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R. 톨킨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판타지 장르 팬이라고 자부하신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일 겁니다. 아니더라도 '반지의 제왕'의 작가라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겠죠.
'호빗',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의 창조자, 모든 하이 판타지의 조상, 이 대작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도메 카루코스키가 감독하고 니콜라스 홀트가 주연을 맡은 2019년작 '톨킨'입니다.
톨킨의 '가운데땅' 세계관을 아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이롭게 여기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세계의 '언어'에 대해서입니다.
보통 우리가 여러 작품을 볼 때 언어는 쉽게 간과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간혹 전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한 언어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더라도 '그러려니' 넘기는 경우가 많죠.
왜냐하면 작품에는 더 신경 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인공들이 움직여야죠. 말이 통해야 내용이 진행되죠. 말이 다르다고 몇십 분씩 잡아먹어서야 안 될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톨킨은 바로 그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요정들이 사용하는 언어를요.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여럿 만들어냈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작품을 위해 언어를 만들어낸' 일을 그의 업적으로 여깁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이 영화는 제 그런 인식에 변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하이 판타지의 효시인 작가'가 되어가는 톨킨이 아닌, '언제나 한결같이 언어를 사랑했던 청년'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년기의 톨킨에서부터 시작해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일대기를 따라가는 와중에도 영화는 단 하나, 톨킨의 '언어 사랑'을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영화 속 그는 심지어 술주정까지 자기가 만든 언어로 부려대는 '언어 덕후'입니다.
언어는 사고방식이자 한 민족이 걸어온 역사의 지도입니다. 때문에 톨킨은 언어 하나만이 덩그러니 존재할 수는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가상의 언어에는 가상의 민족, 가상의 역사, 가상의 전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런 과정을 통해 톨킨의 전설이, '가운데땅'이 탄생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소설을 쓰려고 언어까지 만들다니 대단해!'가 아니라, 그 반대였던 셈이죠. 언어가 있었고 그 언어를 위한 전설이 만들어진 거였습니다. 한때 그를 궁극의 설정덕후로 여겨왔던 제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점이었죠.
"The invention of languages is the foundation. 'The stories' were made rather to provide a world for the languages than the reverse. To me a name comes first and the story follows."
"언어의 발명이 기초입니다. '이야기들'은 언어에 세계를 부여하기 위해서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제게 먼저 온 것은 이름들이고, 이야기가 뒤따랐습니다."
-J. R. R. Tolkien, Letter 165
"because the making of language and mythology are related functions."
"왜냐하면 언어를 창조하는 것과 신화를 만드는 것은 연관된 기능이기 때문이다."
-J. R. R. Tolkien, A Secret Vice
물론 작가에게 언어에 뒤따른 전설들이 '부산물'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그는 둘을 구분하기보다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여겼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가꾸고 정리하는 것에 평생을 바쳤으니까요. 남들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사랑해주는 것도 아주 기뻐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화가 된 그의 이름 저편에 있었던, 그저 언어를 너무나 사랑했던 한 청년의 삶은 어땠을지 상상해보는 일은 여태 그를 '판타지의 제왕'으로만 생각해왔던 것과는 색다른 측면의 즐거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콜라스 홀트의 열연으로 스크린 속에 재구성된 그의 삶을 지켜보는 것을 통해서요.
영화 '톨킨'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