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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ug 09. 2023

이준석, 실력지상주의적 포퓰리스트 정치인

대한민국 정치인-2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은 한국 정치에서, 어쩌면 이재명 이상으로 특이한 케이스일 것이다. 단순하게 보자면 먼저 아무런 고위직 경력은커녕 국회의원에 한 번도 당선을 못되어서 마이너스 3선 중진, 즉 '마삼중'이라고 조롱당하고 있는 처지고 당내에 친박이나 친윤처럼 자기 세력이 확고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친이준석 인사의 대부분은 유승민 쪽에 있었던 바른정당 출신 청년 정치인들이라 이들은 여타 국힘의 다른 정치인들보다 힘이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준석은 세력 면에서 불리한 악조건에서 시작해야만 했었다.


한편으로는 이준석의 정치적 발언 및 전술인데 이것도 굉장히 실험적인 아젠다다. 왜냐면 한국 정치사에서 이준석 같이 행동한 정치인은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직설적 화법, 세대포위론, 안티페미니즘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이준석식 전술은 일단은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당내 중진들과 극한으로 갈등을 일으켜왔고 그 결과 지금 이준석은 두 번의 선거에서 이긴 승장임에도 국힘에서 설 자리를 거의 잃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엘리트적 포퓰리스트 이준석, 그는 어떤 사상과 전술로 짧은 기간 안에 흥망을 모두 겪었나?

이준석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과 "정치의 귀환"


국힘 내부적인 문제로만 보자면 이준석은 기성 보수 세력의 아이콘 황교안의 몰락으로 급부상한 케이스일 것이다. 2020년 총선의 패배는 국힘당에 있어서 국민들에게 혐오를 받는 우파 유튜버와 단절을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김종인 비대위는 이명박근혜 사과, 당내 태극기부대 세력 축출, 무엇보다도 가로세로연구소 등 일각에서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 및 전광훈의 행태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는 자유한국당 시절을 주도하던 강성 태극기 보수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이 흐름에서 이준석이 부상할 조건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힘 내부의 변화만으로는 이준석의 부상은 설명이 안된다. 그보다 이준석이 뜨게 된 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대중들의 정서를 읽고 그걸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판단이 척척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준석의 열풍은 그동안 의회의 구태의연한 대감들이 주도하던 '야합 노름판'이 아닌 본래 의미에서의 '정치의 귀환'을 원하는 유권자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지자체장 출신 아웃사이더 이재명이 반(反) 의회적 정치를 구사하며 운동권 엘리트들이 주도하던 정치에서 배제되어 소외감이 느끼던 대중들을 휘어잡았듯이 이준석도 국힘의 구세대 정치가들의 그들만의 리그에 불만이 크던 젊은 보수들의 목소리를 힘입어 당선되었다.


아웃사이더 이준석이 치고 올라가는 과정은 일본 정치 속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하시모토 도루를 연상케 한다. 이때 이준석은 당내 기득권 혁파를 앞세워 쓸데없는 문제로 싸우며 진짜 중요한 현안들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정당, 의회제 민주주의의 위기가 자리 잡은 상황에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물론 이준석은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지 않으며 그는 민주화 세대로써 5.18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들이 이뤄낸 권리로서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인 자유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라면 현행 의회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전략을 선보인다.


그러한 행보의 결과 이준석은 보수, 진보 모두에게 강력하게 비난을 받고 있다. 보수에게 이준석은 보수주의적이라기보단 과격한 급진적 자유주의자로써 기성 보수들의 가치를 파괴 후에 새로운 가치들을 세워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기에 좌파와 다를 바 없는 자코뱅주의자인 것이고 반대로 진보가 보기에 이준석은 안티페미 선동으로 여성혐오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공정한 경쟁>으로 대표되는 그의 능력주의 가치관은 무한 경쟁을 찬양하는 약육강식스러운 파시즘 철학으로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이준석은 그저 극우 포퓰리즘 장사꾼인 것이다. 실제로 이준석은 민주당의 기득권인 운동권 세대와 국힘의 기득권 산업화 세대 모두를 무능한 꼰대라고 비난하며 2030을 미래의 희망으로 치켜세워 그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국힘 당대표라는 자리에 올랐다.


