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두란 Aug 21. 2024

모든 감정은 중요하단다-

18개월에서 36개월_ 두 번째 이야기



18개월에서 36개월 :
느끼는 대로 표현해도 괜찮은 걸까?



  '이 시기의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기쁨뿐만 아니라 분노, 두려움, 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까지도 표현하는 것을 인정받아야 하고, 그러한 감정들을 처리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느껴지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살고 있나요? 누군가는 느끼는 대로 표현하며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여기고 적당히 감추고 살아갑니다.

  

"사내아이는 울지 않는 거야."
"이것 때문에 화낼 필요 없다. 엄마가 새것을 사 줄 거야."
"너는 현명해야만 해. 네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잖니."
"너는 화를 낼 때면 쭈그렁 할망구 같아."
"두렵니? 너는 진짜 남자가 아니냐?"  
 - 최신교류분석 p. 122


  부모로 하여금 이러한 메시지를 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진정한 감정을 부모에게 용인되는 다른 감정으로 대체하는 법을 배웁니다. '분노'라는 감정이 불편한 부모는 아이에게 '화내지 말고 좋게 말하기'를 가르칩니다. '슬픔'을 감당하기 힘든 부모는 '울지 말고 말로 하라'고 가르칩니다. 자녀의 '두려움'에서 오는 행동들이 답답한 부모는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용기 있게 해 봐'라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진정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부모에게 용인되는 다른 감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대체시킵니다.


  교류분석 상담이론에서는 인간이 최초에 느끼는 진정한 감정을 4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기쁨, 분노, 두려움, 슬픔'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한 감정에는 그마다 다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기쁨'이라는 감정의 쓸모를 굳이 논할 필요는 없겠지요? '분노'는 현재 내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며, '두려움'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며, '슬픔'은 소중한 것에 대한 상실로부터 자신을 충분히 위로하고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감정입니다. 이렇게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슬픔은 각각 현재와 미래, 과거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데 적절하게 역할을 하는 쓸모 있는 감정 삼총사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감정들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묶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려 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에게 각각의 감정이 하는 일을 알려주고 그러한 감정을 잘 쓸 때 감정활용능력을 충분히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들을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악을 쓰며 화를 내고, 무섭다며 울고, 원래대로 돌려내라고 웁니다. 그치지 않고 과열되는 웃음이 탈이 되는 순간도 종종 있습니다. 이때의 부모는 감정이 각각 어떠한 역할을 하고 어떤 쓸모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좋은 주도(酒道)를 갖기를 바라며 첫 술을 직접 가르치는 부모의 노력과 같이 자녀가 좋은 감정활용능력(Emotional Literacy)을 갖기를 바란다면 감정의 쓸모와 표현 방법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아이의 다양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허가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감정을 표현한다면 그 감정 표현이 끝난 다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버텨내 보세요.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면서 아이가 눈물을 그치고 마음이 다시 잔잔해졌을 때 어떤 말을 해줄지, 어떤 규칙을 분명히 할 것인지 재빠르게 생각하세요. 아이의 울음이 길어질수록 부모는 더 좋은 전략을 세울 시간을 얻는 것입니다. 아이가 감정을 쏟아내는 시간에는 무언가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한 발 양보해서 기다려주세요. 아이의 감정을 오롯이 받아주세요. 감정을 받아주라는 것이지 행동까지 제멋대로 하도록 허가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다 보면 부모는 '내가 감정 쓰레기통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도 있습니다. 쓰레기통보다는 감정을 분리수거하는 청소부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각의 감정은 어떻게 확인하고 처리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세요. 아이가 도무지 지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할 때에는 대신 처리를 도와주고, 아이가 힘이 있을 때에는 스스로 분리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기회도 주세요. 그렇게 감정도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수용하고, 감정의 처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에게 '우리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착한 아이일 때에만, 의젓하게 기다릴 때에만, 용감하게 도전할 때에만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발달 단계라는 것이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6개월에서 18개월은 아이의 무분별한 행동과 씨름을 했다면, 18개월에서 36개월은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들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떠한 감정이 무기가 되어 날아와도 척척 대응할 수 있는 감정의 전사가 되어 아이의 감정들을 온전히 수용해 주세요.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라고 믿을 것입니다.


