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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Aug 24. 2024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줄게-

18개월에서 36개월_ 세 번째 이야기



18개월에서 36개월 :
도와달라고 부탁해도 괜찮은 걸까?


  '이 시기의 영아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기 위해 용감하게 도전합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나서서 도움을 주는 것은 실례일지도 모릅니다. 뒤에서 지켜보다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지원해 주세요.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의 힘을 써서 시도해 보고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요청하면 언제나 도움을 주는 부모를 믿고 더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도 시도해 볼 용기를 낼 것입니다.'



 “싫다고 말해도 돼. 너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으면 도전해 봐도 괜찮아."


  이 시기에는 아이에게 도움을 줄 때 도움을 원하는지 물어봐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도움을 주려 했다가 아이는 "내가 할 거야!"하고 무섭게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이제 신체 능력이 제법 발달하여 부모의 도움 없이도 무엇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엄마가 도와줄까? 네가 스스로 해볼래?"하고 물어봐주고 아이의 뜻을 반영해 주는 것이 중요한 부모의 역할이 됩니다.

  

  부모주도 돌보기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부모가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주도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식이고, 아이지지 돌보기는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고 아이가 원하는 만큼의 도움만 주는 돌보기 방식입니다. 아이가 18개월에 접어들면 아이의 행동 능력이 점점 유능해지므로 부모는 부모주도 돌보기를 줄여나가고 아이지지 돌보기를 늘려나가야 합니다.



▯ 부모주도 돌보기(assertive care) : 부모가 자녀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직접 보살펴 주는 돌보기 방식이다. 부모는 자녀의 발달을 고려해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줄 수 있다. 부모주도 돌보기는 자녀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을 때 주로 행해진다.


▯ 아이지지 돌보기(supportive care) : 부모가 사랑으로 자녀와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자녀가 도움을 요청할 때 반응하고 도움을 주는 돌보기 방식으로, 부모의 도움은 자녀의 의지에 따라 수용되기도 하고 거절될 수도 있으며 조율되기도 한다.
 
부모와 자녀의 성장을 위한 비밀열쇠 p. 40~41

  

  아이가 스스로 유리컵에 우유를 따라 마시려고 할 때 저는 아이의 경험과 스스로 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존중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우유를 따른 결과, 우유는 바닥에 반쯤 흘렀고 컵에 반쯤 담겼습니다. 아이는 바닥에 쏟은 우유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컵에 담긴 우유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우유를 따라 마셨는데, 두 번째 시도에서는 우유를 정확하게 컵에 따를 수 있었습니다. 앞 선 실수를 통해 각도나 힘 등을 조절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해보겠다는 의지의 결과 아이는 부모의 도움을 격렬하게 거부합니다. 자신이 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싫어! 내가 할 거야!" 하는 고집은 더욱 강력합니다. 아이의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를 존중해 주세요. 우유가 쏟아지면 닦으면 그만입니다. 쏟아 버린 우유가 아깝긴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한계에 대해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데 드는 기회비용이라 생각해 주세요. 물론 우유를 닦고 청소를 해야 하는 부모의 노고까지 더해져야겠지만, 그러한 경험을 통해 아이의 사고력이 발달한다고 생각하면 기쁜 마음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전 단계에서는 아이의 행동을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읽어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지지해 주는 게 도움이 됩니다. "혼자 우유를 따라 보고 싶었구나.", "스스로 해내고 싶었구나." 등 아이의 의도를 격려해 주세요. 행동의 결과는 실패이거나 실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과학자들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꼬마 과학자들의 가설과 실험에 대한 의지를 인정해 주세요.


  제가 사는 경상도에는 '저지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지르다'의 경상도식 표현입니다. 이 시기에는 저지리를 잘하는 아이가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동과 실험, 즉 저지리의 결과를 오감으로 확인하면서 아이는 원인과 결과를 배우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갑니다. 추론적 사고가 미숙한 이 시기의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사고합니다. 얌전히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 만으로는 사고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실수와 실패를 많이 경험하는 아이가 많이 배우고 사고력을 키웁니다. 그러니 마음껏 저지리 하게 허가해 주세요. 이 시기에는 정리정돈을 가르치는 것보다 사고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더 적합한 발달 과업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도움을 청해도 돼."


  이 시기의 발달 단계를 강의할 때 저는 '진짜 스스로'와 '가짜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조 능력이 발달하다 보니 이 시기의 부모는 아이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동작들을 스스로 해내기를 기대합니다. 스스로 밥을 떠먹고, 스스로 놀잇감을 정리하고, 스스로 신발을 신는 것을 자녀 양육의 목표로 둡니다. 아이의 발달 속도는 개별차가 있기 마련인데 또래 아이들과 비교를 하며 자조 기술을 평가합니다. 드디어 아이들은 성장을 재촉당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가짜 스스로'는 부모가 정한 행동 목표를 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해 낸 것을 말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냈으면 하는 행동목표들을 부모가 정하고 아이는 부모의 지도에 따라 자조 기술을 습득해 나갑니다. 반면 '진짜 스스로'는 아이가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 목표로 정했으나 스스로 해내기에는 역부족이어서 부모의 도움을 받아 성취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가 자율적으로 생각하여하고 싶은 것을 정하고 부모는 아이의 미숙한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을 대신해 아이의 요구에 따른 도움을 주며 함께 과제를 해결해 냅니다.


