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 다섯 번째 장 : 꿈-재료와 꿈-출처
꽃이 만발했던 눈부신 어느 봄날. 뭐가 그리 고단했는지, 소파 위에서 까무룩 낮잠에 빠진 나는 가위에 눌리며 꿈 하나를 꾸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계속 두드린다. 쾅쾅쾅 쾅쾅쾅. 너무 시끄럽다. 꿈속의 나는 현관문 안쪽에 서서, 누구세요? 묻는다. 에미야 나다. 엥? 우리 어머님 목소리와는 완전 다른데. 어떤 노인네인지 집을 착각하셨군. 그러는 사이, 문 아래 틈새로 뭔가 쑥 넘어온다. 선물? 검정색 핸드백이다. 그런데 그 옆으로 그런 비슷한 가방이 두 개나 더 놓여 있다. (가방들이 예뻐 보이진 않는다) 꿈속의 내가 추측하기를, 이 분이 나 없을 때 벌써 두 번이나 더 여기로 (잘못) 왔었구먼. 당신이 찾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나는 당신 며느리가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문을 열려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아서 애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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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꿈-재료를 최근의 '사소한' 체험들에서 찾아낸다. 나도 따라서, 꿈의 출처를 찾기 위해 최근의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 시어머니 - 낮잠 자던 바로 그날 오전에,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했다. 말 수 적은 시아버지와 적적하게 지내시리라는 염려에, 나는 주기적으로 어머님께 전화를 드린다. 이제쯤 전화드릴 때가 되었다 싶었는데, 시부모님이 꽃놀이 가셨다는 걸 (가족톡방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염려할 만큼 적적하게 지내시는 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시어머니는 (아들이나 손주 걱정을 할 뿐) 실상 며느리가 어찌 지내는가 하는 걱정 따윈 아마 전혀 안 하실 텐데, 나는 왜 쓸데없이 시어머니 걱정한다며 착한 '척'을 하고 있나. 나도 꽃구경이나 한 껏 하면서 자신이나 잘 돌보자,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에 떠올랐다.
@ 세 개의, 검정, 가방 - 프로이트는 꿈에 보이는 가방을 주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으로 해석한다. 어떤 '남성'의 꿈에 나타난 검은 가방 두 개를, 그가 최근에 만났던 두 명의 흑인 여성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물론 내 주변에도 세 명의 여성이 있기는 하다. 같은 집에 친정엄마와 딸 둘이 함께 살고 있으니, 나는 세 개의 가방 - 3명의 여성을 늘 마주하는 셈이다. 또,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시누이도 셋이니, 그쪽도 세 개의 가방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중 아무도 '검지' 않다! 프로이트식의, 성적 해석이 이 꿈에는 좀 안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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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기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들고 나온 손가방을 보고 특이하다고 말했다. 가방의 입구가 세 군데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꿈속 가방과 3이라는 숫자가 뭔가 통하는 것 같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가방은 검은색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내겐 검정색 가방이 세 개 있다.
아주 커다란 검정 가방 하나.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 나는 튼튼한 나일론 소재의 이 가방에 기저귀와 여벌 옷들까지 싹 다 담아 다녔다. 또 하나의 검정 가방은, 요즘 주로 도서관에 갈 때 들고 다니는 검정 백팩. 글쓰기를 위한 노트북과 함께, 오다가다 장 본 물건-주로 식료품-을 함께 넣어 다닌다. 마지막은 작은 핸드백인데, 학부모 모임에 들고 갈만한 게 없어서, 급하게 '당X마켓'에서 아주 싼 값에 구했다.
그러나 실상 세 가방 모두, 내 마음엔 쏙 들지 않는다. 처음 것은 크기도 너무 큰 데다 움직일 때마다 나는 나일론 마찰 소리가 듣기 싫다. 백팩은 겉에 주머니가 없는 것도 그렇고, 매고 다니다가 장 본 것을 넣을 때 특히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는 더욱더) 시간이 걸리고 불편하다. 마지막으로 핸드백은, 끈 길이도 어정쩡하고 자석으로 된 덮게가 한 번에 잘 여며지지를 않는다.
셋 다 나 자신의 선택으로 산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딱 들진 않는다. 나는 가방에 대해, 실상 일종의 패티시즘이라 할 만하다. 가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 가방을 기웃거린다. 내가 다른 가방에 자꾸 눈을 돌리는 이유는, 지금 가진 가방들이 전부, 항상, 어느 구석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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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꿈이 최근의 사소한 경험에서 받은 인상에서 비롯되지만, 그와 결합된 심리적 사건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말한다.
"꿈이 시시한 재료에 심리적 활동을 낭비한다는 주장도 반박해야 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낮에 우리의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꿈-사고도 지배한다. 우리는 낮에 생각하는 계기가 된 재료를 위해 꿈꾸는 노력을 기울인다."
어느 순간 내게 잠시 떠올랐던 '가방'이나 '시어머니'가 그냥 꿈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스쳐간 재료들은 내 무의식 속 변함없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고, 꿈은 그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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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꿈을 꾸고 그에 대해 해석을 시도한 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나는 어느 좁은 가방 매장 사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뱅뱅 돌면서 이 가방 저 가방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가진 모든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에 대한 깨달음이 왔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가방은 여성일 수도 있고, 융의 의견대로 여성성을 상징하는 원형일 수도 있다. 그 밖에 또 다른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동안 하나의 가방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핸드백은 책 넣으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고, 노트북용 백팩은 장 볼 때 쓰는 가방이 아니다. 큰 가방이라고 물건을 이것저것 담으면, 모양이 예쁘게 잡히지 않고 가방 속도 뒤죽박죽이 된다. 꿈속 가방이 모두 '검은' 것은, 아마 나 자신의 무리한 요구 탓이 아니겠는가.
내가 직접 (만능의) 가방을 만들지 못할 바에는, 이미 있는 가방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사용처를 찾아주어야 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문득, 정말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아주 '밝은' 빛의 가방 하나가 내 눈앞에 뾰로롱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 가방을 소중히 집어 들고 집에 가져와 보니, 이미 집에 있던 모든 가방들도 죄다 소중해지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나는 가방 가게 앞을, 무심히 지나쳐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