  부모가 정서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면, 그럼 소진된 부모의 정서는 누가 채워주나요? 부모도 마음의 힘을 충전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밥을 먹고 힘을 내지만, 사람의 마음은 칭찬과 격려와 인정을 받을 때 힘을 얻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인정 욕구를 척척 알아차리고 칭찬과 격려를 보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러한 요구를 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면, 또는 남들이 충분히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어도 도무지 마음에 힘과 여유가 자라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 보세요. 가장 말이 잘 통하는 대화 친구는 나 자신이며, 지친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것도 자기 자신입니다. 아래의 문장들을 자신에게 말해주며 마음의 힘을 채워보세요. 그 결과 사랑의 힘이 내 안에서 솟아나고 넘쳐흐를 것입니다. 그 사랑은 나 자신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쳐 배우자와 자녀, 직장, 원가정, 친구에게 넘실넘실 가 닿을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 역할을 해내느라 애썼어."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마워."
"오늘 내가 베푼 사랑은 상대방에게 힘이 될 거야.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내가 자랑스러워."
"문제를 잘 해결해 낸 내가 멋져."
"하루하루 성장하는 내가 사랑스러워. 나의 성장이 기대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칭찬해."


  가정에서는 부모 역할과 배우자 역할, 직장에서는 업무에 따른 역할, 원가정에서는 자식 역할, 친구관계에서는 사람 좋은 친구 역할까지! 우리는 너무 나도 많은 역할을 해내며 살아갑니다. 어느 것 하나 잘 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많은 것들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역할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서로 칭찬과 격려를 주고받으며 마음의 힘을 충천해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칭찬해 달라고,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려고 우리는 함께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을 해도 돼. 화 때문에 너와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지 않게 우리가 도와줄게."

  

  두 돌이 지났을 무렵, 저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을 깨물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중심성이 아주 강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시기였습니다. 우선 상처를 입은 친구의 부모님께 사과하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전화로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지도를 잘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아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부모가 책임을 지고 그들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잘잘못을 따지거나 아이를 지도하는 일은 그 다음입니다.


  아이가 갑자기 공격적인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킬 때에는 아이 나름 어떠한 이유가 있겠지만, 발달 특성상 그 이유를 명명백백하게 알아내기란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는 좋은 아이야. 그런데 그 행동은 나쁜 행동이야.'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더불어 화가 났을 때 허용되는 적절한 표현 방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화가 나서 자신의 화를 표현하는 것은 옳으나,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하고자 하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분노를 수용해주지 않으면 그 분노는 아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는 순간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모든 감정은 저마다 이유가 있고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생겨난 감정은 어떤 모습의 감정이든 겉으로 적절하게 표현되어야 우리의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분노'라는 감정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그 결과 벌어진 문제를 책임지고 도와야 합니다. 아이의 화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문제 행동의 책임을 아이에게 묻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지도를 통해 화를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다자녀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형제, 자매 간의 다툼이 잦아 부모가 아이들 사이에 벌어진 분쟁이나 갈등을 중재하고 다루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형에게 맞아 울고 있는 동생이 있다면 동생을 품에 안으며 형을 향해 "너는 언제나 좋은 형이야. 하지만 종종 이렇게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구나."하고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동생을 부모가 대신하여 회복시켜 준 다음, 화가 난 형의 마음을 들어봐 준다면 형의 억울했던 감정도 수용해 주고 동생의 상처도 어루만져주는 일석이조의 양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화가 날 때 동생을 때리지 말고 엄마에게 와서 화를 내거나 하소연을 해도 좋다고 허가해 주세요. 든든한 제 편이 있는 아이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PLUS TIP! : 규칙 가르치기


  "예방이 가장 훌륭한 치료법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가 버럭버럭 화를 내고, 문제행동을 일삼는다면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그 예방법을 규칙을 잘 가르치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울타리가 있는 마당과 울타리가 없는 공원


