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초원 그리고 파란 하늘
CONTENT
프롤로그
제1화 7월 14일
제2화 7월 15일
제3화 7월 16일
제4화 7월 17일
에필로그
부록 – 몽골 여행 가기 전 알아야 할 것
몽골 여행의 시작
몽골, 일교차를 품은 대륙의 나라
델(Dell), 몽골을 입는다
계절을 달리 사는 나라, 몽골
몽골어의 유래 – 초원을 닮은 언어
몽골의 맛 – 초원을 담은 한 끼
몽골의 별 – 초원이 내어 준 밤하늘
몽골의 초원 – 단순함 속의 깊이
몽골에 말타기 – 초원을 달리는 자유
몽골에서 말 탈 때 꼭 알아야 할 안전수칙
몽골의 종교 – 초원 위의 믿음
프롤로그
하늘을 닮은 땅, 몽골에서
그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구름이 춤추는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단지 여행자가 아닌 배우는 순례자로 이 땅을 밟았습니다.
제주의 푸른 바다에서 시작된 걸음은, 김해를 지나 울란바토르에 닿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것은 척박함이 아닌,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사람들의 따스함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은 바람보다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그들의 눈빛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울고, 웃었던 기록입니다. 때론 강풍 속에서 흔들리며, 때론 푸르른 하늘 아래에서 숨을 고르며, 우리의 마음은 천천히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몽골이 스며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와 함께 몽골의 하늘을 바라보고, 그 땅을 딛고 서는 마음으로 이 여정을 따라오기를 소망합니다.
“바람과 흙, 말과 사람,
그리고 사랑이 흐르는 그 땅으로
함께 걸어갑시다.”
제1화 7월 14일
7월 14일
하늘의 나라로 가는 길 – 몽골탐방을 떠나며
여행이란 늘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법이다.
2025년 7월 14일, 나는 몽골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어젯밤부터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치 소풍 전날처럼 마음은 붕 떠 있었고, 오랜만의 해외여행은 그런 나의 마음을 더욱 불안정하게 흔들었다.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며, 막상 현지에선 꺼내 보지도 않을 짐들을 부지런히 가방에 욱여넣는 모습이 꼭 내 마음을 닮아 있었다.
아침에는 수영장에 다녀왔다. 몸을 물에 담갔다가 나오니 어찌나 개운하던지 긴장도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점심은 간단히 옥수수 하나면 충분했다. 아직 기내식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속을 비워두는 것도 여행자의 지혜 아니겠는가. (후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탄 비행기는 기내식이 나오지 않았다.)
제주 공항에는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 시간 덕분에 이렇게 글 한 줄 남길 여유를 누린다. 교인이 여비를 챙겨주시며 “같이 가시는 분들께 음식이라도 대접하라”라고 하셨는데, 그 따뜻한 마음이 참으로 감사했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잊지 않고 총무님께 송금했다. 마음이 참 편해졌다.
이번 몽골탐방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EAMC Conference 2025 – 제주-몽골 모빌리티의 기억”이라는 학술 대회를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박물관과 탐라 문화연구원이 함께 주최한 여정이다. 제주와 몽골의 기독교와 다문화적 공존에 대한 탐색이 주된 주제다.
미리 준비하며 몽골의 종교지형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생활 속 불교, 즉 불교와 토속신앙이 결합한 형태의 신앙을 지닌 나라다. 기독교가 뿌리내린 건 1990년대 이후이고, 그것도 선교사들의 헌신 위에 겨우 싹을 틔우고 있다.
몽골에 여러 차례 다녀온 분들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나는 처음 만나는 이들처럼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공항에 모였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다른 ‘몽골’을 품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는 별빛을 담은 사진 한 장을, 또 누군가는 조용한 사색의 글 한 편을, 어떤 이는 그저 숨을 고르고자 하는 쉼을, 또 누군가는 잣과 스카프 같은 기념품을. 나는 단지 이 여정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조금은 궁금할 뿐이었다.
제주에서 김해로 가는 비행기 창 너머로 거가대교와 김해평야가 보였다. 평야라는 단어는 몽골의 대초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내가 만날 초원은, 아마 이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적막하며, 말 그대로 ‘하늘 아래의 땅’일 것이다.
부산에 도착해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해준 양지 곰탕을 먹었다. 이처럼 여행길에 마주치는 작은 헌신들이 얼마나 깊은 감사를 주는지 모른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다. 내가 섬김을 받으며, 또 누군가를 섬기며,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여행에는 늘 뜻하지 않은 일이 뒤 따른다.
이번엔 ‘물티슈’였다. 선물용으로 준비한 물티슈 한 상자를 가방에 고스란히 담았는데, 항공 규정상 기내에선 1개만 허용된단다. 난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물티슈는 버리기로 했다. 다행히 다른 이들의 수화물에 일부를 분산시킬 수 있었다. 여행은 이런 작은 우발사건을 통해 ‘빠른 판단과 유연한 대처’라는 또 다른 배움을 선물한다.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한 건 밤 10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서로 먼저 내리겠다고 서두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차피 모두 내릴 텐데 말이다.
몽골의 첫인상은 ‘낯섦’이었다. 입국심사대 앞의 긴장된 분위기, 무표정한 직원의 얼굴, 하지만 그 너머에 흐르는 질서와 체계, 그것이 이 나라의 첫 얼굴이었다.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
공항에는 미리 연락한 선교사님이 나와 계셨다.
