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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eom Aug 16. 2024

이것이 말로만 듣던 데이트인가?

그녀와의 데이트

평소에 꾸민 적이 없는 나는 여러 군대의 백화점을 돌며 데이트할 때 입을 옷을 둘러보았다. '여심강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옷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인터넷에 불나듯 마구잡이로 검색했다. 그러나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내가 원하는 옷에 대한 정보는 작은 코딱지 마냥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대부분 외모에 관련된 글이 넘쳐났으며, 커뮤니티에서는 외모에 대한 논쟁이 끊어지질 않았다. 



면전에다 욕설을 퍼붓고 폰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마치 폭풍우처럼 솟구쳤지만, 그때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마치 뜨거운 열기에 잠겨 있던 주전자가 식어가는 듯 내 안의 격렬한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 



재수 없는 놈들이라고.. 그래도 내 얼굴 정도면 나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 생각은 일단 내 마음속 항아리에 깊게 넣어두기로 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내일이 현아 누나와 데이트다. 데이트? 아니.. 나만 데이트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그 상념이 머릿속을 맴돌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무의식의 세계에 잠긴 것처럼 순간 멍해졌다. 내일 그녀와의 데이트에 과도한 신경을 쏟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에 가속이 붙어 다른 세계의 차원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일 입고 나갈 옷이 중요하다. 나는 패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무엇이 적합한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다. 수학에서 기본적인 숫자를 알아야 공식을 배우고 대입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듯이. 패션에서도 기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게 거센 한숨을 쉬며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이 들었다. 누가 봐도 맞으면 바로 즉사할 것 같은 큰 유리병으로 맞은 느낌이랄까. 그런 경험은 없지만 말이다. 눈에 초점이 없고 무의식의 세계에 잠긴 좀비처럼 가만히 서있는 내게 종업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고객님~ 인물이 훤칠하신데~ 찾고 계시는 옷이 있으실까요~? 하하하."




"아 내일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런데 저의 체형에 맞게 옷 추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 중요한 약속이라서요. 부탁드릴게요. 가격이 싸든 비싸든 큰 마음먹고 왔어요."




종업원은 그 순간 이 자식이 호구라는 것을 직감했다. 눈빛 하나, 말투 하나,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패션에 대한 지식이 무에 가까울 정도의 무능함. 한 여름밤 어둡고 깜깜한 밤을 걸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이.

그의 미묘한 불안감이 종업원에게 확신으로 다가왔다. 



"제가 옷 장사만 몇 년을 했는데요 하하, 제 전공이 패션 쪽이거든요 하하 예전에 디자인도 막 하고 그랬었는데.. 아 하하 어쩌다가 이야기가.. 아무튼! 고객님의 체형에 잘 어울릴 수 있는 코디를 짜드릴게요~. 고객님은 체형이 평균적으로 좋으셔서 셔츠가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기본적인 색상 흰색에다, 슬랙스 하면 검은색이잖아요?? 이 조합으로 입고 가시면 정말 멋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이 액세서리도!! 하하."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치 이미 머릿속으로 그려본 듯, 그녀의 눈에는 그 완벽한 조화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신선한 새벽의 첫 빛이 담긴 듯한 하얀 셔츠에 한밤의 어둠을 담은 듯 깊고 진하며, 주변의 모든 색을 침묵시킬듯한 검은 슬랙스.. 은색 계열로 이루어지고 작은 한 구 여러 개가 모여 꽈배기 형태의 패턴으로 이루어진 아기자기한 목걸이. 



그러나 내가 보기엔 모나미 볼펜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때 지겹도록 함께한 모나미볼펜. 친숙하면서도 다시는 함께하고 싶지 않은 묘한 기분. 옛날 학창 시절이 떠올라 잠시 추억에 잠긴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옷을 재빠르게 사고 집에 바로 들어갔다. 급하게 들어간 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회사로 출근하던 도중, 집에 가스불을 켜두고 나와 집으로 전속력으로 질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심정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불안감이 온몸에 휘감았다. 길가의 모든 소음이 희미 해질 정도로, 쉬지도 않고 달렸다. 내 다리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집이 폭발해 통째로 나가면 안 되니깐.. 



그래 곧 있으면 그녀를 만날 시간이 다가온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은 점점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고동쳤고 , 그 박동이 내 정신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마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내 안의 모든 감각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심장의 두근거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산 옷을 빠르게 입고, 추가로 향수도 곳곳에 뿌렸다. 향수를 처음 뿌려봐서 그런지 어디에 뿌려야 될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너무 많이 뿌렸는지 곧바로 머리가 아파오고 냄새는 평소 고깃집 냄새를 덮을 정도로 강렬했다. 



약속장소에 10분 일찍 도착했다. 장소는 분위기가 좋은 와인바를 택했다. SNS, 인플루언서들이 촬영한 사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붉은 조명이 은은하게 비춰 공연장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마치 와인 한 잔의 고혹적인 색감을 담아낸 듯한 느낌이랄까..?