  규칙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으면 아이는 화나고 억울할 일을 덜 겪을 수 있습니다. 규칙을 울타리라고 생각해 보세요. 울타리가 있는 마당과 울타리가 없는 공원 중에 아이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언듯 생각하면 울타리가 없어야 아이는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디까지가 놀아도 되는 곳이고, 어디에는 가면 안 되는 곳인지 그 경계를 분명하게 알고 싶어 합니다.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는 놀이 공간의 경계가 분명한 마당에서라면 아이들은 마음 놓고 뛰어놀고 실험할 것입니다. 하지만 경계가 없는 물가에서 노는 아이는 눈치를 살피며 새로운 시도 또한 해 볼 수가 없습니다. 규칙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규칙의 반대말은 자유가 아니라 혼돈입니다. 아이들에게 규칙을 가르치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규칙을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 부부는 '절대 규칙'과 '조율 규칙'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아이에게 규칙을 가르치고 훈련하였습니다. '절대 규칙'은 부모가 자녀의 건강과 안전, 준법, 윤리, 종교 등을 위해 반드시 지키기를 명령하고 요구하는 규칙을 말합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건강을 위한 절대 규칙을 두 가지 정했고 아이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책임감 있게 도왔습니다. 나머지 상황에서는 언제나 아이와 의논하여 일상사를 조정하고 규칙에 적용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절대 규칙 :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다. 이 규칙은 변할 수 없고 강제적이지만, 경직되고 완고하지는 않다. 절대규칙을 통해 자녀는 일반적으로 안전하며, 도움과 보살핌을 받는다고 느낀다. 자신이 능력 있고 소중하다는 느낌을 가지며, 책임감과 자신감이 생긴다. 때로는 좌절하고 화가 나기도 하며 반항심이 들기도 하지만 규칙을 따르고 책임지는 것을 배우게 된다.

 조율 규칙 : 조율 규칙은 말 그대로 조율이 가능하다. 조율 과정을 통해 부모와 논쟁을 할 수도 있지만, 자녀는 규칙의 적절성, 결정에 필요한 정보의 평가 방법, 책임감 있는 행동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부모와 자녀의 성장을 위한 비밀열쇠
p. 88~89


  저희 가정의 절대 규칙은 자기 전에는 반드시 이를 닦아야 한다는 것과 식사가 끝나지 않고는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규칙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일관된 지도와 책임감이 필요했습니다. 늦은 밤 마무리 될 바깥 일정이 있다면 이 닦는 도구를 챙겨서 외출 준비를 했었고, 지인의 집이나 친척집에서도 이를 닦인 후 귀가하는 차에 태웠습니다. 식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아이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거나 간식을 먹고 싶어 할 때에는 식사 양을 줄여주거나 음식을 떠먹여 줌으로써 식사를 마치고 다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이를 닦고 잠에 들어야 했고, 부모의 도움이나 배려를 받더라도 식사는 마무리하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는 성격이 느슨하고 저녁잠을 이기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 닦기의 집행을 포기하고 내 육신의 평안을 찾아 도망치려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책임감 있게 이를 닦기이고 규칙을 지켜냈습니다.  


  남편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지쳐 잠이 들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닦기 담당은 남편이었지만 잠이 든 남편을 대신해서 제가 아이의 이를 닦여야 했는데, 호기심에 아이를 한 번 시험해 보았습니다. "아빠가 잠들었는데 우리 그냥 이 닦았다고 거짓말하고 자버릴까?"라고 제가 아이를 부추겼더니 아이는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한바탕 박장대소를 하고 일어나 앉더니 저에게 "엄마, 그냥 이 닦고 자자. 그게 마음이 편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는 이 닦고 잠자리에 들기라는 협상불가능한 규칙이 우리 가정에 적용된 지 1년 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습니다. 부모가 만들어 준 규칙이 시간을 거듭하여 아이의 내면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절대규칙에 대한 주제로 부모교육을 하다 보면 부모님들께서는 아무리 지도를 해도 아이가 변하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합니다. 떼를 쓰고 화를 내는 아이에게 어떻게 절대규칙을 일관되게 집행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물으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그저 일관된 안내를 반복하여해 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을 떠올려보세요.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만 엉뚱한 길로 들어선 다고 해도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친절한 목소리로 새로운 경로를 안내해 줍니다.