종합해 보겠다. 이준석은 본인이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지만 역설적으로 국회의원, 고위직이 된 적이 없다는 조건을 활용해 대중 정치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시모토가 오사카, 간사이 주민이라는 정체성 정치를 했다면 이준석은 '이대남'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진 그동안 기성 세력에게 소외받던 집단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것도 기성 의제가 아닌 2018년 이후 급부상한 젠더 갈등과 취업난 상황을 활용한 "공정" 담론으로 말이다. 특히 이대남은 기존 세대와도, 이대녀와도 달리 정치적 의제를 밈(Meme)적 요소나 롤 같은 하나의 게임으로 보며 다른 말로는 희화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분명 자유분방하고 논의의 진입장벽을 낮춘다는 장점도 있지만 너무 일차원적이고 현상에 대한 비판일 뿐 그것과 연관된 다른 문제로 연장하진 못한다는 단점도 있는 신세대의 복합적인 정치적 접근법이라 볼 수 있다.

이준석과 현능주의


현능주의는 싱가포르에서 채택한 방식이다. 말 그대로 능력주의이며 PSLE라는 시험을 통해 기술학교에 진학할지 대학을 위한 상급 학교에 진학할지 정해지게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30대인데 국장급 공무원들인 경우가 타국에 비해 굉장히 많은데 이 또한 능력 위주로 뽑아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센룽 총리는 과거 교육 평준화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군 수뇌부를 40대로 구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부패행위조사국(CPOB)과 반부패법을 통해 뇌물 받은 공무원들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이준석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책에서 싱가포르로부터 본받아야 할 점들로 이걸 골랐다. 특히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방식은 이준석이 말한 공정이라는 의미와도 부합한다. 대니얼 A. 벨이라는 <차이나 모델>의 저자 겸 정치학자는 중국은 싱가포르의 현능주의 방식을 수용하여 자유민주주의로는 불가능한 강경한 능력주의 인사 정책을 펼쳤다. 어찌 보면 이준석의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은 서구 자유주의 국가보단 싱가포르와 중국 같은 비교적 권위주의 국가에서 모티브가 나온 것인데 그가 지지를 받을 당시는 인국공 사태와 조국 사태로 청년들이 할당제 같은 서구식 선발제도에 회의를 느끼던 시점이었다.


실제로도 이준석은 그의 저서에서 "공학도가 세상을 바꾼다"라며 중국 지도부 속 공학도 출신 인사들 거론한다. 예를 들어 후진타오 전 주석은 댐 기술자, 장쩌민은 자동차, 원자바오 총리는 광산 기술자 등이고 시진핑은 화학 전공이다. 그러면서 과학을 실용적으로 응용하는 사람인 공학도가 정치적 주류로 부상한 중국 정치는 율사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정치 발전을 막고 있는 측면이 큰 한국 정치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준석이 은근 서구식 제도보단 중국식 제도에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부분에서 이준석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류의 최상의 가치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운영 중인 현능주의, 정확히 말해 전근대 유교 봉건 왕조에서 가져온 과거제 시스템을 같이 지향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뚜렷하다. 공학도인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보장하면서 테크노크라트적 관료제 사회를 구축하는 이른바 '민주적 현능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인으로서 "따뜻한 보수", "중부담 중복지 사회" 등을 주장하는 정치적 스승 유승민과도 의견 차이가 상당하다. 스펙이 현재 2030에서 화두인 것도 이준석의 능력주의와 관련이 있고.


다만 현능주의의 뿌리인 유교는 이준석의 정치관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성리학의 뿌리 <맹자>는 "양혜왕 상"에서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한다고 나온다. "양혜왕 하"에서는 선왕이 연나라 탈취에 대해 맹자에게 물은 장면이 있는데 이에 맹자는 탈취해서 연나라 백성이 기뻐한다면 하라고 했다. <맹자>에서 결국 말하는 바는 왕도 정치를 통해 백성과 함께하고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누리라는 이야기다. 송나라와 조선의 문치주의 역시 예와 덕을 강조하는 <맹자>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으로 예와 덕은 이준석이 주장하는 능력주의와 경쟁을 통한 우열을 가르는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 굳이 이준석과 유학을 비유한다면 한비자의 <법가> 사상이 더 적합할 것이다.


"차이나 모델"을 주장하며 싱가포르와 중국 체제를 바탕으로 민주적 현능주의의 이론 체계를 구상했던 대니얼 A. 벨조차도 정치적 현능주의와 경제적 능력주의를 구분할 것을 지속적으로 주문해 왔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함에 있어서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계급 배경에 따라 부가 분배된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능력에 따라 거두고 공헌에 따라 나눈다"는 원칙은 능력주의로 보이지만 개인의 능력 차이와 자연이 부여한 생산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에서 결함이 있다. 즉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타고난 능력으로 혜택을 누려서도 자기 잘못 아닌 생산력 부족으로 불이익받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벨은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대니얼 A. 벨은 능력과 덕성에 맞춰 정치적 권력을 부여하는 현능주의 정치 제도를 옹호한 것이지 경제적 자원 분배에서의 능력주의는 동의하지 않았었다. 실제로 그는 <차이나 모델>에서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 것은 중국 현능주의 체제의 실책이라 평했다.