그분을 보는 순간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아는 이 하나가 이국땅에서 주는 안정감이란 참 크다. 선교사님은 1992년 코이카를 통해 이곳에 들어오신 분으로, 최근엔 『몽골 비사』라는 책까지 출간하셨다. 몽골 복음화율이 0%일 때 이곳을 선택한 믿음과 용기, 그가 걸어온 길은 마치 한 권의 답사기이자, 한 편의 신앙 고백서였다.
우리가 머물 숙소는 독채 펜션처럼 아늑했다. 이곳에서 이틀을 머문 후, 별빛이 쏟아지는 국립공원에서 캠프 숙박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는 조용히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이 여정 가운데 당신이 숨겨 두신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내가 걸어갈 몽골의 길 위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게 하소서.”
제2화 7월 15일
7월 15일
울란바토르의 아침, 그리고 '기억의 회복 탄력성’
평소 습관이 그래서인지 오늘도 누구보다 먼저 눈을 떴다.
나도 코를 곤다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들은 소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다는 표현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했다. 각기 다른 높낮이의 코 고는 소리가 동시다발로 울려 퍼지는데, 이 낯선 몽골 땅까지 오는 여정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음을 실감케 한다.
거실로 나와 잠시 묵상을 드렸다. 그리곤 가방에서 챙겨온 『요즘 역사』라는 책을 펼쳤다. 오늘 읽은 부분은 갑오개혁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박영효.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었다.
그는 갑오개혁 이후 제주로 유배되었고, 거기서 돌에 맞아 쓰러졌던 이기풍 목사를 구해준 인물이다. 나아가 그가 마련한 자금은 성내교회의 훈련청 매입의 밑거름이 되었고, 제주 선교의 씨앗을 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정작 박영효는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지만, 개혁의 열망 속에 개신교의 힘을 누구보다 절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옛 훈련청 – 박영효와 이기풍
시간이 흐르자 거실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역시, 목회자들은 다르다. 새벽을 깨우는 이들답게,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다.
첫날 아침
이날 아침은 단출했다. 마들렌과 요구르트, 삶은 달걀, 사과 반쪽, 오렌지 한 조각,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하지만 그 아침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풍성한 영적 잔치였다.
아침을 마치고 차에 올라 울란바토르 시내로 향했다. 선교사님께서 놀란 표정으로 한 말씀 하셨다.
"여기 이렇게 한산한 도로는 보기 힘든데요?"
나담 축제 기간이라 많은 사람이 도시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교통 체증 없이 여유로운 아침 드라이브를 누릴 수 있었다.
첫 방문지는 선물 가게. 여행길에 빠질 수 없는 가벼운 쇼핑을 마친 후, 몽골 국제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박물관은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몽골제국의 흥망성쇠, 그리고 현대 몽골의 미래까지를 조망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몽골은 한때 동유럽의 폴란드와 헝가리, 튀르키예를 넘고, 한반도와 일본 오키나와, 베트남과 라오스까지 영향을 미쳤던 초강대국이었다.
몽골 국립 박물관에 있는 몽골의 세계 정복 지도
그들의 자부심은 단순한 민족적 자긍심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검증된 제국의 기세였다.
내 눈을 끈 것은 화려한 갑옷도, 찬란한 유물도 아닌 농기구들이었다. 쟁기, 탈곡기, 호미. 제주에서 흔히 보던 것들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 농기구들이 몽골에서 제주로 온 것일까, 아니면 제주의 것이 몽골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쩌면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몽골과 제주는 환경을 닮았고, 그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지혜는 서로를 닮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몽골 국립 박물관에 있는 농기구의 모습
그 순간 깨달았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적응'이다.
삶의 조건을 이겨내기 위한 생존의 지혜, 그다음엔 미(美)를 향한 감각의 눈뜨기, 그리고 마지막엔 영혼의 안식처를 찾으려는 본능이 남는다.
신앙은, 바로 그 마지막의 여정에 놓여 있는 길이다.
점심은 정성 어린 샤부샤부였다. 선교사님께서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지셨다.
"여기서 몽골 사람은 세 분입니다. 한번 맞춰 보시겠어요?"
제일 먼저 지목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러고 보니 이마와 눈매가 현지인들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슬쩍 웃음이 났다. '이방인 같지 않은 이방인', 오늘의 내 별명이다.
오후에는 '제주-몽골 모빌리티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현지 선교사님들과의 세미나가 열렸다.
3시간을 넘기는 시간이었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몽골과 제주의 종교, 문화, 역사, 그리고 향후의 선교적 방향까지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건, '지역민과 함께 뒹굴 수 있는 선교'라는 말이었다. 선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으로 들어가 같은 땅을 딛고 함께 웃고 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나는 오늘, 처음 듣는 한 단어에 깊이 매료되었다.
Memory + Resilience = "메모리질리언스"
기억에도 회복 탄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이 아닐까? 상처받은 기억도, 반복된 실패도, 언젠가 복음의 불씨를 만나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제주의 복음화 그리고 몽골의 복음화. 이 두 장소에 심긴 기억의 씨앗들이 언젠가 부활의 봄을 맞이하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했다.
제주연구원 ‘탐라’와 몽골 선교사님과의 학술 대회
저녁은 한식 뷔페였다.
푸짐한 상차림도 좋았지만, 광장으로 나와 몽골의 시원한 밤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때 느낀 그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노천카페에서 마신 차 한 잔. 그 시간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더없이 따뜻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몽골 직원들이 나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려는 걸 보니, 그들 눈에 나는 진짜 몽골인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현지인은 현지인을 알아보는 걸까? 하하하.
오늘은 이렇게 유쾌하고, 묵직하고, 은혜로운 하루였다.
노천카페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제3화 7월 16일
7월 16일
몽골의 여름, 게르에서 별을 보다.
