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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아닌 제인 Jun 29. 2024

명랑한 명여사의 치매 수첩

1-3. 보들보들 부들부들은 못 참지

시어머니의 취향은 확고하다.

천으로 된 물건들(옷, 이불 등)은 색이 화려하거나 깨끗한 흰색, 원단은  부드럽거나  매끈한 종류를 좋아하신다


데이케어에 가고 안 계실 때 이제는 작고 낡아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옷들로 가득 찬  어머니 옷장을 정리해 보니 날씬해 보이기 위해 선택한 까만색 옷들조차 어딘가에는 반짝이가 달려있었고, 힘없이 축축 처지는 부들부들한 원단의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스카프나 목도리는 거의 없었는데 몸이 날렵했었던  만큼 성격도 후다닥 하시는 양반이라 그런 종류의 액세서리는 번거로우셨나 보다


효자 아들은 일주일 내내 데이케어에 갇혀 지내는 엄마가 불쌍하다며 날씨와는 상관없이 주말마다 온 식구를 차에 태우고 나들이를 다녔다

추운 겨울 옆좌석에 앉은 딸아이의 하얀 밍크털 같은 플리스 장갑을 보시며

'너 되게 예쁘고 보드라운 거 꼈다~~'하며 문질문질

딸아이는 손에서 빼면서 '할머니 껴볼래?"

'아냐,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쫙 펴진 손은 이미 장갑을 마중 나와 있었다


차에서 내려 대공원 주차장에서 찬바람을 느끼시니 딸아이 보고

 '넌 추운데 왜 이런 장갑하나 안 끼고 다니냐'며 보슬보슬  장갑을 자랑하셨다


2주 후 한나절  시누네  갔다 온 시어머니 손에는 보드라운 다른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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