경제적 능력주의와 각종 비판들


이준석은 경제적 능력주의 성향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준석의 경제적 능력주의를 우파 자유지상주의의 맥락, 그러니까 안캡 식 무한경쟁 논리에서 보는데 그렇다기보다는 위에서 말한 현능주의 이야기처럼 동양적 맥락에서의 교육문화 바탕에 가깝다. 대표적 우파 자유지상주의자 논객 한스 헤르만 호페는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에서 군주제가 더 사유재산권을 잘 보호해 줬다고 주장했으며 무엇보다도 호페는 유교에 바탕을 둔 동양 문화는 자본주의나 사유재산권이랑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교의 가르침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교차되는 지점이 있다고 리콴유와의 토론에서 말한 자유주의자 김대중과도 맞지 않으며 이준석 역시 87년 체제의 의의를 이전 체제보다 높게 평가하기에 호페식 아나코 캐피탈리즘적 자유지상주의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이준석이 말하는 공정한 경쟁의 기초는 "기회의 평등"이다. 이준석이 아무리 미국식 자유를 칭송하고 언더도그마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한국적인 가치, 즉 박정희의 의료보험 도입 같은 개입 정책도 필요하다고 보는 등 무작정 약육강식 세상이 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준석을 비판하는 측의 문제가 있다면 그의 능력주의가 지위의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지위의 배분만이라도 공정히 해달라는 대중 특히 취업난이 극심한 2030의 요구를 통해 나온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극단적인 경쟁 지상주의 사고는 계승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준석이 자신이 주장하는 능력주의가 보편적으로 받아지게 하려면 하버드 학벌이나 엘리트 의식. 말빨만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해 어떻게 보완해갈 것인지를 제대로 대중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애당초 이준석은 당 대표 시절 능력주의의 첫 시험으로서 국민의힘 당직자들에게 기초자격시험을 내게 했고 못 풀면 공천 안 주겠다고 하다가 오히려 같은 당 중진들한테까지 비판받았었던 걸 생각해 보라. 당내에서 반대파와의 합의를 거쳐 기초자격시험을 출제한 것도 아니고 당 대표 직권으로 밀어붙인 셈인데 저러니 국힘 당직자 중에 이준석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준석 본인이 높게 평가한 싱가포르는 PSLE라는 시험으로 진학이냐 취업이냐가 결정되는 전형적인 실력지상주의 국가이지만 그럼에도 학업에 뒤쳐진 학생들을 영원히 낙오자로 두지 않는다. 싱가포르인들은 택시운전사나 청소부를 하더라도 적어도 한국만큼 무시당하지는 않고 있다. 또 처음에 뒤쳐지다가 뒤늦게 공부에 눈에 뜨는 학생들에게도 패자 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있으며 polytechnic이라 불리는 기술학교 학생들이 성적을 올려서 싱가포르 국립대학을 비롯한 명문대에 다시 진학하는 케이스도 있는 등 현능주의 국가치고는 의외로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을 아예 버리진 않는다.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도 아까 말했듯이 기회의 평등의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그 책에서도 낙오방지법을 통한 공교육 강화를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는 그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만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로써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해 주는 건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준석 이전 능력주의의 가장 성공 사례인 중국과 싱가포르는 지난 20~30년 간에 소득 불평등이 크게 악화되어 왔으며 두 나라 모두 전 인민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약속하지만 그럼에도 현능주의의 이상향과는 달리 현실에서의 경쟁은 누구나 출발선이 같지 않고 특히 중국에서는 이 크게 좌우한다.

보론: 이준석의 경제관


자유주의 정치인 이준석이 경제에서 롤모델로 삼는 나라는 아메리칸드림의 미국도, 정치적 스승 유승민과 김종인이 좋아하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도 아니다. 의외로 싱가포르인데 <공정한 경쟁>에서 이준석은 리콴유 총리를 아주 높게 평가한다. 또 싱가포르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 새로운 경제 발전의 동력을 찾은 것처럼 우리도 중공업, 반도체로 큰 성장을 기대하기 힘드니 그들을 모델로 삼아 카지노든 영리 병원이든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 속 경제 이야기의 중론이다.