몽골의 하늘과 드넓은 목초지
몽골의 여름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기후의 ‘최적점’이 어디인지를 몸으로 가르쳐준다. 낮엔 해가 있어 덥지만, 그늘로만 들어가면 시원하고 쾌청하다. 제주의 무더운 습기와는 전혀 다른 맑은 공기와 드라이한 바람. 아, 이래서 사람들이 몽골을 자유의 나라라 부르는구나 싶다.
우리 같으면 날이 좋으니 일을 하자고 하겠지만, 몽골 사람들은 정반대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무슨 일을 하냐, 쉬어야지.” 이들의 철학은 단순하다. ‘좋은 날엔 좋은 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초기에 몽골에 입국했던 한 선교사님은 8월의 초입, 행정업무를 보려다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고 했다. 관공서에 가도, 학교에 가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어디 갔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말은 단 하나. “날이 좋아서요.” 이유도 이유가 아니다. 그냥 날이 좋아서 쉰다는 것이다. 이처럼 몽골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기에, 이 찰나의 여름은 생존과 쉼, 두 가지 모두를 품어야 하는 시간이다. 영하 40도를 버텨야 하는 겨울을 앞두고, 그들은 하늘과 땅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울란바토르를 떠나기 전, 우리는 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베다니 교회를 방문했다. 사실 나는 제주에서 출발할 때 조심스럽게 기타 피크를 가방에 챙겨왔다. 기타 실력이야 변변찮지만, 몽골 땅에서 한 곡이라도 찬양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교회 본당에 들어서자, 내 눈길은 자연스레 기타로 향했다. 말없이 강대상으로 올라가 기타를 들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손가락이 줄 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흘러나온 찬양.
“이곳에 생명 샘 솟아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
가슴이 저렸다. 기타 줄을 잡은 손이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졌다. 우리는 몽골을 위해, 그리고 제주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주님, 민족과 열방 가운데 복음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김봉춘 선교사가 섬기고 있는 몽골 베다니 교회
점심은 익숙한 맛인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해결했다. 근처 CU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순간, 여기가 정말 몽골이 맞나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몽골의 CU
울란바토르는 한국적인 것들이 곳곳에 스며 있는 도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몽골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나라는, 거대한 초원과 함께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부심을 품고 있는 나라다.
울란바토르 한복판, 분주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간등사원은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몽골 사람들은 이곳을 ‘간단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간등테그친렌히드’, 곧 ‘완전한 기쁨을 가진 위대한 곳’이라는 뜻이다.
간등사원을 배경으로
간등사원은 1809년에 착공해 1913년에야 완공되었는데, 몽골 불교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1930년대 공산 정권의 종교 탄압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원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더 깊다.
지금도 150여 명의 라마승이 머물며 불경을 읊고 있는 이곳에서, 나는 마치 세월의 결을 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티베트 불교의 정신과 몽골 민중의 신앙이 깃든 이 공간은 단지 종교 시설이 아닌, 몽골인들의 영혼의 안식처였다.
몽골 사람들은 간등사원에서 기도하면 다음 생에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죽기 전 꼭 한 번 이곳에 들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몽골의 얼굴을 보러 간다. 목적지는 테를지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빠져나오자마자 사방이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산이 있고, 초원이 있고,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강이 있다. 여기도 참 좋다고 했는데, 이곳을 이미 다녀간 이들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말한다.
중간에 멈춰 선 곳은 바로 칭기즈칸 동상. 무려 40m. 드넓은 초원 한복판에 세워진 동상은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그 아래엔 칭기즈칸의 어머니 동상까지 함께 세워져 있었다. 몽골인의 위대한 혈통은 단지 정복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모태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부터가 이미 하나의 문화와 역사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었다.
동상 꼭대기까지 올라가 초원을 내려다보았다. 와, 이쯤 되면 시야가 좋을 수밖에 없다. 사방이 막힘없는 그 풍경을 보고 자란 눈과 가슴은, 우리가 도시에서 지닌 시야와는 차원이 다르리란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연을 닮는다면, 이곳 사람들의 눈은 늘 수평선 끝을 응시하는 눈이겠다.
밤이 되자 우리는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들이 말하는 전통 유목민의 집이다. 손으로 조립하고, 해체하며 이동하는 집이 바로 게르다. 게르 하나가 이들의 정체성과 삶을 설명해 준다. 정주하지 않는 삶, 그러나 그 안에서도 집을 짓는 삶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저녁으로 양고기가 나왔다. 혹시나 냄새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카레와 함께 삶아진 양고기는 부드럽고 풍미가 좋았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사실, 이 양고기는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몽골에선 고기를 구워 먹지 않는다. 연기로 인해 적에게 노출될 수 있고, 불의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삶는다는 것은 단지 요리법이 아니라, 유목민의 생존법이자 전략이다.
식사 후 소화를 겸해 언덕에 올랐다. 신선한 공기가 폐 속으로 깊게 들어왔다. 몽골의 공기는 깨끗하다. 마치 ‘숨을 쉰다.’라는 본질적인 행위가 이곳에선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밤하늘.
아, 이 밤하늘을 보지 않고 몽골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또렷한 북극성. 빛 공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밤하늘에 별들이 뿌려져 있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단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없다고. 우리가 그것을 못 볼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인간이 만든 것에 갇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망각한 채 살고 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양이 절로 나왔다. 오늘 밤, 나는 잠이 잘 올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밤을 그냥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밤이다.
