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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Aug 26. 2024

착하고 바른 건 억울하다?

아들과의 긴 통화(현명하길)

밤 12시 35분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밤 10시면 침대에 눕기 때문에 12시가 넘은 시간에 오는 전화라면 자다가 일어나 받아야 한다. 갑작스러운 벨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며 수신자를 확인하니 '남'이었다.(헤어진 그분의 명칭을 '남'으로 저장했다.) 헤어진 지 3년이 넘었는데 웬 전화인가 싶었지만  술김에 하는 전화겠거니 하며 받지 않았다.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며 저절로 욕이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 작은 아들에게 말했다.

"밤 12시 넘은 시간에 너희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더라."

"뭐라고요? 밤에요?"

"응. 또 술 먹었나 보지. 네 운전면허증 때문에  말이 많나 보다."


무엇 때문에 자는 시간에 전화했을까. 사실 알고 싶지도 않지만 짐작되는 일은 있었다. 작은 아들의 운전면허증으로 남에게 문자가 온 적이 있었다. 아들의 운전면허에 필요한 학원비를 반으로 보태라는 문자였다. 운전면허증이라 하면 아이의 아빠가 방학에 취득하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학원비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운전면허증은 만 18세 생일이 지나면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학원비를 떠나 고등학교 졸업 후에 해도 될 일을 지금 하는 것도 내 기준에선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 아빠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원비를 보태라는 문자에 단호하게 '지금 취득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짧은 문자만 보낸 상태였다. 그러고는 소식이 없었다.


그 일로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지금 면허증 따고 싶어?"

"왜요?"

"너 면허증 따는데 학원비 보태라고 너희 아빠한테 문자가 와서."

"예? 비용은 아빠가 내는 게 아니었나? 엄마돈이 나가는 거면 지금 안 따도 돼요."

"그렇지.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엄마와 아빠사이에서 네가 힘들겠지만 너의 의견을 아빠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줬으면 해. 어떤 결정이든 네가 중심을 잡고 너의 의견을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는 말이지. 면허증 따는 것도 네가 하고 싶으면 엄마한테 학원비 반을 부탁하고 아빠한테 반을 부탁하는 식으로 말이야."

"나는 지금 면허증 안 따도 되는데 학원비를 주실 것처럼 말씀하셔서 가만히 있었지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나중에 딴다고 말했을 거예요."

"그래. 그렇다고. 이번 일뿐만이 아니라 모든 결정에 있어 너의 의견이 중요하니까 중심을 잘 잡으라고."

"알겠어요. 엄마한테 왜 연락은 해가지고.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말할게요."


작은 아들은 아빠한테 연락해 면허증은 나중에 자기 돈으로 취득할 테니까 이런 일로 엄마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한 모양이었다. 괜한 걱정으로 마음의 불편함이 밀려왔다. 부자간에 유지되고 있던 평화를 뾰족한 말로 쑤셔놓은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가족 간의 문제로 생각이 많아질 때면 나는 큰아들과 통화를 한다. 우리의 일이고 누구보다 이런저런 상황을 잘 아는 큰아들은 나에게 좋은 상담사가 되어준다. 아들에게 이런 일을 말해주니 작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분개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말했다.

"엄마! 집에 태경이 같이 쓴소리 날리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너무 착하게 보이면 안 돼요. 그리고 밤에 오는 아빠 전화는 받지 마세요."

이상하다. 말에 마음에 퍼졌던 독들순식간에 풀린다. 이해가 되면서 안심도 되니 아들은 나에게 천사와 같았다.


큰아들과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면서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억울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난 선도위원회건으로 작은 아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었는데 출처가 큰아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조바심에 착하고 바른 삶에 대한 긍정을 말해주었다.

"아들! 착하고 바르게 사는 건 분명 억울할 때가 있어. 하지만 엄마나이가 되고 보면 바른 선택을 하고 산 것에 대한 힘을 느낄 수 있어. 나한테 당당해지거든. 그게 큰 힘이 돼."

"아~ 자아성찰이 되니까 그런 거죠?."

"그렇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엄마도 네 나이 때 착하게 큰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왜 이렇게 착하게 키웠냐고 부모님한테 따지기도 했지. 20대 대학생일 땐 혼자 담배를 사기도 했어. 삐뚤어지려고. 그런데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맛이 이상하더라. 이런 걸 왜 피나 싶어서 당장에 버렸어. 그랬던 내가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듣는 걸 보니 나만 느끼는 억울함은 아니었나 봐."

"그래요? 그런데 삐뚤어지는 것도 쉽게 안 돼요."

"맞아 어려워. 그리고 우리는 착하게 살기보다 현명하게 살도록 노력하."


나의 20대와 아들의 20대에 공통점이 있었다. 나도 그랬는데 너도 그렇다니. 웃긴 상황이었다. 착하게 살기보다 현명하게 살아야 옳은 것 같으니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결론짓고 웃어넘겼다. 쓴소리 할 때는 하고 말을 아낄 때는 아껴서 똑똑한 삶을 살자고 말이다. 이런 대화가 큰아들과 가능하다니 참으로 감사하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정직함과 바름은 있어야 한다.

유혹에 흔들리지 말자.

한 때의 유혹으로 평생의 자기를 어버리지 않도록 선을 잡고 살아야 한다.

나중에 나에게 당당해지도록.

우리 현명하게 살자.




현명하길



너무 야무지게 살지 말자

괜한 에너지만 낭비하니

허무함 덩어리요

방패막뿐이더라


지나가는 눈길에 멈추고

오고 가는 시선에 잡히니

내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마음이 무거우면

주변 시선 버리고

야무짐을 자랑치 마라

괜히 발목 잡히면

오도 가도 못한다


모두에게 쏠리는 시선을 거두고

나에게만 쏟아낼 시선을 모으면

모든 게 풍요로워지고

모든 게 평화로워진다


그냥 내 갈 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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