실제로 이준석이 경제 해법으로 이야기하는 건 대부분 싱가포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리콴유가 관세 인하, 주식 매입 규제 완화, 수수료 인하 등의 정책으로 외자를 끌어와 개방 정책을 펼쳤듯이 그도 외국 자본을 적극 유치해서 우리 기업을 해외에 합병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다만 그러면서 박정희의 국가 주도 모델은 비록 성공은 했지만 사회주의 계획 경제적이라고 주장을 한다고 하는 걸로 보았을 때 싱가포르 모델을 따르면서도 싱가포르 경제 구조 내 국가 지분이 상당한 건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식 자유주의 경제관의 영향도 있다.


참고로 싱가포르에서 국영 부문 규모는 국민생산에 대할 기여도로 따지면 한국의 두 배이고 전체 국내 투자에 대한 기여 돈고 따지면 세 배 규모다. 싱가포르항공은 재무부 소속 관영 회사의 지분이 57%고 거의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로 전화, 전력, 운송, 반도체, 조선, 엔지니어링, 해운, 은행 등의 분야들은 정부의 강한 입김을 받는다. 그리고 홍준표가 극찬한 싱가포르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주택개발청은 85% 남짓의 주택을 공급하고 경제개빈청은 산업 용지 개발로 사업 컨설팅을 한다. 싱가포르가 물론 이준석 말대로 상당한 무규제 국가이기에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긴 한데 엄연히 국가자본주의적 성격도 상당히 강한 국가라 그가 영리 병원, 카지노 합법화를 얘기하면서 싱가포르 모델을 들먹인 건 도대체 종 잡을 수가 없다.


그래도 <공정한 경쟁> 속 이준석이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는 경제관은 미국식 자유주의를 높게 보는 와중에도 '아시아적 가치'를 표방하는 싱가포르의 모델을 높이 본다는 것과 하나 더 얘기하자면 그래도 이준석의 경제관은 독점 자본의 등장 혹은 담합에 대해선 단호하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준석은 서양식 자유를 칭송하는 아시아적 가치 긍정론자(?)라는 다소 이중적인 모습이 보인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무한 경쟁을 주장하는 우파 자유지상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셈.

이준석을 돕는 정치인들은 그의 사상관에도 동의하는가?


이준석이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비판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비선실세로 꼽힌 인물들만 해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종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선 후보 등 이준석이 정치를 하면서 조언을 구했었던 사람들이다. 이는 단순히 우파 유튜버 렉카판에서만 주장이 나온 게 아니라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이준석의 경쟁자였던 주호영 의원과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이준석이 당선될 시 비선실세가 조종할 것이라는 우려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지나치게 간과한 부분이다. 그의 성격상 주도하는 위치이고 싶어 하지, 절대 남 밑에서 충성할 성향이 아니다. 그리고 김종인, 김무성, 유승민 이 셋의 정치관은 각각 천지차이이며 공통점이라고 해봐야 자한당계에서 싫어하는 인물들이라는 부분 밖에 없다. 특히 김종인은 적극적인 경제민주화론자이고 유승민은 중부담 중복지론자인 것에 반해 이준석은 조건부 의료 민영화와 자유시장, 작은 정부가 국가의 기본이라고 주장하는 등 경제관은 김, 유보단 오세훈이나 윤석열에 더 가까운 모양새다. 그리고 김종인은 할당제에 긍정적이었지만 이준석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을 둘러싼 지지 정치인들은 바른정당, 새로운보수당이라는 정당을 중심으로 있으며 여기에 그에게 호감이 있는 친박 출신인 김진태나 서병수, 그리고 초선 소장파 등이 가세하는 형태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이준석계'는 실체가 있지도 않은 것. 또 바른정당 출신이라고 해서 친이준석인 건 아닌 게 그 일례로 바른정당 출신 하태경은 여전히 이준석을 가끔 옹호해 주지만 근본은 친윤이며 원희룡은 윤석열 정부의 국토부 장관이며 권성동이나 장제원은 같은 동지 출신이지만 아예 윤핵관이 되었다.


그러니 이준석에게 있는 세력(?)이라고 해봐야 천아용인 이게 끝이다. 특히 당 대표직 사퇴 이후 기자회견에서 양두구육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대통령실을 직접적으로 디스 하였기에 오히려 당내 이준석 지지 기반만 전멸시켜 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준석을 그가 거창한 세력을 거느리고 반윤 진영의 수장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친윤 지지자들의 프레임은 사실 틀렸다고 볼 수 있으며 비윤 내에서도 이준석의 영향력보다 안철수나 홍준표가 더 크다는 것이 저번 전당대회를 통해 입증되었다.