몽골 하늘에 떠 있는 북두칠성
제4화 7월 17일
7월 17일
몽골에서의 마지막 아침 – 떠오르는 태양이 나를 바라보는 듯
몽골의 아침은 유난히 일찍 시작된다. 새벽 4시가 채 되기도 전에 하늘이 희끗희끗해지고, 5시가 되면 태양이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의 일출 시각은 정확히 5시 12분. 게르 옆에서 풀을 뜯어 먹는 말의 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은 이미 훤하다.
게르 앞 노천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묵상해 본다. “하나님, 오늘은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계시는가요?”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지만, 이내 웃음이 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뭘 기대하시겠는가. 그저, 당신이 만들어 놓으신 이 장엄한 자연을 감탄하며 찬양하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나는 숙소 뒤편 언덕을 올랐다.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눈에 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게 웬걸. 눈으로는 차마 마주할 수 없을 만큼 눈 부신 태양이 렌즈를 통해 나를 응시하고 있다. 마치 내가 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몽골의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몽골의 대지를 말 위에서 직접 느껴보는 시간.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 타보는 말이라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했다. 무엇보다 낙마 사고가 있다는 말에 잔뜩 몸이 굳었다.
말을 타러 가는 길, 양옆으로 펼쳐진 초원과 바위산들이 눈을 압도한다. 그중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마치 바위 하나가 기도하는 형상으로 보였다. 가이드는 ‘기도하는 바위’라고 소개했지만, 옆에 있는 이는 책 읽는 사람 같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고스톱 패를 들고 있는 듯하다고 한다. 같은 바위를 두고 해석이 제각각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상이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과 경험의 범주 안에서 사물을 해석한다. 문제는, 힘 있는 사람이 자신의 해석을 ‘진리’로 만들어 강요할 때 발생한다. 사실의 차이가 아닌 해석의 차이를 고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해석이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하되, 그 해석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말타기 전에 안내자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은 것도, 실은 해석보다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다행히 말은 생각보다 순했고, 가이드들이 말곁을 지켜주니 큰 걱정 없이 초원을 누빌 수 있었다. 작지만 튼튼한 말 위에서 1시간 남짓, 내 몸을 맡긴 채 말을 타고 흐르는 바람을 느끼는 그 경험은 쉽게 다시 맞이할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탄 말이 다른 말보다 작아 보였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말에게 괜스레 미안해졌고,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 올 땐 살 좀 빼고 올게.” 물론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장담 못 하지만 말이다.
말을 타고 돌아와 먹은 몽골식 간식은 기름에 튀긴 고기만두 같았다. 느끼함이 없진 않았지만, 콜라와 함께하니 제법 먹을만했다. 음식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식사를 했던 장소였다. 계곡 옆, 졸졸 흐르는 물가. 우리 일행은 마치 1980년대 강촌 MT처럼 수박 화채를 만들어 먹고, 물가에서 신발을 벗고 노닐며 시간을 보냈다. 찬양이 흘러나오고, 누군가는 율동까지 곁들였다. 어르신들의 얼굴에 추억이 겹쳐지며 정겨운 미소가 번졌다. 그 시절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테를지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호텔에서 마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여느 고급 카페 못지않은 여유로움을 선사했다. 여행 막바지, 피곤한 얼굴들에도 눈빛만은 반짝였다. 그 속에서 게르에 대한 이야기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그 단어가 히브리어에서 나그네, 유목민, 객(客)이라는 뜻을 가진다는 사실.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연결되는 이 의미가 참으로 흥미로웠다.
마지막 저녁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고급식당에서 이루어졌다. 메뉴는 샐러드, 피자, 파스타 등 서양식과 몽골 전통음식이 혼합된 형태였는데, 막상 주문하려니 치즈가 떨어져 피자가 안 된단다. 쇠고기 샐러드도 안 되고, 뭐가 되는지 모르겠는 식당에서 나는 묘한 자신감으로 유창한(?) 영어로 시저샐러드, 까르보나라 파스타, 프라이드 치킨과 프렌치프라이, 그리고 콜라 두 잔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 콜라가, 마치 8.15 콜라 같은 맛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마지막은 선교사님이 주문해 주신 양고기 왕만두로 마무리. 느끼했지만, 만두를 워낙 좋아하는 나로선 완벽한 마무리였다.
식사를 마친 후 식당 주변을 산책하며 이 낯선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돌 하나, 나무 하나, 구름 한 점까지 마음에 담아두려 애썼다.
공항으로 가는 길, 우리는 서귀포중앙교회가 세운 현지 교회를 들렀다. 그곳에 계신 볼트 목사님은 우리의 방문이 무척이나 반가우셨던 모양이다. 몽골의 현재 상황과 교회의 비전, 유학 시절 이야기, 딸의 이야기까지… 그의 간증은 끝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어느 순간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과연 언제 끝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의 밝은 미소, “나 한국에 일하러 간다.”라는 말을 웃으며 내뱉던 그 유쾌한 표정은 지금도 선하다. 그 모습 하나로도 충분했다. 복음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알아주는 이 없더라도, 묵묵히 걷는 순례자의 여정. 몽골의 하늘 아래, 그 순례의 길 위에 우리도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에필로그
제주의 바다 앞에서 몽골을 그리다.
비행기가 구름을 가르며 한반도에 진입할 즈음, 깊은 잠에서 눈을 떴다. 꿀잠이라 표현하기엔 너무나 평안하고 안온한 잠이었다. 눈을 뜨자 비로소 내게 주어진 몽골 여정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과 함께 올랐던 그 ‘변화산’의 여정이었다.
