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타임라인 중 자유여행의 길 위에서
성공이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갖는 사치를 누리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중에서)
홍릉수목원에서 학과 동문의 가을 나들이가 있다는 알림을 받았다.
사실 내 인생 최대의 사치 시간은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비록 사이버대학이나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을 한 것이다. 사이버대이고 학과 특성상, 연배가 다른 학과에 비해 높은 편이라 다들 여유와 열정은 남달랐다. 오프라인에서 몇 번의 모임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이력과 능력은 대단했다. 모임이라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재능을 기부했다, 나는 물심양면으로 여유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동문과의 모임이다.
당일 아침 컨디션이 안 좋았으나 참석한다는 약속은 지키기로 마음먹고 나섰다. “약국을 들러 약 사서 먹고” 혼잣말하며 정류장에 왔는데 전광판이 버스는 3분 도착이라 알려준다. 몸도 느린데 차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우려하며 바로 앞에 있는 약국에 못 들어가고 그냥 기다린다.
긴 3분, 나는 매번 조바심에 다음 행동을 못 하고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런저런 약초들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동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 사이를 바쁘게 오르락내리락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다가 크게 웃어본다.
참 잘 왔다.
인생에서 짧은 순간 마음만 먹으면 되는데 이런 시간을 못내 후회하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살면서 여행을 많이 못 해 본 나는 문득 어딘가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 자유롭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잊고 떠난다는 것은 용기도 필요하다.
마음속 여행만 떠나고 막상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언제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보았을까?
내가 기억하기로는 2010년 1월 가족여행이 아니었을까?
말기 암 투병 중이신 친정아버지와 우리 4남매가 같이 하고 싶은 것은 아버지와 추억만들기였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아버지와 같이 가는 가족여행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몸은 멀리 가기에는 무리여서 가까운 곳이라도 경치 좋은 펜션을 빌려서 아버지와 같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간 곳은 경기도 인근의 한적한 곳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이른 아침 서울 벗어났을 때의 상쾌한 공기, 힘이 드셨을 텐데도 내내 즐거워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좀 더 일찍 아버지와 이런 시간을 가졌더라면 하고 가슴 한편이 먹먹했었다.
한 달 뒤 아버지는 진짜 먼 여행을 떠나셨다. 장례가 끝나고 형제들끼리 모여 이제는 홀로 남으신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도 가고 아버지께 못다 한 효도도 하자고 말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해 여름 바쁜 생활에 잊고 있었던 엄마와의 여행을 생각해 내고 어디에 가고 싶으신지 물어보았다. 전국을 안 가 본 곳이 없는 엄마는 한강유람선은 무슨 이유인지 아버지가 절대로 못 타게 하셔서 안 타보셨다는 말에 소원을 들어 드리기로 하고 동생과 휴일에 일정을 잡았다.
당일 아침 남편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쓸어졌다. 중환자실 앞에서 울며 대기하는 큰딸을 보고 집에 가시던 엄마는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가혹한 시련에 내일이면 무슨 불행이 덮쳐 올지 불안과 공포에 떨었었다. 갑작스러운 일들이 삶을 온통 바꿔버렸다.
시간이 사람의 마음도 무디게 하는지 모른다. 남편은 8년이 지나 인연이 끝났는지 영원의 시간으로 떠났다.
동생이 그간의 노고를 보상하는 제주도 여행을 기획했고 난 올레길 정상에 올라 가슴을 활짝 폈다.
축소되었던 생활의 반경을 넓히고 크게 웃고 숨을 쉬었다. 다음 해 봄, 나에게 없었던 시절 대학생이라는 사치의 시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로 했다.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나를 위해 아이들이 일본 여행을 기획했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던 아이들과는 남다른 마음이 있으나 함께 제대로 된 여행을 한 기억이 없다.
갑작스러운 무릎 시술로 다리가 불편하였음에도 여러 가지를 조절하며 감행한 시간,
무리가 없도록 하였다는 아이들과 나는 모처럼 만의 시간을 누렸고 후회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어림없을 한 끼를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시시한 농담을 하고 일상에서 떠나온 자의 특권을 누렸다. 도쿄 타워를 바라보고 멋진 사진의 각이 나오는 명당자리가 있다는 공원에 앉아 해가 저무는 풍경과 타워를 바라보며 타임랩스 사진을 찍었다. 타워는 묵묵히 그 자리에 있고주변은 시간을 따라 서서히 변화하는 색 다른 정취였다.
긴 시간 동안 느리게 변화하는 도쿄 타워를 바라보며 리랙스한 기분이었다. 그냥 잊어버리고 두었던 카메라에 담긴 풍경 속 시간에는 사람들이 급히 왔다가 사라기를 반복했고 내 모습도 있었다.
조급함을 버리고 멀리서 바라보는 인생도 이와 같을까?
설레며 계획했던 일들도 여러 가지 사정들로 바뀌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지는 날들도 있지만 고투했던 시간은 오늘이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위한 여행길을 떠나는 길 위의 인생이기에 오직 현재 이 순간을 멋지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