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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eom Aug 14. 2024

그녀의 메시지

1일차.

눈을 떠보니 오전 5시. 곧 일출 시간으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암시한다. 어질러진 침대와 이불, 입 안에서 진동하는 술냄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오늘은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기엔 글렀구나." 속은 매스껍고 머리는 누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큰 쟁반으로 친 것처럼 고통스럽고, 어지러웠다. 




그래도 어제는 일상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이벤트가 있었으니.. 하하 재미있게 즐겼으면 됐지..라는 마음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냈다. 핸드폰을 키는 순간.. 한 메시지가 와있었다. 에이~ 스팸 메시지 거나 지네 상품 홍보하는 쓰레기 같은 메시지겠지..




아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런 스팸종류의 메시지는 아니었다. 사람의 감정이 가득 담긴 메시지였다. 술기운에 취한 건지,, 내가 잘못 본 건지.. 아니면 꿈을 꾸는 건지..? 이게 뭐야..? 어제 같이 술 마셨던 현아 누나에게 메시지가 온 것이다.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 한 상태로 넋 놓고 가만히 메시지를 바라봤다. 그 순간에도 나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관심이 가는 상대가 다가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깐.. 어젯밤은 기억은 전혀 없다. 그녀를 만나고 술을 퍼붓기 전까지는.. 그 뒤에는 기억의 조각이 마치 깨진 것처럼 드문드문 생각조차 나질 않는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길이가 짧고 간결했다. 



"어제 잘 들어갔어요?? 재미있었어요. 하하"



어제 번호를 교환한 적도 없고, 모두가 각자 집으로 갈 때 인사한 것 밖에 없다. 그리고 내 성격상 먼저 번호를 물어보지도 않는다. 난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그것도 여자한테 번호를 물어본다? 난 마음의 상처를 받기 싫어 그러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나의 '행동철칙'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을 되새기지만, 그놈의 알코올 때문에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이걸 좋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관심 있는 사람에게 메시지가 온 거에 기뻐해야겠지? 그러나 연애경험이 거의 없는 나는 답장을 뭐라고 보내야 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며, 여자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론을 찾고 있었다. '여자와 대화하는 법, 여자와 카톡 하는 법.' 남자로서의 가치는 이미 실격이다. 나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 관계 진전을 원하기에, 잘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 과정이 곧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위안 삼았다. 




진우: "어~ 너 잘 들어갔어? 어제 엄청 취했더만 하하. 어제 왜 이렇게 취한 거야. 너 그럼 모습 오랜만에 봐서 재미있었잖아. 너 무슨 일이 있었냐고? 이 새끼 진짜 취했나 보네. 너 동찬이한테 막 안기고 그랬잖아 하하 그 나이 먹고 취해서 안기냐. 너는 형한테 술 다시 배워야겠다 인마 하하하.




응? 우리 다 같이 헤어지고 너 바로 집 갔잖아. 무슨 일 있었어? 이 새끼 뭐냐?? 하하하 무슨 일 있었구먼~ 형한테 솔직하게 불어라. 형이 특별히 경청하면서 들어줄게."




("개자식. 눈치는 더럽게 빨라가지고." ) "현아누나한테 문자 온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적갈등이 생겼다. 그래도 현아 씨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니 괜찮겠지..?, 아 그래도 아직 모르니깐 말하지 말자. 괜히 김칫국 마셨다가 잘 안될 수도 있잖아." 빠른 결론을 내리고,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각색해서 말했다. 





"아 어제 택시에서 오버히트 좀 했어.. 어제 나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마셔서 그런지.. 무슨 짓 했나 궁금해서 물어봤어 하하.. 아 그리고 그 노포 느낌 나는 고깃집 맛있더라. 다음에 또 가자."





진우의 표정은 살짝 갸우뚱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진우는 이 자식이 얘기할 때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시선도 다른 곳을 향해 있고, 말을 더듬는 것 보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 일이 무엇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일단 모르는 척을 하며,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넘겼다.





그러자 핸드폰을 보니, 현아누나한테 답장이 온 것이다. "아 하하하 말하는 게 왜 그래요 하하", 그 메시지를 보고 문득 나 자신이 한심했다. "아.. 내가 x신처럼 보냈구나.." 아 내가 보낸 메시지를 얘기해 주자면 -네 현아 누님도 잘 들어가셨죠. 그녀가 재미있어서 저렇게 보낸 건지, 아님 진짜 내 말투가 신기해서 보낸 건지.. 과도하게 신경이 쓰였다. 





