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흘려보내기엔 그 시간의 틈새가 비어있는 것을 보는 게 아깝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인간의 삶이란 무언가 의미있게 보내고 싶다는 근본적인 상념에서 부터 시작하는게 아닌지. 변연계만 존재하는 파충류가 아니라 대뇌가 존재하여 복잡한 연산을 처리해 나가는 인간의 두뇌로 모래알 마냥 손 안에서 흐트러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하는 인간의 충동이란 때로는 안타깝게 혹은, 지나고나서는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재촉에 못이겨 본의아니게 헤어지는 마음으로, 나의 빈틈을 채우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욕망에 시달리는 인간이란, 당장의 시간을 고통으로 메울지는 몰라도, 다른 시간의 시선이 그 때를 아름답게 바꾸고자하는 내재적인 힘이란게 있는 것 같다. 짧지만 나를 울렸던 음악이 그 시절을 불러일으키고, 아름다웠던 글이 나를 다시금 진동하게 만드는 것. 삶을 무언가로 채운다는 것은 결코 부정적인 것으로 채워질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것이 고통이자 희망이고 쾌락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번이라도 깨닫게 되지 못할지라도 임종의 순간에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러한 문장은 희망과 재회의 설레임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한 된 삶은 행복하다. 이미 그것이 무엇으로 채워질지는 알기 힘들어도 시간이 알아서 그것을 좋은 것으로 채워 준다. 세상을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줄 아는 사람들이여. 그들이야 말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길다면, 그대의 삶은 행복한 것이다. 고통스럽다면, 작은 기쁨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된다. 영원한 행복이 없는 만큼 영원한 고통도 없는 법이다. 보편화하고자 하는 인간의 정보처리 과정은 때로는 삶의 쾌락을 방해한다. 오로지 삶은 인간에서 출발한다. 국소적인 성질을 무시하고서야 대역적인 과정을 지켜보기 힘든 법이다. 살아보지 않고 인간을 어찌 논하리. 이는 연역의 필수불가결함이자, 나로부터 출발 할 수 밖에 없는 우주의 공리이다. 슈퍼노바가 모든 어둠을 거치게 만들어 비춰낼지라도, 블랙홀은 아마 영원히 모든 기억들을 저장한다. 밝게 만드는 것이야 필요하겠지만 순간일 뿐이다. 아뢰야식의 세계에 우리는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이상. 우리는 삶안에 쾌락을 저장한다. 비오는 날 저장했던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의 마음으로, 우리의 고통은 행복으로 치환되고, 길었던 시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상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