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아리 Apr 11. 2023

나의 부모(1)

어머니에 대해

  나의 부모는 내 인생과 존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내 삶에서 아직도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고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밀접하게 다 지켜본, 내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내 자신이 역사라면 나의 부모는 내 기원이자 지배자들이다. 마치 신화 속에서 신들이 인간의 창조주이자 지배자들인 것처럼. 나의 부모도 그렇다. 나는 부모를 사랑하지만 그들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내 부모 중 어머니는 깊이 공감하고 애정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뿌리 깊은 앙금이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사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말할 수 있다. 제우스는 심판자이기 이전에 권력을 이용해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쇠사슬로 묶고 독수리에게 매일 간이 쪼이게 하는 잔학한 형벌을 준 가해자이다. 내가 프로메테우스처럼 선지자도 아니고 신도 아니지만 관계의 증오심만 놓고 보면 그렇다.


  일단 어머니와의 관계를 놓고 보면, 어머니는 내 인생에서 나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이자 내 인생의 유년기를 망친 가해자이기도 하다. 자식을 위해 끝도 없이 헌신하는 헌신자이자 자식을 차디찬 바닥에 내다 버릴 수도 있는 매몰찬 유형이기도 하다. 자식을 위하지만 자식을 매섭게 억압하고 구속하는 존재이기도 한다.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내 자유로운 인생을 위해 가장 벗어나야 하는 존재도 어머니다.


  어머니는 내가 가장 많은 상처를 준 사람이지만 나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내 유년시절의 어머니는 부당함을 대변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왕따를 심하게 당했을 때도, 내 왕따를 외면했던 사람이었다. 늘 방 안에서 컴퓨터로 고스톱을 치시며 어린 내가 학교 생활의 괴로움을 호소하면, 늘 내가 그럴만했다는 가해자의 논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애들한테 맞거나 폭력을 당하는 사달이 일어났을 때에야 어머니 본인이 나섰다. 그러나 그건 진정 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내게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건,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 주체들이 내게 사과할 권리를 어머니 당신이 박탈했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친구를 모함하는 글을 학교 게시글에 올렸다는 누명을 쓰고 당시 담임이었던 선생에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죽을 듯이 맞았을 때도, 지금이야 폭력이지만 그때에는 그저 강한 체벌 정도로 공공연히 자행되는 행위였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내가 그 선생에게 맞아 시퍼렇게 멍든 엉덩이를 보며 밤새 울었었다. 그리고 그 선생을 찾아갔다. 선생은 무릎을 꿇고 내 어머니에게 사과했다. 그 뒤 무려 진범까지 찾아냈다. 어머니는 말했다. 선생은 사과했고 너는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외부 활동 시간에 상습적으로 내 뒤통수를 때리며 나를 혐오하던 남학생이 있었다. 담임이었던 선생이 알고 훈계하자 왜 나 같은 애랑 짝꿍을 시켰냐고 바락 바락 대들던 남자애.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았다. 내게 폭력을 했던 남학생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와 그 당시 언니 동생 하던 사이로 어머니는 역시 그 남학생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리고 남학생의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을 어머니에게 토로하며 울며 사과했다. 어머니는 말했다. 사과했다고.

  사과했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에게. 그러나 폭력을 고스란히 당했던 어린 내게는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내게 누명을 씌운 진범을 어머니는 아직도 내게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 그 애는 벌을 받았을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그들은 벌을 받았는가. 누구에게 용서받았는가. 어머니는 한 번도 어린 내게 괜찮았느냐고 묻지 않았고 그들이 내게 사과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신이 해결했고 당신이 사과를 받고 당신이 그들을 용서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어머니는 어머니가 사과를 받고 해결함으로써 그들이 내게 사과할 권리를 박탈했다. 어린 내게는 아무도 사과를 하지 않은 해결이었다. 여전히 진범은 내게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어머니는 내게 헌신적이었다. 식이장애와 학교부적응으로 내 정신병이 심하게 도졌을 때, 3년간 심리클리닉을 다녔는데 어머니는 물심양면으로 나를 보살폈다. 3년간 클리닉을 함께 다니며 내게 꼬박꼬박 정신과 약들을 챙겨 주셨다.

