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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아리 Aug 31. 2023

지식을 쌓는다는 것

어설프고 얄팍한 지적 욕망

  저번주 코로나에 걸려 5일간 자가격리를 했다. 코로나 위험성이 많이 낮아지고 코로나의 영향이 꽤 풀릴 즈음 재차 걸린 코로나라 살짝의 의문과 내 유약한 면역체계를 탓했다. 가족들 역시 의아해했지만 오빠 방으로 쓰인 방에 갇혀 엄마의 수발을 받으며 보내자 오히려 생활의 안정(?)이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한 곳에 온전히 갇혀 있자 나 자신에 집중하고 몰입할 시간을 얻게 됐다. 게다가 자가격리를 잘 지키면 생활지원금도 받을 수 있으니 반백수나 다름없었던 내게는 좋은 기회였다.

  지루함은 무언가를 하면 사라지는 법. 나는 지루함을 몰입으로 채웠다.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지적 양식을 쌓는 일이었다. 오빠 방에는 예전부터 꽂혀있던 어린이용 교양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았고 책들은 먼지 덮여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 책들이 눈에 띈 것이다. 이즈음 나는 주로 소설책이나 에세이류 책만 읽는 독서 편식을 하고 있었어서 교양이나 인문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결핍을 느꼈다. 그러나 도서 정가제로 묶인 서점의 책들은 내겐 고가의 사치품이나 다를 바 없었고 중고서점의 책들 역시 소설류들이 강세해 인문교양 책들 중 내 눈에 띄는 책들은 없었다.  나는 지식, 그중에서도 정보 위주의 지식에 목말라 있었다. 정보 위주의 지식 중 내 눈에 제일 먼저 띈 분야는 역사였다. 역사, 사회 분야는 내게 그 역사가 깊다. 학창 시절 국영수 과목은 점수가 처참했으나 역사나 사회 과목은 점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언제인지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고등학생 때 한국사 과목으로 전교 1등을 한 믿거나 말거나 경험이 있었다. 이미 이 분야에서는 성취를 한 이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정보 위주의 지식 중 역사 분야만큼 기본이 되고 그 실체가 두드러지는 분야도 없다. 인문의 절반은 역사가 근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 띈, 먼지로 뒤덮인 어린이용 역사 시리즈 책은 그런대로 읽을 가치는 있었다. 교원 출판사에서 펴낸 눈으로 보는 한국역사책은 총 20권으로 되어있으며 상고시대부터 현대사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코로나 격리 시기 나는 이 책을 탐독했다. 20권 중 6권 조선 전기까지 읽었다. 인류의 기원과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지나 고조선시대와 삼국시대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서 새 왕조시대인 조선시대 초입까지 읽은 내 후기는 어린이용 책이다 보니 민간 설화나 풍속 위주의 가벼운 내용들이 많아 성인용 역사 인문 지식을 쌓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왕들의 주요 업적이나 시대의 정세들이 너무 가볍게 훑고 가는 느낌이라 차후 한국사 시험까지 생각하게 할 정도로 탄탄한 지식을 얻기에는 미흡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안 읽은 것보다는 낫고 빈약한 지식이긴 하지만 안 읽었을 때보다는 지식을 쌓았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에는 손색이 너무 많아서 따로 역사 국정 교과서를 주문했다. 교과서만큼 지식 쌓기에 교과서적인 건 없다. 토익은 토익에게 물어봐라는 토익 시험 기출사인 ybm의 광고처럼 교과서적인 지식은 교과서에 물어보면 된다.


  사실 내 지능은 경계선이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이 높은 아이였고 허영에 가까운 지적 욕망이 있는 아이였다. 남들보다 열등하면서 우월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던 나는 주로 언어나 역사 같은 문과적 지식욕을 자주 드러냈다. 그중 국어나 외국어 같은 언어는 망했지만 인문이나 역사. 그리고 국어에서는 비록 실패를 했지만 소설 같은 문학 지식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였다. 나는 그 분야들에 파고들었다.


  사실 사회 적응이나 실용적인 살림 문제나 금융 상식 같은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면서 추상적 지식인 인문, 역사, 문학 지식 쌓기는 주객이 전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실존적 토대에 있어서 당장 먹고살 문제나 실리는 전혀 모른 채 배가 부르고 난 뒤에 충분히 쌓을 수도 있는 고차원적 지식을 쌓으려는 생각은 어쩌면 현실 실정 문제에는 도피한 채 정신승리나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현실이 안정되지 않은 채, 자폐적 인문 지식 쌓기는 사상누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다고 얼마나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알량하고 얄팍한 지적 욕구고 그 욕구는 내 치기나 객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욕망을 욕망하는 건 아무래도 계속 내가 글을 쓰듯이 경계선 지능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내가 멍청하지 않다는,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모종의 의식에서 나온 것이기에 나는 이 의식의 강력한 필요를 거부할 수가 없다. 이것마저 없다면 진짜 바보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하여 남들에게 별 볼 일 없이 비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나를 맹목적 지식 쌓기로 이끌었다.


  사실 내가 만나는 경계선 지능들에게도 공통된 특징이고 가장 뼈저린 특징이기도 한 것이 있다. 그들은 한자 1급이 있고 중국어와 일본어등 어학 지식이 있다고 해도 경계선 지능들은 하나같이 사회나 경제적 기술, 적응력, 살림 능력등 세상 물정이나 실리적 능력에 굉장히 취약하다. 그 취약함이 다른 무엇보다 가장 경계선 지능들을 노동시장이나 고용 환경에서 도태되게 만드는 특성이다. 아무리 한자 1급이나 있고 중국어와 일본어, 영어에 능통하다고는 해도 눈에 띄는 물정적 아둔함과 어눌함, 무식 등의 특성은 당장의 취업과 자립, 부의 축적에 절대적 불이익이다. 일반인들의 뛰어남과 그들의 뛰어남은 명백히 다르다. 사실 그들의 뛰어남이란 것도 세상 물정이나 사회 경제적 능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쓸모없는 스펙이 되고 마는 것이며 일반인들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것이다.

  

  얄팍한 지적 욕망과 지식 쌓기보다는 자립성과 사회 경제적 지식과 기술을 쌓아야 유리한데 나는 실학과 전문기술을 등한시한 조선시대 성리학자마냥 인문 지식 쌓기만 바라고 있으니 내 삶은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책 하나 읽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어설프게 안 지식이 오히려 내 꼴을 더 우습게 만들 뿐이다. 당장 예금과 적금의 차이도 모르고 컴퓨터 관련 지식도 없으면서 방대한 한국역사를 말하고 있는 나는 배가 아닌 배꼽이다.

  그래도 나는, 내 취향과 사상은 아무래도 세상물정보다는 만물박사 쪽인가 보다. 내 적성 역시 그렇다. 어쩔 수 없다. 내겐 역시 컴퓨터 능력이나 알뜰살뜰한 살림, 금융상식보다는 역사나 문학 쪽인가 보다. 헛똑똑이가 내가 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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