울란바토르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 테를지의 푸른 초원 위에서,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마음으로 들었다. 우리와 동행했던 김봉춘 선교사님과 박대훈 선교사님, 그리고 현지에서 목회를 이어가는 목사님들의 존재는 마치 변화산 위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 같았다. 살아 있는 신앙의 전통이 그들의 몸을 통해 이 땅 위에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실로 행복했다. 정말 즐거웠고, 진심으로 몽골의 그 게르 한 채를 지어 그곳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하늘과 맞닿은 평야, 소리 없는 바람, 그리고 불편하지만 자유로운 그 삶. 그 속엔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어느덧 김해공항 활주로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몽골의 초원이 아니었다. 덥고 습한 한국의 공기, 콘크리트로 빽빽하게 채워진 도시,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이곳엔 초원의 바람도, 맑은 별빛도 없다.
그렇다, 변화산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다시 제주다. 바람과 파도, 일상과 분주함이 교차하는 곳. 이곳에서 또다시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지고, 다투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 안간힘 속에서 주님이 떠오른다면, 이 제주의 바다도 또 하나의 변화산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변화산이란, 특별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마음의 높이와 시선의 방향이 결정하는 곳이다.
누군가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다. 그것은 참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감히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기록한 것만 남는다.
몽골에서의 시간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기록했고, 그 기록은 이제 나의 역사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나는 주님을 만났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아주 기쁘고, 또 감사하다.
탐방은 끝났지만, 이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제주에서 시작된 탐라의 마음은, 몽골을 거쳐 다시 누군가를 향해 흐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부 록
몽골 여행 가기 전 알아야 할 것
몽골 여행의 시작
여행의 시작은 공항에서가 아니다. 항공권을 예약하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그 설렘은 한 장의 항공권 예약에서 시작해, 숙소를 고르고, 지도를 펼쳐 동선을 짜고, 하고 싶은 활동을 채워 넣으며 구체화한다. 여행자에게 루트를 정하는 일은 단순한 일정 정리가 아니다.
걸음의 속도, 교통편, 숙소 위치, 그리고 그날 기온까지 고려해 동선을 계획하는 그 순간이 바로 여행 일부다.
몽골 여행은 특히 철저한 준비가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기후와 지형, 교통의 특수성, 예측할 수 없는 변수까지. 이 모두가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각종 할인 정보를 찾아 예산을 절약하고, 여정의 흐름을 자신에게 맞게 설계해 나가는 과정은 오히려 소풍 전날의 설렘을 닮았다.
몽골, 일교차를 품은 대륙의 나라
몽골 여행의 가장 좋은 시기는 단연 7월에서 8월, 짧은 여름철이다. 나담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기도 하고, 푸른 초원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때다. 하지만 몽골의 여름이라고 해서 한국의 여름을 떠올리면 안 된다.
몽골은 평균 해발고도 1,580m, 대륙성 기후 특유의 큰 일교차를 지닌다. 낮에는 강렬한 햇살 아래 반소매 티셔츠로도 덥지만, 아침과 저녁이면 긴 팔이나 얇은 점퍼가 필요하다. 때로는 한밤중 기온이 영하 가까이 떨어지는 일도 있다. 그래서 몽골에서는 하루에 사계절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여행 가방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고민된다면, 이렇게 정리해보자.
✔ 낮: 반소매, 얇은 바지
✔ 아침·저녁: 긴소매, 가벼운 겉옷
✔ 밤: 폴리스나 패딩류
초원의 바람과 햇살 앞에서는 어떤 옷도 위화감 없이 스며든다. 기능성 아웃도어, 트레이닝복, 심지어 정장까지도 초원이라는 배경 덕에 모두 그럴듯하게 보인다. 몽골에선 패션테러리스트조차 주인공처럼 보이곤 한다.
델(Deel), 몽골을 입는다
몽골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입는 경험’을 추천한다. 바로 전통의상인 ‘델(Deel)’을 입어 보는 것. 델은 수천 년을 이어온 몽골 유목민의 전통복식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즐겨 입는다.
델은 긴 외투처럼 생겼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여미어 허리띠(사시)로 고정한다. 목은 높게 감싸고 소매는 길다. 천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데, 여름엔 면이나 실크, 겨울엔 울이나 양모 안감이 들어간 옷으로 만든다. 특히 겨울용 델은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도 유목민들을 지켜주는 실용적인 옷이다.
축제 때 입는 델은 색감과 자수가 매우 화려하다. 관광객을 위한 체험용 델도 많아 울란바토르의 재래시장이나 기념품점에서 손쉽게 빌리거나 구매할 수 있다. 초원에서 델을 입고 말을 탄다면, 단순한 여행자가 아닌 몽골이라는 삶의 풍경 속 일부가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계절을 달리 사는 나라, 몽골
몽골의 사계절을 한국의 기준으로 나누는 건 어렵다. 몽골은 분명 네 계절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아는 계절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현지인들은 설 명절인 차강사르(Цагаан сар)가 지나고 할미꽃이 피는 2월을 ‘봄의 시작’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울란바토르는 영하 30도를 오르내린다. 눈 쌓인 거리와 날카로운 바람 사이로 봄기운을 말하는 그들의 감각은, 자연 속에서 살아온 유목민의 오랜 체감이다.
한국인의 시선에서 몽골의 진짜 여름은 6월부터 8월까지다. 특히 7월 중순, 몽골 최대의 축제인 나담(Naadam)이 열리는 시기는 하늘과 초원이 가장 푸르다. 이 시기는 몽골을 여행하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축제 당일 울란바토르 시내는 극심한 교통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축제 기간엔 아예 시내를 벗어나 초원이나 인근 도시로 나들이를 계획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8월 말부터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9월이면 우리나라의 가을 중후반과 같은 기온이 느껴진다. 드물게는 이맘때 첫눈이 내리기도 한다. 10월부터는 본격적인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며, 11월~다음 해 3월까지는 긴 겨울이 계속된다.
