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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아닌 제인 Jun 28. 2024

명랑한 명여사의 치매 수첩

1-2. 경찰 앞에서  화투치기

치매를 앓기 이전부터 시어머니는 화투(고스톱)가 하루 일과의 하나였는데,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드시고 나면  근처 부동산이나 점 백 원짜리 치는 화투방에 가셔서 고스톱을 치셨다


가끔은 친언니(신랑의 이모), 두 분의 올케언니(신랑의 큰, 작은 외숙모)가 집으로 오셔서 아버님까지 가세해서 다섯 분 이서 광 팔아 가며 고스톱을 즐기셨는데  대부분 날을 넘기기 십상이었고, 내 기억에 최장 2박 3일을 쉬지 않고 치신 적도 있다. 나이 든 노인네들이 어떻게 2박 3일을 치겠냐 하겠지만 1명이 방으로 자러 들어가거나 식사를 간단히 준비하거나 하는 식으로 로테이션을 이루며 몇 날 며칠을 치신게  여러 번 있었더랬다


아무튼 시아버지가 입원하시고 엄중한 코로나 시국이라 병문안도 안되던 때이니 시이모와 시외숙모들은 아버님 핑계로 모이긴 했으나 환자 얼굴은 볼 수 조차 없었고,  심심한데  몇 시간만 치자 하며 화투판을 벌이셨다

코로나와 집안에 중환자가 있다는 마음의 부담 때문인지 이전처럼 길게 이어지지는 못하고 판은 몇 시간 안에 끝났고 다들 댁으로 돌아가셨다.

당연히 집에 계시겠거니 했다가 건너가 보니 집은 텅 비어 있고 몸에 부적처럼 갖고 다니시는 핸드폰과 지갑마저 집에 있으니 놀라 집 주변을 찾아다녔다. 남편은 왼쪽길로 나는 오른쪽길로, 때마침  잠시 들린 시누는 위쪽 골목으로. 더운 6월의 저녁은 놀란 마음에 서늘할 정도였다

안 되겠다 싶어 112에 신고를 하였고 금세 순찰차가 집 앞으로 도착하였다. 치매환자가 사라졌다고 하니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입고 계신 옷은 어떤 모양인지, 색상은 어떠한지 물어봤는데 당황한 마음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때 떠오르는 게 거실을 비추고 있는 홈캠이었다. 몇 달 전부터 거동이 점점 불편해 지신 시아버님이 혹시 낙상이라도 하실까 봐 짬짬이 들여다보려고 노인네들 거실에 홈캠을 설치해 놓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홈캠에서 시어머니의 마지막 인상착의를 경찰에게 바로 보여주려고 화면을 열었다가 아뿔싸...

할머니 4분이 거실에 앉아서 고스톱을 치는 게 마지막 녹화영상이었으니 어쩌랴..

모른 척하고 머리 하얗고 알록달록한 웃옷에 빨간 바지를 입은 할머니를 짚으며 이 분이라고 하였고, 마스크 때문에 확인은 못했지만 왠지 웃고 있는 듯한  경찰은 지구대에 인상착의를 전송하면서   순찰차들이 관내 순찰 중 예의주시하며 찾아본다 하였다

경찰이 막 돌아서서 순찰차에 올라타려는데 골목 코너에서 방금 전 말한 인상착의의 할머니가 생글생글 웃으며 나타나 경찰이 왜 집 앞에 있냐고  되물으시는데...


사건이 일단락되고 안전드림 앱인가 뭔가에 치매어르신 사전 등록까지 해놨는데 그 이후로 치매증상이 조금씩 심해지신 시어머니는 강박증상과 무서움 때문에 절대 혼자서 집 밖으로 나가신 일이 없으시다.

(그때 시어머니는 거의 간 적이 없는 동네 놀이터 쪽으로 운동을 다녀오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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