막상 만났을 때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동물..?, 음식..? 너무 생소한가?.. 가족관계..? 이건 너무.. 앞서 나갔나..?" 머리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소통에는 꼭 답이 존재하는 것처럼 설파해서 그런지.. 흔히 말하는 연애코치, 연애상담사 말에 놀아난 것 같다. 



"현재 씨..?" 고민의 세계에 잠긴 내게 그 한 마디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현실세계로 왔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무슨 말을 뱉어야 할지 배터리 부족으로 방전된 로봇처럼 바로 정지됐다. 그러고 딱딱하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남자 경험이 많은 것인지.. 내 로봇 같은 모습을 재치 있게 받아주고, 순수하고 귀엽다는 표현으로 내 심장을 더 건드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심장의 박동수는 걸을 때마다 빠르게 요동쳤고, 주변은 '무소음'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같이 걷는 동안, 신선하고 푸릇한 과일향이 내 코끝을 건드린다. 마치 막 따온 과일의 싱그러움이 공기 속에 퍼져나가는 듯.. 은은하게 풍기는 냄새가 중독적이며,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수한 느낌을 주지만, 눈꼬리가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으로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그녀의 미소에는 은은한 장난기가 가득 담겨있었고, 말할 때마다 고양이처럼 부드럽지만 날렵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조화로운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어느새 와인바에 도착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그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와인바에 들어가니, 사진 그대로 어두운 분위기와 붉은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며, 와인바 안에 모든 사람들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 모두 그 분위기에 삼켜진 듯 이 와인바는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시간을 멈추게 만드는 몽환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인테리어는 나무목재로 이루어져 나무의 자연스러운 패턴을 띠고 있다. 벽과 바닥을 감싸는 나뭇결은 숲 속에 아늑함과 도서관의 중독적인 책 냄새처럼, 고른 나무의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자리는 서로 마주 보는 형태가 아닌, 양 옆으로 뻗어있는 형태로 작은 스킨십의 재미를 볼 수 있다. (아직 그럴 사이는 아니지만.)



또 앞에 가득 놓인 서로 다른 브랜드의 와인 빈병. 라벨은 교황의 문장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했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문장은 품격과 전통을 상징한. 깊은 역사와 그의 권위가 담고 있는 듯했다. 주방 근처에는 알리올리오와 각 종 해산물이 합쳐진 특유의 풍미 깨끗하고 신선한 기름냄새가 나며 미끈한 파스타면은 불향으로 뒤덮였다.



붉은빛이 도는 레드와인을 시켰고 함께 감바스를 주문했다. 그 숨이 막힐듯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분위기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오만가지의 생각을 했다. 그런 그녀는 생각이 잠긴 나를 보고 감각이 좋은지 분위기의 주도권은 내가 아닌, 그녀가 가져갔다. 남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 한 나는 발가벗은 느낌이었다. 



생긋 눈웃음을 짓는 그녀. 와인의 쌉싸래한 맛과 높은 도수의 알코올에 취해 무슨 표정을 짓든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이것이 첫사랑에 빠진 건가.. 이 공간에 둘만 있는 듯한 느낌. 나 빠져버렸구나..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장 음악은 잔잔한 재즈음악이 분위기를 한층 더 우아하게 만든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선율이 매장 곳곳에 퍼진다. 색소폰의 깊은 음색과 피아노의 섬세한 터치. 독특한 반주의 리듬에 맞춰 대화와 웃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어깨가 들썩거리는 재미도 더했다. "음악이 정말 재미있는 거 같아요." 그러자 그녀가 바로 질문을 했다. "현재 씨는 재즈풍 느낌의 음악 좋아하세요.?" 곧바로 그녀의 장단을 맞춰주듯 내 스타일이 아니어도 다 좋다고 얘기했다.



벌써 3시간이 흘렀다. 막차가 끊길 시간이라 택시가 붐비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택시를 잡기 위해 서로 미친 경쟁을 해야 된다. 어디를 가든 경쟁이 요구되는 사회. 평등을 외치는 평등주의자로서 경쟁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녀가 말했다. "하하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아쉽네요. 분위기가 좋아서 시간이 금방 갔네요."



"아 항상 일찍 기상해서 괜찮아요." 그러자 곧바로 그녀가 말했다. " 뭐야 ~ 하하 그럼 제 연락 바로 보셨겠네요~ 하하 왜 늦게 보내셨어요~?" 말문이 막혔다.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장난이라며, 나를 들었다 놨다.. 내 심장을 가지고 놀았다.  



와인바에 나간 후 어디선가 익숙한 형체가 신동찬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꼭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자식을 보고 술에 취한 나머지 마음에 상처가 날법한 말을 했다.



"너 뭐야..? 이 소름 끼치는 새끼야." 그것도 현아누나 앞이어서 남자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욕심에 나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신동찬 이 자식이 적반하장으로 내게 욕을 하더라. 오히려 니 새끼가 뭔데 같이 나오냐고. 그래. 잘 알았다. 너 스토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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