몽골의 겨울은 아름답지만 험하다. 특히 수도 울란바토르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 중 하나로 꼽힌다. 해가 지면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고, 난방을 위한 연료 사용으로 인해 대기오염도 심각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겨울에도 몽골은 멈추지 않는다.
도전을 즐기는 여행자라면 겨울 홉스골 호수(Hövsgöl Nuur)를 향한 여정에 도전해볼 만하다. 꽁꽁 언 호수를 걷고,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유목민의 따뜻한 게르 안에서 모닥불을 마주하는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몽골어의 유래 – 초원을 닮은 언어
몽골에는 두 개의 문자가 있다. 하나는 칭기즈칸이 도입한 위구르 문자로 세로쓰기의 고어이다. 하지만 지금 사용하는 문자는 과거 사회주의 시기에 정착된 러시아의 키릴문자이다.
몽골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유목민의 삶과 초원의 정서를 품은 문화 그 자체가 되었다.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로 분류되며, 투르크어나 퉁구스어, 한국어와도 일정한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형태의 몽골어는 13세기 칭기즈칸 시대에 등장한 『몽골 비사(비밀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문헌은 몽골어의 문법과 어휘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당시에는 몽골어를 위구르 문자나 파스파 문자, 그리고 후에는 전통 세로쓰기 몽골 문자로 표기하게 되었다. 이 문자들은 오랜 시간 유목 사회와 함께 살아 숨 쉬며 몽골어의 모습을 형성해 왔다.
몽골은 1941년, 소련의 영향을 받으며 전통 문자를 버리고 러시아식 키릴문자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몽골의 공식 문자는 키릴문자 기반의 몽골어가 되었고, 모든 공문서와 교육, 방송도 이에 맞추어 운영되도록 바뀌었다.
반면 중국 내 내몽골 자치구에서는 여전히 전통 세로쓰기 몽골 문자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양 지역 간 언어 표현에도 다소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몽골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언은 할하(Khalkha) 방언으로, 표준어로 채택되어 교육과 행정에 사용되며, 몽골인의 약 80%가 이 방언을 모국어로 사용하게 된다.
이 외에도 오이라트, 부랴트, 차하르 등 다양한 지역 방언들이 존재하며, 각각 고유한 억양과 어휘가 있고, 현대 몽골어에는 러시아어의 흔적이 깊이 스며들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러시아어 машина에서 온 машин (마신)이 되었고, 교육이나 정치, 기술 관련 용어는 대부분 러시아어 차용어로 구성되게 되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영어 표현이 유입되는 현상도 퍼지고 있으며,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일상 대화 속에서 외래어가 자주 사용되곤 한다.
몽골 정부는 최근 전통 문자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2025년부터는 모든 공식 문서를 전통 몽골 문자와 키릴문자를 함께 적도록 법제화되었으며, 학교에서도 다시 고전 문자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반면 중국 내 내몽골 지역에서는 몽골어 교육이 축소되고, 중국어 위주의 정책이 강화되면서 문화적 충돌과 저항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몽골어가 단지 언어가 아닌, 정체성과 문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어
몽골어
발음
안녕하세요
Сайн байна уу?
[Sain baina uu?]
감사합니다.
Баярлалаа
[Bayarlalaa]
네 / 아니요
Тийм / Үгүй
[Tiim / Ügüi]
얼마에요
Энэ хэд вэ?
[Ene khed ve?]
몽골의 맛 – 초원을 담은 한 끼
몽골의 음식은 유목의 역사와 초원의 생명력을 품고 있다.
드넓은 초원을 따라 이동하며 가축을 기르고, 계절에 따라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은 음식 문화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그래서 몽골의 식탁은 화려하기보다 직관적이고 실용적이며, 영양을 우선으로 구성되는 특징을 가진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고기와 유제품이다. 특히 양고기와 소고기, 말고기 등은 몽골 음식의 중심이 되며, 단백질과 지방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조리된다. 이는 몽골의 기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극심한 일교차와 혹한 속에서도 체온을 유지하려면 열량이 높은 식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음식은 바로 호쇼르(Хуушуур)와 부우즈(Бууз)이다.
호쇼르는 고기만두를 납작하게 눌러 기름에 튀긴 음식으로, 외형은 한국식 튀김 만두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더 크고, 안에는 육즙 가득한 다진 양고기나 소고기가 들어간다. 나담 축제나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 대표 음식이기도 하다.
부우즈는 蒸し(찜) 방식으로 조리되는 찐 만두이며, 양고기 본연의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유목민 게르에 초대받아 식사할 경우 가장 먼저 대접받는 음식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츠루벨(Цуйван)이라는 고기 볶음면, 고기 국수 수테차이(Сүүтэй цай)와 함께 먹는 전통 빵 등 다양한 형태의 고기 요리가 여행자의 식탁을 채우게 된다.
몽골의 또 하나의 식문화 중심축은 유제품(цагаан идээ / 차간 이데)이다.
말젖, 소젖, 염소젖 등을 발효시키거나 말려 만든 다양한 유제품들은 유목민의 건강을 지켜주는 귀한 자원이 되어 왔다.
✔ 아롤(Aarul): 발효시킨 우유를 말려 만든 치즈로, 단단하고 시큼한 맛이 특징이다. 이빨로 부숴서 오랫동안 씹어야 하며, 유목민들은 말 안장에 매달고 다니며 에너지 보충용으로 사용한다.
