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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eom Aug 26. 2024

두 갈림길


갑자기 그녀의 전화에 놀랐지만, 그녀의 말과 목소리에 더 당황했다. 지금까지 진우에게 현아 누나의 부정적인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나를 진심으로 좋게 생각해 주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진우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도 진우가 사실대로 얘기를 해줬으니, 그의 말을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는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믿음을 저울 삼아 두 갈래의 선택을 하고 신중히 재고 있었다. 생각을 할수록 믿음의 저울은 진우 쪽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볼 수 있냐는 질문에, 마음 한 구석 돌덩어리가 현아 누나의 저울에 힘을 실어줘서 그런지, 믿음의 저울은 진우 쪽으로 완전하게 기운 것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본 진우는 비언어적인 행동으로 안된다는 모션을 취했다. 하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에, 거절 의사는 뒤로 미뤄두고 신중하고 담백하게 말했다. "누나 오늘은 일이 있어서 안 될 거 같고, 혹시 다른 날에 시간 되세요?" 옆에서 내 말을 들은 진우는 한숨을 쉬며 본인의 손으로 그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놀란 없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현아 누나가 말했다. "그래. 나도 스케줄 확인해 보고 이따가 연락 줄게. 마무리 잘해~" 응원 섞인 한마디가 절묘하게 마음을 콕콕 건드렸다. 전화를 끊자, 진우는 열불 내며 큰소리쳤다. 



"야 지금까지 내 말 뭐로 들은 거야? 헛으로 들은 거야? 너는 왜 그런 미 x짓을 한 거야. 나는 너를 친구로 생각해서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시간을 비워서라도 조언을 해주는데 왜 그런 거야?" 달고 쌉싸름한 칵테일을 마시며, 사과 한 조각을 먹으려던 찰나에, 진우에게 내 속마음을 말했다.



"진우야 미안하지만, 네가 진지하게 얘기해 준 거 고맙다고 생각해. 하지만 현아 누나를 제대로 만난 건 어제 한 번이야. 너의 말을 듣고 섣부르게 결론은 내리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내일 내가 직접 만나보고 판단할게. 내 문제니 깐,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그러자 진우는 답답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너의 판단은 자유야. 그런데 답이 나왔잖아. 굳이 왜 지옥의 길을 들어가려는 거야? 그 누나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네가 그 모든 걸 감싸 안을 수 있단 의미로 받아들여도 도 되는 거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아?" 



그의 말속에서 답답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나는 진우가 그 누나의 진정한 면모를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설령 과거에 그럴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 성숙도가 짙어졌기에,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아. 이 문제는 내가 판단하는 거고, 지금까지 네가 해준 말을 참고하며, 잘 풀어나가 볼게." 남은 칵테일을 다 마시고, 자리를 일어섰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셔서 그런지 취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안주를 마구잡이로 먹어도, 알코올을 이길 순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어두운 색을 칠해놓은 것 같은 밤하늘, 그 사이에 한 줄기의 빛을 띠고 있는 달. 고요함과 신비로움이 공존했다. 이 고요한 침묵의 세계에서 홀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받은듯한 느낌이었다. 온 세상이 어두워도 밤하늘은 아름답구나.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고, 진우와는 서먹서먹해졌다. 겉으론 평소처럼 대하지만, 어딘가 억지로 꾸며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도중 현아 누나에게 메시지가 왔다. 

"혹시 오늘 시간 될까? 오늘은 내가 밥사고 싶어." 그 문구를 보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어제들은 얘기 때문인지, 추측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본 현아누나에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뉴스 기사에 실릴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스스로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같은 부서의 사람이 말을 걸었다. "현재 씨 진우 씨랑 무슨 일이 있었어요? 오늘 두 분 행동이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아서요." 귀신 같이 알아챈 부서 직원이자 동료이다. 이름은 한수은. 주변의 분위기를 잘 살펴서 그런지 눈치가 더럽게 빠른 친구다.



내가 유심히 관찰해 본 결과 이 친구는 진우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진우와 잘 다니던 내가 서먹해진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사적인 말을 걸었으니깐. 특히 이 친구는 평소에 밝은 텐션으로 주위에서 인기가 많았다. 가정환경 또한 좋은 부모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것 같았다. 표현이 넘쳐났고 외향적인 성격의 보유자로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어둠을 밝은 에너지로 환기시켜 주니깐.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잘 알고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잘 알듯이. 내 속내를 털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녀에게 다가가 내 마음을 털어놓을까 여러 차례 고민을 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큰 문제는 아니고 다음에 말해준다는 식으로 얘기를 둘러댔다. 그러자 아이가 부모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물을 사달라고 애원하듯이 수은 씨도 내일 얘기해 주면 안 되냐는 식으로 말을 건네왔다. 



