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되지 않기 위해 회사를 떠나다.

by 젴케

올해 5월, 4년 반동안 다닌 정든 회사를 떠났다.


그동안 iOS 개발자로만 살다 데이터 엔지니어로서 스크래치부터 작업하며 배운 점도 많고, 무엇보다 좋은 동료들을 많이 만났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보면 고민과 내적 갈등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창업과 거의 동시에 합류한 초기 멤버였고, 팀 단위로 합류하는 상황에서 준비 중인 서비스는 iOS 인력 수요가 당장은 없었다. 그래서 웹을 맡았다가, 안드로이드 단위 기능 개발도 하다가, 결국 ‘요즘 핫하다’는 데이터 엔지니어 직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그 시기 업계 전반에서 데이터 분석과 파이프라인 구축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고, 10년 차 iOS 개발자가 스크래치부터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갈 기회를 얻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재미도 있었고 백엔드·데이터 파이프라인 전반에 대한 이해도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직접 사용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고, 거기에 더 관여하고 싶었다. iOS 개발 관련 수요가 스멀스멀 언급될 때면, 준비를 해볼까요? 하고. 넌지시 묻기도 했지만, 리더십에서는 기존에 하던 것에 집중하고 잘하라는 반응 뿐이었다.

점점 그곳에서 내가 하는 일에서는 효능감을 찾기 어려웠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정체되고 있다고 느낄때가 많았고, 중요 결정에서는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의 마인드셋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인드셋 문제가 분명 있었겠으나, 결국 어느 덧 조직에서는 나를 필요로 하나, 나는 이 조직에 왜 있나 하는 생각까지 이르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다시 iOS 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데이터와 백엔드를 주로 만지는 동안 UIKit 에서 SwiftUI 로 흐름이 바뀌어 있었고, 나는 약간 올드한 iOS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마침 퇴사를 결심하던 때에, 회사 내에서 몇개월 간 진행하던 iOS 프로젝트가 애플의 심사에 막혀있었고, 돌아보면 문제가 많은 버전이긴 하였으나 퇴사 전 3개월 정도 iOS 프로젝트를 도와 퇴사전 애플 심사를 통과시키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이직 준비는 많이 미진했다. 솔직히,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만큼은 내 다음 스탭을 위해 준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착해서가 아니라 회사에 정이 많이 들었고, 나오기 전까지는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퇴사 전에 뭔가 기여하고 싶었다. 그리고, 퇴사 후 본격적으로 취직활동을 시작했다.


좀 창피하지만, 햇수로는 14년차인데, 난생 처음 가고 싶은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들을 보았다. 이력서도 보기 좋게 정리하는데에도 시간이 이렇게 걸리는 줄 처음 알았다. 너무 쉽게 살아왔나보다. 결과적으로는, 가고 싶은 곳은 죄다 떨어졌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부족했는지, 시장에서 원하는 모습과 어떤게 동떨어져 있는지 냉정하게 보게된 힘든 시간이지만 반대로, 그 시간동안 많이 공부하고 성장했다고 스스로 생각이 든다. 4년 반 동안의 시간보다 더 성장한 밀도있는 5개월을 보냈다.


다행히도 iOS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내가 업무를 리딩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자리에 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지금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직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지나온 회사들과도 비교되기도 했고, 깨달은 바도 느낀 것도 많았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이직하면서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좋은 회사들은 인재에 투자한다.


아주 상투적인 말이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문장이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투자’는 물질적인 보상을 뜻하지 않는다.

좋은 회사는 좋은 사람을 뽑고 유지하기 위해 진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내가 지원했던,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회사들은 특히 그랬다.


많은 회사들은 코딩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실무와는 딱히 관계없는 알고리즘 문제를 풀게하고 기술 면접때 이거. 알아요? 저거 알아요? 하는 퀴즈식 인터뷰를 본다. 혹은 job description과 상관없이 업계에서 소위 핫하다는 영역의 질문만 이어지는 (아마도 필요한 사람의 역량을 모집요강에 제대로 포함시키지 않은 케이스일듯) 경우도 보았다.


하지만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좋은 회사"들은 다르다,


실무와 관련한 과제를 내어주고 그걸 실무자들이 직접 시간을 내어 꼼꼼하게 검토한다. 그걸 바탕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사람이 얼마나 깊이 아는지 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어떤 기준과 사고 과정을 거치는지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를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면접자인 나조차도 이런 조직에 들어가서 이런 팀원들과 함께 한다면 나도 성장하고 조직에 기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떨어졌을지언정 여러 후보자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텐데 그들이 나를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이 오롯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좋은 회사들은 우연히 좋은 사람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을 뽑고 그들이 오래 머물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한다.

