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등우갈? 인생은 더덕처럼

– 더덕은 양방향이다.

by 웅토닌

더덕을 보면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올해 봄, 가족 숲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날이었다.

3월 첫째 주 토요일, 센터 마당의 목련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순간이었다.


햇살은 포근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거짓말처럼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목련꽃망울은 모두 빨갛게 얼어 있었다. 봄을 향해 힘껏 내민 생명이 하룻밤 사이

얼음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때 한 여고생이 나직이 말했다. “저 목련도 이번 생은 끝났구나… 나처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그 무거운 통계가 머릿속을 스쳤다. 요즘 아이들에게 죽음은 컴퓨터 ‘Delete’ 키를 누르듯, 그저 하나의 ‘종료’로 여겨진다는

기사 내용도 떠올랐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목련은 죽은 게 아니야. 조금 있으면 초록잎이 피어나고,

내년 봄엔 다시 흰 꽃을 피울 거야.”


그러고는 돌담에 말라붙은 더덕덩굴을 보여주었다. “이 더덕이 양손잡이인 걸 아니?”

아이의 눈이 커졌다.

3_290Ud018svc144ipmt1cwl8v_qj5d0d (1).jpg 더덕꽃과 잎

'갈등(葛藤)’이라는 말을 들어봤지? 그건 칡과 등나무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모습에서 비롯된 말이야. 왼쪽으로 감는 건 등나무(藤), 오른쪽으로 감는 건 칡(葛).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올라가니

언제나 부딪히고 엉키지. 그래서 ‘갈등’이라고 하는 거야.”

b_98iUd018svc1d0rtv63mcdsz_qj5d0d (2).png 제주 곳자왈 환상의 숲

“그런데 더덕은 달라. 한쪽이 막히면 반대쪽으로 감아 올라가. 왼쪽이 막히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이 막히면 왼쪽으로. 막히면 돌아가고, 길이 없으면 새로 길을 내지. 그게 더덕의 삶이야.”

아이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d_ab4Ud018svc8nd7rhhhxjnz_qj5d0d (2).jpg 더덕의 양방향

나는 말을 이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더덕처럼 살지 못해.

늘 한쪽으로만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부딪히고, 다치고, 포기하지. 하지만 더덕은 다르단다. 한쪽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아가잖아. 삶도 그래야 해.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가면 1등, 2등, 3등이 생기지만 자기 길에서 피면 모두가 1등이지.”


그 아이는 잠시 내 말을 곱씹더니 살짝 웃었다.

얼어붙은 목련이 다시 피어나는 듯한 미소였다. 그날 이후 나는 숲 산책 프로그램마다 이 더덕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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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등우갈(左藤右葛), 칡덩굴이나 등나무덩굴처럼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다 보면 막히고 갈등이 생기지만

더덕처럼 왼쪽으로도 가보고, 오른쪽으로도 가보고, 그래도 안 되면 양쪽으로 가보면 된다고.

또 담쟁이 덩굴처럼 모진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고 착 달라붙어서 가면 된다고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갈등은 사라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겨도 결국은 같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는 걸 우린 자주 잊고 산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때로는 붙어서라도 나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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