파리지옥과 끈끈이주걱을 사와서 스스로 물을 주며 키우는 꼬마-


  이 시기에 저희 아이는 파리지옥과 끈끈이주걱을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스스로 식물을 사러 갈 수 없으니 우리는 아이를 태워 화훼농원에 데리고 갔고 아이가 고른 식충식물 두 개를 구매해 주었습니다. 스스로 물 주기를 원하는 아이의 욕구를 반영하여 빛도 잘 들고 물이 흘러도 괜찮은 베란다에 식충식물을 놓아두고 키우게 하였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파리지옥과 끈끈이주걱을 샀다며 자랑하고 다녔고, 혼자서 물도 주고 개미도 잡아주며 키운다고 뿌듯해했습니다. 부모의 도움이 컸지만 아이는 자신이 기획하고 결정하고 행동한 것에 스스로 아주 후한 점수를 매겼습니다.


  

  이런 경험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남편이 어젯밤 아이가 어질어놓고 잠든 장난감을 정리하다가 저한테 물었습니다. "이것도 이강이가 만든 거야?" 저는 순간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아이가 주문하는 대로 제가 자석블록을 붙여서 만든 경찰차였기 때문입니다. 자석블록의 자력이 약해 잘 떨어지고 형태가 흐트러지다 보니 아이가 몇 번 스스로 시도했지만 결국 짜증을 내며 만들기를 포기했었습니다. 그대로 끝인가 했는데 아이는 생각을 고쳐먹고 저한테 자기가 시키는 대로 블록을 좀 붙여 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골라주는 블록으로 아이가 알려주는 위치에 붙여가며 아이가 원하는 경찰차를 완성해 주었습니다. 완성된 경찰차를 본 아이는 매우 기뻐하며 "맞아! 이거야!"하고 좋아했습니다. 저의 손으로 만들기는 하였으나 이 구성물의 감독은 아이였기 때문에 이것은 내 작품이 아닌 아이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스스로'의 경험을 많이 쌓은 아이는 자율적으로 놀이하는 능동적인 아동이 될 것이며 더 자라서는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한 학생이 될 것입니다. 더 길게 보아서는 자신이 원하는 진로와 직업을 찾고 자아실현을 목표로 살아가는 자율적인 인간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그 첫 단추가 꿰어지는 시기가 바로 18개월에서 36개월! 이 시기입니다. 영원히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다음 단계가 되면 삶의 기술들을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역할과 힘을 확인하고자 하는 발달 욕구를 보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기에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원하는 결과를 보기 위한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세요. 아이가 요청하는 도움을 거절 없이 잘 들어준다면 아이는 부모를 든든한 뒷배로 믿고 어떤 일에든 도전하는 용기를 보일 것입니다. 아이의 대소근육과 인지능력이 발달하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그 과정을 돕는 지지대가 되어주세요. 지지대 없이 높이 자라 오르는 토마토는 없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능력 이상을 경험해 봄으로써 더 큰 세상을 맛볼 것입니다.

  


 





■ 부모의 재성장을 돕는 조언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새로운 길로 출근을 하고, 새로운 이론을 공부하고, 새로운 직업으로 이직을 하는 등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설레고 에너지가 샘솟는 자극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고 진이 빠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재능이 훌륭하지만 성공을 위한 도전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눈에만 보이는 재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능력을 다 갖추고 있는데 왜 시도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준비되어 있는 성공은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행동해 보세요. 자신의 행동 능력을 믿고 온갖 꾀를 부리고 실험을 벌이는 이 단계의 꼬마들처럼 저지르고 해결해 내세요. 지금보다 더 자율성 있고 사는 맛이 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전한 길, 보장된 길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굳이 고생하여 갓길을 걸을 필요는 없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은 자신도 모르고 있던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길이 될지도 모릅니다. 내 능력을 내 예상 안에 가두지 마세요. 문고리를 잡고 돌려야 문이 열립니다. 문을 열어 보아야 문 뒤에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도하세요! 충동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아 나아가세요. 지금껏 이룬 성과를 내려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이만큼도 왔다면 더 멀리도 갈 수 있습니다.


  제가 내년이면 국공립어린이집 원장을 내려놓고 귀촌을  계획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나은 '플랜 A+'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획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플랜은 없고 가설과 기대만 가득합니다. 안전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안전이 보장되지만  이상은 없습니다. 저는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길로 되돌아오는 삶의 경로에서 벗어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을 방생하러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크고 좋은 어항이 있더라도 어항은 어항입니다. Just Trying!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시도해 보세요.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류분석 이론은 인간 발달단계를 총 아홉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1]에서는 그중 인생초기 다섯 단계인 0단계~4단계를 다룹니다. 이 브런치북은 교류분석을 공부하는 어린이집 원장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것을 발달단계와 긍정적 지지어를 기준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긍정적 지지어란 발달 단계에 수행해야 할 발달 과업을 지원하는 메시지를 뜻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0단계 - 태내기 (되어가기) 2~3화
1단계 - 출생~6개월 (존재하기) 4화
2단계 - 6~18개월 (행동하기) 5화
3단계 - 18~36개월 (생각하기) 6~8화
4단계 - 3~6세 (정체성과 힘) 9~10화
5단계 - 6~12세 (구조화)
6단계 - 12~19세 (정체성과 성 정체성, 분리)
7단계 - 성인기 (상호의존)
8단계 - 노년기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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