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런던에 온 이유

10년 노래를 부르면 이뤄집니다

by 지구별
2025년 8월 13일, 런던행 비행기에 타다


선택적 기억 상실 증상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한다. 내가 무슨 일을 시작하려할 때 그렇듯 누군가 검색을 하다 도움이 된다면 더 좋겠고.

2025년 8월 13일, 런던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민가방 2개와 기내용 가방 1개와 함께. 그마저도 이민가방 하나에는 대형 캐리어와 짐들을 넣었더니 최대 반입 중량인 32kg이 넘어서 짐 하나를 덜어냈다. 이코노미 항공권 규정인 23kg를 넘어서 10만 원 추가는 덤이었다.

이번이 벌써 3번째 해외 살이인데,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나보다. 첫 번째 해외 살이는 미국 교환학생이었는데, 캘리포니아주 작은 마을에 있는 UC 계열 대학교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처음으로 1년이란 긴 기간 동안 해외에 나가는 스무살을 조금 넘긴 학생 주제에 짐은 전날에 쌌다.

내 기억엔 이민가방 달랑 하나와 큰 배낭 하나 짊어지고 갔던 것 같은데, 전날 밤새면서 짐을 싼 만큼 마구잡이로 가방에 던져넣듯 짐을 쌌던 기억이 있다. 자녀를 강하게 키우는 부모님을 둔 탓에 그때도 짐 싸기는 전혀 도와주지 않으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래서 나는 독립심이 강하고 무엇이든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당시 나는 신발에 꽂혀 있던 터라 신발만 10켤레 넘게 이민가방에 던져 넣었다. 이걸 보고 인천공항에 마중나왔던, 같이 교환학생을 떠나는 친구의 언니가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이 난다. "패션쇼 하러 가니". 그때도 짐을 너무 대충싸는 바람에 공항에서 짐 해체와 조립을 하느라 친구 언니가 내 짐들을 목격했다.

두 번째 해외는 일본이었는데, 회사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1년 동안 후쿠오카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것도 벌써 8년 전 일이다. 내가 사는 부산에서 순수 비행 시간으로는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이고, 휴가만 내면 언제든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으니 아예 이민가방은 들고가지도 않았다. 한 겨울이었는데 겨울옷만 잔뜩 싸서 들고 갔던 기억이 난다. 대신 돌아올 때 짐이 너무 많아져서 EMS로 몇 박스나 되는 짐들을 한국으로 보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세 번째 해외살이는 런던이다. 친한 친구들이라면 지겹게 들었던 나의 런던 살이의 꿈이 이뤄졌다. 역시 목이 마른 자에게는 기회가 있고, 꾸준히 노래하다보면 이뤄진다.

처음 런던에 발을 들였을 때는 아마도 2014년이었을 거다. 당시 나는 햇수로 4년차 사회부 경찰 기자로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경찰서에 출입하는 기자는 휴가도 자유롭지 못해서, 주말을 붙여 최대 열흘 정도 쉴 수 있는 여름 휴가가 유일한 낙이었다. 당시 꽂혀 있던 책은 미술사 관련 책이 대다수였고, 런던의 수많은 미술관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내셔널 갤러리'(2014,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꼭 직접 가보고 싶었다.

9월의 어느 날 혼자서 나는 덜컥 런던에 도착했다. 숙소는 켄싱턴에 있는 임페리얼 칼리지 대학 기숙사로 소박하지만 화장실이 딸려 있고 조식을 주는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홀로 여행객이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런던 치고는 저렴한 가격에 지낼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런던에 도착한 나는 한눈에 런던과 사랑에 빠졌다. 런던하면 악명 깊은 날씨로 유명하지만, 내가 찾았던 그 주는 화창하고 비 한 번 내리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우연히도 런던패션위크 기간이어서, 거리에는 조각상 같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와 왜 아무도 나에게 런던이 이런 곳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나)

대부분의 런던 관광객이 그렇듯 내셔널 갤러리에도 가고 테이트 모던에도 가고, 세인트 폴 대성당 꼭대기에도 올랐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감동 받아서 눈물을 흘렸고(건조한 내 성격상 드문 일이다), 내가 태어난 해 첫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해인 2015년 여름 휴가에는 절친한 친구와 함께 런던과 아일랜드 더블린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로 여행했다. 해머스미스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묵었는데 숙소 환경은 사진과 같았지만 3~4층 정도의 꼭대기 집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캐리어를 옮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런던 빅토리안 양식 집 중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이 특이한 집이라는 것을.)

