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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eom Aug 12. 2024

그녀와의 만남

1일 차..?


25살. 김현재 나는 이른 나이에 여행업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남들은 대학교 막 졸업할 시기에, 나는 고졸전형으로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일찍 사회에 뛰어들었다. 오로지 회사 취업을 바라보며, 남들보다 전투적으로 살아왔다. 남들은 여자 끼고 술판 벌일 때, 나는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 냄새나는 도서관.. 벽에는 먼지가 찌들어 있고 화장실엔 기본적으로 찌린내와 세면대엔 물때가 가득했으니깐..



다시는 그 도서관 근처에 가기 싫을 정도이다. 도서관? Fuck you. 그리고 항상 내 폰 메시지에는 불합격 통보 메시지. 그 메시지를 볼 때마다 자존감이 크게 떨어졌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도서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악물고 버틴 것 같다. 



아무튼 25살에 운 좋게 취업하여 소리 지르며 혼자 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취업하면 인생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잔혹한 세계의 첫 시작. 항상 지겨운 예약 전화에 짜증 섞인 말투. 내가 이러려고 취업을 했나.. 할 정도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다. 




짜증 섞인 말을 받아주며 싱글벙글 웃는 연기.. 마음속으로는 욕 한 바가지 쏟아내고 컴퓨터를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현실을 생각하자.. 이제 갓 들어온 신입이 인성파탄자라고 소문이 돌면 끝장이다. 바로 해고통지서가 날아올 정도로.. 



우리나라는 외국과는 다르게 근로기준법에 '부당해고'는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지만.. 나는 법에 대한 지식이 1도 없는 놈이라.. 법에 관련된 문서나 내용들을 보면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프다. 기본적으로 내가 독해력 수준이 낮은 건지.. 애초에 지긋지긋하고 피 튀기는 싸움은 사절이다. 



그렇게 지긋한 업무 도중 누군가가 내게 다가온다. 다가오는 정체는 '오진우.' 그는 영업팀 부서에서 활동하고 있고 나랑 같이 입사한 동기이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어느 정도냐면 작은 면적의 얼굴에 눈, 코, 입이 서로 싸우지 않고 적절한 자리에서 사이좋게 지키고 있다.  



"오늘도 아저씨들 전화 상대 해주고 있어?"


"아 응.. 아재들 말 상대해 주느라 진이 다 빠지네. 하하. 너는 오늘 한가한가 봐?"


"아 오늘은 미팅건이 다음 날로 미뤄져서 괜찮네 하하하."



이 재수 없는 놈은 항상 자기 한가한 시간에 와서 날 자극시킨다. 그래도 저 잘난 외모 때문에.. 같이 다니면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서 부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알 수 없는 시선. 그 새로운 만족감에 관심받기 위해 오바떠는 것도 있다. 나.. 관심종자인가?



그러자 그가 갑자기 오늘 술 마시자는 얘기를 꺼낸다. 



"내가 알고 있는 노포집이 있는데 거기 고기가 진짜 죽여. 형이 오늘 함 쏠 테니깐 함 갈래? 동찬이랑."



김동찬? 김동찬 그 자식은 전형적인 히키코모리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조차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다. 태어난 김에 사는 건지.. 아니면 잔혹한 세계의 고통에 지친 건지.. 이 친구도 나와 같이 내향적인 성격으로 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 전까지는 입을 꾹 닫고 있다. 



아.. 그래도 내가 그 자식보단 나은 것 같다. 



나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오늘도 돈냄새가 가득 풍기는 아재 상대하느라 기력 충전이 필요했다. 그리고 진우 그 자식은 얼굴이 호감상이라 기본적으로 여자가 많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그 자식이 생긋 웃으면 다 넘어가기 직전이다. 그 정도로 얼굴만 봐도 눈이 즐겁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주의다. 



"아 그리고 내가 아는 누나도 올 거야." 음.. 지금까지 진우에게 듣던 소식 중 제일 반가운 소식이었다. 항상 나를 조롱하고 지가 필요할 때 부르는 이기적인 놈이 그래도 나를 친구로 여기는구나! 기분은 좋았지만 크게 내색은 안 했다. 



"그래 그 오동찬 그 자식도 오는 거지?" 그 친구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번 떠봤지만, 온다고 하니 뭐 어쩔 수 없네. 나도 재미없지만 그 자식은 얘기를 거의 안 하니깐. 근데 진우 입장에서는 그 자식이나 나나 도찐개찐이겠지 뭐.. 그래도 나는 메타인지 하나는 끝내주게 잘 되어있다. 