명확한 JD

투명한 커리어 패스

예측 가능한 평가 시스템

책임있는 피드백

온보딩과 멘토링에 쏟는 투자

다양한 의견을 제한없이 제안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

이런 것들은 결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리더와 조직원 모두가 의지를 가지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없는 회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사람을 잃고 남아있는 사람도 성장이 어렵다. 안타깝게도 내가 경험했던 스타트업들은 여기에 실패하였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초기에는 일방적인 의사결정이나, 단호한 태도가 민첩한 성장을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회사가 성장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생겨나는 시점에서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새 특정인, 특정 그룹 이외에는 겉돌다 조직도 자기 자신도 갉아먹게 되는 조직이 되기 쉽다.


반면, 좋은 회사는 인재들을 위해 구조와 시간, 노력을 투자한다. 연봉, 복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투자'를 한다. 그리고 그런 점들이 고작 1~2시간의 면접 과정에서 조차 드러난다는게 정말 인상 깊었다.


회사가 천재와 능력자를 얼마나 보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이 비범해지는 구조를 가지는 회사가 진짜 좋은 회사다.





개발자의 정체기


개발자가 두려워해야 하는 정체는 코딩 실력에서 오는게 아니다. 정체는 생각보다 다른 곳에서 온다.

단순 기능 개발이 아니라 아키텍쳐를 설계해 볼 기회가 없고

고민 끝에 제안한 의견이 너무도 쉽게 묵살되고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되고

상명하복식 문제해결만을 경험하고

결국 나의 성장 가능성에 의문이 생기는 것

이 순간이 개발자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단순 코딩은 이미 AI가 더 잘한다. 처음 AI 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하고 프롬프트를 넣어봤다가 깜짝 놀란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로부터 최근 몇 년 사이에 개발자들의 업무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전처럼, 뭔가 개발하기 위해서 영문으로 된 문서를 뒤적거리고, 쓸만한 오픈소스가 있는지 뒤져보거나 stackoverflow 와 같은 커뮤니티에 고민을 올리고 하던 것에 비하면, AI 와 함께 일하는 것이 수십배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발자는 더이상 설 곳이 없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발자는 단순 기능 개발 그 위에서 AI 가 대신할 수 없는

전반적인 구조를 설계하는 일

구현 내용을 책임지고

다른 파트와 협업하고

기술적인 의사결정과 문제를 해결

이런 것들 말이다. 이런 경험을 제공할 수 없는 조직에서는 개발자는 정체된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내가 정말 싫어하게 된 말이 하나있다. (돌아보면 무심결에 나도 쓰곤 했던 것 같긴 하지만, 앞으론 절대 쓸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거 하고 싶으면 자기 회사 차려서 해라."

정말 놀랍게도 많은 리더들이 이런 말을 한다.
너무 말이 안되는 의견이라서? 들을 가치가 없어서? 허황된 의견이라서?
아니면, 그 말을 한 장본인이 나르시시스트라서?

물론, 손쉽게 반대 의견을 제압할 수 있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사람에 대한 무시가 깔려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말을 쉽게 내뱉는 리더가 있는 조직에서는 팀원들의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팀원들은 입을 점점 닫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낮게 평가할까봐서가 아니라,
무시받는 느낌이 싫고 본인 스스로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특정 그룹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구조에서 결과물은 빨리 나올지 모르나,
과연 그런 결과물이 오래 지속 성장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성과에 대하여


포장된 성과주의


“알아서 해봐. 성과만 보여줘.”

“결과로 말하자.”


언뜻 보면 믿음의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자율을 빙자한 방임인 경우가 많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으로 평가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그 정도도 믿고 맡길 수 없다면 함께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주니어에게 시니어의 역량을 요구하면서, 그에 미치지 못하면 능력 부족으로 간주하는 것.

나는 이것을 비겁한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평가 기준까지 모호하다면, 그건 움직이는 골대나 다름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 성과인가?


한 가지 경험이 있다.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는 늘 성과가 뛰어난 사람처럼 여겨지던 분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는 팀 전체의 성과를 마치 자신의 개인 성취처럼 포장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성과는 있어 보였지만, 실제 기여도는 달랐다.


또 한 번은 다른 부서 업무와 관련하여 수정 작업을 장기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지리한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문제가 해결된 이후 어느 날, 담당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왜 본인이 한 일을 티 내지 않느냐.

회의에서는 당신이 한 일인데 보고한 사람이 다 한 줄로 알더라.

다음부터는 꼭 본인이 했다고 말하라.”


솔직히, 굳이 세세한 것까지 "나 이거 했어요!" 라고 말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1년을 결산하는 연봉협상 자리에서 깨달았다.

말했어야 했구나!

내 성과로 주장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명확한 업무 평가 기준이 없구나.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 성과가 있다.



성과는 숫자만이 아니다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

일감이 넘치는 동료를 대신 도와주는 것.


이런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조직을 지탱하는 중요한 성과다.