하여튼 이야기가 많이 새어나갔는데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준석 세력의 실체는 없는 쪽에 가깝고 그렇기에 이준석을 지지하는 정치인 중에도 이준석의 사상관에는 동의를 하기 갸우뚱하는 자가 있어도 이상할리는 없다. 당장 후원자였던 유승민이나 김종인의 노선과도 대놓고 대치되는 길을 걷는 게 이준석인데 그를 돕는 정치인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으라는 법이 있나?

노무현의 팬덤 정치와 이준석의 팬덤 정치


이준석을 지탱하는 힘은 여론과 청년 당원이었다. 반면 이준석 이후 당 대표인 김기현은 기성 당원으로 대표되는 당심이 기반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지지를 받는 게 옳고 그른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근데 이준석의 방식은 어찌 보면 의회와 정당의 밖에서 정치 및 결정의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대중의 분노 여론을 끌어모아서 자신의 성장의 기반으로 삼는 전형적인 포퓰리스트식 정치를 하고 있다. 문제는 그 포퓰리즘 정치가 기성 정치와는 또 다른 엘리트주의, 능력주의로 귀결되니 골치인 거고.


이준석의 이런 대중정치가로서의 수완에서 난 비슷한 사례를 찾았다. 바로 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다. 노무현 역시 3당 합당에 민정당이 가담하여 군사정권의 망령이라 욕먹던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회의와 환멸도 인기 요소였다. 한화갑, 권노갑은 동교동계 구태 정치의 상징이었고 이인제 역시 신선함이 많이 떨어졌다. 무엇보다도 노무현은 최종 학력 고졸로서 이회창을 필두로 하여 서울대 출신들이 주도하던 한국 정치판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인 아킬레스건이 있었는데 이게 그의 강경한 개혁 요구와 함께 서민적이라는 호감 요소로 작용하여 1%의 지지율로 출발해 경선을 뚫고 서울대 정치인 이회창을 누르며 대통령이 된 이변을 연출했다.


이준석은 물론 노무현처럼 고졸인 건 아니고 오히려 하버드라는 매우 뛰어난 학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하버드라는 학벌에서 오는 우월감인지 자신감인지 하는 것 때문에 이준석은 항상 직설적으로 같은 당을 향해 강하게 공격하였고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특히 손학규와는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대립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2030 남성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이준석이 고학벌과 스펙으로 편하게 공천받는 정치인이 되길 거부하고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비쳤으며 여기서 이준석의 팬덤이 형성, 그대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당선의 기반이 된다.


이준석의 정치의 기반은 "분노"라는 정서다. 그의 정치 스타일은 때로는 상대방이 쥐어박아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싸가지 없는 언행들을 일삼으며 이런 요소들이 밈(Meme)화됨으로써 재미있게 보이겠지만 이슈들을 일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이준석의 팬덤들도 마찬가지이며 그와 지지자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조장한다. 더 나아가 이준석은 자신이야말로 민의를 체현하고 있는 정치인이고 그를 비판하는 좌우지식인들을 지지자들이 유희거리로 삼게 유도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이재명 그 이상으로 급진적이면서도 그걸 잘 드러나지 않게 포장한다.


한국에는 운동권 세대들이 국회에 입성한 이래 페미니즘, PC주의, 소수자 보호 등 탈중심적 하위 정치가 들어왔다. 여기에는 보수 정당들도 시대적 흐름에 편승해 동조하며 자신들도 그런 아젠다를 반대하진 않는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왔다. 그러나 타자를 존중하고 소수자에 귀 기울이는 그 사려 깊음이 결정과 결단이 없는 '탈정치의 정치'라는 것을 불러왔고 정작 중심과 중앙이 공백 지대가 됨에 따라 정치 부재의 빈 공간을 차지하려는 이준석이 등장했다.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자유주의는 다원주의와 중립성을 내세워 탈정치화를 추구하여 정치에서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하지만 그 폐기 시도 자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따라서 현대 대중민주주의 내지 의회 민주주의는 서로 양립 불가능한 두 구성요소 사이의 긴장과 갈등으로 인해 위기에 빠질 것이며 애초에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모순이라 지적했다. 이준석은 어떻게 보자면 그러한 모순을 역으로 활용해 정치적인 것을 잘 실현하고 있는 정치가인데 그의 목표는 계속 말했지만 87년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준석은 지금까지 해온 정치적인 것을 전제로 한 대중 정치가로서의 면모와 민주화 세대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는 이중적인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조정할 것인가?


