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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Aug 14. 2024

마음껏 느끼고 만져보렴-

6개월에서 18개월



6개월에서 18개월 :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탐색하며, 내가 배운 것을 믿는 일은 안전한 걸까?


  '이 시기 영아는 자신의 감각과 부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의 탐색을 격려할 때, 아이는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 “네가 활동적이어도 좋고 조용해도 좋아."

▮ “걱정하지 말고 네가 알고 싶은 것은 탐험해도 돼."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은 새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는 것을 오랜 세월 영유아를 돌보는 교사로 지내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걷기 시작할 시기에 맞춰 아파트 1층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편안하고 믿을만한 공간인 집에서, 뛰지 말라는 말로 성장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18개월이 지나 다음 발달 단계로 접어들었을 무렵 하소연을 하듯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선생님은 틀렸어. 교실에서 뛰면 안 된데! 우리 어린이집은 1층인데!" 저는 아이에게 우리 집에는 꼬마가 한 명이지만, 어린이집에는 꼬마들도 많고 책상이랑 교구장도 많아서 뛰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1층이지만 뛰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바깥놀이터나 유희실에서는 뛰어도 좋으나 교실 안에서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 걸어야 안전하다고요. 그리고 집에서는 뛰어도 좋으니 어린이집 마치고 집에 와서는 마음껏 움직이고 뛰어놀아라고 허가해 주었습니다.


전셋집 1년 이후 같은 동 다른 라인 1층으로 자가 이동!


  요즘은 대다수의 아이들이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을 걱정하며 성장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아래층에 사는 이웃을 만날까 봐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온 거실에 충격흡수 매트를 깔고 소음을 줄여주는 슬리퍼를 신고 생활해도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발달과업인 아이들에게 얌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발달을 거스르는 것이지만, 현대의 주거문화는 아이들에게 제 나이답게 뛰고 구르는 것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가정이 아이의 행동과 정서의 발달을 위해 1층에 살 수는 없습니다. 대신 아이의 발달을 위해서 돌 전후부터 돌 반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조금 더 특별히 지원해 주면 어떨까 합니다. 계절이 허락한다면 자연에서 충분히 움직이며 놀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장마나 추위로 여건이 좋지 않을 때에는 실내 공간을 찾아서라도 충분히 소근육과 대근육을 함께 사용하게 해 주세요. "활동적이어도 좋은 장소에 아이를 자주 데리고 가서 "우리는 네가 활동적이어도 좋고 조용해도 좋아."라는 메시지를 주세요.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를 편하게 주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아이의 안전과 위생에 대한 염려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 아이들은 가구나 교구장에 부딪혀 멍이 드는 일이 잦고, 뛰다가 넘어져 찰과상을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 우리가 클 무렵에는 무릎 보호대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유모차나 아기띠가 아이의 이동을 도우면서 안전을 완전히 통제합니다. 안전에는 도움이 되지만 아이가 세상을 마음껏 탐색하고 운동 능력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무릎 보호대를 하고 넘어질지언정 자유롭게 걸어보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보호대를 착용시키거나 구급약품이나 여벌옷 등을 잘 준비하여 아이의 뒤를 바짝 따른다면, 아이는 부모라는 뒷배를 믿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탐색하고 행동해 볼 것입니다.




 

▮ “무엇이든 관심을 가져도 좋아."

▮ “네 생각과 느낌을 믿어도 좋아."


  집 안에서 아이들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곳은 주방과 욕실, 현관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 아이는 틈만 나면 욕실로 기어 들어가 욕실 슬리퍼를 수달처럼 배 위에 올려놓고 두들겨 댔습니다. 걸음마를 하면서부터는 뚜벅뚜벅 현관으로 걸어 나가 신발장 문을 열고 신발을 한 켤레 한 켤레 탐색하고는 어깨너머로 휙휙 던졌습니다. 싱크대 하부장을 열고 냄비며 소쿠리며 온갖 살림살이를 꺼내 두드렸고, 변기에 손을 넣고 찰박찰박 물놀이를 하다가 들키기도 했습니다. 항상 아이가 자유롭게 움직일 여지를 주었기에 아이는 집 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만지고 느끼고 탐색했습니다.


화장실 바닥을 기어 다니고, 선반 아래로 기어들어가는게 재미있었던 우리 아기-


  부모는 아이가 위험한 것과 지저분한 것에만 흥미를 보이는 것이 불편하고 화가 납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눈앞에 있는 물건들과 상황들이 위험하고 비위생적인지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 시기의 영아를 돌보는 부모님들께서 종종 하시는 질문이 "몇 개월 때부터 훈육을 해도 되나요?"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이것저것 저지리를 하는 자녀에게 이제는 뭔가 가르쳐야만 한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저는 18개월까지는 훈육보다는 환경을 잘 정비해 주고 '안 돼' 보다는 '해 봐'라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아이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물건들을 깨끗하게 관리해 주고, 위험한 물건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치워두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18개월부터 마음 놓고 혼내라는 것은 아닙니다. 18개월이 지나 아이에게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면 규칙을 인지하고 학습할 준비가 됩니다. 그때부터 안전에 대한 간단한 지시 따르기 훈련을 통해 아이가 규칙을 알아가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라도 문제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아직 이릅니다.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느라 주변 사람들에게 해을 끼쳤다면 부모가 기꺼이 사과하면 됩니다. 아이의 언어가 유창해지고 사고능력이 충분히 갖추어지기 전까지는 아이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아이가 아닌 부모가 지는 것이라 생각해 주세요. 아이를 훈육하고 지도하는 것은 다음 발달단계까지 미루어도 좋습니다. 




▮ “필요하면 몇 번이라도 반복해 봐."