  예를 들어 층간소음의 문제로 거실에서는 걸어 다닐 것이 가정의 절대 규칙이라 한다면 아이가 거실에서 뛰어다니는 경우 귀찮더라도 매번 거실에서는 걸어 다녀야 한다는 규칙을 놓치지 않고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이가 절대규칙을 지키지 않는 상황을 묵과한다면 아이는 '따라야만 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합니다. 엄하게 야단칠 필요도 없습니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매 상황에 일관된 지도를 반복해서 해주시면 됩니다. 단번에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부모의 그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아이 내면의 규칙으로 자리 잡힌다면, 아이는 큰 노력 없이도 절대규칙을 준수하는 습관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두 가지의 절대규칙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아이와 함께 규칙을 조율하는 훈련을 일상화하였습니다. 저희 아이가 세돌 반이 되었을 무렵, 수박 주스를 먹고 싶다 하여 수박을 착즙 하여 주스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수박 주스를 물병에 담아주자 아이는 저에게 "놀고먹고 놀고먹고 그렇게 하면 어때요?"라고 노래하듯이 물었습니다. 주스를 마셔가면서 놀이를 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주스를 쏟지 않도록 식탁 위에 두고 마시고 싶을 때 오가며 마신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함께 조율한 규칙을 잘 지키며 놀이와 주스 마시는 것을 자유롭게 번갈아 하였습니다. 사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제한 없이 행동을 허가할 수도 있었습니다. 주스를 좀 쏟으면 닦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일상 속에서 또는 놀이 속에서 아이와 협상을 하고 서로의 입장을 밝히고 조율하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과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공정하고 동등하게 협상하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포기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부모의 재성장을 돕는 조언


  분노를 잘 다스리며 살고 있나요? 저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며 각자가 가지고 있던 '분노'라는 감정을 새롭게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자아에 휩싸여 분노를 폭발시키려던 부모가 마음을 가라앉혀 자신의 어린이자아를 통제하고 어른자아에서 이성적이고 분별 있는 반응을 보이면 아이도 이를 따라 합니다.'

아임 오케이 유어 오케이 p. 232


  남편은 평소 친절하고 예의 바른 어른입니다. 하지만 종종 당겨 잡고 있던 고무 밴드가 손에서 놓아지며 살갗을 착! 하고 때리듯, 특정한 상황에서 크게 화를 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남편이 속수무책으로 무언가에 조종을 당하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남편의 이러한 어려움은 아이를 키우면서 상당 부분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날을 세우고 경계를 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합니다.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해 보고 주변 환경에서 원인이 될 만한 단서들도 찾으며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고자 애를 씁니다.


  반대로 저의 경우는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는 법이 없습니다. 화를 내는 대신 상대방의 언짢은 감정을 얼른 해결해 주고자 안절부절못합니다. 아이가 떼를 쓰고 화를 내며 울어댈 때 저는 이상한 쾌감을 느낍니다. 그 시원한 감정은 부러움으로 연결됩니다. 아이가 화를 내고 떼를 써도 그것을 수용하고 여전히 아이를 예뻐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면서 분노라는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화를 내지는 않지만, 화가 느껴질 때 제 자신을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음식점에 가서 키오스크를 통해 음식을 주문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옵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메뉴 통일'이 미덕이었으나, 기계화되고 민주적 이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아주 세밀한 선택까지도 허용이 됩니다. 정서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화를 낼 것인지, 논리적으로 따질 것인지, 이해하고 배려할 것인지, 무시하고 돌아설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옵션 버튼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이 아는 만큼 무한대로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세요. 감정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흘러가게 내버려 두세요. 흙탕물도 가만히 두면 흙이 가라앉고 윗물이 맑아집니다. 감정이 사그라들고 지금 현재 내 앞에 벌어진 상황이 명확하게 보일 때, 그때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류분석 이론은 인간 발달단계를 총 아홉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에서는 그중 인생초기 다섯 단계인 0단계~4단계를 다룹니다. 이 브런치북은 교류분석을 공부하는 어린이집 원장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것을 발달단계와 긍정적 지지어를 기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긍정적 지지어란 발달 단계에 수행해야 할 발달 과업을 지원하는 메시지를 뜻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0단계 - 태내기 (되어가기) 2~3화
1단계 - 출생~6개월 (존재하기) 4화
2단계 - 6~18개월 (행동하기) 5화
3단계 - 18~36개월 (생각하기) 6~8화
4단계 - 3~6세 (정체성과 힘) 9~10화
5단계 - 6~12세 (구조화)
6단계 - 12~19세 (정체성과 성 정체성, 분리)
7단계 - 성인기 (상호의존)
8단계 - 노년기 (통합)




                    

이전 06화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