또 이준석은 대중 민주주의의 팬덤 정치의 실패 사례가 더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하는 게 그게 노무현이었다. 분명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열풍은 가히 압도적이었고 2004년 총선에서 열린 우리당이 152석을 획득하는 등 노무현의 팬덤은 아이돌 팬덤 못지않았다. 그러나 임기가 가면 갈수록 노무현은 민주노동당, 한나라당 양쪽의 공격도 모자라 여당 내부에서도 김한길, 천정배 등과 갈등을 계속 만들었고 2007년 대선은 범 여권의 정동영 후보마저 노무현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정서는 곧 IMF 사태를 만든 한나라당이 재집권하여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걸로 이어졌다. 즉 노무현의 팬덤 정치는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특별한 경우였지만 반대로 보자면 분노가 사라지자 쉽게 처절하게 무너진 사례기도 했다.

이준석의 좌절, 그리고 이유


작년 10월, 이준석은 국민의힘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서 모두 정진석 비대위에게 패해 마케이누로 전락했다. 특히 올해 초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의 대리인으로 나간 천하람은 안철수에게도 밀려 3등으로 낙선했고 최고위원 모두 태영호, 조수진, 김병민, 장예찬 같은 친윤 친위대로만 구성되었다. 당내 지지기반이던 유승민은 경기지사 경선에서 초선 김은혜에게 패한 후 재기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냥 다 떠나 전당대회 결과 자체가 이준석의 분노와 밈, 공정 담론에 기반한 포퓰리즘 정치가 이준석의 지지자를 생각보다는, 적어도 국민의힘이라는 기성 정당을 바꿀 만큼 내부로 끌어모으지 못했다는 것도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이준석이 왜 실패했는가인데 그냥 그거다. 분노라는 정서를 "분노만을 위한 분노"로만 활용하고 그걸 바탕으로 제대로 된 담론, 아젠다를 제시하기보단 피상적이고 진중하지 못한 접근만으로 사회 의제를 다루던 것이었다. 분명 분노나 대중 민주주의라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데 이준석의 정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 정치를 그저 문제를 분석하고 분노의 목소리를 대변할 뿐이며 그냥 화난 걸로 그치게 만들어 의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분석하는 게 아니라 대안으로 바꾸는 건데 그래서 이준석은? 참고로 파시스트인 히틀러나 무솔리니, 심지어는 북한의 김일성이나 중국의 마오쩌둥조차도 결과는 둘째 치더라도 자기 나름의 사회 문제 해결 방식이 적어도 틀은 있긴 했었다.


이준석의 문제는 너무 거만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30대 당 대표를 안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의힘 내 기성 정치인들은 대하는 게 참 불편할 텐데 이준석은 그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물론 윤핵관들이 이준석을 상당히 미워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들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아무리 어리고 싸가지 없다지만 당 대표를 상대로 대놓고 하극상을 벌이며 끌어내리려 한 것은 대깨윤이 아닌 이상 누가 봐도 역한 행동이었던 걸 누가 부정하겠나? 근데 윤핵관 및 친윤과의 갈등 과정 이준석이 통화 녹취를 한 걸 공개한다거나 무슨 페이스북 중독인지 SNS로 정치질하면서 툭 하면 타 정치인들, 그것도 같은 당 소속들도 조롱한 걸 보면 타인이 자기를 벌레보듯이 혐오하는 것에는 당연히 본인 책임도 있을 수 밖에 없다.


1970년대 일본의 총리직에 올랐던 다나카 가쿠에이는 록히드 사건의 피의자로 잡혀가는 와중에도 각복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어둠의 쇼군"으로써 오히라 마사요시의 총리 선출에 관여하고 스즈키 젠코 같은 허수아비 총리를 세우는 등 막후에서 자민당을 조종했다. 그는 "정치는 수이며, 수는 힘, 힘은 돈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비록 다나카가 깨끗한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그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수"라는 자기 편은 굉장히 중요하다. 다나카 가쿠에이가 자신을 수사한 미키 다케오를 몰아내고 이어서 정적 후쿠다 다케오를 짓밟았던 것 또한 어쨌든 그는 자금 외에도 인맥이 두터웠고 그러기 위해 통큰 사람 행세를 하고 다녔었다. 다나카 가쿠에이가 얼마나 부패한 총리였는지라 떠나 그가 한 말은 정치에 있어서 인맥이라는 요소가 단순히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준석은 뭐 비주류 정치인이니까 자금은 그렇다 쳐도 인맥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천아용인은 국힘 중앙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너무 미약한 소장파들이라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긴 힘들다. 그렇다면 이준석은 여타 비윤계와 손을 잡아야 했다. 그게 홍준표든 이언주든 유승민이든 안철수든 설령 친박 출신일지라도 자기 세력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끝내 이준석은 당 대표 징계 사건 국면에서는 홍준표에게마저 비판받았고 2023년 전당대회에서는 김기현을 막을 생각이 있긴 했는지 천하람과 안철수의 비윤 연대를 추진하긴 커녕 맨날 라디오 나와서 안철수 가지고 깨알 디스 드립하면서 농담 따먹기 하고 자빠졌었다.