두 번째 런던 여행때도 부지런히 미술관 투어를 다녔고, 그 때 본 뮤지컬 '마틸다'를 사랑하게 됐다. 당시 한국에서도 인기 절정이었던 BBC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오는 연극 '햄릿'도 볼 수 있었다. 추첨 티켓에 당첨되었는데, 친구와 내가 나란히 응모했는데 나는 떨어지고 친구 표가 당첨됐다.(그런데 기쁨도 잠시...알고 보니 친구가 휠체어석으로 잘못 체크했는데 당첨된 표였다. 기자지만 전화 통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꼭 공연을 보고 싶은 열망에 한국에서 국제 전화를 걸었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설명했는데도 용케 알아들었다. 전화를 받은 청년은 자기 보스랑 얘기를 해보겠으니 기다리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1시간 같았던 5분 간의 기다림 끝에 2층 제일 첫 줄로 변경된 2장의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을 현대 버전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는데, 시차 적응도 안 된 데다 대사도 잘 안들려서 앉아있기가 쉽지는 않았다. 친구와 번갈아가며 졸다보니 공연은 끝나 있었다.(미안해요 컴버배치)

그런데 정말 인상에 남았던 건 커튼콜 때였다. 당시 시리아 난민들이 배를 타고 시리아를 탈출하려다 바다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하는 등 국제사회의 동정이 커지던 상황이었는데, 컴버배치가 커튼콜에서 이들을 돕자며 나선 일이었다. 비록 내가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완벽한 발성으로 '햄릿' 연기를 끝낸 컴버배치가 목소리를 떨면서 사람들에게 시리아 난민을 돕자고 호소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시를 낭송하면서 객석으로 모자를 돌렸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가지고 있던 동전과 지폐를 모자속으로 던져 놓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내 안에서 런던뿐만 아니라 영국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내 성격상 그 다음해에도 여름 휴가는 런던이었다. 궁금했던 베를린을 함께 둘러보는 코스로 짰다. 이 때 찾은 런던 숙소는 내셔널 갤러리 코앞에 있는 LSE(런던정경대) 노섬벌랜드 기숙사였다. 좁았지만 화장실이 딸린 엔스윗(En-suite) 룸으로 런던을 여행하기에 최고의 위치에 있는 가성비 숙소였다.

미술관을 또 한 번 돌았다. 테이트 모던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경험도 했다.(다시 말하지만 건조한 성격상 감동을 받아 우는 일은 정말 잘 없다. 마크 로스코는 정말 천재다.) 테이트 브리튼과 초상화 박물관에서 영국 작가 작품의 매력도 느꼈다. 마크 로스코가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윌리엄 터너의 후기 작품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정말 갖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3년 연속으로 소중한 여름 휴가를 바쳤던 런던에서 언젠가 꼭 살아보리라 마음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인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회사는 런던 특파원 제도도 없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연수 차례가 오면 꼭 런던으로 연수를 떠나기로. 그 차례가 올해 나에게 왔고 지금 런던에서 글을 쓴다. 딱 9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이 어떠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이 사진으로 대체하고 싶다.

KakaoTalk_20250904_160130851.jpg 올해 런던 첫 숙소는 LSE 기숙사 패스필드홀이었다. 10년 전과 비슷한 돈을 냈는데 화장실은 공용이고 9박 10일 동안 침구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런던을 찾지 않았던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영국은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단행했다. 트럼프 2기에 들어선 미국,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달러 약세, 파운드화 강세 기조가 강화됐다. 그 결과 런던의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있었다.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초상화 박물관은 여전했고, 캠든 마켓, 브릭레인 마켓 등 런던 대표 마켓들도 활기가 가득차 있었다. 10년 전에도 런던 물가는 비쌌지만, 그 때와 비교하면 체감상 물가가 2배는 오른 것 같다.

이번에 숙소로 선택한 곳은 LSE 패스필드홀이었는데, 런던 중심가에 있고 조식을 제공하는 합리적인 가격의 기숙사였다. 그런데 화장실 딸린 방은 애저녁에 매진이었다. 예전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공용 화장실 숙소지만, 무지막지하게 올라버린 런던 물가에 놀란 나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숙소 사진을 본 친구는 "감옥 독방이니?..."라는 짧막한 답장을 보내왔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숙소 예약이 끝나는 9박 10일 전에 집을 구해 이사하는 것. 과연 목표는 이뤄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