오후 17:00에 업무를 마치고 현재가 맛집이라고 하는 장소로 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동찬이 녀석도 합류했다. 히키코모리 답게 늘어지고 후줄근한 옷에다 거뭇거뭇한 생활 흔적이 남아있는 컨버스 신발. 그리고 특유의 시큼한 냄새. 



아 그전에 동찬이 녀석은 내 중학교 동창이고, 진우와 동찬이는 같은 아파트 입주민으로 알게 된 사이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은 진짜 좁은 게 맞는 것 같다. "야 오늘 여자 오는 거 몰라? 너 옷이 왜 그래 인마 하하." 동찬이는 처음 듣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진우가 부른 사람이 여자라는 걸 몰랐나 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우릴 향해 쳐다보는데 세상에 혼돈이 찾아온 것 같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그 자식도 여자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찬: 여자도 오는 거였어..?



진우: 아 하하 너한테 말을 못 해줬구나. 하긴 당일에 바로 약속을 잡아버렸으니 근데 그 누나 그렇게 이쁘지도 않아 하하하 걱정 마.


현재: 하여간 여자 많은 꼬락서니 하고는 하하하 그냥 맛있는 고기 먹으면서 재미있게 보내면 되지.



퇴근길인데도 불구하고 차가 많이 밀리지 않아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진짜 진우 말대로 40년은 묵은 오래된 건물에다, 파란색을 띠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의자와 테이블. 많은 사람들의 앉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1시간 뒤에는 무조건 달아오를 거 같은 분위기. "오늘만 살자."를 외치며 서로 술잔을 기울이고 헌팅의 문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선홍빛의 무르익은 고기. 두께도 만만치가 않다. 적절한 온도에 긴 시간을 숙성해서 그런지 더 먹음직스러웠다. 고기의 질감과 깊은 풍미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육즙을 상상하며, 아 오늘도 하루가 끝나가구나..라고 생각할 때 그녀가 왔다. 



아. 저게 진우의 아는 누나라고..? 나와 동찬이 녀석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 들이댈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위로 올라간 눈매로 사나운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 이미지와는 다르게 향수는 시트러스 한 향이 아닌, 은은하게 풍기는 과일향으로 상큼함이 묻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봐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얼굴에는 묘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색기가 있었다. 동찬이 녀석을 보니 그 녀석은 이미 넋이 나가있었다. 아니 진우 이 자식은 별로 이쁘다고 하지 않더니 눈이 얼마나 높은 거야.



동그란 테이블에 진우와 나 사이. 동찬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동찬이는 사람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어색하고 부끄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눈을 못 마주치는 동찬이와 옆 자리에 앉아있는 나에게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현아예요. 하하하 진우한테 많이 들었어요." 그녀의 나이는 28살로 우리보다 3살이 더 많았다. 누가 봐도 자존감이 굳세보였고 그만큼 남자경험이 많아 보였다. 동찬이와 나는 연애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말은 걸고 싶은데 어떻게 걸어야 될지 그 생각에 잠겼다.



나와 동찬이 역시 어쭙잖게 인사를 건네고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남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고 무엇보다 그녀의 굳센 아우라에 1차로 당했다. 그 분위기를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에 나는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 바로 인터넷에 대화 방법론에 대해 열심히 검색했다.



그러나 다 수준 낮은 포스팅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썩을.. 평소에 소통에 관련된 책 좀 많이 읽어둘걸..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자는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돌아갔다. 자리에 앉으니 이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는 뭐지? 



진우 이 자식이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역시 선수는 선수야.. "어~ 저 친구가 내 회사 동기인데 재미있는 친구야 하하." 갑자기 나를 소개하더니 그녀가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아 그래?? 현재 씨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하." 



숨이 막혔다. 분위기의 중심이 내가 되다 보니 무언가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면 그 분위기의 끝은 무조건 나락으로 간다는 것을 알기에, 이 분위기를 어떻게 벗어날지.. 아 모르겠다. "일단 한 잔 할까요..?" 



"하하 저 자식 부끄러워하는 표정 봐바 진짜 재미있다니깐 하하하." 그렇게 위기를 넘기며, 분위기는 다행히 망치진 않았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분위기로 시간을 보냈다. 벌써 시간이 오후 11시가 됐다. 4시간이 훌쩍 지나가자 오늘 고된 하루를 즐겁게 보낸 것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서로 인사를 하며, 택시를 타려는 도중, 현아누나가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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