숫자로 표현되는 KPI 뒤에는

그 숫자가 가능하도록 만든 보이지 않는 foundation이 존재한다.


그리고 열악함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려는 진심,

때로는 다음 도약을 위한 시행착오까지도 —

이것들은 모두 성과다.


이런 성과를 성과로 봐주는 리더십은 드물지만, 진정으로 귀하다.





리더로서의 경험


팀 리더로서 팀을 이끌어본 경험, 누군가를 성장시킨 경험은 기술보다 훨씬 강력하다.


나는 솔직히 이걸 늦게 깨달았다. 이번 이직 과정 중에 나에게 있어 스스로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이직을 진행하며 14년차라는 연차동안 내가 쌓은 기술적인 노하우보다 옆의 사람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성장시킨 경험이 있는지가 훨씬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여느 iOS 개발자들이 그렇듯, 그동안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맡아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이 아닌 이상 국내에서는 다소 희귀한 포지션인 iOS 개발자는 거의 늘 혼자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굳이 여러명이 나누어서 할 일도 아니었던 것 같긴 하다. 그 때마다 나는 항상 맡은 바를 잘 해내는 것이 팀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그건 일을 잘해내려는 것일뿐, 팀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한 기업의 경영진 면접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질문을 받았다. 물론, 경험이 많지 않은데 좋은 대답이 나올리 없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개발자와도 개발 관련 경험을 곧잘 나누는 개발자이고, iOS에서는 아니지만, 다른 업무를 할 때는 서포트 역할도 많이 했었고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데 열려있는 편이라고 강변했다. 내가 솔직한 만큼 그 분들도 나에게 걱정되는 부분을 솔직히 말씀주셨고,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지만, 확실히 메워갈 수 있다고 마무리 지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오면서 깨달았다. 아, 이제는 리더 역할을 해야하는 연차, 나이인데 그동안 내가 그런 부분에서 참 게을렀구나.


회사에서 매일 마주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는 나에게는 또다른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짜 가족보다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더 많은 고민과 기쁨, 성취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가족같은 사람들을 위해 멘토링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고 팀의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를 살피고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것. 이런 사람이 정말 가치있는 동료이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스펙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정체기이기 보단 회복기


지난 몇 달간, 나는 다시 iOS 개발자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회사를 지원했다.

네카라쿠메당토라 불리는 회사들까지 포함해서 누구나 알법한 회사들은 한 번쯤은 두드려봤다.

결과는 어떤 때는 과제 평가에서조차, 때론 기술 인터뷰, 경영진 면접에서든 불합격이었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다.

“와.. 몇년을 했는데, 이것 밖에는 안되는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은 다시 나를 정비할 때구나.”



놀 수는 없잖아?


퇴사 후, 6개월이 되가도록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나름 치열하게 보내고 있고, 스트레스도 많아 쉬고 싶긴 했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도 불안하고 지쳐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을 놓는 게 더 불안했다.


그러던 중 아는 대표님이 “같이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연락을 주셨다.

가볍게 도와주려 파트타임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일이 커져 결국 나는 그 회사에 합류했다.


지금 하는 일은 직전의 회사에서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웹, 데이터, 서버 쪽 일들. iOS는 당분간 손댈 일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덜 피곤하다.

오히려 조금은 즐겁다.


같은 일인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생각해보니 차이는 단 하나였다.

이제는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


이전엔 누군가 가르켜 주는 방향으로 알지도 못하는 목적지를 향해 그냥 무작정 달리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무엇을 먼저 할지 스스로 판단한다.

그리고, 전에 경험한 그 어떤 조직에서보다 경험이 많으신 분들과 일함에도, 그 선택을 충분히 존중받고 조언받고 지지받는다. 그리고 평가받는다.


같은 웹 개발이어도,

"내가 결정해서 하는 일"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작은 성취 하나에도 의미가 생기고,

하나씩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오랜만에 “아, 내가 다시 일하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돌아왔다.


떨어졌다는 건,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


원하던 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이젠 아쉽기보다 감사하다.


그 과정이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기술에서 부족한지,

어떤 환경에서 잘 맞는지,

그리고 어떤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을 찾고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그 방향감각을 바탕으로

다시 체력을 기르고, 감각을 되살리고 있다.


정체기라는 말이 싫어졌다


이직기간 동안, 한동안 나는 스스로를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 퇴사했는데 더 정체된 느낌이었다.

채용에도 실패하고 하루하루 그저,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건 정체기가 아니라 회복기라는 걸 깨달았다.


몸이 다쳤을 때

바로 운동을 시작하면 오히려 더 크게 다치듯,

커리어도 가끔은 조용히 회복해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 시기를 지나야 다시 전력으로 달릴 수 있다.



지금 나는,

퇴사하면서 하고 싶었던 그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다시, 그 방향, 어쩌면 그 다음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


이전보다 천천히, 조금 더 내 페이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