  내가 처음으로 집안의 모든 약을 까먹었을 무렵 어머니는 밤을 지새우며 잠도 못 자고 불침번을 서야 했다.

  성인일 시기, 나는 사회 부적응으로 시도를 몇 차례나 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응급실에서 딸의 모든 수발을 들었다. 나는 시도를 수차례 한 것도 모자라 일회용 헬륨 가스를 구입해 집안에 숨겨 놓다가 들키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는 자해를 들킨 것도 그렇다. 그때마다 나의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어머니는 당신이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실제로 어머니는 나를 죽이려고 했다. 이 사실은 내게 중요하다. 잊을 수도 없고 잊히지도 않을 일. 나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남자를 잘못 만났다. 그 남자는 마시고 인사불성의 상태가 된 나를 모텔로 끌고 갔다. 내가 그렇게 준 강간을 당했을 때, 어머니는  사실을 고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때 어머니의 얼굴이 꿈에서인들 잊힐랴. 시뻘건 눈을 하고 어차피 죽을 애 내 손으로 죽이겠다며 내 목을 조르려 날 뛴 어머니. 강간을 당하고 온 내게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강간을 한 남자를 죽이려 한 게 아니라 나를 죽이려 했던 그 순간의 어머니는 강간을 당하고 온 나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그 남자와 나는 서로 합의를 봤고 나는 그 남자가 나와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제대로 사죄를 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의 어머니는, 어렸을 적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가해자가 사과할 기회를 박탈했다. 내가 그놈을 만나 무엇하겠냐고 하시며 사과를 거절했다. 사건은 흐지부지 끝났다.


  다정하고, 가족 밖에 모르며 헌신적이면서 자애로운 어머니. 당신은 내게 좋은 어머니였나, 그렇게 누군가 묻는다면 그녀는 좋은 어머니였다. 아직도 어머니는 내 정신과를 따라다니고 내게 아직도 약을 챙겨준다. 다른 모든 건 깜빡해도 내 약만은 까먹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준다. 내가 미성년이었을 때와 다르지 않게, 품 안에 낀 채로.


  나는 어머니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른아이이다. 어렸을 때도 어머니가 내 모든 것을 해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내게 두 끼 밥을 차려주시고 집안일은 당신이 다 하신다. 나는 서른의 나이에도 요리 하나 못하고 세탁기를 돌리는 법을 모른다. 내 모든 것은 어머니의 수중에서 돌아간다. 나는 어머니의 보살핌이 아직도 필요하고 어머니 역시 나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을 지고 있다. 내게 어머니가 필요한 것처럼 어머니에게도 내가 필요하다. 어머니와 나는 딸과 어미의 관계가 아니라 운명 공동체의 관계로 서로 중 누구 하나라도 죽지 않고는 서로에게 떨어질 수 없다.


  어머니의 보살핌과 헌신이 성인이 되고 남자친구가 있는 지금, 구속과 억압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다. 내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이유로 어머니는 내게 술을 일절 금지하셨고 내 사리분별력과 결정을 불신해 남자친구와 외박도 동거도 심지어 성관계도 모두 금지했다. 친구와 만나 9시만 넘겨도 전화를 해댔다.  무차별적인 어머니의 통제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당신의 보살핌과 책임은 딸이 오롯이 성인으로서 판단하고 결정할 자유와 책임과 권리마저 빼앗았다. 딸을 자신의 품 안에 두려는 그녀의 태도는 욕망이었다. 어머니로서의 도리와 의무라는 명분으로, 그 욕망은 어머니에게 합리화 됐다.

 

  나의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다. 비록 빗나가긴 했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경계선 지능임을 알아채지 못해 지금 후회하고 계시는 어머니. 그때 알았으면 공부를 시킬 게 아니라 다른 노력을 했을 텐데 하시며 반성하시는 어머니. 내가 첫 판정을 받았을 당시 당신이 나를 책임지겠다고 하며 내 울음에 비장하게 나를 위로하던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 좋은 여자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리스타 클래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