알겠다는 의사를 비친 다음, 고민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냐고 상담을 요청했다. "네 ~ 제가 그런 고민을 해결해 주는데 달인이거든요~ 저만 믿고 맡기세요. 그럼! 내일 얘기해 주시는 거예요!" 밝은 미소와 높은 톤으로 인사를 건넸다.  




회사를 마치고 오후 7시 약속장소는 xx역 좁은 길목의 사거리. 그녀를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그녀에게 던질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며, 인터넷에 열심히 찾아본 여자와의 소통의 방법을 머릿속에 곱씹고 있었다. 돈을 지불해 가면서 까지 여자와 소통을 잘하고 싶은 내 열정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되어가자 저 멀리서 버건디색의 원피스를 입은 한 여성이 다가왔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색상에다, 붙는 의상으로 몸매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방긋 웃는 미소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많이 기다렸지. 오늘은 내가 밥을 사주고 싶었어. 저번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거든." 그 말을 듣고 어제 진우와 나눈 얘기들은 점차 사라져 갔다.   



그녀의 은은한 과일 향기가 코끝을 스쳐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한 골목길에 들어서고, 낡은 건물 아래 검은색과 흰색의 체크 패턴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가게가 있었다. 오늘날의 정서와 맞지 않은 스타일로 신비로움이 묻어났다.



안에 들어서자 재즈풍의 반주가 감미롭게 들려왔다. 와인바와 비슷하게 메뉴는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주방 쪽에서는 올리브오일의 특유의 냄새와 해산물의 콜라보. 높은 화력을 자랑하는 중식 화구로 불향이 가득해 침샘을 자극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구석진 자리에 앉고 나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라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감바스와 올리브유를 곁들인 바질 통밀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녀를 보자 저번과는 다르게, 지루하고 피곤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제 진우의 말이 떠오르며 생각에 잠긴 도중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미안해. 일 때문에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시간 내줘서 고마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는 피곤하고, 몸이 좋지 않았어서 집중을 잘 못했어. 계속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현재 너에게 밥 한 번 사주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어."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꿀 같은 달콤함이 묻어나 내 마음속에 긍정적인 꽃이 활짝 피어났다. 



그리고 진우의 말은 금세 잊히며, 둘만의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술은 양식과 걸맞게 화이트 와인을 시켰고 그 동시에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침샘을 자극하는 마늘향과 미끈거리며, 윤기가 흐르는 새우 그리고 적절하게 잘 구워지며 바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작은 크기의 빵. 



통통한 새우와 잘 익혀진 마늘, 그 위에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빵과 함께 곁들여서 먹으니,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이 순간이 행복으로 표현하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 술기운에 취한 나는 누나에게 진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진우와 무슨 사이인지 장난스럽게 물어보며, 그녀의 표정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녀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우? 그냥 아는 동생인데,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듯 설레거나, 환하게 웃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현아 누나는 진우가 얘기한 것과는 다르게 청순하고 사람을 이용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현아 누나에게 진우에 대한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에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진우와 아무 사이 아니야?? 저번에 봤을 때는 친해 보이고, 무언가 그 이상의 관계로 느껴졌어. 나만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고." 그러자 그녀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진우와 아무런 일도 없었고, 그저 친근한 동생처럼 느껴져. 갑자기 네가 왜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진우? 나한테는 남자도 아니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깊은 관계가 아니야.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돌리긴커녕, 추측의 소용돌이에 갇히기 시작했다. 누나는 진실된 마음을 전하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모습으로 능숙한 연기에 놀아나는 건지.. 아니면 진우가 내게 거짓된 얘기를 전한 건지.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고 또한 주변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가슴 한편에 깊은 상처가 났다.



그녀의 표정에는 온갖 불편함과 빛처럼 따스한 미소가 점점 죽어갔다. 그래. 표정은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대변한다고 하지. 이건 현아누나가 무조건 옳을 거야. 진우는 내게 거짓말을 한 게 되겠고. 그러면 진우는 왜 거짓말을 할 정도로 현아 누나와 만나는 것을 반대할까. 자기보다 못난 내가 현아누나와 잘 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진짜로 사람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무서운 사람일까.



추측의 소용돌이 속에서 질서가 잡히지 않고, 크기는 점점 커져 내 마음의 정원에 피해를 입혔다. 또다시 진우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진우 얘기하려고 너와 밥 먹자고 한 게 아니야. 여기에서 진우 얘기하면, 여기에서 일어날 거야."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며,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미안해. 그냥 뭐.. 누나의 과거를 파헤치려고 한 게 아니야. 단지 진우와의 관계가 궁금해서 그랬어. 기분이 나빴다면 다시 한번 사과할게. 미안해." 담백한 어조로 말했다. 주변을 감싸던 몽글몽글한 분위기는 사라져 갔고, 얼어버릴 듯한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분위기를 깬 나 자신에게 큰 실망을 하며, 진우얘기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했으며, 그 자리에 일어나려고 하자, 분위기를 풀자며 산책하자고 했더니, 그녀도 마음이 있는 듯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진우에게 전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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