하루종일 현아 누나에 대한 생각을 하다 업무에 집중이 안 됐다. 그만큼 현아 누나에게 관심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여자경험이 거의 없는 내게 여자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를 알려줄 스승이 필요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한계를 느꼈고, 연애방법론에 관한 책은 뻔한 정보에다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업무를 보는 내내 내적갈등이 생겼다. "진우에게 말을 하면 현아 누나와 잘 이어지도록 도와주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이 들었다. 또 진우는 현아 누나를 여자로 안 본다고 생각했다. 어제 고깃집에서 누나에게 남자처럼 대했으니깐. 그리고 진우는 여자 경험이 많으니 현실적인 정보를 얻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가장 이유가 컸다. 





진우와 점심을 먹으며,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리고 현아 누나에게 문자가 왔다는 것을 말하자 진우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굳은 표정으로 내게 질문을 했다. "누나가 너한테 문자를 했다고? 번호는 누가 먼저 물어봤는데?"




"그걸 모르겠어. 어제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나거든. 내가 먼저 물어봤는지, 누나가 먼저 물어봤는지.. 그런데 내 성격상 먼저 물어보진 않아. 너도 알잖아.. 이 빌어먹을 술 때문에.. 아.. 술기운 빌려서 내가 먼저 물어봤나..? 나도 정말 혼란스러워."




진우: 너 그 누나랑 잘해볼 생각 있는 거 아니지? 그 누나 남자한테 관심 없고, 내가 듣기로는 소문이 좋지 않다고 들었어. 그냥 좀 조심하면 좋을 거 같아. 




진우의 얘기를 듣고 문득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 xx 끼도 현아 누나한테 관심이 있나..?' 두 번째. 아니면 진우가 말한 대로 현아 누나가 소문이 안 좋다는 게 사실인가..? 도저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에게 문자가 온다. 




"일 열심히 하시나 보네~~ 이번주에 시간 되시면 같이 식사하실래요?" 





좀 의아했다. 연락은 오늘 처음 받았고, 서로 주고받은 답변도 한두 개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데이트신청을 한다고? 아니, 이게 데이트인가? 데이트는 연인이나 서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데이 트니깐. 간단한 식사는 데이트가 아니겠지..? 





추측의 늪에 빠져버렸다. 그것도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빠진 채로. 진우의 말만 아니었으면 추측의 늪에 빠질 일도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그러자 진우가 휴대폰만 보고 있는 내게 짜증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




진우: 야 뭔데. 내가 말하는데 멍 때리고 있냐. 너 뭐 왔어?? 뭔데 인마! 설마 현아 누나야? 




평소와는 다르게 조급해하는 진우를 보며, 이 새끼도 현아 누나에게 관심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아 누나와 내가 잘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그녀를 깎아내리는 진우가 한심하게 느껴졌고 나쁜 새끼라고 생각했다. ("믿을 새끼 못 되는구나.. 애초에 여자에 미친놈이었으니깐." )





평소에 진우의 잘난 외모를 보며, 약간의 질투심을 느꼈던 나는 이번기회로 그를 눌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여자가 나한테 문자 한 통 보냈다고 대가리가 커진 것이다. 그래도 진우 덕분에 이런 이벤트가 생겨난 것이니, 아무리 한심하게 보여도 친구로 대하자는 마음이 컸다.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진우의 대답은 가지 말라는 신호였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다. "너 현아 누나한테 관심 있지?" 진우는 뭔 미친 소리 나며, 난 너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해 진실된 조언을 해주는 거라고 얘기했다. 




"에이 근데 뭐,, 무조건 잘 될 보장도 없고 그냥 간단하게 밥 먹는 건데 괜찮겠지?" 이미 나는 진우의 말이 들리지가 않았다. 내 판단으로는 진우도 현아 누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으니깐. 진우가 어떤 조언을 하든 나는 현아누나와 식사 자리를 가질 생각이 있었다. 




"그래 조언 고맙다. 한 번 생각해 볼게. 네가 그렇게 얘기하니 조금 마음에 걸리네." 그러고 나는 업무를 마치고 현아누나에게 문자를 보냈고, 밥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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