이준석은 평소에 페이스북에 당원 가입을 자주 독려했는데 아마 당원과 지지자의 국힘 내부 참여를 통해 국힘의 기성 정치인들을 통제하려고 했나 보다. 아이러니한 건 이게 딱 예전 2017년 대선 당시 이재명이 쓰던 수법이라는 것...아무튼 초반에는 이게 먹혔는데 그거야 의원들이 아직까진 굳이 기껏 세운 당 대표 흔들어서 더 일 키우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다. 근데 이준석이 본격적으로 나서니 그대로 중진들과 싸움이 터졌던 것이고 '친이준석계' 당원들이 국힘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예상보다도 훨씬 없었으니 그대로 무너진 것이다.


일본에서 2000년대 대중 민주주의 정치가로 대표 인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있다. 근데 고이즈미는 적어도 세이와 정책연구회라는 자민당 창업주 기시 노부스케가 만든 유산을 받았었고 잃어버린 10년 그 당시였기에 급진적으로 나설 환경이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2005년 우정 해산을 해버리고 일방적으로 반대파를 공천 학살을 한 것이 여론에서 벼락치기 정치쇼로 실패할 것처럼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음에도 압승했는데 이건 고이즈미 측이 탈당파를 세습 정치하는 구태 세력으로 몰아갈 프레임을 전부 마련하고 여론전까지 체계적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반면에 이준석은 당 개혁에 대한 급진성만 있을 뿐, 민자당 때부터 자리잡고 있던 국민의힘의 터줏대감들을 뒷방으로 밀어낼 묘안이 없는 상황에서 의미 없이 싸움만 했다.


이처럼 분노 밖에 없던 이준석의 정치는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며 그가 징계받은 것이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치더라도 같은 당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등을 돌린 건 이준석의 행보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인 면도 크다.

맺음말: 기득권 권력에 의해 실패한 정치가, 그러나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결론적으로 난 이준석이라는 사람의 정치인생이 앞으로의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고 본다. 내가 도덕성이나 정치적인 진영논리로 그렇게 평하는 건 아니고 워낙에 쌓아온 업보가 많아 다시 등판하기가 힘들어졌다. 특히 징계받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눈물 흘리며 "양두구육"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자기가 만든 대통령을 대놓고 사기꾼이라는 식으로 지칭했는데 순전히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큰 실책이다. 나야 여당 지지자도 아니고 대통령 지지자도 아니니까 크게 상관이 없지만은 저 발언한 이후로 당내에서 이준석에 대한 동정 여론 자체가 옛 새보계 빼면 다 죽었다. 한 마디로 아무런 실익이 없는 감정풀이에 불과한 최악의 자충수였다는 말.


솔직히 말해 나도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에 등판할 때 눈여겨 보며 흥미롭게 관전했다. 정확히는 페북에서 윾머저장소랑 친목질할 때부터 봐왔었지만. 꽤 굉장히 캐릭터성이 특이하고 확고한지라 상당히 빠르게 성장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몰락했으니 씁쓸하면서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거니 동정심은 1%도 없다. 본인이 자기 의지로 대표가 되었고 세대포위론을 했으며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까 뭐 이제와서 탓하며 후회해도 뭐가 달라지나? 최근에는 뭐 총선 앞두고 신당 창당이나 무소속 출마까지 염두에 둔다는데 김무성이라는 거물이 만든 바른정당이나 박지원이 만든 국민의당도 망했는데 고작 이준석이 되겠나?


이준석의 정치 실험, 분명 한국 정치에서 마이너스 3선 당 대표 당선과 세대포위론, 안티페미니즘 부상, 의회제에 맞선 대중 민주주의 등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사회 갈등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커녕 오히려 본인이 스스로 덫에 걸려 "섹스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만 얻고 자멸하며 실패로 끝났다.


