오늘 이야기를 할 곳은

을지로 3가 전철역 8번 출구(사실은 며칠 전 오랜만에 찾았다)에 자리한 '동경우동'


뜬금없지만 전남 광주 송정리의 곱창집은 송정리에 있지만 '서울 곱창'이라는 이름을 쓰고, 서울의 우동집은 을지로 3가 공구상 한가운데 있지만 '동경우동'이라 이름을 쓴다. 우리가 마음속에 두고 있는 이상적인 장소를 가게 이름으로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잠시 하게 된다.

 

1986년 개업한 이곳은 을지로 3가를 찾는 많은 서울 시민들과 이 근처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충실히 한 곳이다. 아주 오랫동안 시내 중심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정말 믿을 수 없는 가격을 아직까지 책정하고 운영하는 가게.


동경우동의 시그니처 메뉴 오뎅우동


내가 동경우동을 찾는 이유는 단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밥때'가 다가오는 시간 즈음, 을지로 3가를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난 무조건 이 집으로 향한다. 맛있는 우동이나 백반 메뉴로 끼니를 때우고 행복감에 젖어 다음 일정을 기분좋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심적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두 번째는 밥을 먹기도 그렇고 끼니를 거르자니 심술궂은 허기에 고생할 것 같은 그런 애매한 시간, 간단한 식사와 정종 한 잔으로 부담 없이 공복과 이른 낮술의 욕심을 동시에 채울 수 있기 때문.    


매장으로 들어서면 좁은 공간에 바 형태의 좌석과 테이블 좌석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서둘러 빈 곳을 찾아 앉아 메뉴를 정하고 주문만 하면 되는 시스템. 이 집의 메뉴는 모두 다 섭렵했지만 어느 것 하나 섭섭하다 느끼는 음식은 없었다.


특히 우동은 전형적인 한국식 우동으로 멸치와 가스오 부시로 우려내고 간장으로 간과 색을 맞춘 다음, 무를 함께 삶아 무의 단맛이 국물 가득 스며들어 있다. 웬만한 일본식 우동집의 국물보다 훨씬 진하고 맛있는 국물을 가지고 있어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면도 기계면을 쓰지만 적절하게 익혀져 탄력도 나쁘지 않다.


밥 종류도 시큼 달콤한 유부초밥부터 카레라이스,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는 오뎅백반과 우동카레콤비까지 그날의 허기짐의 정도에 따라 면이나 밥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다. 특히 오뎅백반을 주문하면 명란도 한 점 내주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게 또 별미이기도 하다.  


1) 한 동안 찾지 않았더니, 가격이 조금 올랐다. 그럼에도 이 가격은 혜자스러움의 극치가 아닌가?     2) 좁지만 잘 정돈된 주방.  

이번에 찾은 시간은 점심 끼니를 거르고 저녁밥 시간에 조금 못 미친 오후 4시경.

간단하게 우동과 정종으로 세 시간 후의 술자리 약속을 준비하며 끼니를 때운다. 정종(백화수복) 가격도 예전에 비해 5백 원이 올랐지만, 예전 세종문화회관(서울시향)에 근무하던 당시 자주 찾던 우동집의 정종 가격이 5~6천 원 정도이었던 것에 비하면 고마운 가격. 그것도 거의 10년 전이니.


을지로 지역에 개발의 열풍이 점점 거세어지며 터줏대감과 같던 안성집의 폐업, 을지면옥의 영업 중지, 을지 OB베어의 강제 철거, 그리고 최애하는 감자탕(국) 집인 동원집의 이전 등 많은 노포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 이 집의 안위도 사실 조금 걱정되는 실정이다.


어디 노포가 그냥 역사만 오래된 가게인가?

오랜 시간 동안 서민들에게 양질의 음식을 제공해 왔고, 음식으로는 대표적인 한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 노포가 속한 지역의 사람과 역사를 함께하며 자라온 추억과 만남의 공간이 아니던가?


푸드 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님과 박상현 선생님의 말처럼 '노포는 공공재'라는 것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가속화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아직은 이 지역에서 상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저 맥주잔에 담긴 것은 물이 아니다. 성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기억을 되살리는 묘약이다.


조촐하지만 우동 한 그릇 주문해 놓고도 따뜻한 정종 한 잔 함께 마실수 있는 가게, 누군가가 그리워 마음이 허할 때마다 찾아 오래전 이 자리를 함께 했던 건너편 자리의 누군가를 추억할 수 있는 그런 가게, 우리가 노포에 바라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일 게다.


지금은 추억으로 사라져 버린 세진 식당이나 우일집, 을지 OB베어와 화마에 사라져 버린 양미옥, 낯선 곳으로 자리를 옮긴 동원집 등의 자리를 애써 찾아보면서 착잡한 기분도 금할 수 없었지만,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경우동을 찾고 잠시 마음을 달래었다.


부디 이 고난의 시간을 잘 버텨 나가시길 기원한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모든 메뉴 가능 + 정종

2. 2인 이상 방문 시 : 카레라이스나 유부초밥 1개 + 우동메뉴 + 정종

3. 3인 이상 방문 시 : 사람 수대로 원하는 만큼 주문 + 정종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인근 도로변 공용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나 평일에는 잡기 힘들다.  

2. 면으로는 우동메뉴 전부 괜찮다. 밥 메뉴는 개인적으로 오뎅백반을 추천한다.

3. 사람 수대로 면을 시키고 유부초밥을 별도로 주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음.

4. 메뉴에는 없으나, 주문할 때 '곱빼기'를 얘기하시면 양을 알아서 많이 주신다.

5. 정종은 따끈하게 마시는 게 좋다. 더운 날에만 차가운 정종으로 주문한다.

6. 식사 시간을 피하면 조금 여유 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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