✔ 아이락(Айраг): 발효된 말젖 술로, 약간의 탄산과 신맛이 어우러진다. 여름철 유목민들의 대표 음료이자 손님 접대 시 반드시 내놓는 전통주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초원에서 마시는 아이락 한 잔은 진정한 몽골 여행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 수테차이(Сүүтэй цай): 짭짤한 우유 차로, 차와 우유, 소금, 때로는 버터까지 넣어 끓인다. 몽골인들의 아침은 이 따뜻한 수테차이 한 그릇으로 시작된다.
몽골의 양고기 요리
몽골 음식은 익숙한 맛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처음에는 고기 향이나 발효 향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낯선 풍미 속에서 초원의 시간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긴다.
음식은 대부분 고기 중심이라 채식주의자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울란바토르 시내의 카페나 식당에서는 서양식, 한국식 식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기와 유제품 위주인 유목식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이국적인 퓨전 메뉴로 식사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몽골의 별 – 초원이 내어준 밤하늘
몽골에서 별이 특별한 이유는, 그 빛을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높고 드넓으며, 지평선까지 이어진 초원은 별빛이 주인공이 되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준다.
별이 쏟아지는 듯한 하늘은 세상 곳곳에 존재하지만, 몽골만큼 하늘이 낮고 별이 가까이 내려앉는 곳은 드물다. 하지만 ‘몽골에 가면 무조건 별을 본다’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엔 별빛이 사라지며, 초원의 밤하늘도 어두움 대신 희미한 달빛에 잠기게 된다.
또한, 봄철엔 모래바람, 여름에는 의외로 많은 밤하늘의 구름이 별 관측을 방해하는 경우가 잦다.
몽골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
그런데도, 몽골에서 별을 만날 확률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밤하늘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이 여행의 설렘은 충분히 자랄 수 있다. 별은 서서 봐도 아름답지만, 진짜 별을 만나고 싶다면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사방이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초원의 한가운데에 몸을 눕히면,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우주가 뒤덮은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내가 은하계 속을 유영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순간, 별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몽골의 침묵과 밤 온도까지 담아낸 시간의 조각이 된다. 초원 위 별자리를 더 재미있게 감상하고 싶다면, ‘Stellarium Mobile’ 같은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보자.
스마트폰을 밤하늘에 비추면, 별 하나하나에 해당하는 이름과 신화 속 그림이 화면에 나타난다. 복잡하게 얽힌 별자리를 직접 따라가며 보는 재미는, 몽골의 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이 앱은 인터넷 없이도 사용할 수 있어, 인터넷이 끊긴 게르 근처나 외곽 캠핑지에서도 충분히 유용하다.
별을 보기 위해 우리는 종종 멀리 떠난다. 하지만 별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가 다가서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몽골의 별은 그렇게 조용히, 당신이 누울 때까지 기다려 준다. 지평선 위에 놓인 작은 당신을 위해, 오늘 밤도 하늘은 별을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몽골의 초원 – 단순함 속의 깊이
“너무 빨리 걷지 마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라.”
— 네팔의 속담
몽골의 초원과 게르
몽골의 초원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단순함에서 오는 고요한 감동이다. 지평선과 바위산, 하늘과 사막, 그리고 호수가 각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조롭고 간결한 풍경이지만, 그 안에 담긴 색과 선은 깊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다. 초록은 초원의 것이고, 노랑은 사막의 것이다. 색 하나하나가 이 땅의 일부이며,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자 각자의 것이 된다.
초원의 정적은 단순히 ‘조용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지평선 한가운데, 아무도 없는 들판에 홀로 서 본 사람만이 그 정적의 의미를 안다.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는 오직 나로부터 비롯된다. 호흡하는 소리, 발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옷깃의 소리. 도시에서 묻혀 있던 작고 사적인 소리가 초원 위에서는 분명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몽골의 속삭임이다.
초원은 혼자 걸어도 좋고, 여럿이 걸어도 좋다. 그러나 진짜 초원을 만나고 싶다면,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말없이 걷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말이 없는 그 시간 동안, 자연의 속도로 걷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내쉴 때, 그 공기의 결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맑고 투명한 공기는 폐 깊숙이 스며들며, 마음마저 맑게 씻어낸다.
몽골의 초원은 단지 넓은 땅이 아니라 유목의 길이다. 길 위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끝에 게르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초원이 특별한 이유는 눈에 보이는 풍경 때문만이 아니다. 시야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도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초원의 깊은 곳 어딘가에서, 유목민들은 가축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존재는 풍경에 스며든다.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바람처럼, 땅 위에 은은히 깔려 있다.
몽골에서 말타기 – 초원을 달리는 자유
몽골을 여행하며 꼭 해보고 싶은 체험을 하나만 꼽으라면,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승마를 빼놓을 수 없다. 몽골에서의 말타기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유목의 일상이자 자연과 연결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말은 몽골인의 삶 그 자체다. 게르 옆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동반자이자 가족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타고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원 위를 달리는 경험은 평생 한 번쯤은 꼭 해봐야 할 감동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처음부터 말을 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처음에는 유목민이 말의 고삐를 잡아주는 상태에서 천천히 걷기부터 시작한다. 말 위에 혼자 올라 혼자 균형을 잡고, 천천히 말의 움직임을 익힌다. 이후엔 말이 조금 빠르게 걷는 몽골의 말
‘속보’를 경험하게 된다. 몇 번의 연습이 쌓이면, 직접 초원을 달리는 것에 도전할 수 있다. 개인차는 있지만 3~4번 정도 승마 체험을 해보면 어느 정도 스스로 말을 조절하며 진짜 초원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초원 위에서 말을 타고 걷다가 작은 시냇물을 건너는 순간, 그 경험은 단순한 액티비티를 넘어선다. 물결을 가르며 말을 타고 건너는 감각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전율을 안겨준다. 그 장면은 카메라보다 마음에 오래 남는 순간이 몽골에서 말타기
된다.