같이 읽어보면 좋은 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03128

이준석이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던 2019년에 낸 저서다. 그의 생각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고 있으며 재미있는 것은 직전에 이수역 사건, 혜화역 시위 같은 젠더 갈등의 중심 사건들이 있었는지라 이에 관한 이준석의 생각도 잘 나와있다. 최신 저서인 <거부할 수 없는 미래>을 안 넣고 이걸 넣은 건 그건 안 읽어봐서 그렇다. 어쨌든 그의 정치적 행보에는 동의는 못하더라도 무슨 맥락에서 이준석이 저런 주장을 하는지 흥미나 궁금증이 생길 경우에는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뭐 나쁘진 않다.


http://aladin.kr/p/7oDq9

싱가포르,중국식 현능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저자 대니얼 A. 벨은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가 소수의 전횡, 다수의 전횡, 투표 집단의 전횡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현능주의라는 일종의 능력주의에서 찾고 있다. 제목과는 달리 중국 정치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은 아니고 이러한 유교적 현능주의와 아시아적 가치의 장점들을 논의하여 조화와 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적 현능주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한국의 능력주의의 기반이 된 아시아적 가치 속 현능주의에 대한 자세히 다룬 몇 안되는 서적.


http://aladin.kr/p/vEUd

독일의 법학자이자 나치 정권의 체제 정당화 논리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카를 슈미트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홉스, 마키아벨리의 논의를 이어서 인간의 악한 본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이론을 제시하며 적과 동지의 개념이 곧 국가의 근간이며 정치의 기본이라 주장한다. 즉 국가는 외부의 위협이라는 실존적 의미에서의 적과 동지란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은 동질적인 시민들의 만장일치로 형성되는데 그게 "주권"이라고 얘기한다. 후반부에는 자유주의 국가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나오며 자유주의는 다원주의라는 것으로 정치적인 것을 은폐하려 하지만 정작 이에 동의하지 않는 진영을 입헌주의의 적으로 규정하기에 애초부터 모순으로 가득찬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여러모로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공부할 때 알아두면 좋은 학자.


(원래 정치신학 넣으려 했으나 난이도가 상당하기에 뺌.)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549177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정치인의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를 이야기하는 막스 베버의 선집 중 하나이다. 열정과 균형을 어떻게 하나의 인간 안에 합쳐놓고 책임의 윤리에 따라 좋은 의도만을 내세우는 목적의 윤리와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고 베버는 지적하며 요컨대 정치는 타협의 기술이며 냉혹한 결단력을 필요로 한다는게 이 책의 핵심. 직업정치인의 책임감 및 윤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에게 일독을 권함.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26105

이준석이 약장수라며 공개적으로 저격한 유명 정치학자 마이클 샌델의 능력주의 비판 저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식의 사회 풍조와 능력주의 교육으로 사람의 우열을 가르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샌델의 결론은 항상 일관되게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경쟁에서 도태된 이도 포용하며 함께 가자는 입장인데 이 때문에 그는 이준석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능력주의가 역설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샌델 교수가 이상적인 결과의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도 종종 나오는 편이다. 이준석의 능력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만큼 읽어보면 동의하진 않더라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거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718360

스타프 르 봉이라는 현대 사회심리학자가 쓴 책으로 무솔리니와 히틀러, 스탈린부터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심지어는 정신분석학을 창립한 유명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도 영향을 줬다. 그는 '군중심리'에 대해 사회는 군중 속에서 개인의 의식적인 성격이 묻히고 집단적인 심리가 지배, 흑색선전과 여론조작으로 쉽게 조종당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르 봉이 쓴 <군중심리>라는 책은 사회적 혼란을 유발한다고 인식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이들에게 읽혔으며 오늘날까지 군중이라는 무리를 이해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http://aladin.kr/p/GFrIn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한 갈래인 '민주평화론'을 주장하며 공격적 현실주의자 미어샤이머와 대치하는 루돌프 럼멜이라는 학자가 쓴 책이다. 이준석과 상관 없어 보이는 책을 왜 넣었냐면 대신 본문에선 얘기 안한 이준석의 대외관, 즉 적극적 평화와 연관이 깊기 때문. 이준석은 홍콩, 미얀마 시위 지지나 우크라이나 방문 등 국제사회에서의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위한 개입이 당연하다고 보는데 이러한 이준석과 이른바 리버럴, 네오콘 정치인들의 대외관 베이스가 루돌프 럼멜이니 참고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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