▮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너의 모든 감각을 사용해서 알아봐도 된단다."  


  우리 아이는 던지고,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아이에게는 무언가를 잡고 힘껏 던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화가 나서 물건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것과는 구별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가 물건을 쥐고 던지는 것을 문제행동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대근육과 소근육을 발달시키고자 하는 성장의 욕구이자 발달을 위한 신호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무언가를 자꾸 던지려 할 때면 집 뒤의 시냇가에 데리고 나가 돌멩이를 마음껏 던지게 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모래 대신 조약돌로 가득한 해수욕장에 데리고 갔었는데, 중간중간 쉬기는 했지만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이는 돌을 던지며 놀았습니다.


던질만한 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0-1세 영아들의 무분별한 던지기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님의 하소연을 가끔 듣게 됩니다. 어떤 부모님께서는 단호하게 "그래도 저는 던지는 건 허용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문제행동으로 볼 것인지, 자연스러운 성장의 욕구로 볼 것인지는 아이가 어떠한 의도를 갖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파악하면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돌 전후의 아이가 화가 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물건을 자꾸 던진다면 그것을 문제행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아이가 운동놀이를 하는 중이라 생각해 주세요. 마음껏 던져도 되는 곳에 데려가 준다던지 집 안에서도 힘껏 던져도 좋은 솜공이나 종이공 등을 제공해 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정말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부모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아이의 또 다른 욕구가 있는지 살펴서 그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의 행동을 실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할 수도 있지만, 가장 마음이 편한 것은 자연에서 한 없이 행동을 반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연은 아이가 돌멩이를 수십 개를 던지더라도, 나뭇잎 수십 장을 뜯고 찢고 짓이기더라도 무한대로 허가합니다. 개수가 넉넉하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하더라도 다투거나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근의 공원과 계곡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나뭇가지나 나뭇잎, 돌멩이 등에 관심을 보이면 물로 헹구고 티슈로 깨끗이 닦아 탐색해보게 했습니다. 쉬지 않고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서서 흐르는 물을 충분히 만지게 해 주면서도 수도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연에서 놀이하는 아이에게 '그만! 이제 없어.'라는 말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언제나 넉넉하고 허용적이었습니다.


나무와 나뭇잎, 열매 등을 자유롭게 탐색했던 시간들-




▮ “너를 알아 가는 것이 참 행복하단다."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세상을 탐색하는 아이를 보며 신생아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표현해 주세요. 따스한 신체적 접촉과 격려를 줌으로써 부모는 아이에게 "너를 알아 가는 것이 참 행복하단다." 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휴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아기, 청소기를 쥐고 아나콘다와 사투를 벌이듯 탐색전을 벌였던 아기-


  아이의 행동을 판단 없이 수용하는 것이 이 단계의 부모가 해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의 행동을 해석하려 하지 마세요. 아이는 아직 어떠한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장의 욕구가 이끄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휴지를 찢은 것이 좋구나."라고 말하기보다 그냥 "휴지를 찢는구나."하고 말해주세요. 아이의 행동에 의도를 부여하는 순간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싹틀지도 모릅니다. 


  다음 발달 단계가 되면 아이 행동 하나하나에 의도가 담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릅니다. 아이의 행동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관찰해 주세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힘쓰세요. 이 시기는 한 발 물러나 그저 아이를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 부모의 재성장을 위한 조언


  남편이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단계가 바로 이 단계였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의 결과를 두려워했고, 아이의 위생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불편해하고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허용적이어지고 너그러워졌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아이와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자동차 바닥이 모래로 엉망이 되어도 짜증내지 않고, 흙먼지가 온통 옷에 묻어도 툭툭 털어 닦아내며 웃을 수 있는 어른 아빠가 되어갔습니다.

  통제불능의 아이를 키우면서 인생 또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파도가 치면 겸허하게 파도에 몸을 맡기듯 남편은 사랑하는 아이의 성장을 돕기위해 자신의 불안과 싸워 이겼습니다. 부모라는 역할은 우리를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을 무기로 무엇이든 이겨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모 자신을 다시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 시기에 인생의 큰 도전을 하였습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교사로 10여 년을 근무했고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어 있었던 상태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위탁 심사에 도전하였습니다. 서류를 준비하는 내내 남편에게 '떨어지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떨어질 확률이 훨씬 높은데 지금이라도 중단하고 도전을 접을까?'하고 불안해하며 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도전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시도해보자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아무 물건이나 입에 넣고 빨아보는 이 발달 단계의 아이처럼, 그렇게 저는 시청에 서류를 제출하였고 34세의 나이에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생각하기 전까지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에게 똑같이 권해봅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시도해보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용감하게 도전해 보세요! 뒤따를 결과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탐색하는 이 단계의 아이와 같이 그저 도전해 보세요. 어떠한 결과가 따를지는 경험을 해보아야만 알게 될 것입니다. Just Doing!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류분석 이론은 인간 발달단계를 총 아홉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에서는 그중 인생초기 다섯 단계인 0단계~4단계를 다룹니다. 이 브런치북은 교류분석을 공부하는 어린이집 원장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것을 발달단계와 긍정적 지지어를 기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긍정적 지지어란 발달 단계에 수행해야 할 발달 과업을 지원하는 메시지를 뜻합니다.


  다음 주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0단계 - 태내기 (되어가기) 2~3
1단계 - 출생~6개월 (존재하기) 4
2단계 - 6~18개월 (행동하기) 5
3단계 - 18~36개월 (생각하기) 6~8
4단계 - 3~6 (정체성과 ) 9~10
5단계 - 6~12 (구조화)
6단계 - 12~19 (정체성과  정체성, 분리)
7단계 - 성인기 (상호의존)
8단계 - 노년기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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