말 위에 올라 처음 초원을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있는 지평선이 점점 가까워지고, 바람은 더 넓어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말은 초원의 언어다. 그 언어를 배워 잠시나마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몽골에서 말을 탄다는 의미다.
몽골에서 말을 탈 때 꼭 알아야 할 안전수칙
초원의 자유를 만끽하려면, 그 자유를 함께 나눌 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말은 섬세하고 민감한 동물이다. 올바른 승마 습관을 익혀야 말도 편하고, 나도 안전한 체험이 될 수 있다.
다음은 몽골에서 말을 탈 때 꼭 기억해야 할 기본 수칙들이다.
1. 말의 뒤쪽에는 절대 가지 말자
말은 뒤쪽에 시야가 없어 기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뒤에서 갑작스러운 움직임이나 소리를 느끼면 방어 본능으로 뒷발질을 할 수 있다. 말을 만날 땐 항상 앞이나 옆에서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기본이다.
2. 오르내릴 땐 반드시 말의 '왼쪽'에서
말은 대부분 왼쪽에서 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에 익숙하게 훈련돼 있다. 말의 오른쪽에서 행동하면 놀라거나 불안해질 수 있으니, 말을 타고 내릴 때는 항상 왼편을 이용하자.
3. 등자(발 걸이)는 발끝만 살짝 얹자
승마 중 가장 흔한 사고 중 하나는 발이 등자에 걸려 말에 끌려가는 경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등자에 발을 깊이 넣지 말고 앞쪽만 얹는 것이 중요하다. 승마 중에도 수시로 발 위치를 확인하며 의식적으로 빼는 습관을 들이자.
4. 등자의 높이는 몸에 맞게 조절하자
등자의 높이는 무릎이 너무 굽거나 펴지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너무 낮으면 다리가 불편하고, 너무 높으면 중심을 잃기 쉽다. 발바닥과 말의 배 사이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 기준이다.
5. 고삐는 ‘적당히’ 잡는 것이 포인트
고삐를 쥘 때는 너무 세게도,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 않는다.
고삐는 새끼손가락 아래와 엄지·검지 사이로 감싸듯 쥐고
가볍게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6. 말의 방향전환과 정지 방법
왼쪽으로 가고 싶다면 왼쪽 고삐를, 오른쪽으로 가고 싶다면 오른쪽 고삐를 살짝 당긴다. 말을 멈추고 싶을 때는 고삐를 정면으로 당기는 것보다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속도를 줄이는 방식이 더 안전하다. 정면으로 강하게 당기면 말이 앞발을 들거나 불안정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 Tip: 승마 전 체크리스트
느슨한 복장보다 긴 바지와 발목을 덮는 신발을 착용한다.
모자, 선글라스 등은 달릴 때 날아갈 수 있으니 주의
말과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다가가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항상 현지 가이드의 지시를 따를 것
말을 제대로 타는 방법을 안다는 건,
단지 스킬을 넘어 말과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초원 위에서 말과 함께 호흡하며 걸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몽골에서의 가장 깊은 경험 중 하나가 된다.
몽골의 종교 – 초원 위의 믿음
초원에서 말을 타고, 지평선에 누워 별을 보고, 조용한 게르 앞에서 바람 소리를 듣다 보면 누구나 문득 몽골 사람들은 무엇을 믿으며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몽골의 종교는 단순히 신을 믿는 체계를 넘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철학이었다. 그 중심에는 오래도록 이어져 온 샤머니즘과 티베트 불교(라마교)가 있다.
1. 샤머니즘 – 초원의 가장 오래된 믿음
유목민의 삶 속에 가장 깊게 뿌리내린 종교는 바로 샤머니즘이다. 이 믿음은 자연의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관념에서 출발한다. 산, 바위, 강, 하늘, 바람, 불… 이 모든 것은 신성하며,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존재다.
여행 중에는 작은 돌탑 '오보(oovo)'를 자주 만나게 된다.
오보는 하늘신 ‘텡그리’에게 기도하는 제단으로, 지나갈 때는 세 바퀴 돌며 돌을 하나 얹고, 소원을 빌면 길운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진다.
2. 티베트 불교(라마교) – 몽골에 뿌리내린 정신문화
13세기 칭기즈칸 이후 몽골제국이 확장되면서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 유입되었고, 16세기에는 국교로 자리 잡았다. 이후 불교는 샤머니즘과 결합하여, 몽골 특유의 불교 문화로 발전한다.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간단사(Gandantegchinlen Monastery)라는 대표적인 라마 불교 사원이 있다.
지금도 많은 몽골인이 이곳을 찾아 기도와 명상, 수행한다. 불교는 유목민의 삶과도 연결된다. 가축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무위자연에 가까운 삶을 이상으로 여긴다.
울란바토르 중심에 있는 간단사
3. 종교와 일상, 그리고 관용
오늘날 몽골인의 대부분은 불교 신자이지만, 샤머니즘, 무속신앙, 기독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특히 서부 지역의 카자흐족은 이슬람을 믿고, 수도에서는 현대적인 종교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몽골은 종교적으로 매우 관용적인 사회이며, 여행자가 오보에 돌 하나를 얹거나 사원 앞에서 조용히 손을 모으는 그 순간에도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몽골인들의 오래된 믿음과 교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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